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경험 청년들에게 한분 한분의 스토리를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받고 싶으신 분 접수도 받고 있습니다.

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14: 모카(1)


은둔의 색깔은 가지각색

유학생활을 포기하고 돌아와서부터 은둔하게 된 모카의 이야기 (1)






모카씨,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32세 모카라고 합니다. 은둔 경력으로 따지면 1년 정도 되고요.
마음의 병이 있어서 약을 먹으며 지냈던, 그러니까 기억이 잘 안 나는 시기까지 하면 2~3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조울증, 공황, 그리고 은둔



마음의 병이라고 하는 것은 우울증과 관련된 것일까요?

조울증이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군대도 가지 못했고, 병원 폐쇄 병동에 2달 정도 입원한 적도 있었어요.



모카씨를 보면 은둔의 경험이 있으시거나 조울증을 겪으셨다고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밝고 에너지가 많아 보이시는데 은둔하는 중에도 우울감으로 힘드셨거나 에너지가 있는 편이었나요?

뭔가 우울감은 항상 있었고, 지금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예요. 항상 내재하여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은둔을 하는 중에는 사람도 그립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만나고 싶은데 그게 되지 않으니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은둔의 경험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식물인간이 되셨고, 고등학교 3학년 지나고 20세까지 식물인간으로 계시다가 사망하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제가 일본으로 유학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유학 생활이 잘 안 돼서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 은둔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일본에서의 생활이 조금 힘들거나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셨나요?

딱히 그런 부분은 없었던 것 같은데, 제가 일본에서 조울증이 발병됐어요.



일본에서 좋았던 기억도 있고 힘들었던 기억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모카씨에게 일본이라는 곳이 어떤 의미였을까요?

현실 도피처였어요. 아버지가 식물인간이 되시고 사망하시기 전이라서, 가장의 무게로부터도 도망치고 싶었어요. 제가 학생 때부터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롭게 살아보고 싶었어요. 잘 안되긴 했지만요.



무거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때 모카씨에게 도피처가 되었던 일본,
그래도 도피처로 삼을 만한 곳이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지 않을까?



모카씨가 느끼시기에 본인의 조울증이나 은둔의 계기가 되었던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냥 모든 것 같아요. 인생 경험. 아버지 이유가 가장 컸었고요. 학교가 끝나면 아버지 보러 매일 병원에 갔으니까. 친구 관계나 인간관계가 고립되었던 것 같아요. 집이 유복한 가정도 아니어서 간병인을 쓸 처지가 안 돼서 어머니가 맨날 아버지 보러 가서 동생이랑 둘만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중학교 2학년 때 그런 게 없이 지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집에만 있는 나는 '외롭고 고장난 사람'



은둔 생활을 하던 시기, 약을 드셨던 것까지 하면 2년에서 3년간의 세월, 그때를 되짚어 보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음, 사람들과의 소통?
제가 스스로 ‘나는 덜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었었어요. 하지만 연결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래서 혼자 있으면서 많이 외로웠어요.
그 당시 2012, 2013년이었는데, 그때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발하지 않았고 우리나라에 아직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인식이 퍼지기 전이라서. (사람들이 보기에) 저는 그냥 집에만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나가지는 못하고. 그런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규정해야 할지 모르고 어디에서 만나야 할지도 모를 때, 그때 힘들었던 것 같아요.



혹시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셨나 봐요.

저는 일본문화를 좋아해서 히키코모리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히키코모리라는 개념과 인식도 거의 없었어요.



말씀을 듣다 보니 혼자 고립되어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기도 했다는 말씀이 인상 깊게 들렸어요. 다른 은둔형 외톨이들도 그와 비슷한 마음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고요. 모카씨는 혼자 있지만, 누군가 연결되고 싶을 때 어떻게 하셨나요?

일단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거기에는 있었거든요.



혼자 있는 방 안에서 고양이와 인터넷은 모카씨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주로 어떤 글을 쓰셨어요?

주로는 내가 힘든 글, 부모님한테도, 주위에도 말을 하지 못하는 타입이라 그런 이야기를 인터넷상에 풀어냈던 것 같아요.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댓글이나 반응을 받게 되면 위안이 많이 되셨나요?

그렇죠. 사실 이유도 없이 은둔형 외톨이라고만 생각하면 힘들었을 텐데,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이, ‘코리안 매니아’라고 마음이 아프신 분들이 계시는 곳이거든요. 글을 쓰고 하면서 ‘나는 병이 있어서 그렇겠지, 나는 마음이 다쳐서 갇혀 있겠지!’ 하면서 스스로 합리화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 합리화가 그 시간을 지나가기 조금 편안하게 해주었나요?

저는 그랬던 것 같아요. 나는 아프니까 여기 있는 거겠지? 하는….



합리화가 자기의 약한 부분을 변호하게 해주기도 하는데, 모카씨의 합리화는 위기를 잘 넘어가게 해준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힘든 상황에서도 건강하게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셨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려고 하며 노력하던 중에도 계속 나를 떠나지 않았던 안 좋은 생각이 있었나요?

‘나는 고장난 사람이다’, ‘일반인들하고 다르다.’, ‘환자다’, ‘존재가치가 없다.’, 자존감이 낮아져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환자, 아픈 사람이라고 하면 돌봄이 필요하잖아요? 누군가가 나를 돌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누군가를 찾아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으신가요?

아뇨, 없었어요. 병원 말고는. 병원도 약도 그 당시에는 부모님이 타다 주실 수 있어서 타다 주셨어요. 은둔형 외톨이가 병명은 아니잖아요. 정신병이 있다고 해도 한국 사회에서 정신병은 금기어였고, 그 당시(2012~2013년)에는 지금보다 더욱 심했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도 힘들었던 것 같아요. 기대기도 힘들었고. 스스로 이해하며 지냈던 것 같아요.



모카씨에게 많이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나는 돌봄이 필요하지만, 막상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었던 거니까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쓰시면서 위로받고 지지가 되는 계기가 되셨다고 했는데요. 그 외 은둔생활 중에 조금이라도 힘을 내게 되었던 글이나 영화, 사람이 있었을까요? 은둔생활 중에 도움을 주었던?

책이나 영상 매체 같은 것이 어떤 극적인 계기가 되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내가 은둔생활을 하기 전에 행복했을 때 찾아보았던 방송들을 엄청 많이 찾아봤어요. 예를 들어 ‘짱구’는 제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불러일으켜 주었어요. 무한도전도 많이 봤어요. 내가 행복했던 시절을 많이 되돌아보았던 것 같아요. 다시 방 밖으로 나가면 일본으로 가겠지 생각하면서 일본 방송들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은둔 생활 중에 자신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던 모카씨.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나름의 방법이 되었다.






은둔경험이 있어서 코로나는 힘들지 않았지만



혹시 모카씨가 생각하시는 은둔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데요.

가지각색이라고 생각해요.
방 밖으로 못 나가는 게 당연히 은둔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도 은둔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유난히 고정관념이 센 것 같아요. 은둔형 외톨이는 씻지도 않고 살도 뒤룩뒤룩 찌고 집에 쓰레기가 쌓여있고 냄새난다고 하는 것들이요.
그런데 사실 방송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보면 네이티브하게 안 씻고 더럽고 관리하지 않는 분들은 10명 중 2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만나본 은둔형 외톨이분들은 되게 깔끔하고 옷도 잘 입으시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하셨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은둔형 외톨이는 크게 보자면 밖에 나와 있어도 고립된 사람들, ‘사회적 관계 단절 청년들까지도 은둔형 외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 3년 가까이 코로나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사회적 관계 단절을 유도했잖아요. 어느 기사에서 코로나로 인해서 사회적 단절, 고립, 은둔이 심해졌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을 실제로 체감하셨는지 궁금해요. 코로나 시대와 같은 단절과 분리를 요구하는 시대 흐름 속에 더 은둔 고립 청년들의 삶은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어떻게 보면 조금 더 대중적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도 있어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청년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사회가 눈을 돌리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조금 더 이전보다는 보는 눈들이 완화되었다고 느꼈어요. 그렇지만 그래봤자 사람들의 생각에는 은둔형 외톨이라서…. 제 고등학교 친구 중에 지병이 있는 친구를 2년 만에 봤을 정도였어요. 그 정도가 코로나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니겠지만요. 어느 세미나나 모임을 가면 코로나로 다른 사람들은 힘들어할 때, 은둔형 외톨이들은 어차피 집안에 계셨으니까 오히려 익숙해지셔서 잘 지내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사실 은둔형 외톨이들은 그런 부분에서는 잘 극복한 것 같아요.



경험을 가지고 위기를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거네요.

은둔 고수 프로그램 아세요? 은둔도 스펙이잖아요. 저는 그것을 그때 느꼈어요. 내가 필요할 때 방 안에 있으면서도 잘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스펙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요. 코로나가 참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그렇지만 저 같은 사람에게는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은둔을 거의 극복하고, 집 안에 있던 사람에서 외부로 나가 사회적 고립 청년이 되었다가 코로나로 갈 곳이 없어서 다시 방 안에 틀어박힌 케이스에요.






은둔하는 사람들과 문화예술로 소통하고 싶어



‘은둔도 스펙이다’라는 말을 은둔 고수 프로그램에서 캐치프레이즈로 쓰고 있는데, 정말 은둔도 스펙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뇨. 은둔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스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은둔 자체는 스펙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단어는 비슷한 맥락으로 자기 합리화를 위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은둔도 스펙이라고 하지 않으면 방 안에 있던 시간을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은둔도 스펙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어느 부분에서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제 인생에 대해서는 스펙이 아닌 것 같아요. 이쪽 업계(은둔형 외톨이 지원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은 스펙이 아닌 것 같아요. 나와 비슷한 경험의 사람들을 대하고 그분들을 방 밖으로 구해 내고자 할 때는 스펙이 되겠지만, 다른 면에서는 전혀 스펙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방 안에 처박혀 있고 배부른 사람인 거예요.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나 모카씨 개인에게는 활동영역에 있어서 스펙으로 작용하는 면도 있지 않으신가요?

네,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인식도 있지만, 저에게는 스펙이죠. 은둔 고수도 그렇고, 제가 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스펙이 되는 거죠.
문화예술로 은둔형 외톨이들을 구해드리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분들이 방 안에서도 행복하게 지내실 수도 있는 거고, 가지각색이니까. 문화예술을 통해서 그분들이 가진 개성, 내면의 목소리와 대화를 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내가 그분들을 구한다, 구제한다 하는 생각은 하나도 없어요.
방 안에 있으면 세상 밖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컴퓨터) 사각형의 모니터 속이거든요. 거기서 영화를 접하고 세상의 문화를 접하고 세상 밖을 즐기게 되는 거예요. 은둔형 외톨이를 만나면 한 분야에서 엄청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영화면 영화, 음악이면 음악… 그 분야를 정말 잘 알고 계세요.
저는 문화예술을 통해서 그분들과 소통을 하고 싶은 거죠.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2편에 이어서)






interviewer_써니 |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


약 15년 동안 사회복지사로 아동, 청소년, 청년들,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왔습니다. 자립의 문턱앞에서 머뭇거리거나 행여 문턱을 넘었더라도 쉽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섞이기 힘들어하며 고립과 은둔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러 청년들을 보며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 외로움에 관해서 함께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와 두 번째 책 준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sunnyokay79@gmail.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인터뷰를 받고 싶은 분의 신청도 받습니다. 또는 은둔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tintin@theseed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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