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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4: 모모 -1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  

6년간 은둔했었던 모모의 이야기 (1)






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올해로 26살 된 모모라고 합니다. 은둔한 지는 5년 됐습니다.

 


이번엔 모모 씨의 존재 소개를 해주세요! 모모 씨의 사회적 배경 없이 모모 씨의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렵네요. 저는 대인기피가 심해서 사람을 어려워하는, 뭐 이런 것도 되나요? (그럼요. 됩니다) 저는 대인기피가 심해서 사람을 어려워하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대인기피가 생겼기 때문에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종종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는 모모라고 합니다.



모모 씨께서는 은둔을 몇 살 때부터 시작하게 되었나요?

이게 기간이 굉장히 애매한데요. 일단은 고등학교 졸업 후 20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말은 그전에도 조금 은둔의 조짐이 있었다는 그런 말씀이신가요?

네 그때는 학교를 다녀서 은둔을 하지는 않았는데요. 그런데 중간중간 등교 거부를 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이제 사적으로는 따로 만나지 않는 등 그런 조짐이 있었습니다.



그럼 혹시 그런 것들이 더 있었나요? 예를 들어 방학에 외출을 전혀 안 한다든지 하는 류의.

그렇죠. 방학에는 물론이고 학교도 고3쯤 거의 졸업할 때쯤에는 일주일에 거의 두세 번 나갈까 말까 했었어요.

학교 내에서도 이제 친구들이 다가와도 피하고 혼자 있으려고 하는 시간도 좀 있었고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지금 현재 26살이신데 얼마나 은둔하신 건가요?

20살부터 지금까지 정확히 6년이네요.





조금 다른 선택, 너무 커다란 상처 





그러면 저희가 이걸 좀 여쭤보고 싶은데, 은둔을 하게 된 계기가 굉장히 궁금해요. 좀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되지... 제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굉장히 좀 강압적이셨어요.

굉장히 폐쇄적으로 저와 제 언니를 키우셨거든요. 외출도 안 되고 친구도 부모님 허락 하에 맞는 친구만 사귀어야 하고 진로도 부모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강하게 못하게 막으시고. 그런 식으로 자의를 가지고 할 수 있는 행동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 점에 대한) 반발 심리로 제가 성격이 굉장히 드셌거든요.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 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었구요. 그래서 제가 자립심이 일찍 생겼었는데, 그런 상태로 중학생쯤에 이제 연애를 했어요. 그런데 그 연애 상대가 이제 동성 친구 였어서, 부모님의 기준에서 이제 ‘동성애자는 죄악이다' 부모님이 종교가 있으셔서 거기에 굉장히 예민하셔서 그런 부분에서 대처가 굉장히 안 좋았어요.



제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아신 후부터 저와 그 친구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서 저를 감시하기도 하시고 정신병원에 보내기도 하시고,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니까 저도 어린 나이에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넘어서 이제는 제가 맞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과 대치를 했어요.

이 과정에서 이제 어머니가 그 친구 부모님한테도 따로 연락을 하셔서 친구 부모님도 알게 되고 제 친구들도 그 사실을 다 알게 되면서 저한테 주변에서 비난이 많이 들어왔었거든요.



아웃팅을 당한 거군요.

그렇죠. 그래서 제가 이대로는 버티기만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맞섰는데, 제가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맞서기 시작하면서 일이 굉장히 커졌어요.

저와 제 친구들 사이에서는 학폭위 문제가 터지고, 또 애인 부모님께서는 그 애인을 만나면 저를 죽여버리겠다 라는 그런 류의 협박을 하시고 또 저희 부모님은 저를 정신병원에 보내시고 이러면서 일이 굉장히 커졌었거든요.

그렇게 되면서 이제 너무 어린 나이에 저에게 많은 일이 겹치면서 저도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어릴 때부터 정서가 좀 불안정한 상황에 있다 보니까 사람을 좀 잘 못 믿었어요.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될 것 같고 스스로 강해야 한다는 이런 강박이 있어서 친구들한테도 강한 모습만 보여주고 웃기만 하고 약한 모습, 우는 모습 이런 건 전혀 보여주지 않았었거든요.




그런 모습을 유일하게 보여줬던 상대가 그때 당시의 애인이었어요.

근데 이제 제가 많은 상황이 겹치면서 정서가 불안정해지기 시작하니까 이 힘든 거를 이제 애인한테 풀기 시작했죠. "힘들다. 나 이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애인도 저도 나이가 굉장히 어렸잖아요. 중학생이니까 걔는 이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저를 둘러싼 제 주위에서는 심각한 상황이 많았는데 애인은 애인 주변에서 이런 소란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저랑 애인이랑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래서 저는 힘들다고 토로하는데 애인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면서 저희끼리 또 관계가 좀 불안정해졌죠. 그리고 나서 결국은 저희가 깨졌어요.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깨졌는데 제가 그때 당시에 안 그래도 정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제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사람이랑 헤어진다고 생각하니까 거기서 좀 크게 무너졌었죠.



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너무나 힘든 일이었을 거 같아요.

제가 믿었던 사람과 헤어지게 되고 힘든 상황에 몰려 있고 그러면서 우울증이 굉장히 심하게 왔어요. 그때부터 대인기피도 생긴 것 같아요.

원래부터 사람을 못 믿다가 그 친구를 만나면서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됐는데 그게 이제 끝나버리니까 정말로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고, 그리고 제가 그 친구랑 깨졌다는 말은 결국 제가 주변의 비난을 이기지 못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었거든요. 그러면서 굉장히 큰 무력감을 느꼈어요.

저 개인으로서는 아무것도 이겨낼 수 없다는 무력감도 느꼈고, 그러면서 삶의 의지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우울증이 먼저 생겼죠.



그때가 이제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당시 우울증이 왔는데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힘들어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야 된다라는 강박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나는 절대 병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좀 무모한 생각이랄까, 그런 걸 가지고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그때 대인기피가 너무 심해서 사람한테 말을 못 걸었거든요. 사람 앞에서만 서면 식은땀이 줄줄 나고 어떤 말을 꺼내야 될지 모르겠고 머릿속이 복잡하고 좀 신체 증상도 심하고 그랬었는데 저는 이게 제가 아프다는 신호라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친구들한테 더 다가가서 말을 걸고 그랬어요.

근데 그게 잘 안 됐죠. 먼저 다가가서 말은 걸었는데 그 다음 할 말을 잇지 못한다거나 혹은 신체 증상이 너무 심하니까 그게 티가 날 것 같아서 도망간다던가 이런 식으로 제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들이, 예전엔 감출 수 있었던 것들이 지금은 그게 안 되니까 점점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제 학년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을 피하는 빈도가 굉장히 늘어났고, 그러면서 고3 때쯤에는 피해망상까지 생겼었어요.



어떤 종류의 피해망상이요?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을 읽고 있을 것 같다라는 피해망상이었는데요. 그 정도가 너무 심해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사실로 믿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제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망상에 제 생각을 계속 검열하고, 생각조차 이제 제 마음대로 못하게 된 지경까지 이른 거죠.

머릿속으로라도 스스로 '힘들다' 이런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 것 같으니까 머리로도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계속 검열을 한 거예요.

밖에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내 생각을 읽을 것 같으니까 학교도 가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씩 등교 거부를 하고, 졸업 할 때쯤에는 거의 학교를 안 나갔죠.

그러다가 졸업한 뒤에는 뭔가 되게 자연스럽게 '난 밖에 나가면 안 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집에만 있게 됐어요. 그전까진 유일하게 나가는 곳이 학교였는데 이제 학교도 안 나가게 되니까 은둔을 하게 된 거죠.



피해망상이라니, 당시에 정말 힘드셨을 거 같아요.

네. 이 부분은 얘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 시선이 좀 어떻게 변할까 약간 이런 걱정도 있어서 지금의 친구들한테도 얘기를 잘 못 했어요. 증세가 그 정도까지 심했다는 얘기를 하면 아무래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해서요.



그렇다면 모모 씨는 아웃팅이나 부모님의 통제나 그런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서 은둔을 6년 동안 하신 거잖아요. 그럼 그 은둔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게 된 이유에는 뭐가 있다고 보세요?

아무래도 제 생각에는 대인기피랑 신체 증상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아까도 신체 증상을 언급하셨는데 어떤 신체 증상이요?

제가 극도로 긴장을 하면 여러 증상들이 생겨요. 제일 간단한 걸로는 식은땀이 나고 몸이 뜨거워져요. 그래서 얼굴이 되게 많이 빨개지거든요. 그런 것도 있고 이게 조금 더 심해지면 머리가 이제 덜덜덜 떨리거나 숨이 조금씩 차는데, 호흡 곤란이라고 하죠 이런 걸. 당시의 저 자신에게는 그런 증상이 있는 것도 힘든데 그런 증상을 남한테 보인다는 생각이 제일 힘들었어요.

이걸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이제 사람과 접촉할 이제 상황을 안 만드는 거죠.





무기력함과 싸우던 은둔생활 





은둔을 하는 동안은 집 안에서 어떻게 지내셨나요. 수면 패턴이라든지 식사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그리고 은둔을 하면 남아나는 게 사실 시간인데 그런 시간들을 때우기 위해서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알고 싶거든요.

본가에 있었을 때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자취하고 나서는 이제 초반에는 그래도 좀 만들어 먹기는 했는데 이제 우울증에 걸리다 보면은 대부분 증상이 무기력증이잖아요.

저도 초반에만 잠깐 만들어 먹다가 더 이상 이제 만들 기력이 없어서 배달 음식을 엄청 먹었고 그 배달음식 쓰레기를 치울 기력이 없어서 제 방이 쓰레기장처럼 된 적도 있었고요.

그리고 생활 패턴도, 제가 자취하던 방이 좀 어두웠어요.

완전 밝은 낮에는 그래도 낮이라는 게 조금 티가 나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거의 티가 안 나기 때문에 시계를 굳이 보지 않으면 시간을 확인하기가 되게 어두운 상태였어요.

거기다 제가 계속 혼자만 있다 보니까 시간을 확인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새벽이 지나는지도 모르고 깨어 있다가 아침인지도 모르고 자다가 이런 생활을 이제 반복하다 보니까 저도 이제 생활 패턴이 많이 뒤집혔었죠.



그렇다면 그 생활 패턴을 좀 돌려보기 위해서 노력한 적이 있나요? 시도한 적이 있다면 결과는 어땠나요?

패턴이 서서히 좋아졌죠. 제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를 했었거든요. 시행착오가 굉장히 많았어서 초반에는 당연히 잘 안 됐었어요. 밤을 새고 자본다던가 밤에는 따뜻한 걸 먹어본다던가 아니면 하루 종일 자본다던가 이런 식으로 시도도 했었고요.

깨어 있는 시간에 절대 침대에 눕지 않는다던가, 또 자기 전에 조금 격렬한 활동을 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서서히 제가 어떨 때 피곤해하고, 또 어떨 때 활발해지는지 이런 성향을 확인을 하면서 최후에는 성공을 했어요.



그래서 그 수면 패턴이 얼마 정도 이어지던가요?

그 수면 패턴은 사실 재작년쯤에 겨우 맞췄거든요. 거의 2년 동안은 그런 엉망인 세월을 보냈죠. 제대로 맞춰서 시간을 보낸 지는 한 1년 정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은둔하면서 활동한 건... 드라마를 엄청 많이 봤죠. 남는 게 시간밖에 없으니까 완결난 드라마를 몰아서 계속 봤어요. 드라마 보느라 이틀씩 밤샌 적도 있고요.

드라마가 질릴 때쯤에는, 사람이 뭔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자책을 하게 되잖아요. 진짜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쓰레기 같고. 이런 생각 때문에 공부를 조금씩 했어요. 그림을 공부한다거나 아니면 태국어도 잠깐 공부했었구요. 아니면 정말 커리어에는 되게 쓸모 없을 수 있는 책도 많이 읽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했었던 거 같아요.



모모 씨가 태국어 공부를 했던 흔적



합리화라고 하면 어떤 건가요?

뭔가 그래도 나는 이 은둔하는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있지 않다라는 종류의 합리화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24살 때는 1년 동안 그림으로 커미션(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주는 온라인 활동)을 했었거든요.

그때는 정말 커미션하고 자고 커미션하고 자고 하는 식으로 하루를 보냈었어요.





은둔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은둔 생활을 했잖아요. 그런 생활을 벗어나려고 노력해 본 적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시도를 했는지가 알고 싶어요.

저는 이제 시도를 굉장히 많이 했었거든요. 시행착오를 굉장히 많이 했고 이제 어떻게 보면 케이투에 들어간 게 제 최고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초반에는 일단 병원을 굉장히 꾸준히 다녔어요. 약도 꾸준히 먹고 상담도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거든요. 고액 상담도 받아보고, 좀 저렴한 상담도 받아보고,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자문도 구해보고 했었죠.

그리고 아까 전에 합리화를 하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고 했잖아요. 저는 공부를 하면서 저의 하루 스케줄을 좀 맞추고 싶었어요. 하루 일과가 좀 맞춰져야 정신적으로 좋아진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위해 계획을 짜서 행동하기도 했었죠.



그리고 제 가장 큰 문제가 대인 기피랑 이제 피해 망상이었잖아요. 이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까 이런 정신적인 부분을 회복을 해보려고 내 스스로 어떨 때 힘들어하는지 어떨 때 괜찮아지는지 저의 상태를 체크해보기도 하고, 밖에 나가는 연습을 하려고 힘든 상황이 억지로 나가본 적도 있긴 해요.

이 상황에서 나가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확인하려고 딱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지나가는 아저씨랑 마주쳤거든요. 거기서 충격을 먹어서 진짜 그 뒤로 한 달 동안 못 나갔어요. 누군가와 맞닥뜨리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엄청나게 시도를 많이 했었군요. 정신과도 다니고 상담도 받고. 그러면 방문 상담을 자취하면서 받은 적이 있나요?

자취하면서는 방문 상담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때는 밖에 나가는 걸 연습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서, 방문 상담을 하면 (집 밖으로) 못 나갈 것 같았거든요. 집에는 그래도 가족들이 있는데 자취하면 정말 혼자잖아요. 스스로 나가지 않으면 누가 밀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약간 궁지에 몰 수 있는 상황을 좀 만들었던 것 같아요. 결국 나갈 수 있도록.



그가 은둔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밤산책. 주로 자전거를 탔다고 한다.





(2편에 이어서)




interviewer_하나 | 방 밖으로 나온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다시 은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중학교를 중퇴하고 그대로 11년간 은둔했습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를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1년 동안 두 번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로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운영한 '은둔고수' 1기와 2기를 수료했습니다. 은둔형외톨이 지원 영역에 발을 담그기 시작해 현재는 저술 활동과 더불어 관련 연구나 언론매체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hanahana122123@gmail.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인터뷰이 신청도 받습니다. 또는 은둔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tintin@theseed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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