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경험 청년들에게 한분 한분의 스토리를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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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10: 파란 (2)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도 삶은 끝나지 않아요

반半 히키코모리로 살아가는 파란의 이야기 (2)







은둔을 탈출하기 시작하면서 교회를 다녔다고요.

탈출하고 가장 먼저 했던 게 상담소를 가는 거였어요.

뭐든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살도 빼고 상담도 한 번 받아봐야지 하고 갔는데 말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종이에 설문을 다 써서 내고 여러 가지를 다 했는데, 제가 너무 힘들다고 하니까 상담사분이 그럼 나가서 산책을 하라는 거예요.

근데 나는 지금 산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은둔한 것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될지도 모르겠고,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런데 그냥 나가서 산책을 해보라는 게 되게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지면서 이건 아니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한 두세 번 나가다가 그만뒀죠.

 

그러다가 부모님이 집 앞에 있는 교회를 다니셨는데 저에게도 계속 다니라고 권유를 하셨지만 저는 절대 안 다녔었거든요. 그러다가 '그냥 한 번 가볼까?'라는 생각에 다니게 됐죠.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데 그래도 교회를 가면 착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어요.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두려운데 애초에 교회 같은 곳은 오히려 사람을 반기는 장소잖아요. 내가 그런 델 가게 되면 불청객은 아니지 않을까 해서 나가게 된 거죠.

 


그렇게 교회 생활을 하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어요.

네. 제가 같은 동네에서 오래 살아서 교회에 제 동창들이 있었거든요. 그 친구들이 반겨주고 하면서 거기서 저는 사회생활에 적응했던 것 같아요.

보통 교회 사람들은 카페를 많이 가거든요. 같이 가서 사람들이 대화를 하면 저는 그걸 계속 구경하는 거예요.

서너 명이든 대여섯 명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꼭 껴서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어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았어요. 내가 대화에 참여하진 않지만 그냥 사람들 옆에 있는 거, 같이 노는 거, 그것만으로도 되게 좋았어요.

몇 년 동안 계속 혼자였다가 사람들 속에 있으니까 그게 참 많이 좋았던 것 같고, 그러면서 사회에 적응도 하고 많이 호전됐던 것 같아요.







내가 처음 경험하는 사회: 군대라는 지옥





그렇게 한 1년 정도 교회에 계시다가 군대를 가게 되었잖아요.

사전 인터뷰 때 군대를 '은둔을 극복한 계기이자 어떻게 보면 다시 은둔을 하게 된 계기'라고 하셨거든요. 이유가 뭘까요.

아까 말했듯이 교회는 사람들이 나를 반기기 위한 장소예요.

내가 재미없고, 말이 없고, 뭔가를 잘하지 않아도 내가 이상한 짓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심하게 뭐라고 하지도, 혼낼 일도 없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저에게 첫 사회생활은 사실 교회가 아닌 군대인 거죠.

우리가 사회생활을 이야기할 때 아르바이트, 직장, 군대 이런 집단생활을 얘기하잖아요.

그렇게 보면 교회는 저에게 사회생활은 아니었던 거예요.


나름대로 교회에서 적응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군대를 가니까 이건 완전 다른 세상인 거예요.

군대에 가면 소리를 질러야 되는데, 군대에서 크게 소리를 안 지르면 혼이 나잖아요. 근데 목소리가 안 나와요.

제가 제대로 소리 지른 게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도의 목소리이다 보니까 찍히고, 그리고 청소나 빨래, 낙엽 쓸기 같은 군대에서 일어나서 잘 때까지 한 행동들도 저한테는 전부 낯선 일들인 거예요. 대학도 안 가고, 아르바이트도 안 해보고, 집에만 있다가 교회에서 좀 적응하고 군대를 갔으니까.


그래서 저는 정말 미친 듯이 노력했죠.

나는 이게 첫 사회생활이고 내가 현역으로 입대해서 잘 적응해서 무사히 전역하면 나는 이제 히키코모리에서 탈출해서 나가서 일도 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겠지라는 나름의 각오와 결심을 하고 입대를 한 거란 말이예요.

근데 시작부터 계속 혼나고 깨지고 혼나고 깨지고 반복인 거예요.

저는 정말 죽어라 열심히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나이 많아서, 하기 싫어서' 대충 하는 것처럼 보였던 거죠.

왜냐하면 이 나이 먹고 이런 걸 모를 리가 없으니까, 목소리를 못 낼 리가 없으니까. 그냥 '얘가 좀 하기 싫어하나 보다.' 이런 식으로 미운털이 박히고 거기에 선임 운도 안 좋으니까 그냥 지옥인 거예요.


그런 우여곡절 끝에 1년 9개월 동안 이런 저런 것도 많이 극복하고,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최하위에서 마지막에 1급까지 찍고 나올 만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왔는데 그 안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갈굼과 그런 것들로 인해 또다시 자존감이 바닥을 친 거죠.

원래는 전역을 하고 나면 알바도 하고, 이것저것 계획을 많이 했었는데 전역하고 나니까 정말 모든 기운을 다 소진한 느낌? 완전 번아웃이 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물론 군대는 누구에게나 다 힘들지만 저에게는 훨씬 더 힘든 거였는데, 그걸 버티고 나왔더니 이제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플러스 교회에서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느데 전역하는 날 헤어졌어요.

그 두 개가 겹치면서 한 달 정도 집 밖에 안 나갈 만큼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군대가 저한테는 되게 의미가 있으면서 동시에 타격도 많이 줬던 시간이었죠.



고생이 굉장히 많았네요...

그럼 이제 타임라인을 봤을 때 17살에 첫 은둔, 25살에 극복, 26살에 군대, 그리고 29살에 재은둔이에요.

군대를 제대하고 재은둔을 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하거든요.

그때는 일단 교회를 다녔으니까 가장 먼저 할 게 교회를 나가는 일인데 여자친구랑 헤어졌잖아요. 그러니까 못 가겠는 거예요.

그래서 한 달 동안 또다시 게임만 하고 은둔을 했는데 그때 교회에 새 목사님께서 오시면서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셨다더라고요.

그렇게 새 목사님과 알게 됐는데, 그분이 심리상담 석사 공부를 하셨던 분이거든요. 저에게 엄청난 멘토가 되어주셨어요.


그래서 그때 제가 사이버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식당 아르바이트 하고, 교회까지 다니면서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17살 이후로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정말 하루 24시간 내내 최선을 다해서, 그동안 내가 은둔하면서 내가 뒤처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그것도 너무 과했나 봐요.

새벽 6시에 기상해서 8시 출근, 5시에 퇴근한 다음 저녁에 공부하고 밤 12시에 자서 또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6개월 넘게 했거든요.

그런 생활로 인해 지친 상태에서 목사님과 상담을 하다가 감정이 상할 일이 몇 번 있다 보니까 또다시 교회를 안 나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집에 있게 된 거죠.







반복되는 은둔 속에서





7, 8년 동안의 긴 은둔 끝에 힘들게 극복을 한 거잖아요.

그런 여러 문제들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재은둔하게 됐을 때 파란 씨가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한데요.

나는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할 수 있는 발버둥은 다 쳐봤는데 결국 내가 돌아온 곳은 집이고, 나는 다시 밖에 나갈 수 없게 됐다는 허무함과 무력감 같은 게 컸던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나는 결국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너무 힘들고 지친다라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렇군요. 지금까지 파란 씨는 사회에 소속되었던 경험이 몇 차례 있잖아요. 예를 들면 학교나 교회, 혹은 군대 같은.

근데 은둔을 하게 되면서 어떻게 보면 그런 사회에서 '이탈'을 하게 된 거잖아요.

그럴 때 기분이 좀 어땠나요. 외롭진 않았나요.

엄청 많이 외로웠죠. 외로운데 사실 외로운 것도 어릴 적에 몇 년 심하게 은둔하니까 서른쯤에 했던 은둔은 그렇게 엄청나게 힘들진 않았고, 그냥 조급했어요. 외로움보다는.

나이는 먹어가는데 이제 뭘 해야 되지 싶고, 진로나 그런 쪽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진짜 뭘 하고 살아야 하지?', '어떻게 다시 밖에 나가지?', '난 뭘 하고 먹고 살지...'

그런데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자신이 없으니까 그냥 다시 집에서 게임을 하는 거죠.



불안하지만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그냥 회피를 했던 거군요.

네. 다시 도망간 거죠.



지금은 히키코모리지만 히키코모리가 아닌, 반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계시죠.

거의 그렇죠.



그러면 29살부터 다시 시작된 은둔 그리고 현재인데, 첫 은둔과 현재의 은둔에 다른 점이 있다면 뭘까요.

일단 사람에 대한 걸 많이 극복했어요. 사람을 만나는 거, 대화를 하는 거, 모임에 나가는 것 등 소셜 스킬이 그때에 비해서는 훨씬 많이 늘어났고, 사회생활 경험은 많이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사회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기도 하고요.

또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지금은 제가 집에서 인터넷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점 같아요.

사실 은둔을 해도 제가 지금은 완전히 히키코모리라고 말하지 않는 게 경제적으로 수입이 있다는 게 저는 히키코모리한테는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옛날엔 없었고 지금은 있으니까, 느낌이 많이 다르죠.



파란 씨가 최근 느닷없이 바다가 보고 싶어서 부산에 다녀온 흔적들.

옛날과 달리 이제는 어딘가로 떠나거나 뭔가를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히키코모리와 자존감





지금 경제활동을 하고 계시고, 그걸로 인해 자존감도 올라가시고 뭐랄까, 사는데 자신감이 생기신 거 같아요.

예전에 비해서 그렇긴 하죠.



자존감과 자신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은데 말씀해주실 게 있나요?

사실 히키코모리에게 가장 큰 걱정은 뭘 하면서 먹고 사느냐거든요.

집밖에 못 나가면 돈을 못 벌기 때문에, 돈을 못 벌고 평생 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게 자존심을 하락시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죠.

예전의 저는 집에서 나는 돈도 못 버는 백수에 나이는 많고 미래가 암담한 히키코모리였다면 돈을 벌고 나서는 자존감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죠.

또 요즘 코로나 시대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어떻게 보면 내가 하는 일도 재택의 일환이 될 수 있으니까, 사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밖에 나가서 하는 일을 해야 한다가 제 인생의 우선순위였다면 지금은 꼭 밖에 나가서 돈을 벌지 않아도, 집에서 돈 버는 것도 내가 지속 가능하기만 하면 괜찮겠다로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좋네요.

제가 참 뭐랄까, 안심이 된다고 해야 하나, 제가 다 기쁜 것 같아요.

물론 아직은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안정적이거나 미래지향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저도 임시로 하고 있는 거라 만약에 다른 쪽에서 재택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런 것도 괜찮다 생각을 해서 지금은 그냥 여러 가지로 그냥 고민을 해보고 있는 것 같아요. 



멋지십니다.

그러면 요즘 근황이 좀 궁금한데, 요즘은 어떻게 살고 계세요?

최근에는 일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인 문제로도 조금 힘든 부분이 있었죠.



그렇군요. 이제 인터뷰도 거의 막바지인데, 제가 아까 처음에 이야기를 들으면서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그래서 거의 마지막 질문으로 남겨놓은 게 있는데, 첫 은둔 대 공부를 손에서 놓게 되면서 '나는 이제 죽었다.' '내 인생은 끝났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셨잖아요.

지금은 좀 어떠세요? 지금은 좀 어떤 마음이신지가 궁금해요.

그때는 제 가치관 자체가 딱 한 가지밖에 없었어요.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좋은 직업을 얻어야 하고, 저는 항상 사고가 틀에 박혀 있었어요.

항상 정석적이고 정상적이고 평범하고 무난하면서도 괜찮게 잘 살아야 하는데, 근데 그게 심리학 공부나 삶을 살다 보니까 그냥 그런 건 없구나, 정해진 정답이나 꼭 해야 되는 그런 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까도 말했듯이 전에는 꼭 밖에 나가서 어떻게든 일을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집에서도 돈을 벌면서 살 수 있잖아라고 생각이 바뀐 것처럼, 그때는 공부도 놓고 내 인생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또 반대로 내가 그렇게 살지 않아도 다른 방면으로도 내가 무언가 의미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거, 잘하는 걸 하면서 살면서 수입도 있고 하면 괜찮겠다로 마인드가 바뀌어서 그래서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에 비해서는 불안정한 건 여전히 있죠. 제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건 이제 제가 해결해 나가야 되는 문제니까요.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희망을 찾았나요?

예전에는 정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지금은 찾긴 한 것 같아요. 이게 확실하고 명확하고 막 눈에 잘 보이고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있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느끼기엔.





(끝)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





안녕하세요. 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를 담당했던 인터뷰어 하나입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여러 은둔형외톨이 당사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요. 아직까지 은둔 경험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이 사회에서 저를 믿고 자신의 내밀한 부분까지 이야기해주시는 당사자들을 보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을 느꼈던 3개월이었습니다.

특히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많이 어려워했던 당사자 한 분께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저에게 먼저 인터뷰를 요청해주셨을 때, 그리고 적극적으로 자신이 처했던 상황과 그로 인해 들었던 생각 같은 걸 공유해주셨을 때 저도 11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은둔했던 당사자로서 그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분의 그런 적극적인 모습에 더 감동했던 것 같습니다.

 

은둔 당사자 레오 씨의 인터뷰 마지막에 붙였던 사족처럼 우리는 아픔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남을 해치지 못해 자기 자신에게 벌을 주듯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가진 아픔을 가슴 깊이 숨겨놓고 회피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지요.

저는 우리가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내가 가진 아픔과 상처를 인정하고, 상처 위에 새 살이 돋도록 스스로에게 약을 발라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꽃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듯 아직 나의 꽃이 피지 않았을 뿐이야."

은둔이란 건 어쩌면 나라는 꽃이 가장 아름답게 개화하기 위해 웅크리고 기다리고 있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제 인터뷰를 봐주셨던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interviewer_하나 | 방 밖으로 나온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다시 은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중학교를 중퇴하고 그대로 11년간 은둔했습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를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1년 동안 두 번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로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운영한 '은둔고수' 1기와 2기를 수료했습니다. 은둔형외톨이 지원 영역에 발을 담그기 시작해 현재는 저술 활동과 더불어 관련 연구나 언론매체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hanahana122123@gmail.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인터뷰를 받고 싶은 분의 신청도 받습니다. 또는 은둔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tintin@theseed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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