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긍정의 힘을 가진 ‘ 모험가’ 입니다
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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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인터뷰하기는 처음인데, 집을 나서는데 왠지 모를 신선하고 새로운 마음이 들었어요.
저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씻으니까 나름대로 기분이 좋더라고요.
네, 기분 좋게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제가 어제 다른데서도 인터뷰를 하나 했는데 그때 적어놓은 게 있거든요.
그걸 조금 활용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좋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험가' 라는 닉네임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모험가의 뜻은 몇 번이라도 다시 일어나서 소년의 빛나는 눈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싶다는 뜻으로 만들었습니다. 은둔 기간 동안 세상을 보지 못한 만큼이나 이제는 세상으로 나가 모든 것을 보고, 겪고, 남부럽지 않게 멋있게 즐겁게 알아가 보며 살아가 보고자 지은 닉네임입니다. 누군가에겐 사소한 일상이겠지만 제게는 하나 하나 가슴 두근거리고 신나는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약 10년 이상 은둔했던 경험이 있고 은둔 기간에는 몸무게가 120kg에서 140kg 정도로 살이 쪘었습니다. 현재는 65kg 이고요, 은둔 기간에 제가 건강이 되게 안 좋았었는데 친구중 사회복지를 하는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돈을 주는 거예요. 꽤 적지 않은 금액의 돈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안 받으려고 그랬는데 병원 좀 가라고 주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 친구한테 뭔가 보답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산책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치료도 안받고 방치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에도 혈액 투석을 시작해야 하는 몸 상태였어요.
모험가라는 닉네임은 뭔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기분 좋은 기대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은둔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여시는 모험가님의 기대감이 저에게도 전해지네요.
그런데 신장이 많이 안 좋으셨어요?
네, 근데 그걸(투석) 안 하고 한 2년 이상 버티고 있었고 그냥 두면 제가 죽을 것 같으니까 친구가 그런 식으로라도 했던 것 같아요.
좋은 친구분이시네요.
그래서 맨 처음에는 그게 좀 병에 대한 공포 때문에 무서워서 체중 감량을 2~30kg 정도 했었는데, 결국 그 방법으로는 제가 변하지 않더라고요. 그 이후로 별로 진전이 없다가 다시 원래 대로 돌아가더라고요.
산책은 운동을 위해서 하신 거죠?
그렇죠. 병원은 안 가고 산책을 좀 했어요. 산책을 조금씩 하다가 주변에서 밖에 나가는 게 좋다고 하고 사람들 살아가는 걸 보거나
자연환경을 보거나 하면서 조금씩 제 마음이 열렸던 것 같아요.
저는 인생을 많이 포기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나는 이제 좀 있으면 죽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물론 제가 신장이 굉장히 그렇게 갑자기 안 좋아졌다는 걸 나중에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말기가 돼서야 알았어요. 그전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전에도 삶의 많은 걸 포기하고 그냥 은둔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그렇게 병을 알게 되고
친구가 그렇게까지 하고 공원에 가서 사람들 사는 걸 보는데 가족들이 눈에 띄었어요.
아이랑 있는 가족들이나 연인들, 광장에서 활기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까 어느 순간 그 사람들이 되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세상에 대한 감사 그런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변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은둔하는 중에 몸이 안 좋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하루는 라면을 먹고 잤는데 일어나니 한쪽 눈이 잘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했고 그때 발견이 됐어요.
증상이 있으셨네요.
네, 원래 만성 신부전증이 있었는데 그렇게 급속도로 나빠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거죠.
그런데 2, 3기 정도에서 갑자기 말기 중에서 거의 제일 끝으로 가버리니까 그때는 되게 좌절 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전에도 인생을 다 포기하고 일도 한 번도 안 하고 서른 중반 될 때까 지 이력서 한 번도 안 내고 그렇게 살았었는데....
어쨌든 그런 식으로 변하다가 계속 산책하는 빈도를 늘려갔어요.
어느 날은 좀 열심히 살고 싶은 날이 있었어요.
제가 자주 갔던 곳이 한강이랑 올림픽 공원이랑 석촌호수를 많이 가요.
네 강동 송파에서 산책하기 좋은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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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손을 내밀다
원래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고 거기가 사람이 많아서 싫어했는데, 사람을 관찰하고 보는 걸 좋아하게 되면서 석촌호수를 많이 가게 됐고 거기 가면 놀이공원이 있잖아요. 맨날 겨울에 밖에서 구경만 하다가 사람들이 노는 소리 들리잖아요. 그래서 롯데월드를 가고 싶어서 갔는데 알아보니까 연간회원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연간회원권을 끊어서 처음 들어갔는데 거기에 알바하시는 분 캐스트 (cast) 라고 하는데 저보다는 많이 어린 친구죠. 어쩌다가 그 친구에게 뭔가 물어볼 게 있어서 질문했는데 그 친구가 웃으면서 대답을 해줬어요. 그때 제가 '아~' 하고 반한 거죠. 근데 저는 그 당시 몸은 막 이렇고 손으로 (그때의 몸 상태를 표현하며) 관리도 안 되고 하는 상황이라서 당연히 뭘 해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가 용기를 안 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근처 커피숍 이런 데서 펜이랑 메모지를 빌려서 제 전화번호를 써서 줬어요. 연락 달라고 되게 머쓱해 하면서.
그때 제가 그 친구를 좀 좋아하게 되면서 편지를 써서 준다거나 운동을 하루에 시간 5시간 6시간 하면서
두세 달 만에 한 3~40kg 정도 열심히 살을 뺐어요.
밥도 안 먹고.
쪽지를 주니까 뭐라고 하던가요?
쪽지를 주니까 그냥 웃더라고요.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제가 제대로 변하기 시작한 게.
너무 무리하신 건 아닌가요?
무리했어요. 근데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때가 제가 제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살 때였어요.
저는 그때 당시에 제 목숨도 얼마 안 남았을 거로 생각하고 포기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때 목표 중 하나가 살을 빼는 거였어요.
'살을 빼고 치료를 시작하겠다'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 그 사람을 만나게 됐고 그렇게 열심히 살을 빼게 됐죠.
제가 그분을 만날 수 있던 시간이 길어야 두세 달 정도로 짧았어요.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갔으니까. 그리고 그분은 자리가 고정적이지가 않으니까 가끔 볼 수 있는 거죠.
그때 제가 부담을 좀 많이 드렸었죠. 미안한 마음이 있죠.
그분에게 연락이 왔나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분은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물론 애초에 가능성을 보고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내가 살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한 거죠. 물론 예쁘긴 했는데 ….
뭔가 내 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렇죠. 왜냐면 저는 살이 찐 게 스물둘 스물셋쯤인 것 같고 거의 한 12년 그 기간 동안 아예 다 포기를 하고 살았으니까 연애라는 것 자체를 하질 않았죠. 살찐 기간이 너무 길었으니까.
젊었을때 기간이 대부분이 그랬어요. 20대 초반 빼고는.
그러면 은둔하던 기간에 체중이 계속 증량된 건가요?
아뇨, 단기간에 살이 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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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익숙했고 나가려니 무서웠다
모험가님이 은둔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아시겠지만 일단 대부분의 은둔 경험자들은 가정환경에 문제 있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저희 어머니는 정신질환이 있으셔서 정신병원에 여러 번 가셨었고 제가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심해지셔서 병원을 계속 들락날락하신 것도 있었고 아버지는 되게 힘들게 일하시는 일용직 노동자 셨어요.
그래서 저를 돌볼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저는 혼자 있는것에 좀 익숙해진 것도 있었고 사회에 나갈 때쯤 됐을 때는 사회로 나가는 게 무서웠던 것 같아요. 왜냐면 어머니도 좀 그렇고 아버지도 엄청나게 고생하시고...
나는 부모님의 기대를 받고 있는데 이 등록금이 어떻게 마련된 건지 나는 대충 알고 있는데
과는 나랑 안 맞고....
대학 말씀하세요?
네 졸업하기도 힘들었어요.
전공, 필수에서 낙제를 안 받아야 하는데 낙제를 받고 이러니까.
무슨 전공이셨어요?
토목환경과였는데 전공이 맞지 않아서 힘드니까 그걸 폭식으로 풀었었어요. 스트레스성 폭식.
그러니까 배가 아플 정도로 음식을 먹어요. 구겨 넣는다는 심정으로 그렇게 먹으면 다른 생각 이 안 나요.
정신이 안 고통스럽고 몸이 고통스러우니까 차라리 그걸 선택하고 또 먹는 걸 좋 아하기도 했었고요.
그게 반복됐어요.
몇 kg 에서 몇 kg 까지 살이 찌셨나요?
60에서 70정도 왔다 갔다 했었는데 3개월 만에 120~140으로 늘었으니까.
군대 간 친구가 가기 전에 보고 100일 휴가 나온 후에 봤는데 깜짝 놀라더라고요.
거의 한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그렇게 급격하게 찐 거예요.
어떻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살이 빨리 찔 수가 있나 하더라고요.
몸에 무리가 되는 급격한 증량이니까 몸에 신호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이 신체를 잘 물려주셔서 고혈압이 있는 거 빼고는 그 외에 증상이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신장 나빠진 거 외에도 합병증이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몸을 혹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몇 년도부터 몇 년도까지 은둔하시게 된 거예요?
이게 특정하기가 어려운 게 대학교에 들어가고 살이 찌면서 점점 심해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더 나갈 일이 없어졌어요.
제가 졸업을 2013년에 했던가 그랬어요. 대략 10년 전이네요.
근데 대학 기간에도 되게 막 잘 안 씻고 그랬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것까지 하면은 10년이 넘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네.
한 7년에서 10년 정도. 엄격하게 하면 7년 좀 더 루즈하게 잡으면 10년 이상
최대 12년까지 잡아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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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고 싶었던 어느 날, 그리고 …
좀 전에 롯데월드 석촌호수를 산책했다는 얘기하실 때 ‘잘살아 보고 싶은 날'이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네 맞아요. '어느 날' 열심히 살고 싶었던 날이 있었어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새롭게 다짐했던 그 날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갖게 되셨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을 하기는 했었어요. 몇번씩 살을 뺀 경험이 있었어요.
여러번 시도가 있었는데 매번 성공한 것 같을 때 다시 돌아갔어요.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갔어요. 내가 여기서 급격하게 변하는게 무서웠던 것 같아요.
사회에 나가서 일한다는게.
그리고 2017년인가 그쯤에는 크리스마스에 명동에 나가서 프리허그도 한 번 했었어요.
좀 바꾸고 싶어서 그렇게 하고 나서 당분간은 또 힘이 생기고
그게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한 1, 2주 정도 가고 끝나더라고요.
새로운 시도와 노력으로 받은 힘이 오래 가지 않았네요.
그러니까요. 뭔가 은둔한 사람들이 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원하는 거, 결국에 욕구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자기 자신만 보고 거기서 갇혀서 살다가 어느 순간 제가 산책하고 변화를 하려고 했던 것처럼 의지가 들었을 때 자기가 하고 싶었던 욕구 같은 것도 생기기 마련이고 저는 그게 여자였던 거고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잘 보이고 싶어서 살을 뺐던건데, 그렇게 살을 빼고 나니까 알바하던 그 친구는 알바니까 그만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보다가 두 달 후에는 볼 수 없었지만 저는 거기를 계속 갔어요. 매일 습관처럼 그렇게, 저는 한 1년 동안 걸었던 것 같아요.
네, 꾸준히 걷고 운동하셨네요.
매일 석촌호수를 무조건 하루에 두 바퀴를 돌아야 했고 롯데월드도 거의 한두 시간씩 돌아다녀야 했어요.
그냥 제가 저 자신한테 부여한 퀘스트나(Quest) 사명 같은 느낌으로 그렇게 1년을 하면서 살을 뺐어요.
살은 금방 뺐어요. 한 3~4 개월 안에 살을 뺐죠.


<사진 설명> 살겠다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그날, 변화는 시작되었다.
네. 대단한 의지가 있으시네요.
제가 11 월 30 일날 그 친구를 만났고 한 2월 중반쯤까지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나 서 4월쯤에는 이제 내가 살을 많이 뺐으니 사회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몇 년도예요?
21년이니까 작년이네요. 작년 4월에 첫 직장을 갔는데 다니다가 그만두고 또 다른 데 갔다가 건강 문제 때문에 그만두고 그 이후로 투석을 잡기 위한 수술을 결심하고 갔었죠. 되게 되게 오래 방치했기 때문에 의사들이 놀랄 정도로 수치가 안 좋았어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 셨군요.
그런데도 치료를 거부하고 버티고 살았죠.
그렇게 살다가 의사 선생님 만나고 바로 다음 날 수술했어요.
보통 대학병원은 수술이 바로 안 잡히는데, 다음날 수술할 정도로 안 좋았던 거에요.
굉장히 긴급한 상황이었네요.
그래서 제가 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그랬잖아요. 내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는 느낌으로 걸었어요. 밥도 많이 안 먹고 힘들게 한겨울에도 걸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운동을 하던 사람이 수술 이후에 운동을 못 하게 되니까 힘들었어요. 수술이 좀 잘못돼서 부작용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부작용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집에서만 끙끙 앓고만 있었는데 운동을 못 하게 되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어요. 이미 많이 좋을 때 안 좋을 정도로 안 좋은 상태였지만 그때 진짜 죽기 직전까지 갔었어요. 그러다가 투석 치료를 하고 중간에 1~2주 정도는 기억이 없어요. 그렇게해서 살아났고 일상으로 회복을 했죠.
입원도 오래 하셨을 것 같은데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2개월 정도 했으려나.... 잘 모르겠어요.
죽다가 살아나니까 일상의 소중 함을 훨씬 더 잘 알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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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스스로 좋은 말을 되게 많이 했어요.
정말 그럴 것 같아요.
제가 작년 21년 11월 말쯤에 퇴원해서 12월에 다시 일을 시작했거든요. 병원에서 .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셨다고요?
네, 부모님도 쉬라고 하셨지만 투석 받으면서 적응해 나갔고 그냥 일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좀 마음이 급했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직업을 가지고 남한테 부끄럽지 않은 사람,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뭔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병원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투석 병원이었어요. 거기서는 제가 투석 받는 환자라는 것을 처음엔 몰랐어요.
투석 받는 병원은 따로 있고 다른 투석 병원에서 일하신 거군요.
그때 코로나가 한참 유행할 때라서요. 간호사 인력이 부족해서 일반인 인력을 뽑을 때가 있었어요.
애초에 저는 병원에서 물품 정리하는 일이라고 알고 시작했거든요.
투석 받으면서 일도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몸에 무리는 없으셨어요?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요. 적응기에는 원래 조금 힘들다고 하는데 그래도 저는 남들보다 적응을 되게 빨리한 편이었어요. 맨처음에 할 때도 남들보다 멀쩡한 편이었고 지금은 거의 적응을 해서 일상생활 하는데 큰 무리가 없고 힘들거나 하지 않거든요.
투석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하시나요?
네. 한 번 할 때 4시간씩 합니다. 이동 시간이랑 지혈하는 시간까지 5 시간 정도 돼요.
투석 받고도 PT도 하고 다 해요.
투석하고 운동까지요? 괜찮으신거예요?
네, 정말 괜찮아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체력적으로는 좋은 때라고 생각해요.
20대 때보다 운동을 훨씬 많이 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약간 아이러니해 보이기도 해요.
건강에 어려움이 있으시면서 한편으로는 건강을 자부하시기도 하니까요.
아버지가 좀 건강하신 편인 것 같아요.
그걸 잘 물려받았고 그것만 해도 저는 너무 다행인 것 같아요.
주변에 투석하는 분들을 보면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받고 많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모험가님은 건강과 체력관리를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는 부분이 있으셔서 그런지 투석 치료를 거 뜬히 버티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행이에요 .
그래도 저는 합병증이 없는 게 다행이죠.
맞아요 시력은 . 괜찮아지셨어요?
네, 지금은 괜찮습니다.
여러 가지로 다행이네요.
신체적으로 변한 것도 크고 나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지켜나가면서 자신감을 키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스스로 좋은 말을 되게 많이 했어요. 핸드폰에 메모하는 습관을 갖게 됐는데 그때 쓴 걸 보면
내가 나를 격려하는 글이 되게 많더라고요.
일기 같은 건가요.
네, 지금도 쓰고 있어요.
옛날에는 슬픈 감정에 집중하고 그런 것도 많았지만 반대로 ‘나는 할 수 있다 '라든가 ‘반드시 변할 거야'
'멋있어질 거야' 아니면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같은 자기 암시 같은 걸 많이 했어요.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험가님이 굉장히 의지가 강한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뭔가 하겠다고 결심한 것을 꼭 해내고 마는 의지가 되게 충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변할 수 있어', '나는 잘 될 거야' 라는 어떤 자기 암시를 통해서
계속 뭔가 변화하려는 의지를 불 태우고 계신 것 같아요.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게 된 계기가 롯데월드의 미모의 여자분이셨는데 사회복지사인 친구분도 모험가님에게는 큰 계기가 되셨을 것 같아요. 친구분은 어떤 존재였는지 어떤 영향을 주셨는지 얘기해 주시겠어요?
그 친구는 중.고등학교때 친구고 교회를 다녔어요. 어렸을 때는 책을 많이 읽던 친구고 평소에 뭔가 일상에서 좋은 말을 많이 해준다거나 뭐 그렇게 자주 만나고 그런 친구는 아닌데, 가끔 제가 방황하고 있을 때 그 친구가 일자리를 주선해 주려고 몇 번 시도했다든가 하는 그런 도움을 줬던 친구예요.
그런데 그렇게 자주 만나던 친구도 아닌데 어떻게 , 선뜻 큰돈을 내주면서 병원을 가라고 했을까요?
그러니까요. 어느 순간 제가 곧 죽을 거라고 생각을 했을 때 그걸 어떻게 해소할 방법이 없으니까 주변에 힘들다고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그 친구가 그때 제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공감을 많이 해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본인이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니까 자기가 적금 받은 돈 일부를, 꽤 큰돈을 줬던 거였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 돈으로 병원을 안 가고 피부과 가고 화장품 사 바르고 향수 사고 옷 사 입고 그렇게 했죠.
근데 사실 그게 더 저를 치료하는 근본 적인 방법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나를 가꾸고 돌보는 또 다른 방법을 찾으셨네요.
그렇죠. 병원이 아닌. 그러다가 살을 빼고 나서 병원을 가겠다고 스스로 결심한 것도 지키고 싶었고요.
지금 이렇게 달라진 모습을 친구분이 너무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그렇죠. 건강도 찾고.
혹시 또 다른 계기가 있으세요?
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거의 죽다 살아나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병원에서 일했다고 했잖아요. 거기서 만난 형이 있는데 그 형이 저한테는 멘토거든요. 한겨울에 매일 일이 끝나면 한 30분에서 1시간씩 밖에서 대화했어요. 그형은 되게 사회 경험이 많았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저에게도 좋은 말을 많이 해줬어요. 말을 꺼낼 수 있게 하는 사람이어서 저한테 되게 은인같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 형한테 좋은 얘기를 많이 듣고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면서 더 빨리 좋아진 것 같아요.
보니까 모험가님 주변에 좋은 분들이 되게 많은 것 같아요. 누구든 자기 주변에 내 사람이 될 만한 사람들이 있기는 해도 그걸 찾으려는 노력을 잘 안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모험가님께서는 주변에 누군가한테 자신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얘기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좋은 사람들도 발견하게 되고 좋은 사람들 덕분에 힘도 얻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얘기 안하면 모르는 일인데 모험가님은 주변에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 을 찾는 노력을 하셨잖아요.
변화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니까 옆에서 형님이 도와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추위도 많이 타시는 분이 한겨울에 그렇게 매일같이 일 끝나면 가서 대화하고 서로 속 얘기하고 이렇게 …
저를 치료해 주셨다고 생각해요.
형님이라는 분과 그렇게 이야기 나누는 과정이 치료받는 느낌이 드셨군요.
당시에는 몰랐어요. 그때는 그냥 속 얘기하고 잡담한다는 정도였고, 좋은 형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저한테는 최고의 상담가였던 거죠.
그렇군요. 지금도 그 형님과는 계속 좋은 관계로 지내시나요?
지금은 서로 자주 연락하지는 않지만 만나면 새벽 4, 5시까지 얘기를 하거든요.
잠깐 보자고 하고, 옷 하나 건네주려고 만났다가도 대화하다 보면 5시간 6 시간이 지나고....
그러니까 서로 결이 맞는 사이에요.
형님이 좋은 멘토가 되어주셨네요.
그렇죠. 은둔 고수에서 얘기하는 게 ‘은둔도 스펙이다' 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이것이 내가 살 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잖아요. 사회 인프라가 없었으면 나는 진작에 죽었을 거니까, 많은 사람의 도움이나 정부 복지 혜택 이런 걸 받아서 살고 있는거니까.그래서 그런 거를(봉사활동) 좀 하고 싶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바꿀 수 있으면 큰 보람이라고 생각을 해서 그래서 그 일을 하고 싶은 것 같아요.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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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생이 긍정적인 사람이야', '난 재밌는 사람이야'
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 ‘은둔도 스펙이다' 라고 생각하세요?
처음에는 말이라도 이렇게 해줘서 고맙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대표님 얘기를 들어보니까 경험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주 크다고 하더라고요. 학술적인 부분은 공부하면 되는데 어느 분야든 간에 본인 경험 있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그 사람을 좀 더 이해하고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설득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계세요?
아, 네. 학점 은행제로 사회복지사 2급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저도 사회복지사예요. 저도 꽤 오래 사회복지 분야에서 활동가로 일해왔고 다양한 사회복지 현장에서 많은 분을 만났어요. 그런데 오늘 좋은 후배님을 만나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운 일이기도 한데 모험가님은 술술 잘 얘기 하시기도 하고요.
저는 은둔 고수에서도 마찬가지고 자기 경험을 얘기하는게 원래 되게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오늘 말씀하시는 걸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예전에는 소극적이고 사람 많은 곳 싫어하고 음침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런 사람이었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많이 바뀌었으니까 이제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 는 것 같아요.
네, 생각을 표현하시는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는데 거리낌이나 주저함이 없이 당당해 보이시고 좋아 보여요. 모험가님은 은둔 생활을 끝내셨지만 혹시 다시 은둔의 상황이 찾아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나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지금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있었어요. 저는 신체에 따라서 정신이 많이 바뀌는 타입인 것 같 아요.
그래서 유독 남들보다 외모적으로 노력하려고 하는게 있어요. 아직도 폭식하는 습관이 한 번씩 찾아오는데 폭식의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올해 한 4 월에서 한 5 월 중반까지 한 달 반 사이에 한 10kg 정도가 쪘었다가 지금 다시 빼고 있어요. 그런식으로 폭식하는 습관이나 다시 다 놓아버리고 먹는 습관이 가끔 찾아오긴 하지만 그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걸 스스로 체감하고 있어요. 탄력 회복성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 달 반 폭식하던 게 그다음에는 잠깐 짧게 1주나 몇 시간이나 하루, 이런식으로 짧게 하고 말고. 그런식으로 좋아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게 (은둔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없고 언제든지, 내가 살이 쪄도 먹고 싶은 거 먹고 다시 살을 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살 빼는 것만큼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험가님에게는 살이 찌는 게 은둔의 경험하고 겹치기 때문에 그러신 거죠?
살이 찌면 은둔하게 되고 무기력해지고 그냥 집에서 컴퓨터만 하고 그런 거죠.
그렇다면 진짜 은둔 고수가 맞으시네요. '은둔도 스펙이다' 라고 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얘기하고 ‘나는 이렇게 극복했어', '이렇게 헤쳐 나왔어'라고 누구보다 이야기를 잘하실 수 있는 은둔 고수이신 것 같아요. 다른 은둔 경험자들을 만나셨을 때 어떤 역할을 하기도 하나요?
음, 제가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거든요. 사람들과 두루두루 나름 잘 지낸다, 그리고 몇몇 사람과는 좀 더 친하게 지낸다, 약간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좀 어린 친구 중에 저를 따 르는 친구도 있고 저는 비교적 과묵한 느낌이 있다 보니 말수가 많지 않고 활발하게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좀 더 신뢰받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찾아와서 자기 얘기를 좀 털어놓는 그런 분들도 계세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제가 제 경험을 얘기하는 것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사회 활동가나 상담가의 역할을 해서 누구를 개선했다거나 하는 건 아직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거는 잘 들어주는 거예요.
정말 중요한 일이죠. 잘 들어줄 수 있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아, 네 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저는 긍정적이기도 해요.
그래서 긍정이라는 닉네임을 쓰기도 하는데요, 제가 은둔 생활에 놓여 있을 때도 제 밑바닥 제일 끝에는 긍정이 있다고 저는 믿었거든 요. 그래서 은둔을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어쨌든, 나는 지금 굉장히 우울하고 힘들지만 '나는 태생이 긍정적인 사람이야', '난 재밌는 사람이야' 라는 식으로 생각했어요. 지금은 비록 비관적이고 힘들지만, 나의 제일 끝 바닥에는 긍정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변화의 의지와 긍정의 힘을 가진 모험가님을 만나서 저도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게 되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인터뷰도 기대하겠습니다.
(2편에 이어서)
interviewer_써니 |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
약 15년 동안 사회복지사로 아동, 청소년, 청년들,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왔습니다. 자립의 문턱앞에서 머뭇거리거나 행여 문턱을 넘었더라도 쉽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섞이기 힘들어하며 고립과 은둔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러 청년들을 보며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 외로움에 관해서 함께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와 두 번째 책 준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sunnyokay79@gmail.com
* 은둔 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dudug@theseeds.asia)
긍정의 힘을 가진 ‘ 모험가’ 입니다
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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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인터뷰하기는 처음인데, 집을 나서는데 왠지 모를 신선하고 새로운 마음이 들었어요.
저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씻으니까 나름대로 기분이 좋더라고요.
네, 기분 좋게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제가 어제 다른데서도 인터뷰를 하나 했는데 그때 적어놓은 게 있거든요.
그걸 조금 활용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좋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모험가' 라는 닉네임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모험가의 뜻은 몇 번이라도 다시 일어나서 소년의 빛나는 눈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싶다는 뜻으로 만들었습니다. 은둔 기간 동안 세상을 보지 못한 만큼이나 이제는 세상으로 나가 모든 것을 보고, 겪고, 남부럽지 않게 멋있게 즐겁게 알아가 보며 살아가 보고자 지은 닉네임입니다. 누군가에겐 사소한 일상이겠지만 제게는 하나 하나 가슴 두근거리고 신나는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약 10년 이상 은둔했던 경험이 있고 은둔 기간에는 몸무게가 120kg에서 140kg 정도로 살이 쪘었습니다. 현재는 65kg 이고요, 은둔 기간에 제가 건강이 되게 안 좋았었는데 친구중 사회복지를 하는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돈을 주는 거예요. 꽤 적지 않은 금액의 돈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안 받으려고 그랬는데 병원 좀 가라고 주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 친구한테 뭔가 보답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산책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치료도 안받고 방치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에도 혈액 투석을 시작해야 하는 몸 상태였어요.
모험가라는 닉네임은 뭔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기분 좋은 기대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은둔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여시는 모험가님의 기대감이 저에게도 전해지네요.
그런데 신장이 많이 안 좋으셨어요?
네, 근데 그걸(투석) 안 하고 한 2년 이상 버티고 있었고 그냥 두면 제가 죽을 것 같으니까 친구가 그런 식으로라도 했던 것 같아요.
좋은 친구분이시네요.
그래서 맨 처음에는 그게 좀 병에 대한 공포 때문에 무서워서 체중 감량을 2~30kg 정도 했었는데, 결국 그 방법으로는 제가 변하지 않더라고요. 그 이후로 별로 진전이 없다가 다시 원래 대로 돌아가더라고요.
산책은 운동을 위해서 하신 거죠?
그렇죠. 병원은 안 가고 산책을 좀 했어요. 산책을 조금씩 하다가 주변에서 밖에 나가는 게 좋다고 하고 사람들 살아가는 걸 보거나
자연환경을 보거나 하면서 조금씩 제 마음이 열렸던 것 같아요.
저는 인생을 많이 포기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나는 이제 좀 있으면 죽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물론 제가 신장이 굉장히 그렇게 갑자기 안 좋아졌다는 걸 나중에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말기가 돼서야 알았어요. 그전에는 그렇게 심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전에도 삶의 많은 걸 포기하고 그냥 은둔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그렇게 병을 알게 되고
친구가 그렇게까지 하고 공원에 가서 사람들 사는 걸 보는데 가족들이 눈에 띄었어요.
아이랑 있는 가족들이나 연인들, 광장에서 활기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까 어느 순간 그 사람들이 되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세상에 대한 감사 그런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변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은둔하는 중에 몸이 안 좋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하루는 라면을 먹고 잤는데 일어나니 한쪽 눈이 잘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했고 그때 발견이 됐어요.
증상이 있으셨네요.
네, 원래 만성 신부전증이 있었는데 그렇게 급속도로 나빠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거죠.
그런데 2, 3기 정도에서 갑자기 말기 중에서 거의 제일 끝으로 가버리니까 그때는 되게 좌절 했던 것 같아요.
물론 그전에도 인생을 다 포기하고 일도 한 번도 안 하고 서른 중반 될 때까 지 이력서 한 번도 안 내고 그렇게 살았었는데....
어쨌든 그런 식으로 변하다가 계속 산책하는 빈도를 늘려갔어요.
어느 날은 좀 열심히 살고 싶은 날이 있었어요.
제가 자주 갔던 곳이 한강이랑 올림픽 공원이랑 석촌호수를 많이 가요.
네 강동 송파에서 산책하기 좋은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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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손을 내밀다
원래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고 거기가 사람이 많아서 싫어했는데, 사람을 관찰하고 보는 걸 좋아하게 되면서 석촌호수를 많이 가게 됐고 거기 가면 놀이공원이 있잖아요. 맨날 겨울에 밖에서 구경만 하다가 사람들이 노는 소리 들리잖아요. 그래서 롯데월드를 가고 싶어서 갔는데 알아보니까 연간회원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연간회원권을 끊어서 처음 들어갔는데 거기에 알바하시는 분 캐스트 (cast) 라고 하는데 저보다는 많이 어린 친구죠. 어쩌다가 그 친구에게 뭔가 물어볼 게 있어서 질문했는데 그 친구가 웃으면서 대답을 해줬어요. 그때 제가 '아~' 하고 반한 거죠. 근데 저는 그 당시 몸은 막 이렇고 손으로 (그때의 몸 상태를 표현하며) 관리도 안 되고 하는 상황이라서 당연히 뭘 해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가 용기를 안 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근처 커피숍 이런 데서 펜이랑 메모지를 빌려서 제 전화번호를 써서 줬어요. 연락 달라고 되게 머쓱해 하면서.
그때 제가 그 친구를 좀 좋아하게 되면서 편지를 써서 준다거나 운동을 하루에 시간 5시간 6시간 하면서
두세 달 만에 한 3~40kg 정도 열심히 살을 뺐어요.
밥도 안 먹고.
쪽지를 주니까 뭐라고 하던가요?
쪽지를 주니까 그냥 웃더라고요.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제가 제대로 변하기 시작한 게.
너무 무리하신 건 아닌가요?
무리했어요. 근데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때가 제가 제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살 때였어요.
저는 그때 당시에 제 목숨도 얼마 안 남았을 거로 생각하고 포기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때 목표 중 하나가 살을 빼는 거였어요.
'살을 빼고 치료를 시작하겠다'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 그 사람을 만나게 됐고 그렇게 열심히 살을 빼게 됐죠.
제가 그분을 만날 수 있던 시간이 길어야 두세 달 정도로 짧았어요.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갔으니까. 그리고 그분은 자리가 고정적이지가 않으니까 가끔 볼 수 있는 거죠.
그때 제가 부담을 좀 많이 드렸었죠. 미안한 마음이 있죠.
그분에게 연락이 왔나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분은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물론 애초에 가능성을 보고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내가 살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한 거죠. 물론 예쁘긴 했는데 ….
뭔가 내 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렇죠. 왜냐면 저는 살이 찐 게 스물둘 스물셋쯤인 것 같고 거의 한 12년 그 기간 동안 아예 다 포기를 하고 살았으니까 연애라는 것 자체를 하질 않았죠. 살찐 기간이 너무 길었으니까.
젊었을때 기간이 대부분이 그랬어요. 20대 초반 빼고는.
그러면 은둔하던 기간에 체중이 계속 증량된 건가요?
아뇨, 단기간에 살이 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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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익숙했고 나가려니 무서웠다
모험가님이 은둔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아시겠지만 일단 대부분의 은둔 경험자들은 가정환경에 문제 있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저희 어머니는 정신질환이 있으셔서 정신병원에 여러 번 가셨었고 제가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심해지셔서 병원을 계속 들락날락하신 것도 있었고 아버지는 되게 힘들게 일하시는 일용직 노동자 셨어요.
그래서 저를 돌볼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저는 혼자 있는것에 좀 익숙해진 것도 있었고 사회에 나갈 때쯤 됐을 때는 사회로 나가는 게 무서웠던 것 같아요. 왜냐면 어머니도 좀 그렇고 아버지도 엄청나게 고생하시고...
나는 부모님의 기대를 받고 있는데 이 등록금이 어떻게 마련된 건지 나는 대충 알고 있는데
과는 나랑 안 맞고....
대학 말씀하세요?
네 졸업하기도 힘들었어요.
전공, 필수에서 낙제를 안 받아야 하는데 낙제를 받고 이러니까.
무슨 전공이셨어요?
토목환경과였는데 전공이 맞지 않아서 힘드니까 그걸 폭식으로 풀었었어요. 스트레스성 폭식.
그러니까 배가 아플 정도로 음식을 먹어요. 구겨 넣는다는 심정으로 그렇게 먹으면 다른 생각 이 안 나요.
정신이 안 고통스럽고 몸이 고통스러우니까 차라리 그걸 선택하고 또 먹는 걸 좋 아하기도 했었고요.
그게 반복됐어요.
몇 kg 에서 몇 kg 까지 살이 찌셨나요?
60에서 70정도 왔다 갔다 했었는데 3개월 만에 120~140으로 늘었으니까.
군대 간 친구가 가기 전에 보고 100일 휴가 나온 후에 봤는데 깜짝 놀라더라고요.
거의 한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그렇게 급격하게 찐 거예요.
어떻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살이 빨리 찔 수가 있나 하더라고요.
몸에 무리가 되는 급격한 증량이니까 몸에 신호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이 신체를 잘 물려주셔서 고혈압이 있는 거 빼고는 그 외에 증상이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신장 나빠진 거 외에도 합병증이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몸을 혹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몇 년도부터 몇 년도까지 은둔하시게 된 거예요?
이게 특정하기가 어려운 게 대학교에 들어가고 살이 찌면서 점점 심해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더 나갈 일이 없어졌어요.
제가 졸업을 2013년에 했던가 그랬어요. 대략 10년 전이네요.
근데 대학 기간에도 되게 막 잘 안 씻고 그랬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것까지 하면은 10년이 넘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네.
한 7년에서 10년 정도. 엄격하게 하면 7년 좀 더 루즈하게 잡으면 10년 이상
최대 12년까지 잡아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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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고 싶었던 어느 날, 그리고 …
좀 전에 롯데월드 석촌호수를 산책했다는 얘기하실 때 ‘잘살아 보고 싶은 날'이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네 맞아요. '어느 날' 열심히 살고 싶었던 날이 있었어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새롭게 다짐했던 그 날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갖게 되셨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을 하기는 했었어요. 몇번씩 살을 뺀 경험이 있었어요.
여러번 시도가 있었는데 매번 성공한 것 같을 때 다시 돌아갔어요.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갔어요. 내가 여기서 급격하게 변하는게 무서웠던 것 같아요.
사회에 나가서 일한다는게.
그리고 2017년인가 그쯤에는 크리스마스에 명동에 나가서 프리허그도 한 번 했었어요.
좀 바꾸고 싶어서 그렇게 하고 나서 당분간은 또 힘이 생기고
그게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한 1, 2주 정도 가고 끝나더라고요.
새로운 시도와 노력으로 받은 힘이 오래 가지 않았네요.
그러니까요. 뭔가 은둔한 사람들이 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원하는 거, 결국에 욕구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자기 자신만 보고 거기서 갇혀서 살다가 어느 순간 제가 산책하고 변화를 하려고 했던 것처럼 의지가 들었을 때 자기가 하고 싶었던 욕구 같은 것도 생기기 마련이고 저는 그게 여자였던 거고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잘 보이고 싶어서 살을 뺐던건데, 그렇게 살을 빼고 나니까 알바하던 그 친구는 알바니까 그만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보다가 두 달 후에는 볼 수 없었지만 저는 거기를 계속 갔어요. 매일 습관처럼 그렇게, 저는 한 1년 동안 걸었던 것 같아요.
네, 꾸준히 걷고 운동하셨네요.
매일 석촌호수를 무조건 하루에 두 바퀴를 돌아야 했고 롯데월드도 거의 한두 시간씩 돌아다녀야 했어요.
그냥 제가 저 자신한테 부여한 퀘스트나(Quest) 사명 같은 느낌으로 그렇게 1년을 하면서 살을 뺐어요.
살은 금방 뺐어요. 한 3~4 개월 안에 살을 뺐죠.
<사진 설명> 살겠다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그날, 변화는 시작되었다.
네. 대단한 의지가 있으시네요.
제가 11 월 30 일날 그 친구를 만났고 한 2월 중반쯤까지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나 서 4월쯤에는 이제 내가 살을 많이 뺐으니 사회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몇 년도예요?
21년이니까 작년이네요. 작년 4월에 첫 직장을 갔는데 다니다가 그만두고 또 다른 데 갔다가 건강 문제 때문에 그만두고 그 이후로 투석을 잡기 위한 수술을 결심하고 갔었죠. 되게 되게 오래 방치했기 때문에 의사들이 놀랄 정도로 수치가 안 좋았어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 셨군요.
그런데도 치료를 거부하고 버티고 살았죠.
그렇게 살다가 의사 선생님 만나고 바로 다음 날 수술했어요.
보통 대학병원은 수술이 바로 안 잡히는데, 다음날 수술할 정도로 안 좋았던 거에요.
굉장히 긴급한 상황이었네요.
그래서 제가 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그랬잖아요. 내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는 느낌으로 걸었어요. 밥도 많이 안 먹고 힘들게 한겨울에도 걸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운동을 하던 사람이 수술 이후에 운동을 못 하게 되니까 힘들었어요. 수술이 좀 잘못돼서 부작용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부작용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집에서만 끙끙 앓고만 있었는데 운동을 못 하게 되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어요. 이미 많이 좋을 때 안 좋을 정도로 안 좋은 상태였지만 그때 진짜 죽기 직전까지 갔었어요. 그러다가 투석 치료를 하고 중간에 1~2주 정도는 기억이 없어요. 그렇게해서 살아났고 일상으로 회복을 했죠.
입원도 오래 하셨을 것 같은데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2개월 정도 했으려나.... 잘 모르겠어요.
죽다가 살아나니까 일상의 소중 함을 훨씬 더 잘 알게 되더라고요.
/
그리고, 스스로 좋은 말을 되게 많이 했어요.
정말 그럴 것 같아요.
제가 작년 21년 11월 말쯤에 퇴원해서 12월에 다시 일을 시작했거든요. 병원에서 .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셨다고요?
네, 부모님도 쉬라고 하셨지만 투석 받으면서 적응해 나갔고 그냥 일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좀 마음이 급했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직업을 가지고 남한테 부끄럽지 않은 사람,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뭔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병원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투석 병원이었어요. 거기서는 제가 투석 받는 환자라는 것을 처음엔 몰랐어요.
투석 받는 병원은 따로 있고 다른 투석 병원에서 일하신 거군요.
그때 코로나가 한참 유행할 때라서요. 간호사 인력이 부족해서 일반인 인력을 뽑을 때가 있었어요.
애초에 저는 병원에서 물품 정리하는 일이라고 알고 시작했거든요.
투석 받으면서 일도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몸에 무리는 없으셨어요?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요. 적응기에는 원래 조금 힘들다고 하는데 그래도 저는 남들보다 적응을 되게 빨리한 편이었어요. 맨처음에 할 때도 남들보다 멀쩡한 편이었고 지금은 거의 적응을 해서 일상생활 하는데 큰 무리가 없고 힘들거나 하지 않거든요.
투석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하시나요?
네. 한 번 할 때 4시간씩 합니다. 이동 시간이랑 지혈하는 시간까지 5 시간 정도 돼요.
투석 받고도 PT도 하고 다 해요.
투석하고 운동까지요? 괜찮으신거예요?
네, 정말 괜찮아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체력적으로는 좋은 때라고 생각해요.
20대 때보다 운동을 훨씬 많이 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약간 아이러니해 보이기도 해요.
건강에 어려움이 있으시면서 한편으로는 건강을 자부하시기도 하니까요.
아버지가 좀 건강하신 편인 것 같아요.
그걸 잘 물려받았고 그것만 해도 저는 너무 다행인 것 같아요.
주변에 투석하는 분들을 보면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받고 많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모험가님은 건강과 체력관리를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는 부분이 있으셔서 그런지 투석 치료를 거 뜬히 버티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행이에요 .
그래도 저는 합병증이 없는 게 다행이죠.
맞아요 시력은 . 괜찮아지셨어요?
네, 지금은 괜찮습니다.
여러 가지로 다행이네요.
신체적으로 변한 것도 크고 나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지켜나가면서 자신감을 키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스스로 좋은 말을 되게 많이 했어요. 핸드폰에 메모하는 습관을 갖게 됐는데 그때 쓴 걸 보면
내가 나를 격려하는 글이 되게 많더라고요.
일기 같은 건가요.
네, 지금도 쓰고 있어요.
옛날에는 슬픈 감정에 집중하고 그런 것도 많았지만 반대로 ‘나는 할 수 있다 '라든가 ‘반드시 변할 거야'
'멋있어질 거야' 아니면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같은 자기 암시 같은 걸 많이 했어요.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험가님이 굉장히 의지가 강한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뭔가 하겠다고 결심한 것을 꼭 해내고 마는 의지가 되게 충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변할 수 있어', '나는 잘 될 거야' 라는 어떤 자기 암시를 통해서
계속 뭔가 변화하려는 의지를 불 태우고 계신 것 같아요.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게 된 계기가 롯데월드의 미모의 여자분이셨는데 사회복지사인 친구분도 모험가님에게는 큰 계기가 되셨을 것 같아요. 친구분은 어떤 존재였는지 어떤 영향을 주셨는지 얘기해 주시겠어요?
그 친구는 중.고등학교때 친구고 교회를 다녔어요. 어렸을 때는 책을 많이 읽던 친구고 평소에 뭔가 일상에서 좋은 말을 많이 해준다거나 뭐 그렇게 자주 만나고 그런 친구는 아닌데, 가끔 제가 방황하고 있을 때 그 친구가 일자리를 주선해 주려고 몇 번 시도했다든가 하는 그런 도움을 줬던 친구예요.
그런데 그렇게 자주 만나던 친구도 아닌데 어떻게 , 선뜻 큰돈을 내주면서 병원을 가라고 했을까요?
그러니까요. 어느 순간 제가 곧 죽을 거라고 생각을 했을 때 그걸 어떻게 해소할 방법이 없으니까 주변에 힘들다고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그 친구가 그때 제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공감을 많이 해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본인이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니까 자기가 적금 받은 돈 일부를, 꽤 큰돈을 줬던 거였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 돈으로 병원을 안 가고 피부과 가고 화장품 사 바르고 향수 사고 옷 사 입고 그렇게 했죠.
근데 사실 그게 더 저를 치료하는 근본 적인 방법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나를 가꾸고 돌보는 또 다른 방법을 찾으셨네요.
그렇죠. 병원이 아닌. 그러다가 살을 빼고 나서 병원을 가겠다고 스스로 결심한 것도 지키고 싶었고요.
지금 이렇게 달라진 모습을 친구분이 너무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그렇죠. 건강도 찾고.
혹시 또 다른 계기가 있으세요?
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거의 죽다 살아나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병원에서 일했다고 했잖아요. 거기서 만난 형이 있는데 그 형이 저한테는 멘토거든요. 한겨울에 매일 일이 끝나면 한 30분에서 1시간씩 밖에서 대화했어요. 그형은 되게 사회 경험이 많았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저에게도 좋은 말을 많이 해줬어요. 말을 꺼낼 수 있게 하는 사람이어서 저한테 되게 은인같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 형한테 좋은 얘기를 많이 듣고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면서 더 빨리 좋아진 것 같아요.
보니까 모험가님 주변에 좋은 분들이 되게 많은 것 같아요. 누구든 자기 주변에 내 사람이 될 만한 사람들이 있기는 해도 그걸 찾으려는 노력을 잘 안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모험가님께서는 주변에 누군가한테 자신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얘기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좋은 사람들도 발견하게 되고 좋은 사람들 덕분에 힘도 얻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얘기 안하면 모르는 일인데 모험가님은 주변에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 을 찾는 노력을 하셨잖아요.
변화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니까 옆에서 형님이 도와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추위도 많이 타시는 분이 한겨울에 그렇게 매일같이 일 끝나면 가서 대화하고 서로 속 얘기하고 이렇게 …
저를 치료해 주셨다고 생각해요.
형님이라는 분과 그렇게 이야기 나누는 과정이 치료받는 느낌이 드셨군요.
당시에는 몰랐어요. 그때는 그냥 속 얘기하고 잡담한다는 정도였고, 좋은 형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저한테는 최고의 상담가였던 거죠.
그렇군요. 지금도 그 형님과는 계속 좋은 관계로 지내시나요?
지금은 서로 자주 연락하지는 않지만 만나면 새벽 4, 5시까지 얘기를 하거든요.
잠깐 보자고 하고, 옷 하나 건네주려고 만났다가도 대화하다 보면 5시간 6 시간이 지나고....
그러니까 서로 결이 맞는 사이에요.
형님이 좋은 멘토가 되어주셨네요.
그렇죠. 은둔 고수에서 얘기하는 게 ‘은둔도 스펙이다' 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이것이 내가 살 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잖아요. 사회 인프라가 없었으면 나는 진작에 죽었을 거니까, 많은 사람의 도움이나 정부 복지 혜택 이런 걸 받아서 살고 있는거니까.그래서 그런 거를(봉사활동) 좀 하고 싶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바꿀 수 있으면 큰 보람이라고 생각을 해서 그래서 그 일을 하고 싶은 것 같아요.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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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생이 긍정적인 사람이야', '난 재밌는 사람이야'
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 ‘은둔도 스펙이다' 라고 생각하세요?
처음에는 말이라도 이렇게 해줘서 고맙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대표님 얘기를 들어보니까 경험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주 크다고 하더라고요. 학술적인 부분은 공부하면 되는데 어느 분야든 간에 본인 경험 있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그 사람을 좀 더 이해하고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설득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계세요?
아, 네. 학점 은행제로 사회복지사 2급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저도 사회복지사예요. 저도 꽤 오래 사회복지 분야에서 활동가로 일해왔고 다양한 사회복지 현장에서 많은 분을 만났어요. 그런데 오늘 좋은 후배님을 만나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운 일이기도 한데 모험가님은 술술 잘 얘기 하시기도 하고요.
저는 은둔 고수에서도 마찬가지고 자기 경험을 얘기하는게 원래 되게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오늘 말씀하시는 걸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예전에는 소극적이고 사람 많은 곳 싫어하고 음침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런 사람이었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많이 바뀌었으니까 이제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 는 것 같아요.
네, 생각을 표현하시는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는데 거리낌이나 주저함이 없이 당당해 보이시고 좋아 보여요. 모험가님은 은둔 생활을 끝내셨지만 혹시 다시 은둔의 상황이 찾아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나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지금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있었어요. 저는 신체에 따라서 정신이 많이 바뀌는 타입인 것 같 아요.
그래서 유독 남들보다 외모적으로 노력하려고 하는게 있어요. 아직도 폭식하는 습관이 한 번씩 찾아오는데 폭식의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올해 한 4 월에서 한 5 월 중반까지 한 달 반 사이에 한 10kg 정도가 쪘었다가 지금 다시 빼고 있어요. 그런식으로 폭식하는 습관이나 다시 다 놓아버리고 먹는 습관이 가끔 찾아오긴 하지만 그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걸 스스로 체감하고 있어요. 탄력 회복성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 달 반 폭식하던 게 그다음에는 잠깐 짧게 1주나 몇 시간이나 하루, 이런식으로 짧게 하고 말고. 그런식으로 좋아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게 (은둔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없고 언제든지, 내가 살이 쪄도 먹고 싶은 거 먹고 다시 살을 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살 빼는 것만큼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험가님에게는 살이 찌는 게 은둔의 경험하고 겹치기 때문에 그러신 거죠?
살이 찌면 은둔하게 되고 무기력해지고 그냥 집에서 컴퓨터만 하고 그런 거죠.
그렇다면 진짜 은둔 고수가 맞으시네요. '은둔도 스펙이다' 라고 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얘기하고 ‘나는 이렇게 극복했어', '이렇게 헤쳐 나왔어'라고 누구보다 이야기를 잘하실 수 있는 은둔 고수이신 것 같아요. 다른 은둔 경험자들을 만나셨을 때 어떤 역할을 하기도 하나요?
음, 제가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거든요. 사람들과 두루두루 나름 잘 지낸다, 그리고 몇몇 사람과는 좀 더 친하게 지낸다, 약간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좀 어린 친구 중에 저를 따 르는 친구도 있고 저는 비교적 과묵한 느낌이 있다 보니 말수가 많지 않고 활발하게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좀 더 신뢰받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찾아와서 자기 얘기를 좀 털어놓는 그런 분들도 계세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제가 제 경험을 얘기하는 것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사회 활동가나 상담가의 역할을 해서 누구를 개선했다거나 하는 건 아직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거는 잘 들어주는 거예요.
정말 중요한 일이죠. 잘 들어줄 수 있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아, 네 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저는 긍정적이기도 해요.
그래서 긍정이라는 닉네임을 쓰기도 하는데요, 제가 은둔 생활에 놓여 있을 때도 제 밑바닥 제일 끝에는 긍정이 있다고 저는 믿었거든 요. 그래서 은둔을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어쨌든, 나는 지금 굉장히 우울하고 힘들지만 '나는 태생이 긍정적인 사람이야', '난 재밌는 사람이야' 라는 식으로 생각했어요. 지금은 비록 비관적이고 힘들지만, 나의 제일 끝 바닥에는 긍정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변화의 의지와 긍정의 힘을 가진 모험가님을 만나서 저도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게 되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인터뷰도 기대하겠습니다.
(2편에 이어서)
interviewer_써니 |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
약 15년 동안 사회복지사로 아동, 청소년, 청년들,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왔습니다. 자립의 문턱앞에서 머뭇거리거나 행여 문턱을 넘었더라도 쉽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섞이기 힘들어하며 고립과 은둔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러 청년들을 보며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 외로움에 관해서 함께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와 두 번째 책 준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sunnyokay79@gmail.com
* 은둔 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dudug@theseeds.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