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의 키워드 ‘사람’
은둔을 벗어나는 궤도에 있는 자몽 = 설거지하는 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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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인터뷰에서 사용하게 될 자신의 닉네임과 그 뜻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네 저는 자몽이라고 하고요. 뜻은 제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 자몽이라서 자몽으로 지었습니다.
그렇군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이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자몽 씨가 생각하는 스스로는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은둔 생활이 되게 길어서,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알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요즘 들어서 제가 느낀 제 자신은 보라색과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면서 또 뭐든지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은둔에서 나온 뒤로 뭔가 많은 걸 알게 되셨네요.
네.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서, 은둔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2학년부터 3학년까지 2년 동안 학교 폭력을 겪었어요.
학교에서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있었는데, 2년 내내 같은 무리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어요. 저를 때린다거나, 놀린다거나 혹은 쓰레기를 저한테 던진다든가 하는 심한 수준의 학교 폭력을 겪었죠.
그럼에도 고등학교는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니다 졸업을 했는데, 성인이 되고서도 그 친구들이 자꾸 연락 와서 저를 괴롭히는 거예요. 그때부터 제가 아는 사람들이나 친구와도 단절하고 학교도 안 나가기 시작하면서 은둔을 시작하게 됐어요.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녔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괴롭힘을 당하는 게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제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죠.
그리고 저는 그 당시 부모님이 너무 무서웠어요. 아버지가 많이 엄격하고 조금 폭력적인 면도 있으셔서 정말 어쩔 수 없이 매일 꾸역꾸역 학교를 나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저는 학교 폭력으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었어요.
사실 집과 학교, 그러니까 십대 시절의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들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내가 괴롭힘만 당하고 이해받을 수 없었다는 것. 집과 학교 둘 다 나에게는 그런 곳이었다는 게 참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마음이 아프네요.
그런 심각했던 학교 폭력을 겪고 나서, 은둔에 들어간 이후의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자몽 씨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요?
2010년부터 은둔이 시작되었고요. 부모님께 학교에 간다고 말씀드리고 아파트 비상 계단에 숨어서 몇 시간씩 자거나, 영화를 보든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게 몇 시간 씩 시간을 죽이다 집에 들어가는 일을 몇 년을 반복했죠.
그러다 2013년부터는 대학교를 자퇴하고서 부모님께는 휴학했다고 거짓말한 뒤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어요.
부모님께 학원 간다고 말씀드리고는 항상 집이나 근처 공원에 숨어서 시간을 보내는 걸 몇 년 동안 반복하면서 제가 조울증에 걸리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지면서 그때 부모님이 저의 상태에 대해 비로소 아시게 된 거예요. 그때가 아마 2015년, 2016년쯤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2022년, 올해까지 집 밖을 아예 나가지도 않은 채 은둔이 진행됐는데, 그래도 그 중간에 어떻게든 사회적인 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자격증을 준비한다거나 일을 해보려고 한다거나 하는 사회 재편입 시도가 꾸준히 있었어요.
한 달 정도 잠깐 나갔다가 다시 또 들어오고, 또 1, 2년 뒤에 한 달 나갔다 들어오고를 계속 반복했던 것 같아요.
나가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그러면은 2010년부터 등교하는 척하면서 비상계단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2014년까지, 장장 4년 동안 그렇게 반복을 하신 건가요.
네. 그 4, 5년 정도를 그렇게 계속 반복했어요.
그때 좀 어떤 마음이었어요?
최근, 그러니까 올 초까지만 해도 제가 은둔형외톨이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두 제 잘못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냥 ‘내 스스로가 못나서 사회에 나가지 못하는구나’, ‘내가 못나서 바깥 활동을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스스로를 비난하고 미워하면서 또 원망했는데,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이 많이 괴로웠어요.
그냥 숨을 쉬는 것도 너무 고통스러울 만큼 너무 괴로운 시간들이었어요.
듣기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계시다고요.
네. 학교 폭력을 당하고 나서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공황장애나 조울증, 불면증, 이인증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발작을 하기도 하고, 갑자기 몸이 고통스러워서 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계속 막 굴러다니기도 하는 그런 증상들이 있었죠.
몇 년 전에 진단을 받았어요.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요.
그러면 2015년쯤 가족이 자몽 씨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잖아요. 가족들은 그런 자몽 씨를 보며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부모님은 처음에 이해를 하지 못했고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제가 그때 정말 폐쇄병동에 몇 번씩 입원할 정도로 상황이 많이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부모님은 “열심히 해보자.”, “그래도 한번 이겨내보자.” 이런 생각으로 제가 사회에 나오려고 할 때마다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셨죠.
그런데 자꾸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그러다 보니 제가 10년이 넘도록 나가지 않는 사람이 되었더라고요.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가 계속 좌절되는 과정에서 ‘나는 안 될 사람이구나’, ‘나는 글렀다’ 이런 생각을 강하게 느꼈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러면 그렇게 길고 지난했던 은둔 기간 속에서, 자몽 씨의 삶을 그나마 이어가게 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은 제가 거의 무교 상태이기는 한데 예전엔 교회를 다녔었거든요. 그래서 종교적인 게 컸죠.
정말 죽고 싶었지만 자살을 하면 지옥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죽을 수가 없어서 은둔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꾸역꾸역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결과적으로 저에게 좋은 거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요즘에는 좀 많이 살만하거든요.
그렇게 종교의 힘으로라도 버텼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계속 버텼기 때문에 오늘이 있지 않나 해요.
아까 말씀하시기를, 은둔을 하면서도 사회에 편입되고 싶어서 자격증을 딴다든지, 일을 한다든지 하는 노력들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극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라고 생각이 드세요.
은둔하는 상태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은둔이 ‘구렁에 빠진 상태’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제가 나올 수 없었던 이유가 주위에 저를 도와주는 사람, 제 처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은둔 중인 저를 이끌어주고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아까 말씀하시기를 은둔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할 때마다 가족들의 금전적인 지원이 꾸준히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가족들의 그런 도움은 별로 효과가 없었던 걸까요?
우선 은둔을 하게 되면 무기력이 심해지고 나갈 힘도 없고 그렇잖아요. 제가 그랬거든요.
저도 근데 이제 부모님은 금전적으로는 아낌없이 지원해주셨는데 너무 바쁘셨어요. 그래서 저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으셨죠.
만약에 부모님께서 자몽 씨를 이끌어주셨다면 은둔을 극복하기가 좀 더 수월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는 어떻게든 나가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시도들이 계속 좌절됐던 터라, 만약 누군가가 옆에서 동기부여를 해준다든지, 이것저것을 알려줬으면 더 빨리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개인적으로 저도 함께해주는 사람, 이끌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터라 하시는 말씀에 공감이 가네요.
사실 저희가 모른 척하고 인터뷰하고 있긴 하지만 구면이죠.
그렇죠.
네, 구면을 넘어서 사실 절친하죠. 그래서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는데요. 저희를 이어준 계기에 대해서 독자분들께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그럼요.
얼마 전 함께 사는 친구들과 ‘인싸 체험’을 하기 위해 방문한 석촌호수의 러버덕과 롯데타워.
곰손카페와 공동생활을 통해 방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면 올해 러버덕을 직접 볼 수 있었을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두두서포터즈 1기 뚝깨비입니다. 피어서포터즈로서, 김밐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자몽 씨는 지난 10월 23일 일요일 방영된 ‘SBS스페셜 : 방탈출 프로젝트 - 곰손카페’ 출연자세요. 맞나요?
네. 맞습니다.
출연하신 프로그램을 저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는데, 사실 이런 공중파 방송에 얼굴을 공개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출연할 결심을 하게 되신 건가요.
우선 저는 방송을 타도 알아볼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지인도 없고 저에게 연락이 올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방송에 대한 부담이 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방송에서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얼굴을 드러낸 게, 이렇게라도 방을 나서서 바깥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던 저의 욕구가 반영된 것 같아요. 그래서 할 수 있었어요.
저는 그 얘기를 들으니까 문득 생각나는 게, 저희가 은둔할 때는 아는 사람이 없지만, 사실 친척이나 학교 동창이나… 저희를 보며 “쟤 걔 아니야?”라고 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잖아요. 자몽 씨는 그런 자몽 씨를 알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걸까요.
사람들이 절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선 본명이나 제 주소지 같은 게 알려진 것도 아니고, 제가 옛날에 비하면 살이 많이 쪘거든요. 그래서 나를 알아볼 사람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도 없고요.
그 사람들에게 제 전화번호가 있다면 저도 주변인들의 반응에 대해서 걱정했을 텐데, 사람들이 혹여 저를 알아봐도 연락을 할 수가 없어요. 번호를 모르니까요.
부모님의 지인분들은요?
부모님 지인분들도 아마 모르실 거예요. 제가 교회도 나간 지 되게 오래됐고, 또 집에만 있는 동안 외모가 많이 변했거든요.
그런 것들이 오히려 자몽 씨가 곰손카페 출연을 결심하게 만든 계기가 된 셈이네요.
그렇죠.
그런데 지금의 자몽 씨는 주위에 사람들이 많잖아요. 걱정되지 않으세요?
그때는 주변에 지인이 없으니까 나는 곰손카페에 출연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지인이 있잖아요.
지금 제가 사귄 친구들은 사실 은둔형외톨이 업계에서 일하거나 당사자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부담이 없어요.
방송에서 제가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고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더라도,
‘자몽은 되게 노력을 하는 사람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하고 생각 하지
‘자몽이 은둔형 외톨이었네’ 하면서 놀릴 친구들은 없거든요. 그래서 괜찮아요.
사실 ‘SBS스페셜 : 방 탈출 프로젝트 - 곰손카페’ 방영이 다가왔을 때, 10월 초쯤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나 이 방송 절대 안 볼 거야.”
혼자도 아니고 다른 출연자랑 “우리 같이 이 방송 보지 말자.” 약속할 정도로 방송을 시청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많으셨는데, 실제로는 저와 함께 본 방송을 시청하셨잖아요. 그때 어떤 마음으로 보지 않겠다고 한 거고, 또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어서 곰손카페 방송을 보기로 한 건지 궁금해요.
우선 절대 볼 생각은 없었고요. SBS스페셜 곰손카페 편이 1, 2부로 나뉘어서 방영될 예정인데 저는 제가 2부에만 나올 줄 알고 있었어요.
저는 그래서 “내가 1부에 안 나오니까 한 번 시청해 봐야겠다.”, 왜냐하면 저랑 같이 출연한 다른 출연진분들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제가 자세히 알지 못해서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같이 출연했던 분들을 보고 싶어서 제 친구들과 함께 시청했는데 갑자기 제가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얼떨결에 보게 됐어요.
근데 보다 보니까 제가 되게 노력하는 사람으로 비춰졌어요.
그냥 보통 이제 은둔형외톨이는 게으르고 아무것도 안 하는 그런 이미지인데, 제가 정말 힘든 시간을 겪었고 또 은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잘 그려주셨더라고요. 그래서 괜찮았어요.
저는 보면서 실제로 조금 울었거든요. 내용이 은둔형외톨이 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 방송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제 은둔 경험을 타인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서 은둔 극복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해요. 한 달 넘게 씻지 않고,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낮은 학력에, 저에게 있는 건 11년의 은둔 경력뿐이라는 게 너무 부끄러웠는데, 은둔고수에 참여하면서 처음부터 저의 은둔 경험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때 제 안에서 뭔가 터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자몽씨로 돌아가서, 자몽 씨는 SBS스페셜 곰손카페라는 공중파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셨잖아요. 그 프로그램을 통해 전 국민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신 셈이 됐어요.
그렇죠.
실제로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험들이 자몽 씨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제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은 제 이야기에 대해 공감을 해주잖아요. 그 과정에서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리고 이해받는 그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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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받는 기분이 좋아요
이해받는 기분이 왜 좋은 걸까요?
그동안 애초에 말할 사람이 없었구요. 주위에서 저라는 사람을 그냥 겉으로 봤을 때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게으르다’, ‘아무것도 안 한다’ 외모로도 그렇고요.
근데 이렇게 제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은 제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에 대해서 이해 해주거든요. 저는 그게 좋아요. 존중받는 기분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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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곰손카페는 되고 자격증은 수 없이 따도 안 됐던 이유
아까와 조금 겹치는 질문인데요. 자몽 씨가 다시 이제 사회로 편입되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자격증을 따셨죠. 그리고 뭔가 일도 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고, 극복을 위해 곰손카페까지 과감히 출연하셨죠. 자격증을 딴 것도 곰손 카페에 출연한 것도 모두 은둔을 극복하기 위한 행동이었잖아요. 그런데 곰손카페는 되고 자격증은 수 없이 따도 안 됐던 이유, 그 둘의 차이가 궁금하거든요. 자몽 씨는 그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금도 생각 하는 게, 곰손카페 촬영이 끝나고 다시 광주에 돌아갔다면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갔을 거라 확신해요.
근데 돌아가지 않았거든요.
제가 은둔이라는 걸 알게 되고, 또 은둔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단체들과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저는 안전한 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동 생활을 하면서 극복해내기 위한 생활을 지금도 하고 있어요. 그게 차이라고 생각해요. 주위에 저를 도와주는 사람, 이끌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사실 서울에서 공동 생활하는 와중에도 중간 중간 다시 집으로 도망치고 싶어서 며칠 간 본가에 있으면서 정신적으로 방황하기도 했어요.
다시 들어가고 싶어서, 사람들 만나는 게 무서워서요.
근데 그때마다 같이 사는 친구들이 밖으로 나오라고 이끌어주는 거죠. 그래서 다시 은둔하다가도 나오는 과정에서 저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사람’이라는 게 극복의 키워드가 될 수 있겠네요.
그러면 지금 공동생활하시는 것이 은둔 극복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 같으세요?
매우 도움이 돼요.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씻지 않아도 되었고 청소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데, 현재 셰어하우스에서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느끼는 점이 며칠에 한 번씩 꼭 씻어야 되고, 또 내가 먹은 걸 바로 설거지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되고… 그리고 여러 프로그램에 친구들과 참여하게 되는데, 하기 싫은데도 친구들이 있으니 억지로라도 같이 가고 그렇게 강제적으로라도 밖을 나서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외출이 점점 익숙해지고, 사람을 마주치는 게 괜찮아지고 있어요.
공동생활 중인 셰어하우스에서 파티 때 찍었던 망한 사진. 망한 사진이라도 다함께 보며 깔깔거렸던 당시의 기억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좋은 변화네요.
제가 은둔하던 집이 ‘늪’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집에 있으면 점점 더 빨려 들어가는데 그걸 눈치채지도 못하고, 빠져나올 수도 없고. 그런 식으로 천천히 내가 늪 속으로 잠식된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자몽 씨가 자신이 살던 집을 정의해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정의한 것에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시간이 멈춘 곳이요.
변화가 없어요. 항상 같은 하루가 되풀이되고, 저는 나이를 먹어가긴 하지만 자라지 않는 거예요.
최근에는 조금씩 제가 자라나고 있다고 느끼지만 은둔 당시의 저는 스무 살 그때에 멈춰 있었어요.
근데 이제 지금의 저는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있죠. 저의 집은 멈춘 곳이에요 그냥. 변화도 없고 그대로 영원히 있는 거죠.
무의미한 시간이 반복되는.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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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무섭지는 않고 힘들지만 할 수 있어요.
저는 극복을 시작한 지 햇수로 4년 차예요. 그래서 극복하는 동안 많은 걸 겪고, 보고 느끼고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은 모든 게 한결 수월해졌거든요. 그렇지만 극복 초기에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별거 아닌 일에 저도 모르게 자꾸 우는 거예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까지 저는 극복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던 것 같아요.
자몽 씨는 저보다 1년 더 오래된 12년의 은둔 경험자고 은둔 극복을 시작한 지 이제 6개월이 된 입장에서 아직도 좀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현재 자몽 씨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람들과 마찰이 있거나 의견 차이가 있거나 할 때, 그때가 제일 어려워요.
그게 왜 어려울까요.
제 의사표현을 해야 되는데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무서워서, 그게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집에 혼자만 있을 때는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도 그냥 저만 있는 거라 되게 편했거든요. 안전하고. 근데 지금은 가끔 사람들에게 공격받는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그리고 의사 표현도 되게 힘들고,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가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면 반대로 극복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됐잖아요.
6개월이 지난 지금 자신이 은둔을 극복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그 점에 대해서 얘기해 본다면?
우선 저는 그전에는 설거지가 되게 무서웠거든요. 근데 이젠 설거지가 무섭지 않아요.
왜 무섭지 않아졌나요?
그 전에는 무기력이 되게 심했어요. 무기력이 되게 심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밖에 돌아다니고 있어요. 무기력이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너무 좋은 변화인 것 같아요. 너무 멋있어졌어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지금 은둔을 극복 중인 지금, 가장 실감하고 있는 최근 자신의 성취는 무엇인가요.
설거지요.
또 설거지인가요?
네. 설거지와 주기적으로 사람들과 나가는 거.
예전엔 그 두 개가 너무 무서웠거든요. 혼자 있을 땐 절대 하지 못했던 것들인데 이제는 하니까요.
그러면 그 성취로 인해서 자몽 씨에게 좀 찾아오는 변화가 있던가요.
매일매일이 덜 불안해요.
그거 좋은 말인 것 같은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집의 시간이 멈춰 있다고 했잖아요. 근데 지금은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예전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설거지도 그렇고요.
솔직하게 사실 요즘 조금 힘들어하는 때도 있었잖아요.
번갈아 가면서 어떤 때는 좋았고 어떤 때는 안 좋았고 요즘에 자신의 마음에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고 싶으세요.
70점이요.
점수가 굉장히 높은데 이유가 있나요?
설거지요. 그리고 하나를 더 꼽아보자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되게 고지대에 위치해있거든요. 계단도 많고 언덕이고. 그게 예전에는 너무 무서웠거든요.
근데 지금은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는 게 무섭지만 할 수 있다는 건가요.
이제는 무섭지는 않고 힘들지만 할 수 있어요.
무섭지조차 않아졌군요.
네. 그렇죠.
어느 날 새벽에 충동적으로 밖에 나와 찍은 사진. 이걸 찍던 당시 그는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이걸 찍으며 자몽은 밖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엄청난 발전인 것 같아요. 당신은 너무 멋진 사람이네요.
현재 자몽 씨는 ‘은둔을 벗어나는 궤도’에 진입해서 느린 속도로, 하지만 꾸준하게 은둔을 벗어나고 계신데, 그런 지금 은둔 중의 자신을 떠올려보면 좀 어떤 생각이 드세요.
되게 불쌍해요. 되게 힘들었구나, 어떻게 버텼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현재 자몽 씨를 인터뷰하고 있지만 인터뷰이로서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있는데, 종종 이런 류의 질문을 받곤 하거든요.
“은둔은 당신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사실 은둔을 스펙 삼아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은둔이라는 건 제 삶에 있어서 “안 겪었으면 가장 좋았을 것, 하지만 이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므로 은둔 시절에 나 또한 안고 살아가려고 한다.”라는 식으로 답변을 하고 있어요.
같은 질문에 대한 자몽 씨의 답변이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답변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은둔을 후회하지 않아요.
은둔이 아니었어도 그전에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거든요.
은둔이 그 일들을 극복해내는 데에 도움을 많이 줬다고 생각해요. 은둔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 같고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은둔을 안 했으면 제가 SBS스페셜 곰손카페에 출연할 기회도 없었을 거고, 지금 이렇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수 없었을 거예요.
곰손카페 촬영팀이 아주 좋아할 것 같은 말이네요.
자몽 씨의 절친한 친구인 저도 그 말을 들으니 너무 기뻐요.
불과 올 초까지의 은둔을 하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너는 되게 열심히 살고 있어. 최선을 다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티자.
왜 조금만 더 버티자는 말을 했나요?
그러면 곰손카페에 출연하게 될 테니까요.
뭐랄까, 곰손카페를 시청한 이후로 자몽 씨의 안에서 곰손카페에 인식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네. 그전에는 곰손카페에 출연한 게 되게 부끄러웠거든요. 찍고 나서 후회도 조금 했어요.
근데 이제는 당당해졌어요. 자랑스럽게 “나 곰손카페 출연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짜요. 공중파 다큐멘터리에 촬영한 엄청난 스펙의 보유자가 되셨네요.
자, 벌써 이번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인데요.
당신은 지금 희망을 찾았나요?
찾았죠.
정말요?
네.
그럼 자몽 씨에게 있어서 희망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지금 이 순간이요.
지금 이 순간이요?
네. 이렇게 친구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많은 일들에 참여하고 살아가는 거요.
저도 자몽 씨와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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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r_하나 | 방 밖으로 나온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다시 은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중학교를 중퇴하고 그대로 11년간 은둔했습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를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1년 동안 두 번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로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운영한 '은둔고수' 1기와 2기를 수료했습니다. 은둔형외톨이 지원 영역에 발을 담그기 시작해 현재는 저술 활동과 더불어 관련 연구나 언론매체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hanahana122123@gmail.com
* 은둔 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dudug@theseeds.asia)
극복의 키워드 ‘사람’
은둔을 벗어나는 궤도에 있는 자몽 = 설거지하는 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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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인터뷰에서 사용하게 될 자신의 닉네임과 그 뜻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네 저는 자몽이라고 하고요. 뜻은 제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 자몽이라서 자몽으로 지었습니다.
그렇군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이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자몽 씨가 생각하는 스스로는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은둔 생활이 되게 길어서,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알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요즘 들어서 제가 느낀 제 자신은 보라색과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면서 또 뭐든지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은둔에서 나온 뒤로 뭔가 많은 걸 알게 되셨네요.
네.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서, 은둔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2학년부터 3학년까지 2년 동안 학교 폭력을 겪었어요.
학교에서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있었는데, 2년 내내 같은 무리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어요. 저를 때린다거나, 놀린다거나 혹은 쓰레기를 저한테 던진다든가 하는 심한 수준의 학교 폭력을 겪었죠.
그럼에도 고등학교는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니다 졸업을 했는데, 성인이 되고서도 그 친구들이 자꾸 연락 와서 저를 괴롭히는 거예요. 그때부터 제가 아는 사람들이나 친구와도 단절하고 학교도 안 나가기 시작하면서 은둔을 시작하게 됐어요.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녔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괴롭힘을 당하는 게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제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죠.
그리고 저는 그 당시 부모님이 너무 무서웠어요. 아버지가 많이 엄격하고 조금 폭력적인 면도 있으셔서 정말 어쩔 수 없이 매일 꾸역꾸역 학교를 나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저는 학교 폭력으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었어요.
사실 집과 학교, 그러니까 십대 시절의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장소들이잖아요.
그런 곳에서 내가 괴롭힘만 당하고 이해받을 수 없었다는 것. 집과 학교 둘 다 나에게는 그런 곳이었다는 게 참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마음이 아프네요.
그런 심각했던 학교 폭력을 겪고 나서, 은둔에 들어간 이후의 상황을 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자몽 씨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요?
2010년부터 은둔이 시작되었고요. 부모님께 학교에 간다고 말씀드리고 아파트 비상 계단에 숨어서 몇 시간씩 자거나, 영화를 보든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게 몇 시간 씩 시간을 죽이다 집에 들어가는 일을 몇 년을 반복했죠.
그러다 2013년부터는 대학교를 자퇴하고서 부모님께는 휴학했다고 거짓말한 뒤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어요.
부모님께 학원 간다고 말씀드리고는 항상 집이나 근처 공원에 숨어서 시간을 보내는 걸 몇 년 동안 반복하면서 제가 조울증에 걸리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지면서 그때 부모님이 저의 상태에 대해 비로소 아시게 된 거예요. 그때가 아마 2015년, 2016년쯤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2022년, 올해까지 집 밖을 아예 나가지도 않은 채 은둔이 진행됐는데, 그래도 그 중간에 어떻게든 사회적인 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자격증을 준비한다거나 일을 해보려고 한다거나 하는 사회 재편입 시도가 꾸준히 있었어요.
한 달 정도 잠깐 나갔다가 다시 또 들어오고, 또 1, 2년 뒤에 한 달 나갔다 들어오고를 계속 반복했던 것 같아요.
나가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그러면은 2010년부터 등교하는 척하면서 비상계단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2014년까지, 장장 4년 동안 그렇게 반복을 하신 건가요.
네. 그 4, 5년 정도를 그렇게 계속 반복했어요.
그때 좀 어떤 마음이었어요?
최근, 그러니까 올 초까지만 해도 제가 은둔형외톨이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두 제 잘못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냥 ‘내 스스로가 못나서 사회에 나가지 못하는구나’, ‘내가 못나서 바깥 활동을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스스로를 비난하고 미워하면서 또 원망했는데,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이 많이 괴로웠어요.
그냥 숨을 쉬는 것도 너무 고통스러울 만큼 너무 괴로운 시간들이었어요.
듣기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계시다고요.
네. 학교 폭력을 당하고 나서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공황장애나 조울증, 불면증, 이인증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발작을 하기도 하고, 갑자기 몸이 고통스러워서 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계속 막 굴러다니기도 하는 그런 증상들이 있었죠.
몇 년 전에 진단을 받았어요.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요.
그러면 2015년쯤 가족이 자몽 씨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잖아요. 가족들은 그런 자몽 씨를 보며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부모님은 처음에 이해를 하지 못했고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제가 그때 정말 폐쇄병동에 몇 번씩 입원할 정도로 상황이 많이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부모님은 “열심히 해보자.”, “그래도 한번 이겨내보자.” 이런 생각으로 제가 사회에 나오려고 할 때마다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셨죠.
그런데 자꾸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그러다 보니 제가 10년이 넘도록 나가지 않는 사람이 되었더라고요.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가 계속 좌절되는 과정에서 ‘나는 안 될 사람이구나’, ‘나는 글렀다’ 이런 생각을 강하게 느꼈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러면 그렇게 길고 지난했던 은둔 기간 속에서, 자몽 씨의 삶을 그나마 이어가게 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은 제가 거의 무교 상태이기는 한데 예전엔 교회를 다녔었거든요. 그래서 종교적인 게 컸죠.
정말 죽고 싶었지만 자살을 하면 지옥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죽을 수가 없어서 은둔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꾸역꾸역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결과적으로 저에게 좋은 거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요즘에는 좀 많이 살만하거든요.
그렇게 종교의 힘으로라도 버텼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계속 버텼기 때문에 오늘이 있지 않나 해요.
아까 말씀하시기를, 은둔을 하면서도 사회에 편입되고 싶어서 자격증을 딴다든지, 일을 한다든지 하는 노력들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극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라고 생각이 드세요.
은둔하는 상태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은둔이 ‘구렁에 빠진 상태’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제가 나올 수 없었던 이유가 주위에 저를 도와주는 사람, 제 처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은둔 중인 저를 이끌어주고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아까 말씀하시기를 은둔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할 때마다 가족들의 금전적인 지원이 꾸준히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가족들의 그런 도움은 별로 효과가 없었던 걸까요?
우선 은둔을 하게 되면 무기력이 심해지고 나갈 힘도 없고 그렇잖아요. 제가 그랬거든요.
저도 근데 이제 부모님은 금전적으로는 아낌없이 지원해주셨는데 너무 바쁘셨어요. 그래서 저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으셨죠.
만약에 부모님께서 자몽 씨를 이끌어주셨다면 은둔을 극복하기가 좀 더 수월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는 어떻게든 나가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시도들이 계속 좌절됐던 터라, 만약 누군가가 옆에서 동기부여를 해준다든지, 이것저것을 알려줬으면 더 빨리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개인적으로 저도 함께해주는 사람, 이끌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터라 하시는 말씀에 공감이 가네요.
사실 저희가 모른 척하고 인터뷰하고 있긴 하지만 구면이죠.
그렇죠.
네, 구면을 넘어서 사실 절친하죠. 그래서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는데요. 저희를 이어준 계기에 대해서 독자분들께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그럼요.
얼마 전 함께 사는 친구들과 ‘인싸 체험’을 하기 위해 방문한 석촌호수의 러버덕과 롯데타워.
곰손카페와 공동생활을 통해 방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면 올해 러버덕을 직접 볼 수 있었을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두두서포터즈 1기 뚝깨비입니다. 피어서포터즈로서, 김밐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자몽 씨는 지난 10월 23일 일요일 방영된 ‘SBS스페셜 : 방탈출 프로젝트 - 곰손카페’ 출연자세요. 맞나요?
네. 맞습니다.
출연하신 프로그램을 저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는데, 사실 이런 공중파 방송에 얼굴을 공개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출연할 결심을 하게 되신 건가요.
우선 저는 방송을 타도 알아볼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지인도 없고 저에게 연락이 올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방송에 대한 부담이 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방송에서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얼굴을 드러낸 게, 이렇게라도 방을 나서서 바깥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던 저의 욕구가 반영된 것 같아요. 그래서 할 수 있었어요.
저는 그 얘기를 들으니까 문득 생각나는 게, 저희가 은둔할 때는 아는 사람이 없지만, 사실 친척이나 학교 동창이나… 저희를 보며 “쟤 걔 아니야?”라고 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잖아요. 자몽 씨는 그런 자몽 씨를 알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걸까요.
사람들이 절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선 본명이나 제 주소지 같은 게 알려진 것도 아니고, 제가 옛날에 비하면 살이 많이 쪘거든요. 그래서 나를 알아볼 사람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도 없고요.
그 사람들에게 제 전화번호가 있다면 저도 주변인들의 반응에 대해서 걱정했을 텐데, 사람들이 혹여 저를 알아봐도 연락을 할 수가 없어요. 번호를 모르니까요.
부모님의 지인분들은요?
부모님 지인분들도 아마 모르실 거예요. 제가 교회도 나간 지 되게 오래됐고, 또 집에만 있는 동안 외모가 많이 변했거든요.
그런 것들이 오히려 자몽 씨가 곰손카페 출연을 결심하게 만든 계기가 된 셈이네요.
그렇죠.
그런데 지금의 자몽 씨는 주위에 사람들이 많잖아요. 걱정되지 않으세요?
그때는 주변에 지인이 없으니까 나는 곰손카페에 출연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지인이 있잖아요.
지금 제가 사귄 친구들은 사실 은둔형외톨이 업계에서 일하거나 당사자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부담이 없어요.
방송에서 제가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고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더라도,
‘자몽은 되게 노력을 하는 사람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하고 생각 하지
‘자몽이 은둔형 외톨이었네’ 하면서 놀릴 친구들은 없거든요. 그래서 괜찮아요.
사실 ‘SBS스페셜 : 방 탈출 프로젝트 - 곰손카페’ 방영이 다가왔을 때, 10월 초쯤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나 이 방송 절대 안 볼 거야.”
혼자도 아니고 다른 출연자랑 “우리 같이 이 방송 보지 말자.” 약속할 정도로 방송을 시청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많으셨는데, 실제로는 저와 함께 본 방송을 시청하셨잖아요. 그때 어떤 마음으로 보지 않겠다고 한 거고, 또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어서 곰손카페 방송을 보기로 한 건지 궁금해요.
우선 절대 볼 생각은 없었고요. SBS스페셜 곰손카페 편이 1, 2부로 나뉘어서 방영될 예정인데 저는 제가 2부에만 나올 줄 알고 있었어요.
저는 그래서 “내가 1부에 안 나오니까 한 번 시청해 봐야겠다.”, 왜냐하면 저랑 같이 출연한 다른 출연진분들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제가 자세히 알지 못해서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같이 출연했던 분들을 보고 싶어서 제 친구들과 함께 시청했는데 갑자기 제가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얼떨결에 보게 됐어요.
근데 보다 보니까 제가 되게 노력하는 사람으로 비춰졌어요.
그냥 보통 이제 은둔형외톨이는 게으르고 아무것도 안 하는 그런 이미지인데, 제가 정말 힘든 시간을 겪었고 또 은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잘 그려주셨더라고요. 그래서 괜찮았어요.
저는 보면서 실제로 조금 울었거든요. 내용이 은둔형외톨이 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 방송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제 은둔 경험을 타인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서 은둔 극복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해요. 한 달 넘게 씻지 않고,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낮은 학력에, 저에게 있는 건 11년의 은둔 경력뿐이라는 게 너무 부끄러웠는데, 은둔고수에 참여하면서 처음부터 저의 은둔 경험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때 제 안에서 뭔가 터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자몽씨로 돌아가서, 자몽 씨는 SBS스페셜 곰손카페라는 공중파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셨잖아요. 그 프로그램을 통해 전 국민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신 셈이 됐어요.
그렇죠.
실제로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험들이 자몽 씨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제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은 제 이야기에 대해 공감을 해주잖아요. 그 과정에서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리고 이해받는 그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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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받는 기분이 좋아요
이해받는 기분이 왜 좋은 걸까요?
그동안 애초에 말할 사람이 없었구요. 주위에서 저라는 사람을 그냥 겉으로 봤을 때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게으르다’, ‘아무것도 안 한다’ 외모로도 그렇고요.
근데 이렇게 제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은 제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에 대해서 이해 해주거든요. 저는 그게 좋아요. 존중받는 기분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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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곰손카페는 되고 자격증은 수 없이 따도 안 됐던 이유
아까와 조금 겹치는 질문인데요. 자몽 씨가 다시 이제 사회로 편입되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자격증을 따셨죠. 그리고 뭔가 일도 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고, 극복을 위해 곰손카페까지 과감히 출연하셨죠. 자격증을 딴 것도 곰손 카페에 출연한 것도 모두 은둔을 극복하기 위한 행동이었잖아요. 그런데 곰손카페는 되고 자격증은 수 없이 따도 안 됐던 이유, 그 둘의 차이가 궁금하거든요. 자몽 씨는 그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금도 생각 하는 게, 곰손카페 촬영이 끝나고 다시 광주에 돌아갔다면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갔을 거라 확신해요.
근데 돌아가지 않았거든요.
제가 은둔이라는 걸 알게 되고, 또 은둔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단체들과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저는 안전한 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동 생활을 하면서 극복해내기 위한 생활을 지금도 하고 있어요. 그게 차이라고 생각해요. 주위에 저를 도와주는 사람, 이끌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사실 서울에서 공동 생활하는 와중에도 중간 중간 다시 집으로 도망치고 싶어서 며칠 간 본가에 있으면서 정신적으로 방황하기도 했어요.
다시 들어가고 싶어서, 사람들 만나는 게 무서워서요.
근데 그때마다 같이 사는 친구들이 밖으로 나오라고 이끌어주는 거죠. 그래서 다시 은둔하다가도 나오는 과정에서 저는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사람’이라는 게 극복의 키워드가 될 수 있겠네요.
그러면 지금 공동생활하시는 것이 은둔 극복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 같으세요?
매우 도움이 돼요.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씻지 않아도 되었고 청소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데, 현재 셰어하우스에서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느끼는 점이 며칠에 한 번씩 꼭 씻어야 되고, 또 내가 먹은 걸 바로 설거지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되고… 그리고 여러 프로그램에 친구들과 참여하게 되는데, 하기 싫은데도 친구들이 있으니 억지로라도 같이 가고 그렇게 강제적으로라도 밖을 나서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외출이 점점 익숙해지고, 사람을 마주치는 게 괜찮아지고 있어요.
공동생활 중인 셰어하우스에서 파티 때 찍었던 망한 사진. 망한 사진이라도 다함께 보며 깔깔거렸던 당시의 기억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좋은 변화네요.
제가 은둔하던 집이 ‘늪’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집에 있으면 점점 더 빨려 들어가는데 그걸 눈치채지도 못하고, 빠져나올 수도 없고. 그런 식으로 천천히 내가 늪 속으로 잠식된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자몽 씨가 자신이 살던 집을 정의해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정의한 것에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시간이 멈춘 곳이요.
변화가 없어요. 항상 같은 하루가 되풀이되고, 저는 나이를 먹어가긴 하지만 자라지 않는 거예요.
최근에는 조금씩 제가 자라나고 있다고 느끼지만 은둔 당시의 저는 스무 살 그때에 멈춰 있었어요.
근데 이제 지금의 저는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있죠. 저의 집은 멈춘 곳이에요 그냥. 변화도 없고 그대로 영원히 있는 거죠.
무의미한 시간이 반복되는.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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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무섭지는 않고 힘들지만 할 수 있어요.
저는 극복을 시작한 지 햇수로 4년 차예요. 그래서 극복하는 동안 많은 걸 겪고, 보고 느끼고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은 모든 게 한결 수월해졌거든요. 그렇지만 극복 초기에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별거 아닌 일에 저도 모르게 자꾸 우는 거예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까지 저는 극복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던 것 같아요.
자몽 씨는 저보다 1년 더 오래된 12년의 은둔 경험자고 은둔 극복을 시작한 지 이제 6개월이 된 입장에서 아직도 좀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현재 자몽 씨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람들과 마찰이 있거나 의견 차이가 있거나 할 때, 그때가 제일 어려워요.
그게 왜 어려울까요.
제 의사표현을 해야 되는데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무서워서, 그게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집에 혼자만 있을 때는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도 그냥 저만 있는 거라 되게 편했거든요. 안전하고. 근데 지금은 가끔 사람들에게 공격받는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그리고 의사 표현도 되게 힘들고,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가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면 반대로 극복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됐잖아요.
6개월이 지난 지금 자신이 은둔을 극복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그 점에 대해서 얘기해 본다면?
우선 저는 그전에는 설거지가 되게 무서웠거든요. 근데 이젠 설거지가 무섭지 않아요.
왜 무섭지 않아졌나요?
그 전에는 무기력이 되게 심했어요. 무기력이 되게 심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밖에 돌아다니고 있어요. 무기력이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너무 좋은 변화인 것 같아요. 너무 멋있어졌어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지금 은둔을 극복 중인 지금, 가장 실감하고 있는 최근 자신의 성취는 무엇인가요.
설거지요.
또 설거지인가요?
네. 설거지와 주기적으로 사람들과 나가는 거.
예전엔 그 두 개가 너무 무서웠거든요. 혼자 있을 땐 절대 하지 못했던 것들인데 이제는 하니까요.
그러면 그 성취로 인해서 자몽 씨에게 좀 찾아오는 변화가 있던가요.
매일매일이 덜 불안해요.
그거 좋은 말인 것 같은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집의 시간이 멈춰 있다고 했잖아요. 근데 지금은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예전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설거지도 그렇고요.
솔직하게 사실 요즘 조금 힘들어하는 때도 있었잖아요.
번갈아 가면서 어떤 때는 좋았고 어떤 때는 안 좋았고 요즘에 자신의 마음에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고 싶으세요.
70점이요.
점수가 굉장히 높은데 이유가 있나요?
설거지요. 그리고 하나를 더 꼽아보자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되게 고지대에 위치해있거든요. 계단도 많고 언덕이고. 그게 예전에는 너무 무서웠거든요.
근데 지금은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는 게 무섭지만 할 수 있다는 건가요.
이제는 무섭지는 않고 힘들지만 할 수 있어요.
무섭지조차 않아졌군요.
네. 그렇죠.
어느 날 새벽에 충동적으로 밖에 나와 찍은 사진. 이걸 찍던 당시 그는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이걸 찍으며 자몽은 밖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엄청난 발전인 것 같아요. 당신은 너무 멋진 사람이네요.
현재 자몽 씨는 ‘은둔을 벗어나는 궤도’에 진입해서 느린 속도로, 하지만 꾸준하게 은둔을 벗어나고 계신데, 그런 지금 은둔 중의 자신을 떠올려보면 좀 어떤 생각이 드세요.
되게 불쌍해요. 되게 힘들었구나, 어떻게 버텼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현재 자몽 씨를 인터뷰하고 있지만 인터뷰이로서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있는데, 종종 이런 류의 질문을 받곤 하거든요.
“은둔은 당신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사실 은둔을 스펙 삼아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은둔이라는 건 제 삶에 있어서 “안 겪었으면 가장 좋았을 것, 하지만 이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므로 은둔 시절에 나 또한 안고 살아가려고 한다.”라는 식으로 답변을 하고 있어요.
같은 질문에 대한 자몽 씨의 답변이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답변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은둔을 후회하지 않아요.
은둔이 아니었어도 그전에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거든요.
은둔이 그 일들을 극복해내는 데에 도움을 많이 줬다고 생각해요. 은둔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 같고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은둔을 안 했으면 제가 SBS스페셜 곰손카페에 출연할 기회도 없었을 거고, 지금 이렇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수 없었을 거예요.
곰손카페 촬영팀이 아주 좋아할 것 같은 말이네요.
자몽 씨의 절친한 친구인 저도 그 말을 들으니 너무 기뻐요.
불과 올 초까지의 은둔을 하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너는 되게 열심히 살고 있어. 최선을 다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티자.
왜 조금만 더 버티자는 말을 했나요?
그러면 곰손카페에 출연하게 될 테니까요.
뭐랄까, 곰손카페를 시청한 이후로 자몽 씨의 안에서 곰손카페에 인식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네. 그전에는 곰손카페에 출연한 게 되게 부끄러웠거든요. 찍고 나서 후회도 조금 했어요.
근데 이제는 당당해졌어요. 자랑스럽게 “나 곰손카페 출연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짜요. 공중파 다큐멘터리에 촬영한 엄청난 스펙의 보유자가 되셨네요.
자, 벌써 이번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인데요.
당신은 지금 희망을 찾았나요?
찾았죠.
정말요?
네.
그럼 자몽 씨에게 있어서 희망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지금 이 순간이요.
지금 이 순간이요?
네. 이렇게 친구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많은 일들에 참여하고 살아가는 거요.
저도 자몽 씨와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끝)
interviewer_하나 | 방 밖으로 나온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다시 은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중학교를 중퇴하고 그대로 11년간 은둔했습니다. 우울증과 대인기피를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1년 동안 두 번의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로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운영한 '은둔고수' 1기와 2기를 수료했습니다. 은둔형외톨이 지원 영역에 발을 담그기 시작해 현재는 저술 활동과 더불어 관련 연구나 언론매체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hanahana122123@gmail.com
* 은둔 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dudug@theseeds.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