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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10: 파란 (1)






이대로 죽으면 되게 억울할 것 같아서

반半 히키코모리로 살아가는 파란의 이야기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35살의 은둔 생활을 굉장히 오래했고, 지금은 극복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집에 있는 게 편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파란이라고 합니다.

 


집에 있는 게 더 편하세요?

누구나 그렇듯 나가서 노는 건 좋지만, 나가서 일을 한다든지 병원을 간다든지 하는 종류의 외출, 즉 의무감으로 나가야 하는 걸 귀찮아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놀러 가는 건 좋지만 의무감으로 나가는 건 싫다.

네. 놀러 가는 것까지는 할 수 있게 됐는데 기타 여러 가지 일들, 예를 들면 업무 같은 걸 하러 나갈 때는 여전히 나가기가 싫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인 인터뷰로 들어가서 파란 씨는 은둔을 여러 번 반복하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먼저 그 타임라인에 대해 들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은둔을 처음 시작한 게 고등학교 1학년, 17살 말에 제가 자퇴를 했어요. 그때부터 서서히 은둔을 시작해서 25살까지는 1년에 서너 번 나가는 정도로 은둔을 했고, 그러다 사회에 나와서 적응을 하다가 26살에 군입대를 했죠. 전역한 뒤에는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다가 다시 은둔을 하게 된 게 29살 말쯤이에요.

 

재은둔을 해서 그렇게 2, 3년 정도 집에 있다가 그 다음엔 사실 반복이었던 것 같아요. 단기 아르바이트를 잠깐 했다가 그만두고 집에 6개월 정도 있기도 하고, 연애를 할 때는 여자친구를 보러 나가는 시간 외에는 집에 있고, 그러다가 여자친구랑 헤어지면 또다시 집에 박혀있고. 그래서 한 29살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은둔을 했던 시기랑 아닌 시기가 섞이면서 말 그대로 '반 은둔 생활'을 했죠.




파란 씨가 28살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떠난 일본 여행 당시의 사진들. 

‘여행을 혼자 왜 가야하지?’ 라는 생각에 가본 적이 없다가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왔다고 한다.






첫 은둔 :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랬군요. 파란 씨가 첫 은둔을 시작하게 된 나이가 17살이잖아요. 어떤 일 때문에 은둔을 하게 됐나요?

아파서 자퇴를 한 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아픈 것 때문에 학교 가는 게 너무 힘들었고, 매일 등교 자체가 너무 힘들다 보니 자퇴하고 집에서 공부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자퇴한 뒤에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했었는데 뭔가 점점 적응이 안 되는 거예요. 자퇴생이라는, 나의 신분 자체가 바뀐 것 같은 느낌. 교복을 입고 있는 여느 17살, 18살들과 교복을 입고 있지 않은 '나' 사이에는 뭐랄까, 굉장히 괴리감이 컸어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느낌?

예를 들어 학원을 가는 것도, 다른 애들은 하교 하고 오느라 다 교복을 입고 학원엘 오는데 나만 교복이 아닌 일상복 차림으로 학원에 있잖아요. 그런 것에 대해 굉장히 이질감이 느껴지면서, 그게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점점 마음의 문을 닫고, 학창시절에 사귀었던 친구들과도 연락을 싹 끊고, 그렇게 하루 이틀 집에 있게 되던 게 어느새 한 달, 두 달, 세 달, 6개월, 1년. 이렇게 점점 늘어났던 것 같아요. 그 시간들이.


처음에 아파서 학교를 그만뒀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아팠던 건가요.

15살에 병원에서 진단받기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위장장애'였어요.

뭘 먹으면 탈이 나서 밥을 거의 못 먹고 매일 굶으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지금 와서 알게 된 건 전 그때 이미 우울증이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우울증으로 인한 신체화 증상이 생긴 거였어요. 그래서 매일 굶은 채로 학교를 다니고, 거기에 우울증까지 있었으니 학교 다니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죠. 그래도 3년 정도를 버텼는데 한계가 오니까 더 이상 버티다 못해 자퇴를 하게 됐어요.



정말 안타깝네요. 사전 인터뷰 때 듣기로는 집안 자체가 교육열이 강해서 그것도 좀 독이 됐다고요.

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칭찬을 많이 받았고 또래 중에서 우수한 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부모님께서 기대를 많이 하셨던 것 같고, 기대를 하는 만큼 저에게 여러 가지를 많이 시키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일찍 공부를 시작해서 몇 학년 이상 수준의 선행 학습을 했죠.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 수학을 선행 학습하고, 중학교 1학년 때는 중3 수준을 선행 학습하고. 그런 식으로 살다 보니까 저는 항상 잘해야 하고, 실수를 하면 안 되고, 그런 완벽주의적인 압박감,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는 그런 생각들이 굉장히 강했거든요.

실제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한 번도 안 빠지고 반장을 했었어요. 학교 선생님도, 친구들도, 그리고 부모님에게까지 나는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우수한 사람인데 정작 저는 이런 모든 것들이 너무 숨이 막히고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던 거죠. 나는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니었는데... 제가 아직도 기억나는 게, 제 초등학교 롤링페이퍼에 애들이 써준 말들이 하나같이 다 '너는 커서 꼭 박사가 될 거야.' '교수가 될 거야.' '서울대를 갈 거야.' 친구들이 그렇게 써준 글들,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들, 그런 것들이 저에겐 항상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숨이 막혔군요.

네. 숨이 막혔다는 걸 처음 느낀 게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아마 우울증 초기 증상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학원을 다니다가 숨이 턱턱 막히는 경험을 했죠. 모든 입시생들이 다 비슷한 힘듦을 느끼겠지만 저 같은 경우 유별나게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힘들어하다가 우울증이 온 거죠.



그렇게 어렸던 파란 씨에게 여러모로 숨이 막히는 환경과 섭식장애라는 힘든 상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왜 그랬을까요.

일단은 제가 어렸을 때라서 우울증이 정확히 뭔지 몰랐어요. 그냥 우울증이라는 게 있다, 우울해지는 병이다 이렇게만 알았지 내가 살기 싫고, 도망가고 싶고,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그런 감정들이 우울증이라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고, 섭식장애의 경우에도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에 저는 제가 그냥 몸이 아픈 것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했지 당시의 제 정신이 그렇게 내몰려있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왜냐하면 누구나 다 공부를 하는 학생이고, 다 같이 겪는 거니까 그냥 참아야 된다, 견뎌야 된다라는 생각만 했지 내가 공부를 그만한다거나 숨통이 트이게 다른 걸 한다라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제가 아프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공부가 잘 안 되니까 더 멘탈이 나갔던 것 같아요.

'난 이걸 꼭 해야 되는데 할 수가 없네.', '이걸 못하면 어떡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식의 패닉에 가까운 그런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그렇게 성적에 대한 압박이 있고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섭식장애라는 물리적 고통까지 있는 환경 속에서 못 버티고 결국 자퇴를 선택했잖아요.

자퇴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처음에는 자퇴를 말리셨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항상 지각이나 결석을 하고, 학교 가면 제대로 수업도 못 듣고 계속 보건실에 누워만 있는 모습이 몇 년이나 지속이 되니까, 부모님의 경우 사실 자퇴를 안 시키고 싶어도 제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아시니까 마냥 안 된다고만 할 수도 없으셨던 거죠.

그래서 그냥 진지하게 하루 이틀 정도 이야기하고 바로 자퇴했던 것 같아요.



17살에 그렇게 자퇴를 한 게 결국에는 은둔으로까지 이어졌잖아요. 17살부터 24살까지 은둔을 했는데 나오기 전에는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나요?

처음에는 수능을 준비했는데 18살쯤 되니까 공부에 너무 집중이 안 되는 거예요. 과외도 인터넷 강의도 도저히 집중이 안 돼서 18살 말쯤에는 공부 자체를 다 놔버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는 했던 게 정말 게임 밖에 없었어요. 제가 집 밖에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컴퓨터밖에 없었거든요.




그 때 파란 씨의 마음은 좀 어땠어요? 어떻게 보면 성적의 압박과 공부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거잖아요. 해방감을 느끼는 한편 불안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그 때 제 스스로가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요.

왜냐면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좋은 성적을 받아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게 제 인생의 목표고 가장 중요한 삶의 이유 같은 거였는데 그걸 도저히 할 수 없는 환경이 됐잖아요.

그 때 하루 종일 게임을 했던 게 '이제 공부를 안 하고 쉬어야지'같은 게 아니라 내 인생은 이제 끝났고, 미래도 없고, 별로 살고 싶지도 않고, 그냥 이 세상에 존재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외로움에 지치고 외로움이 지겨워서 






다른 얘기지만 하던 게임에서 거의 준 프로게이머 수준이었다고 들었어요. 아무튼, 그렇게 게임을 하다가 어떻게 은둔에서 나오게 되었나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라는 게임을 했는데 그 게임에는 순위가 있거든요. 와우가 세계적인 게임이라 월드 순위가 있었는데 제가 세계 랭킹 4위로 레이드를 클리어한 거예요. 그걸 한 번 하니까 게임에서 끝을 본 느낌? 게임을 할 만큼 했다라는 생각도 들고 성취감도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당시의 저는 '나는 쓸모 없고 집에서 매일 게임만 하고 부모님께 욕만 먹는 인생이었는데, 가상세계에서만큼은 괜찮은 성적이 나왔네'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플러스에 이제 너무 지친 거예요.



마침내 지쳤군요.

네. 은둔하고, 아무와도 말을 안 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던 생활이 정말 5, 6년 정도 되니까... 제가 그 은둔 기간 동안 말도 극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정말 '외로움'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웠고, 히키코모리 생활도 지독하리만치 지겹고, 그냥 다 지쳤던 것 같아요.

그때가 '이제는 정말 내가 죽던지 나가든지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시점인 것 같아요.



파란 씨가 28살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떠난 일본 여행 당시의 사진들. 

‘여행을 혼자 왜 가야하지?’ 라는 생각에 가본 적이 없다가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왔다고 한다.




음, 제가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생각나는 질문이 있는데, 파란 씨가 은둔하는 동안 했던 말이 거의 5, 6년에 한 두 마디 할 정도라고 하셨잖아요. 사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저 같은 경우 그렇게 말을 안 했더니 말을 더듬는 증상이 나타났었거든요. 파란 씨는 어떻던가요?

저는 가족들한테는 '네, 아니오' 정도는 대답할 수 있는데 밖에 나가면 한 마디도 못했어요.

왜 있잖아요, 사람들 많이 모인 데서 갑자기 노래하라고 하면 민망해서 노래가 안 나오는 거. 그것처럼 제가 누군가 앞에서 말을 하려고 하면 마음 속에서는 목소리가 나가고 있는데 말이 안 나와요. 말이 목에 걸린 것처럼요.

그래서 처음에 밖에 나왔을 때는 의사소통을 고갯짓으로 했어요.

말을 한 두 마디 해보면 내 목소리가 너무 이상한 거예요. 몇 년간 말을 안 하니까 내 목소리가 뭔지 기억이 안 나고. 18살까지의 내 목소리는 기억이 나는데 20대 중반의 내 목소리를 모르니까 내가 하는 말이 모두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래서 더 말을 못하겠는 그런 이상한 경험을 처음 해봤던 것 같아요.



파란 씨도 그런 이상한 경험을 했군요. 그래서, 첫 은둔에서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은둔에서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 드라마 '1리터의 눈물'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당시에 일본 드라마랑 애니메이션을 볼 때였는데, 1리터의 눈물이 시한부 삶을 사는 여고생이 나오는 내용인데 제가 그걸 보다가 갑자기 마음 안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더라고요. 그러면서 '나 진짜 이대로 죽으면 되게 억울할 것 같아.'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아.' '나도 시한부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한 번 도전해 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동기가 생겨서 제가 처음으로 했던 게 살을 빼는 거였어요.

그때 몸무게가 90kg 정도였는데, 그런 거 있잖아요. 은둔하는 사람이 거울을 보면 머리가 완전히 장발에 관리 안 되어 있고, 살은 엄청 쪄 있고. 거울을 보면 내 자신이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그 드라마를 보고 한 번 나가서 살아보자라는 생각을 했을 때 가장 먼저 했던 게 15kg 정도 살을 빼는 거였어요. 두 달 만에 15kg를 빼고 밖에 조금씩 나가기 시작했죠.




죽은 것처럼 살고 있던 파란 씨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마침내 한 번 살아보자 결심하게 만들어준 일본 드라마 ‘1리터의 눈물’ 장면.






(2편에 이어서)



interviewer_하나 | 방 밖으로 나온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다시 은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중학교를 중퇴하고 그대로 11년간 은둔했습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를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1년 동안 두 번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로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운영한 '은둔고수' 1기와 2기를 수료했습니다. 은둔형외톨이 지원 영역에 발을 담그기 시작해 현재는 저술 활동과 더불어 관련 연구나 언론매체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hanahana122123@gmail.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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