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번쯤은, 은둔
두번의 은둔을 경험한 다정의 이야기 (2)
웅크리며 보낸 시간들
은둔을 하면서 어떨 때 외로웠나요?
저도 제 자신을 모르겠는 게, 사람들이 너무 싫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너무 아팠는데 동시에 너무 외로웠어요. 정말로 너무 외로웠어요. 그래서 그 이유를 말씀을 드리자면, 세상에 나를 나밖에 모르는 것 같은 거예요.
아무도 나를 이해 못 해주고. 내가 이렇게 너무 힘든데, 내가 사람들을 거부하면서 혼자가 된 거지만 누구라도 좋으니까 "다정아 고생했다."라는 얘기를 너무 듣고 싶은데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으니까, 그 부분에서 참 많이 외로웠던 거 같아요.
그래서 언제 가장 외로웠냐고 하면 밤에 잠에 들지 않았을 때, 그때 굉장히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여드린 사진 중에 그런 사진이 있어요. 제가 밤을 새다가 아침에 해를 봤는데 그게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제 방에서 키우던 식물이랑 같이 찍었던 사진이 있거든요. 그때가 너무 외로웠을 때, 친구가 식물밖에 없을 때였죠.
다정 씨가 당시에 찍었던 사진. 탁 트인 풍경과 일출이 사진으로 봐도 아름다웠다. 실제로 이 광경을 목도한 다정 씨는 그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러면 그렇게 미친 듯이 외로웠을 때 어떤 활동을 했나요?
음, 별로 좋지 않은 활동들인데요. 집에서 유튜브 보거나 게임만 계속 했었던 것 같아요. 저랑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신, 막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은둔형외톨이 분들께는 별로 추천 드리고 싶지 않은 행동들을 했었죠.
그럼 정말로 다정 씨가 가장 외로웠을 때 다정 씨가 미칠 듯이 외로웠을 때, 그 외로움 속에서 견디게 해 준 것이 있었나요?
견디게 해줬다기보다는, 이러다가 정말로 나 자신이 내가 손 쓸 수 없는 곳까지 가 버리게 되면, 그 당시만 해도 나 자신이 망가지는 것에 대해 무섭다는 감정은 느끼고 있는데 이제 그것마저 못 느낄 정도로 내가 망가지게 되면, 제가 결국 미쳐 버린다면 그러면 이제 영원히 나는 그 고통 속에서 살아야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지금도 너무 힘든데, 그래도 지금은 이제 언젠가 나아지겠지라는 그 자그만한 희망이라도 있는데 그것마저 내가 놓는 순간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어서, 그러니까 저는 이제 견뎠다기보다는 그냥 무서워서 웅크리고 있었던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견뎠다기보다는 그냥 웅크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외로움을 웅크리는 걸로조차 해결할 수 없었을 때가 있었나요?
엄청 많았어요. 진짜로 많았고, 그럴 때는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침대에 처박혀서 가만히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어떨 때는 부모님이 밖에 외출하셨을 때 집에서 영화 캐릭터 조커가 웃는 것처럼 그냥 막 웃었어요. 웃지 않으면 제가 미칠 것 같아서요.
사실 이것도 인터뷰 보시는 은둔형외톨이 분들한테 절대 추천하지 않는 건데, 불 꺼진 티비를 보면 제가 비치잖아요, 그럼 막 비웃는 거예요.
스스로에게 "저 ‘병신’ 새끼", "저거 뭐 하냐", "저 ‘병신’을 봐"라고 말하면서요. 속으로는 울고 있지만 겉으로는 엄청 웃는, 그런 행동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물론 절대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혼자 울다가 불을 끌 타이밍을 놓쳐 넘쳐 버린 찌개.
그러면 그런 행동을 한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웃지 않으면 내가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그때는 웃고 싶기도 했고, 사람이 너무 그립기도 했고, 그냥 여러 가지로 현재 상황이 너무 힘들기도 했었고, 그런 것들이 겹치면서 내가 웃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데, 근데 미치는 건 또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발악이라도 해보려고 했던 게 그런 식으로 발현됐던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 얘기하는데 그 당시의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내 자신을 좀 봐주고 사랑했었어야 했는데, 지금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만 그 당시의 저는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얘기하는데 저 자신도 되게 마음이 아프네요.
그러면은 다시 질문으로 넘어가서, 그런 4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히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로서 지냈잖아요. 그 시간 동안 경제활동을 한 적이 있나요?
전혀 한 적이 없어요. 네 비트코인이라든지 그런 걸 전혀 못했던 게, 일단 비트코인 같은 것도 일단 자신감이 있어야 되잖아요. "내가 이걸로 돈을 번다." 같은.
근데 이제 저 같은 경우는 자존감이 없다 보니까 투자 같은 걸 하면 무조건 잃을 것 같고, 경제활동을 하려고 해도 이런 뚱뚱하고 못난 나를 대체 누가 써줄까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못했던 거 같아요. 그냥 1년 동안 회사에서 일해서 모아뒀던 돈만 야금야금 쓰면서 살았었죠.
그렇군요. 은둔을 하면 집 안에만 있으면서 몸이라든지 정신이라든지 굉장히 안 좋아지잖아요. 그러면 그 은둔하게 되면서 얻었던 신체적 정신적 질환이나 증상 같은 게 있었을까요?
저는 일단 방을 굉장히 어둡게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모바일로 무한도전 같은 거 보고 있으니까 시력이 되게 안 좋아졌죠. 그리고 사람들이랑 대화를 안 하니까 말을 더듬고, 그리고 식사도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맨날 배달 음식, 고칼로리 음식 먹고 하니까 살이 쪄요.
저는 이거는 두 가지 경우라고 들었어요. 살이 완전 찌거나 살이 완전 빠지거나라고 들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이제 살이 완전 쪘어요. 살이 찌니까 체력은 나빠지죠 그래서 나중에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돼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후유증이 심했죠.
그래서 그냥 충격을 많이 받았죠. 이건 절대 자랑은 아닌데, 옛날에는 군대에서 체력 특급을 받았거든요. 근데 팔굽혀펴기 두 개를 못하겠는 거예요. 몸은 뚱뚱해지고 팔 근육 다리 근육은 다 빠지니까, 그래서 그때 충격을 좀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나는 그래도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몸하고 마음이 많이 피폐해졌구나, 그런 점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좀 그런 증상들에서 좀 괜찮아졌나요?
네. 근데 저는 제 인터뷰를 보시는 은둔형외톨이 분들께도 말하고 싶은 게, 건강이 은둔을 나온다고 해서 바로 나아지지는 않아요.
노력을 해야 돼요. 당연한 얘기지만 노력을 해야 되는 게 히키코모리였을 때 몸이 굉장히 안 좋아졌다가 히키코모리를 탈출한다고 해서 몸이 갑자기 다시 좋아지는 건 아니거든요.
물론 정신적 건강이 좋아지면 육체적 건강도 좋아지기는 하는데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드라마틱하게 바뀔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상처받아서 다시 은둔하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말을 하는 겁니다.
운둔의 끝, 정말 우연한 계기
지금은 은둔을 딛고 나오셨잖아요. 지금도 계속 다시 은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고. 그렇다면 그런 은둔 속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가 되게 궁금하거든요.
정말 우연한 계기였어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제야의 종을 안 치잖아요. 근데 저는 그걸 몰랐어요. 사회랑 소통을 안 하니까. 그래서 그날따라 제야의 종을 우연히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녹음본만 틀어주고 종을 안 치더라고요. 그래서 저게 뭐야 하면서 계속 화면을 보는데, 화면 속 보신각에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나도 가고 싶다. 그 생각이 들었어요. 나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거죠. 그러고 나서 침대에 누워서 밤을 샜는데, 아침 햇살이 제 방에 비추더라고요. 그게 너무 예뻐 보였어요.
그 햇살이 너무 예뻐서 "새해가 밝았다. 한 번 해보자"라는 그런 마음이 갑자기 들더라고요.
많은 은둔형외톨이들이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뭐냐면, 히키코모리 생활을 탈출하고 싶은데 못한다는 거거든요. 히키코모리 생활은 절대 편한 게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좀 먹는 생활이란 말이에요. 여기서 항상 탈출하고 싶고 심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운 생활인데, 내가 이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차근차근 쌓이다가 우연한 계기로 그게 불이 붙어서 탈출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다른 은둔형외톨이 분들께도 말을 드리고 싶은 게,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은둔을 하고 있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그냥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어느 순간 꽃이 피듯이, 씨앗에서 새싹이 나듯이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전에 인터뷰 때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제야의 종이 친 직후에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족쇄가 풀린 느낌이었다라고, 그 부분을 조금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작년 제야의 종은 녹화영상으로 대체했다고 했잖아요. 아버지가 소파에 누워서 주무시다가 그 소리에 잠이 깨셨어요. 그러더니 저를 보면서 하시는 말이
아빠가 지금까지 미안했고, 이제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봐라.
그 말을 듣는데 마음속에 있는 족쇄가 탁 풀린 느낌이 들었어요.
미안하다 그 한 마디가 되게 오랫동안 낡은 수갑의 열쇠를 푼 느낌처럼 후련했고, 그냥 나는 그 미안하다 한 마디를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의 사과와 방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본 것, 그런 것들이 지금의 이제 다정 씨를 있게 한 거죠.
그렇죠. 그냥 아까도 저희가 얘기했잖아요. 불행이 한 번에 온다고. 반대로 그 불행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에 오는 것 같아요.
그러면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폭언과 강요에 의한 은둔까지 겪었잖아요. 다정 씨의 은둔 생활의 원인 제공자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다정 씨의 생각이 좀 궁금하거든요.
처음에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미웠던 존재였어요.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냥 아버지는 아버지 스타일대로 사신 거고, 결국은 서로의 대화 부족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했어요.
옛날에 있었던 일을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는 못할 거예요. 근데 평생 원망 속에 살 바에는 그냥 아버지를 용서해 드리기로 했죠.
다른 가족이 있으시잖아요. 다른 가족들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신가요?
어머니하고 남동생이 있는데요. 그 둘에게는 저의 긴 히키코모리 생활을 기다려줘서 정말 고맙고 그리고 힘들었던 만큼 앞으로 행복하게 같이 살자고 말하고 싶네요.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고요.
그러면 은둔 생활을 청산한 지금 가족과의 관계는 어때요?
많이 좋아졌어요. 어머니하고 제 동생은 저를 굉장히 많이 지지해주고,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제가 이제 히키코모리 생활을 끝내고 뭐라도 하려는 걸 되게 좋게 보세요.
물론 이제 그런 건 있어요. 이제 저도 이제 사람이다 보니까, 가끔 그런 마음이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너 아빠에 대해서 정말로 좋게 생각해?"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도 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 같은 게 불쑥불쑥 나올 때가 있는데 최대한 그런 걸 줄여 보고, 과거의 앙금은 잊고 서로 좋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과거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현재를 사는 게 중요하니까.
은둔 이후
지금은 은둔 생활을 청산하고 더이상 은둔형외톨이가 아니신데, 지금은 뭘 하면서 지내고 있나요?
일단은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은둔을 끝낸다고 해서 체력이 갑자기 좋아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일단 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쉽지는 않지만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책 같은 거 읽고, 아르바이트도 구하고, 가끔 혼란스러워질 때 스스로 잠깐 진정시킬 시간도 주고 그러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가끔 무기력에 먹히는 나날들이 좀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네, 있죠. 은둔 생활을 끝냈다고 해서 딱 끝! 이런 건 아니더라고요. 그냥 과거의 제가 모여서 현재의 저를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영향은 받는 것 같아요..
요즘의 마음 상태는 좀 어떤가요?
아까 말한 거랑 똑같은데요. 은둔에서 나온 지금도 힘듦이 불쑥불쑥 찾아와요. 근데 은둔 생활을 끝낸 지금은 그런 우울이 와도 바로 침대에 눕는 게 아니라 맞서 싸워서 이기려고 하고, 그런 생각들을 하려고 하는 점 자체가 은둔을 벗어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은둔에서 나온 지금, 본인의 4년 동안의 짧지 않았던 은둔 생활을 되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일단은 당연한 얘기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고요. 대신 이제 그런 건 있어요. 은둔을 하게 된 게 절대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언젠가 한 번쯤은 왔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공무원 시험에 붙었어도 결국에 아버지 그늘을 못 벗어났기 때문에 은둔이 왔을 거고 그리고 숙박업소 앞에서 여자친구의 바람을 목격하지 못하고 결혼에 성공했어도 나중에는 분명 바람을 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결국에는 언젠가 한 번쯤은 왔을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어떻게 보면 문제점이 많았던 제 인생을 저 스스로가 은둔 생활이라는 걸 택하면서 천천히 고쳐나가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 다정 씨가 은둔에서 나올 때 도움이 되었던 팁을 다른 은둔형외톨이 분들께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건 지금도 제가 쓰는 방법인데요. 우울하고 부정한 감정들, 그런 게 저를 좀 먹는 것 같다 그러면 바로 일어나요. 눕지 말고 바로 일어나서 욕실로 달려간 뒤에 찬물로 샤워하는 거죠.
처음부터 찬물은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뜨거운 물을 맞고 비누칠을 한 다음에 그 비누칠을 씻어내려면 물을 한 번 더 맞아야 하잖아요. 그걸 찬물로 씻어내요. 그러면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 하면서 뜨거운 피가 도는 게 느껴져요.
이제 저는 스스로 배트맨 같은 느와르 영화의 캐릭터에 빙의해서 '내가 이렇게 거친 인생을 살고 있다...' 이러면서 샤워를 끝낸 적도 많고요, 그런 게 오글거리시는 분들은 그냥 찬물만 샤워해서 끝내도 되고, 그 다음에 바로 나와서 감기 걸리기 전에 수건으로 따뜻하게 닦고 머리 말리고 옷장에 가서 되게 마음에 드는 옷을 입으세요.
근데 그럴 때가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살이 쪄서 옛날에 즐겨 입었던 코트 같은 걸 지금 못 입는데, 그런 경우에는 편한 옷이라도 좋으니까 일단 입고 무조건 나가세요.
집에 있으면은 가라앉으니까 무조건 나가세요.
가족들이 어디 가냐 물어보면 '그냥 나갔다 올게' 하고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도 되고요, 공원 같은 데 가서 운동을 해도 좋고, 그런 거 다 싫다 하시는 분들은 카페 같은 데 가서 스스로에게 커피 한 잔을 선물하세요.
우울함이 내 인생을 좀먹기 전에 일단 뛰쳐나가는 거죠. 그게 저는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은둔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잖아요. 다정 씨는 여행까지 갈 수 있을 정도의 활동성을 가진 은둔형외톨이셨는데, 혹시 다정 씨처럼 가끔 멀리 외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인 다른 은둔형외톨이 분들께 여행을 추천하시나요?
아니요. 말씀하셨다시피 은둔형외톨이마다 활동성이 다르잖아요. 저는 무조건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괜히 여행 갔다가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한심함만 더 느끼고 오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여행이 맞는 사람도 있고 안 맞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행을 권유하고 싶지는 않고요.
그냥 제가 권유드리고 싶은 건, 우리 같은 은둔형외톨이들은 생각이 많거든요. 그냥 웅크려 있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많이 하잖아요. 그러다 내가 뭐를 해보고 싶다, 그러면 그걸 생각만 하지 않고 직접 해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굳이 여행이 아니어도 되니까, 예를 들어서 게임을 안 하시는 분인데 내가 이 게임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그러면 고민하지 말고 그 게임을 한번 해보시고, '내가 이 영화를 꼭 보고 싶다.' 그러면 영화를 고민만 하지 말고 한번 보시고. 그런 걸 시도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시도하지 않으면서 시도만 하고 싶어하는 것보다는, 영화가 마음에 안 들 때도 있고 드라마가 재미없을 때도 있는데 그래도 그냥 '이 드라마는 그렇구나' 하면서 스스로에게 판단 기회를 주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살면서 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제 스스로 선택을 잘 못 내려요. 지금도 결정장애가 좀 있는데, 그런데 제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연습을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제 다른 은둔형외톨이 분들에게도 그냥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냥 예를 들어 포켓몬 빵이 먹고 싶으면 고민만 하지 말고 그냥 단순하게 편의점 가서 포켓몬 빵이 있는지 한 번 둘러보는 거예요. 저는 그냥 그런 정도의 행동을 추천드리고 싶은 거죠.
은둔형외톨이 시절 다정 씨의 유일한 취미였던 심야 영화관
약간 그런 거네요. 안 해보고 후회할 바에는 하고 후회해라.
맞아요, 맞아요. 저는 그걸 추천 드립니다.
사실 은둔형외톨이 분들은 자신감이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걸 하는 게 맞을까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경험을 하나둘씩 해보면 경험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은둔형외톨이에서 탈출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굳이 막 여행을 강요한다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나가는 연습을 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좋네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은둔 당시와 지금의 마음가짐이 좀 다른 부분이 있나요?
네 있어요. 일단은요 그 당시에는 그냥 제가 버려진 느낌이었어요. 사회의 쓰레기 같은 느낌이었고, 터널인데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있잖아요. 내 인생에 답이 없고 그냥 깜깜한 어둠만이 있을 것 같았는데 일단 지금은 그렇진 않아요.
세상이 저를 버렸다고 생각을 해도 '그러면 뭐 어때.' 좀 이런 느낌이고요. 그리고 이제 남이랑 비교를 안 하려고 해요. 물론 드라마틱하게 남이랑 비교 안 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니에요. 지금도 가끔 가다 스스로를 비교하고 그러긴 하는데 그래도 '이거는 잘못됐다 다정아', '이거는 잘못된 거다. 너는 너 인생을 살아라.' 하면서 스스로 암시를 하려고 노력 중인 것 같아요.
스스로 '남이랑 비교하지 말자,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나도 다양한 사람 중 하나니까.' 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지금 희망이라는 걸 찾으셨나요?
중간으로 하겠습니다. 왜냐면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은둔을 끝낸다고 해서 막 세상이 드라마틱하게 밝아지고 막 새들이 지저귀고 꽃이 피고 막 그런 건 아니에요.
은둔 생활을 끝내봤자 그냥 은둔 생활 끝낸 저밖에 없어요. 근데 한 가지 정말 크게 바뀌는 게 있다면 희망이라는 거를 볼 수 있게 된 거죠.
그 희망이 저한테 다가오지는 않아요. 대신 그걸 제가 볼 수는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 희망을 계속 찾을 거고요. 내일이 오는 게 그래서 두렵지가 않아요.
옛날에는 내일이 오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그냥 똑같은... 똑같은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그런데 어둠 속에서도 빛 하나 보이면 그게 출구잖아요. 그 빛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는 두렵지 않습니다. 끝이 없는 고통과 끝이 있는 고통은 또 다르거든요. 그래서 끝이 있다는 걸 아니까 희망이라는 거를 놓지 않겠습니다.
이건 질문지에는 없는 질문인데, 답변을 듣다 보니 이 질문을 하고 싶어졌거든요. 인터뷰하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이건 제가 인터뷰하려는 목적 중 하나였는데요. 스스로 제 인생을 한번 다시 돌아보고 싶었어요. 근데 지금까지는 제 인생을 제 스스로 돌아봤는데, 누군가 제 객관적으로 질문을 해 주면 그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한 번 해봤는데 굉장히 마음에 들고요. 그리고 스스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그리고 아까는 얘기하면서 스스로 너무 불쌍한 거예요. 근데 다른 은둔형외톨이 분들한테도 제 얘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서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네요.
(끝)
interviewer_하나 | 방 밖으로 나온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다시 은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중학교를 중퇴하고 그대로 11년간 은둔했습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를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1년 동안 두 번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로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운영한 '은둔고수' 1기와 2기를 수료했습니다. 은둔형외톨이 지원 영역에 발을 담그기 시작해 현재는 저술 활동과 더불어 관련 연구나 언론매체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hanahana122123@gmail.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인터뷰이 신청도 받습니다. 또는 은둔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tintin@theseeds.asia)
언젠가 한번쯤은, 은둔
두번의 은둔을 경험한 다정의 이야기 (2)
웅크리며 보낸 시간들
은둔을 하면서 어떨 때 외로웠나요?
저도 제 자신을 모르겠는 게, 사람들이 너무 싫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너무 아팠는데 동시에 너무 외로웠어요. 정말로 너무 외로웠어요. 그래서 그 이유를 말씀을 드리자면, 세상에 나를 나밖에 모르는 것 같은 거예요.
아무도 나를 이해 못 해주고. 내가 이렇게 너무 힘든데, 내가 사람들을 거부하면서 혼자가 된 거지만 누구라도 좋으니까 "다정아 고생했다."라는 얘기를 너무 듣고 싶은데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으니까, 그 부분에서 참 많이 외로웠던 거 같아요.
그래서 언제 가장 외로웠냐고 하면 밤에 잠에 들지 않았을 때, 그때 굉장히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여드린 사진 중에 그런 사진이 있어요. 제가 밤을 새다가 아침에 해를 봤는데 그게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제 방에서 키우던 식물이랑 같이 찍었던 사진이 있거든요. 그때가 너무 외로웠을 때, 친구가 식물밖에 없을 때였죠.
다정 씨가 당시에 찍었던 사진. 탁 트인 풍경과 일출이 사진으로 봐도 아름다웠다. 실제로 이 광경을 목도한 다정 씨는 그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러면 그렇게 미친 듯이 외로웠을 때 어떤 활동을 했나요?
음, 별로 좋지 않은 활동들인데요. 집에서 유튜브 보거나 게임만 계속 했었던 것 같아요. 저랑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신, 막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은둔형외톨이 분들께는 별로 추천 드리고 싶지 않은 행동들을 했었죠.
그럼 정말로 다정 씨가 가장 외로웠을 때 다정 씨가 미칠 듯이 외로웠을 때, 그 외로움 속에서 견디게 해 준 것이 있었나요?
견디게 해줬다기보다는, 이러다가 정말로 나 자신이 내가 손 쓸 수 없는 곳까지 가 버리게 되면, 그 당시만 해도 나 자신이 망가지는 것에 대해 무섭다는 감정은 느끼고 있는데 이제 그것마저 못 느낄 정도로 내가 망가지게 되면, 제가 결국 미쳐 버린다면 그러면 이제 영원히 나는 그 고통 속에서 살아야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지금도 너무 힘든데, 그래도 지금은 이제 언젠가 나아지겠지라는 그 자그만한 희망이라도 있는데 그것마저 내가 놓는 순간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어서, 그러니까 저는 이제 견뎠다기보다는 그냥 무서워서 웅크리고 있었던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견뎠다기보다는 그냥 웅크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외로움을 웅크리는 걸로조차 해결할 수 없었을 때가 있었나요?
엄청 많았어요. 진짜로 많았고, 그럴 때는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침대에 처박혀서 가만히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어떨 때는 부모님이 밖에 외출하셨을 때 집에서 영화 캐릭터 조커가 웃는 것처럼 그냥 막 웃었어요. 웃지 않으면 제가 미칠 것 같아서요.
사실 이것도 인터뷰 보시는 은둔형외톨이 분들한테 절대 추천하지 않는 건데, 불 꺼진 티비를 보면 제가 비치잖아요, 그럼 막 비웃는 거예요.
스스로에게 "저 ‘병신’ 새끼", "저거 뭐 하냐", "저 ‘병신’을 봐"라고 말하면서요. 속으로는 울고 있지만 겉으로는 엄청 웃는, 그런 행동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물론 절대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혼자 울다가 불을 끌 타이밍을 놓쳐 넘쳐 버린 찌개.
그러면 그런 행동을 한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웃지 않으면 내가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그때는 웃고 싶기도 했고, 사람이 너무 그립기도 했고, 그냥 여러 가지로 현재 상황이 너무 힘들기도 했었고, 그런 것들이 겹치면서 내가 웃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데, 근데 미치는 건 또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발악이라도 해보려고 했던 게 그런 식으로 발현됐던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 얘기하는데 그 당시의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내 자신을 좀 봐주고 사랑했었어야 했는데, 지금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만 그 당시의 저는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얘기하는데 저 자신도 되게 마음이 아프네요.
그러면은 다시 질문으로 넘어가서, 그런 4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히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로서 지냈잖아요. 그 시간 동안 경제활동을 한 적이 있나요?
전혀 한 적이 없어요. 네 비트코인이라든지 그런 걸 전혀 못했던 게, 일단 비트코인 같은 것도 일단 자신감이 있어야 되잖아요. "내가 이걸로 돈을 번다." 같은.
근데 이제 저 같은 경우는 자존감이 없다 보니까 투자 같은 걸 하면 무조건 잃을 것 같고, 경제활동을 하려고 해도 이런 뚱뚱하고 못난 나를 대체 누가 써줄까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못했던 거 같아요. 그냥 1년 동안 회사에서 일해서 모아뒀던 돈만 야금야금 쓰면서 살았었죠.
그렇군요. 은둔을 하면 집 안에만 있으면서 몸이라든지 정신이라든지 굉장히 안 좋아지잖아요. 그러면 그 은둔하게 되면서 얻었던 신체적 정신적 질환이나 증상 같은 게 있었을까요?
저는 일단 방을 굉장히 어둡게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모바일로 무한도전 같은 거 보고 있으니까 시력이 되게 안 좋아졌죠. 그리고 사람들이랑 대화를 안 하니까 말을 더듬고, 그리고 식사도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맨날 배달 음식, 고칼로리 음식 먹고 하니까 살이 쪄요.
저는 이거는 두 가지 경우라고 들었어요. 살이 완전 찌거나 살이 완전 빠지거나라고 들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이제 살이 완전 쪘어요. 살이 찌니까 체력은 나빠지죠 그래서 나중에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돼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후유증이 심했죠.
그래서 그냥 충격을 많이 받았죠. 이건 절대 자랑은 아닌데, 옛날에는 군대에서 체력 특급을 받았거든요. 근데 팔굽혀펴기 두 개를 못하겠는 거예요. 몸은 뚱뚱해지고 팔 근육 다리 근육은 다 빠지니까, 그래서 그때 충격을 좀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나는 그래도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몸하고 마음이 많이 피폐해졌구나, 그런 점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좀 그런 증상들에서 좀 괜찮아졌나요?
네. 근데 저는 제 인터뷰를 보시는 은둔형외톨이 분들께도 말하고 싶은 게, 건강이 은둔을 나온다고 해서 바로 나아지지는 않아요.
노력을 해야 돼요. 당연한 얘기지만 노력을 해야 되는 게 히키코모리였을 때 몸이 굉장히 안 좋아졌다가 히키코모리를 탈출한다고 해서 몸이 갑자기 다시 좋아지는 건 아니거든요.
물론 정신적 건강이 좋아지면 육체적 건강도 좋아지기는 하는데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드라마틱하게 바뀔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상처받아서 다시 은둔하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말을 하는 겁니다.
운둔의 끝, 정말 우연한 계기
지금은 은둔을 딛고 나오셨잖아요. 지금도 계속 다시 은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고. 그렇다면 그런 은둔 속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가 되게 궁금하거든요.
정말 우연한 계기였어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제야의 종을 안 치잖아요. 근데 저는 그걸 몰랐어요. 사회랑 소통을 안 하니까. 그래서 그날따라 제야의 종을 우연히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녹음본만 틀어주고 종을 안 치더라고요. 그래서 저게 뭐야 하면서 계속 화면을 보는데, 화면 속 보신각에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나도 가고 싶다. 그 생각이 들었어요. 나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거죠. 그러고 나서 침대에 누워서 밤을 샜는데, 아침 햇살이 제 방에 비추더라고요. 그게 너무 예뻐 보였어요.
그 햇살이 너무 예뻐서 "새해가 밝았다. 한 번 해보자"라는 그런 마음이 갑자기 들더라고요.
많은 은둔형외톨이들이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뭐냐면, 히키코모리 생활을 탈출하고 싶은데 못한다는 거거든요. 히키코모리 생활은 절대 편한 게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좀 먹는 생활이란 말이에요. 여기서 항상 탈출하고 싶고 심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운 생활인데, 내가 이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차근차근 쌓이다가 우연한 계기로 그게 불이 붙어서 탈출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다른 은둔형외톨이 분들께도 말을 드리고 싶은 게,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은둔을 하고 있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그냥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어느 순간 꽃이 피듯이, 씨앗에서 새싹이 나듯이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전에 인터뷰 때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제야의 종이 친 직후에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족쇄가 풀린 느낌이었다라고, 그 부분을 조금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작년 제야의 종은 녹화영상으로 대체했다고 했잖아요. 아버지가 소파에 누워서 주무시다가 그 소리에 잠이 깨셨어요. 그러더니 저를 보면서 하시는 말이
아빠가 지금까지 미안했고, 이제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봐라.
그 말을 듣는데 마음속에 있는 족쇄가 탁 풀린 느낌이 들었어요.
미안하다 그 한 마디가 되게 오랫동안 낡은 수갑의 열쇠를 푼 느낌처럼 후련했고, 그냥 나는 그 미안하다 한 마디를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의 사과와 방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본 것, 그런 것들이 지금의 이제 다정 씨를 있게 한 거죠.
그렇죠. 그냥 아까도 저희가 얘기했잖아요. 불행이 한 번에 온다고. 반대로 그 불행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도 한 번에 오는 것 같아요.
그러면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폭언과 강요에 의한 은둔까지 겪었잖아요. 다정 씨의 은둔 생활의 원인 제공자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다정 씨의 생각이 좀 궁금하거든요.
처음에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미웠던 존재였어요.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냥 아버지는 아버지 스타일대로 사신 거고, 결국은 서로의 대화 부족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했어요.
옛날에 있었던 일을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는 못할 거예요. 근데 평생 원망 속에 살 바에는 그냥 아버지를 용서해 드리기로 했죠.
다른 가족이 있으시잖아요. 다른 가족들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신가요?
어머니하고 남동생이 있는데요. 그 둘에게는 저의 긴 히키코모리 생활을 기다려줘서 정말 고맙고 그리고 힘들었던 만큼 앞으로 행복하게 같이 살자고 말하고 싶네요.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고요.
그러면 은둔 생활을 청산한 지금 가족과의 관계는 어때요?
많이 좋아졌어요. 어머니하고 제 동생은 저를 굉장히 많이 지지해주고,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제가 이제 히키코모리 생활을 끝내고 뭐라도 하려는 걸 되게 좋게 보세요.
물론 이제 그런 건 있어요. 이제 저도 이제 사람이다 보니까, 가끔 그런 마음이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너 아빠에 대해서 정말로 좋게 생각해?"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도 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 같은 게 불쑥불쑥 나올 때가 있는데 최대한 그런 걸 줄여 보고, 과거의 앙금은 잊고 서로 좋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과거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현재를 사는 게 중요하니까.
은둔 이후
지금은 은둔 생활을 청산하고 더이상 은둔형외톨이가 아니신데, 지금은 뭘 하면서 지내고 있나요?
일단은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은둔을 끝낸다고 해서 체력이 갑자기 좋아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일단 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쉽지는 않지만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책 같은 거 읽고, 아르바이트도 구하고, 가끔 혼란스러워질 때 스스로 잠깐 진정시킬 시간도 주고 그러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가끔 무기력에 먹히는 나날들이 좀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네, 있죠. 은둔 생활을 끝냈다고 해서 딱 끝! 이런 건 아니더라고요. 그냥 과거의 제가 모여서 현재의 저를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영향은 받는 것 같아요..
요즘의 마음 상태는 좀 어떤가요?
아까 말한 거랑 똑같은데요. 은둔에서 나온 지금도 힘듦이 불쑥불쑥 찾아와요. 근데 은둔 생활을 끝낸 지금은 그런 우울이 와도 바로 침대에 눕는 게 아니라 맞서 싸워서 이기려고 하고, 그런 생각들을 하려고 하는 점 자체가 은둔을 벗어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은둔에서 나온 지금, 본인의 4년 동안의 짧지 않았던 은둔 생활을 되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일단은 당연한 얘기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고요. 대신 이제 그런 건 있어요. 은둔을 하게 된 게 절대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언젠가 한 번쯤은 왔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공무원 시험에 붙었어도 결국에 아버지 그늘을 못 벗어났기 때문에 은둔이 왔을 거고 그리고 숙박업소 앞에서 여자친구의 바람을 목격하지 못하고 결혼에 성공했어도 나중에는 분명 바람을 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결국에는 언젠가 한 번쯤은 왔을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어떻게 보면 문제점이 많았던 제 인생을 저 스스로가 은둔 생활이라는 걸 택하면서 천천히 고쳐나가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 다정 씨가 은둔에서 나올 때 도움이 되었던 팁을 다른 은둔형외톨이 분들께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건 지금도 제가 쓰는 방법인데요. 우울하고 부정한 감정들, 그런 게 저를 좀 먹는 것 같다 그러면 바로 일어나요. 눕지 말고 바로 일어나서 욕실로 달려간 뒤에 찬물로 샤워하는 거죠.
처음부터 찬물은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뜨거운 물을 맞고 비누칠을 한 다음에 그 비누칠을 씻어내려면 물을 한 번 더 맞아야 하잖아요. 그걸 찬물로 씻어내요. 그러면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 하면서 뜨거운 피가 도는 게 느껴져요.
이제 저는 스스로 배트맨 같은 느와르 영화의 캐릭터에 빙의해서 '내가 이렇게 거친 인생을 살고 있다...' 이러면서 샤워를 끝낸 적도 많고요, 그런 게 오글거리시는 분들은 그냥 찬물만 샤워해서 끝내도 되고, 그 다음에 바로 나와서 감기 걸리기 전에 수건으로 따뜻하게 닦고 머리 말리고 옷장에 가서 되게 마음에 드는 옷을 입으세요.
근데 그럴 때가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살이 쪄서 옛날에 즐겨 입었던 코트 같은 걸 지금 못 입는데, 그런 경우에는 편한 옷이라도 좋으니까 일단 입고 무조건 나가세요.
집에 있으면은 가라앉으니까 무조건 나가세요.
가족들이 어디 가냐 물어보면 '그냥 나갔다 올게' 하고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도 되고요, 공원 같은 데 가서 운동을 해도 좋고, 그런 거 다 싫다 하시는 분들은 카페 같은 데 가서 스스로에게 커피 한 잔을 선물하세요.
우울함이 내 인생을 좀먹기 전에 일단 뛰쳐나가는 거죠. 그게 저는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은둔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잖아요. 다정 씨는 여행까지 갈 수 있을 정도의 활동성을 가진 은둔형외톨이셨는데, 혹시 다정 씨처럼 가끔 멀리 외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인 다른 은둔형외톨이 분들께 여행을 추천하시나요?
아니요. 말씀하셨다시피 은둔형외톨이마다 활동성이 다르잖아요. 저는 무조건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괜히 여행 갔다가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한심함만 더 느끼고 오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여행이 맞는 사람도 있고 안 맞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행을 권유하고 싶지는 않고요.
그냥 제가 권유드리고 싶은 건, 우리 같은 은둔형외톨이들은 생각이 많거든요. 그냥 웅크려 있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많이 하잖아요. 그러다 내가 뭐를 해보고 싶다, 그러면 그걸 생각만 하지 않고 직접 해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굳이 여행이 아니어도 되니까, 예를 들어서 게임을 안 하시는 분인데 내가 이 게임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그러면 고민하지 말고 그 게임을 한번 해보시고, '내가 이 영화를 꼭 보고 싶다.' 그러면 영화를 고민만 하지 말고 한번 보시고. 그런 걸 시도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시도하지 않으면서 시도만 하고 싶어하는 것보다는, 영화가 마음에 안 들 때도 있고 드라마가 재미없을 때도 있는데 그래도 그냥 '이 드라마는 그렇구나' 하면서 스스로에게 판단 기회를 주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살면서 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제 스스로 선택을 잘 못 내려요. 지금도 결정장애가 좀 있는데, 그런데 제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연습을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제 다른 은둔형외톨이 분들에게도 그냥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냥 예를 들어 포켓몬 빵이 먹고 싶으면 고민만 하지 말고 그냥 단순하게 편의점 가서 포켓몬 빵이 있는지 한 번 둘러보는 거예요. 저는 그냥 그런 정도의 행동을 추천드리고 싶은 거죠.
은둔형외톨이 시절 다정 씨의 유일한 취미였던 심야 영화관
약간 그런 거네요. 안 해보고 후회할 바에는 하고 후회해라.
맞아요, 맞아요. 저는 그걸 추천 드립니다.
사실 은둔형외톨이 분들은 자신감이 많이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걸 하는 게 맞을까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경험을 하나둘씩 해보면 경험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은둔형외톨이에서 탈출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굳이 막 여행을 강요한다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나가는 연습을 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좋네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은둔 당시와 지금의 마음가짐이 좀 다른 부분이 있나요?
네 있어요. 일단은요 그 당시에는 그냥 제가 버려진 느낌이었어요. 사회의 쓰레기 같은 느낌이었고, 터널인데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있잖아요. 내 인생에 답이 없고 그냥 깜깜한 어둠만이 있을 것 같았는데 일단 지금은 그렇진 않아요.
세상이 저를 버렸다고 생각을 해도 '그러면 뭐 어때.' 좀 이런 느낌이고요. 그리고 이제 남이랑 비교를 안 하려고 해요. 물론 드라마틱하게 남이랑 비교 안 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니에요. 지금도 가끔 가다 스스로를 비교하고 그러긴 하는데 그래도 '이거는 잘못됐다 다정아', '이거는 잘못된 거다. 너는 너 인생을 살아라.' 하면서 스스로 암시를 하려고 노력 중인 것 같아요.
스스로 '남이랑 비교하지 말자,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나도 다양한 사람 중 하나니까.' 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지금 희망이라는 걸 찾으셨나요?
중간으로 하겠습니다. 왜냐면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은둔을 끝낸다고 해서 막 세상이 드라마틱하게 밝아지고 막 새들이 지저귀고 꽃이 피고 막 그런 건 아니에요.
은둔 생활을 끝내봤자 그냥 은둔 생활 끝낸 저밖에 없어요. 근데 한 가지 정말 크게 바뀌는 게 있다면 희망이라는 거를 볼 수 있게 된 거죠.
그 희망이 저한테 다가오지는 않아요. 대신 그걸 제가 볼 수는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 희망을 계속 찾을 거고요. 내일이 오는 게 그래서 두렵지가 않아요.
옛날에는 내일이 오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그냥 똑같은... 똑같은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그런데 어둠 속에서도 빛 하나 보이면 그게 출구잖아요. 그 빛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는 두렵지 않습니다. 끝이 없는 고통과 끝이 있는 고통은 또 다르거든요. 그래서 끝이 있다는 걸 아니까 희망이라는 거를 놓지 않겠습니다.
이건 질문지에는 없는 질문인데, 답변을 듣다 보니 이 질문을 하고 싶어졌거든요. 인터뷰하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이건 제가 인터뷰하려는 목적 중 하나였는데요. 스스로 제 인생을 한번 다시 돌아보고 싶었어요. 근데 지금까지는 제 인생을 제 스스로 돌아봤는데, 누군가 제 객관적으로 질문을 해 주면 그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한 번 해봤는데 굉장히 마음에 들고요. 그리고 스스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그리고 아까는 얘기하면서 스스로 너무 불쌍한 거예요. 근데 다른 은둔형외톨이 분들한테도 제 얘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서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네요.
(끝)
interviewer_하나 | 방 밖으로 나온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다시 은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중학교를 중퇴하고 그대로 11년간 은둔했습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를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1년 동안 두 번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로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운영한 '은둔고수' 1기와 2기를 수료했습니다. 은둔형외톨이 지원 영역에 발을 담그기 시작해 현재는 저술 활동과 더불어 관련 연구나 언론매체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hanahana122123@gmail.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인터뷰이 신청도 받습니다. 또는 은둔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tintin@theseeds.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