은둔경험 청년들에게 한분 한분의 스토리를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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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3: 다정 -1



쉽게 잘 될꺼라고 말할 수 없어요  

두번의 은둔을 경험한 다정의 이야기 (1)






안녕하세요. 본인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두 번의 은둔 경험으로 인해서 인생의 주도권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나를 아끼는 법을 알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두 번의 은둔 경험이라는 게 조금 특이하게 들리는데요. 그렇다면 은둔을 각각 몇 살 때부터 시작하셨나요?

음, 첫 번째 은둔은 21살 초반 때 시작했고, 두 번째 은둔은 26살 중반 때 시작을 한 거 같아요. 첫 번째 은둔은 한 2년 정도 걸렸고요, 두 번째 은둔은 2년 반 정도로 총 4년 반 걸렸네요.





강제로 시작된 첫 번째 은둔





은둔을 두 번이나 겪게 되신 계기가 궁금한데, 첫 번째 은둔 계기부터 제가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희 아버지께서 굉장히 말이 거치신 편이었어요.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지셨는데 옛날에는 말을 할 때 굉장히 칭찬보다는 엄하게 하는 걸 좋아하셨던 분이셨어요. 거기에다가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폭언에 굉장히 힘들어 하시면서도 말을 한 마디 못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게 너무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그런 걸로 마음의 상처를 굉장히 많이 받고 아버지 랑도 마찰이 굉장히 심했거든요.


거기에 제가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대학생활에 성실하지 못하고 좀 많이 놀았거든요. 그런데 21살이 되자마자 아버지가 대학교 학생증을 가위로 잘라버리시더라고요. 그러고는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저희 아버지가 공무원이신데 아마 당신처럼 연금 받고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셨겠죠. 그런데 그걸 좀 부드럽게 말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말씀드렸다시피 폭언 성향이 있으셔서 말을 거칠게 하셨어요.


그러고는 집에서 나가지를 못하게 하시더라고요. 집에서 공부만 하라는 식으로. 제가 몰래 학교를 다녀와도 집에 들어오면 완전히 화가 나셔서 학교조차도 아예 가지 못하는 분위기였죠. 친구를 만나는 건 당연히 안 됐고요. 그냥 딱 집에서 공무원 준비만 해라. 이런 식으로 나오셔서 저는 그렇게 강제로 은둔을 하게 됐죠.



다정 씨의 첫 번째 은둔 당시 공시 공부했던 흔적. 방 안에 갇혀 원치 않는 공부를 해야 했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학교조차도 못 가게 하셨다니, 그럼 외출을 아예 못 했던 건가요?

네. 일말의 과장 없이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거실에 딸린 화장실 뿐이었어요. 초반엔 몰래 몇 번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했지만, 그런 날은 집안 분위기가 너무 살벌해서, 그런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던 저는 그마저도 나중에는 포기하고 집에서 공부만 하게 됐죠.



어떻게 보면 자의로 해도 답답한 게 은둔인데 강요에 의해 은둔하셨다니 정말 답답했을 것 같아요. 다정 씨의 아버지께서 다정 씨를 그렇게까지 통제하셨던 이유가 뭘까요?

아버지가 제가 노는 거를 굉장히 안 좋아하셨어요. 노는 거를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을 하셔서 그러셨던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은둔을 강제로 하게 됐을 때 다정 씨는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제 느낌은요, 그냥 동물원의 원숭이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란 사람의 인생은 그냥 아버지의 인생 계획에 이끌려 가는, 그러니까 자기의 의지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아버지 당신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그게 되게 비참하고 슬펐던 것 같습니다.





유일한 탈출구, 군대 





듣는 저도 너무 슬프네요. 그렇다면 그런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첫 번째 은둔에서 나올 수 있었나요?

아버지랑 엄청 싸웠어요. 제가 원숭이처럼 살았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외출도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하는데 공무원 시험도 당연히 잘될 리가 없었죠. 탈락 결과가 나와서 아버지가 저를 혼내려고 오셨는데 제가 거기서 완전 발악을 했어요.

내가 무슨 원숭이냐고, 내가 무슨 아버지 인생의 인형이냐 하면서 막 발악을 하니까 아버지는 그제서야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어요.


그리고는 제가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미뤄놨던 군대에 들어갔죠. 남들 다 들어가기 싫어하는 군대인데 그때의 저는 군대에 너무 가고 싶었어요. 그냥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은둔 중 언젠가 견딜 수 없이 답답하던 날 밖에 나가서 찍은 사진



집은 사실 가장 편안해야 되는 공간이잖아요. 근데 그 집에서조차 편안함을 찾지 못했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도 안 가네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군대에서는 적응을 잘했거든요. 군대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제대한 뒤에 취업 제안을 받고 취직을 했죠. 그러면서 같이 입사한 동기 여성 분이랑도 연애도 하고, 그래서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제 좀 내 인생의 봄날이 오는구나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봄날은 아직까지는 안 왔던 거더라고요.


그렇게 나름 잘 지내고 있었는데, 제가 아버지처럼 말을 험하게 하는 그런 사람한테 굉장히 위축이 되는 게 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도 이제 그렇게 폭언을 하는 상사가 있었고, 그 사람에게 굉장히 주눅이 들다 보니까 제 업무가 아닌 일을 시켜도 말 한 마디 못하고 꼼짝없이 하고 그랬었어요. 한 번은 상사가 자기 일을 저에게 떠넘겨서 제가 내가 이건 좀 아니지 않냐고 했더니 막 호통을 치는 거예요. 사회생활 처음 해보냐고.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던 게, 제 여자친구가 그 상사랑 같이 숙박업소에서 나오는 걸 봐 버렸거든요. 그때 많은 충격을 받고 퇴사한 뒤 은둔 생활을 두 번째로 시작했던 거 같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고통스러웠고 숨도 안 쉬어지고 그러더니 나중에는 눈물이 마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정말로 눈물이 안 났어요. 그냥 내 속은 타들어가는데 눈물도 안 나고, 그랬던 게 기억이 납니다.





또 다시 시작 된 두 번째 은둔 





그러면 첫 번째 은둔 때는 사실 공무원 준비만 했잖아요. 그럼 두 번째 은둔 때는 뭘 하면서 하루를 소진했는지 궁금하거든요.

두 번째 은둔 때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유튜브 같은 거 보면서 방에 처박혀 있고, 유튜브에 무한도전 클립 같은 게 있거든요. 그런 거 보면서 낄낄 대거나 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게임 하니까 제가 기억이 나는 게, 너무 자존감이 떨어져 있었을 때는 게임을 해서 이기면 화면에 '승리'라고 뜨잖아요.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보곤 했었어요. 그런 거라도 없으면 내가 너무 초라하니까요. 지금도 사진첩에 그 사진들이 남아 있어요.

그러다가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올라올 때면 자전거 하나 끌고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다정 씨가 게임에서 이겼을 때 찍은 사진. 그는 이 사진으로 스스로의 초라함을 견디려고 했다고 말했다.



힘들 때 했던 게 여행이라니, 조금 흥미로운 부분이 있네요. 주로 어떤 곳들을 갔었나요?

전국을 거의 다 돌았었는데요, 그 중 강원도를 많이 갔었어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 강원도와 가까워서 기차를 타고 가볍게 가기 좋았던 것도 있고, 강원도에는 산과 바다가 모두 있잖아요. 그래서 예쁜 곳이 많아요. 저는 사람보다는 자연이 좀 보고 싶어서 강원도로 많이 갔었던 거 같아요.


그렇군요. 그럼 가서 주로 어떤 풍경을 봤나요?

논길도 많이 봤고요. 강원도다 보니까 바다에서 파도도 많이 봤고, 무턱대고 길이 없는 산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거의 반 조난 비슷하게 헤매면서 그냥 무작정 걸어 다닌 적도 있고, 제가 보내드린 사진 중에 파도치는 곳이 있어요. 거기서 막 큰 소리로 욕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파도 소리에 묻히거든요.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막 욕을 하면 속이 조금은 뚫리는 것 같을 때도 있었고, 그냥 그런 기억들이 생각나네요.

힘들 때 했던 게 여행이라니, 조금 흥미로운 부분이 있네요. 주로 어떤 곳들을 갔었나요?



전국을 거의 다 돌았었는데요, 그 중 강원도를 많이 갔었어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 강원도와 가까워서 기차를 타고 가볍게 가기 좋았던 것도 있고, 강원도에는 산과 바다가 모두 있잖아요. 그래서 예쁜 곳이 많아요. 저는 사람보다는 자연이 좀 보고 싶어서 강원도로 많이 갔었던 거 같아요.



그렇군요. 그럼 가서 주로 어떤 풍경을 봤나요?

논길도 많이 봤고요. 강원도다 보니까 바다에서 파도도 많이 봤고, 무턱대고 길이 없는 산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거의 반 조난 비슷하게 헤매면서 그냥 무작정 걸어 다닌 적도 있고, 제가 보내드린 사진 중에 파도치는 곳이 있어요. 거기서 막 큰 소리로 욕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파도 소리에 묻히거든요.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막 욕을 하면 속이 조금은 뚫리는 것 같을 때도 있었고, 그냥 그런 기억들이 생

다정 씨가 여행 당시 찍었던 사진들. 나는 이 사진들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막 죽고 싶고 자살 충동이 들고 네 심장이 쥐어짜는 느낌이 들었을 때 떠났잖아요. 그럼 그 여행지에 가서는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이게 제가 말이 유창하지 못해서 표현은 잘 못하겠는데, 여행지에 가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혹은 열심히 자전거 타는 사람들 보면 그게 너무 부러웠어요. 나는 이렇게 멍하니 하루하루 시간 보내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든 뭘 하든 열심히 하잖아요. 그 열심히 하는 게 굉장히 부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연을 볼 때는 그냥 복잡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조금 웃기는 얘기긴 한데, 자연 앞에서 사람은 되게 작은 존재잖아요. 근데 나는 그 작은 존재에 이런 작은 일마저 힘들어하고 있는데 산은 우거지고 파도는 여전히 치고 있고, 그런 걸 보면서 내가 참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근데 그게 또 너무 부정적인 생각은 아닌 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오는 그런 경험을 했어요.



다양한 감정을 겪었군요. 그러면 그렇게 여행을 가면 집에 있을 때보다 뭔가 좀 나아지는 점이라든가 그런 게 있었나요?

집에서 벗어나는 건 좋았는데요. 근데 내가 이렇게 일 같은 걸 하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좀 그런 의문들이 들었죠.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걸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죠.

사실 저는 조금 더 기분이 나아진다, 기분 전환이 되게 많이 된다. 그런 답변을 생각했는데 얘기를 들어 보니 오히려 그런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니 제가 드는 생각이, 여행이란 게 되게 멋져서 가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너무 답답했을 때 나갔던 거였고, 그게 인생에 해답을 줄 만큼 그렇게 대단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라는 느낌?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는 말, 저한테 많이 와닿았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여행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냥 잠깐 숨은 돌릴 수 있는데, 여행을 간다 하더라도 제일 근본적인 게 해결이 되지 않은 이상 낙원처럼 편안하고 행복하지는 않은 거죠.

왜냐하면 이미 썩어있는 건 내 마음이니까, 다른 곳(여행지)에 가면 그게 신선할 수는 있어도 썩은 거를 고칠 수는 없다는 거죠. 내가 이 마음을 고치려면 결국에는 도망을 치는 게 아니라 그거랑 맞서 싸워야 되는 거예요. 물론 그게 진짜 어렵지만요.



이건 인터뷰랑 살짝 거리가 있는 얘기긴 한데, 가끔 가다가 이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 제가 힘내라고밖에 말을 못하는 이유가,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근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내가 그 친구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냥 그냥 힘내라고밖에 말을 못하는 것 같아요.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까, 그거에 대고 내가 함부로 '잘 될 거야' 이런 말은 못하겠고, 그리고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이런 말을 들어봤자 제 경험상으론 잘 안 들리더라고요. 그러니까 힘내라는 말밖에 못 하는 거죠.





나를 은둔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그렇군요. 그럼 다른 얘기로 넘어가서, 결국은 다정 씨가 첫 번째로 은둔을 하게 만든 원인이었던 아버지도, 그리고 이제 상사의 부당했던 그런 대우들도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의 배신도 모두 사람에 의한 상처였잖아요. 두 번째 은둔 당시의 다정 씨는 나에게 상처를 줬던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요, 정말 미웠어요.

인생이 그 사람들 때문에 다 무너졌다는 생각이 드니까 거친 말로 정말 죽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웠죠. 그래서 제 기억으로는 당시에 사람을 못 믿었던 것 같아요.

그냥 미웠어요. 그냥 너무 미웠고, 그것 때문에 대인기피증도 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초반에는 방금 말한 것처럼 밉고 죽이고 싶고 그랬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좀 나중 가서는 마음이 변한 점이 있었나요?

나중에는 변한다기보다는 자포자기식으로, 아까도 얘기 했는데 눈물이 말라버리더라고요.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는 거예요. 이게 더 화가 안 나는 건지 아니면 화낼 기력이 없는 건지 모르겠는데,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미웠던 마음마저 그냥 옅어지더라고요.

근데 그게 좋은 건 아닌 게, 그만큼 무기력해져요. 지금도 무기력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사람이 되게 무기력해져요.

옛날에는 그게 증오라는 마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건 애증이고 상사하고 전 여자친구에게는 증오였는데, 그 증오가 이제 무기력으로 바뀌게 되더라고요. 그 분노와 증오라는 뜨거웠던 감정이... 이게 불이 계속 지펴질 수는 없잖아요. 나중에 그게 식어서 재가 됐는데, 문제는 그렇게 재가 된 것도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지금도 그런 잿더미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나요?

지금은 제가 은둔형외톨이에서 탈출을 했는데요, 그런데도 잿더미가 가끔 불 때가 있어요. 그러면 하루 종일 고생을 하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냥 제 삶에 남은 상흔 같아요. 제 뼈에 새겨진 상처들, 그냥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에게 받은 상처들로 인해서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싫어지거나 하진 않았나요?

저는 처음에 대인기피증이 왔었어요. 사람 많은 곳을 가면 공황장애 비슷한 게 오는 거예요. 머리가 갑자기 막 하얘지고 털이 쭈뼛쭈뼛 서고,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배신할 수 있는 나쁜 존재들로 느껴졌었죠. 예를 들어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에 가면 정말 땅바닥만 보고 걸었거든요. 그런데 냉동식품 코너 가면 시식을 권유하잖아요. 그러면 '이 사람이 이걸 왜 나한테 권유하지?' 직원 분은 그냥 사라고 권유하는 건데 '이 사람이 또 나를 배신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계속 드니까 너무 힘들었죠.





(2편에 이어서)



interviewer_하나 | 방 밖으로 나온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다시 은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중학교를 중퇴하고 그대로 11년간 은둔했습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를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1년 동안 두 번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로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운영한 '은둔고수' 1기와 2기를 수료했습니다. 은둔형외톨이 지원 영역에 발을 담그기 시작해 현재는 저술 활동과 더불어 관련 연구나 언론매체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hanahana122123@gmail.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인터뷰이 신청도 받습니다. 또는 은둔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tintin@theseed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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