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13: 연희(1)

둥둥
2022-08-23
조회수 140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던데

이미 망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한평생 놀면서 살아가고 싶은 연희의 이야기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반가워요.

저는 서울에 사는 은둔생활을 7년가량 했던, 스물다섯 무직 청년...이 아니구요.

한평생 놀면서 살아가고 싶은, 여러분의 아이돌스타 김연희입니다.



흥미로운 대답이군요. 어떤 의미일까요?

아무래도 사는 곳, 나이, 성별, 어떤 것도 제가 직접 정한 건 아니니까요.

내가 정한 나의 요소들이어야 소개로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연희라는 이름은 굉장히 어릴 때부터 최근까지 10년도 더 넘게 써온 가명이에요.


지금은 제가 정한 이름으로 살고자 최근 개명을 해서 본명이 연희인 사람으로 지내고 있어요.

긴머리로 살고자 해왔어서 어느 순간부터 머리카락도 계속 기르고 있고,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성별 같은 것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살고 있어요.

그렇게 직접 정한 것들로 이루어진 인생을 살려고 한답니다.

 




오래된, 막연한 꿈이자 이상이었던 ‘아이돌스타'






(좌) 어릴 적 연희씨가 하던 온라인 게임에서 ‘아이돌스타연희’라는 닉네임으로 문의했던 QnA

(우) 게임이 서비스 종료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함께했던 추억을 회상하듯 길드원에게 ‘아이돌스타연희' 컨셉으로

게임 GM이 써주던 답변 양식을 패러디해 달아주었던 댓글

 



꽤 어릴 때 하던 게임에서 닉네임이 ‘아이돌스타연희’였어요.

아이돌처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고 싶은 마음으로 지었던 닉네임이었는데,

실제로 게임에서 컨셉을 잡고 활동해서 조금 유명한 유저였어요.


아이돌스타라는 단어는 그렇게, 되게 오래된 막연한 꿈이자 이상 같은 거죠, 제게.

물론 연예인, 아이돌을 할 외모나 능력은 도무지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자기소개를 할 때 늘 스스로를 아이돌이라고 얘기하곤 한답니다.

최근에 카카오페이 체크카드를 발급했는데, 그 카드에도 ‘아이돌스타 연희’라는 문구를 써놨을 만큼

아이돌스타+연희 라는 말을 좋아해요.

자기소개를 그렇게 하고 다니다 보면, 실제로 그 단어에 조금씩은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아이돌스타 연희가 발급한 카카오페이 체크카드



한 평생 놀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건 아주 많이 진심이에요.

누구인들 안 그렇겠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그렇거든요.

간단히 일화를 하나 말씀드릴게요.


제 부모가 어릴 적부터 말습관처럼 자주 하던 말이 있는데, ‘엄마 아빠 죽으면 어떻게 할래.’ 였어요.

어렸을 적에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나이 정도면 스스로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신발끈 묶기 같은)을 아직 잘 못해낼 때,

‘아직도 내가 이런 일을 도와줘야 하니?’ 라는 의미로 했던 말습관인 건데요.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의미가 조금 달라져 문장 그대로의 뜻이 되었었어요.

‘진짜로 엄마랑 아빠가 죽고 나면 어떻게 하려고 하니?’ 라고 묻는 게 된 거죠.

원래 저는 평생 동안 부모가 그렇게 말을 할 때 한 번도 대답을 한 적이 없었어요. 늘 그냥 묵묵히 듣기만 했었는데요.

제가 어느 날 어떤 대답을 하고나서 그 평생을 이어져오던 말습관이 딱 고쳐져서는 다시는 그 말을 한 적이 없어요.

뭐라고 답했냐면, ‘엄마 아빠 죽으면 따라서 같이 죽을 거야.’ 라고 했었거든요.


제가 살아온 세상에선 일을 한다는 게 죽는 것만큼이나, 아니 죽는 것보다도 힘들고 끔찍한 일이라서

진심을 담아서, 엄마아빠가 죽어서 내가 살아가기 위해 직접 돈을 벌어야 하는 때가 오면 죽겠다고 했던 거죠.


저는 그런 사람이랍니다. 일을 하느니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그렇기 때문에 평생 놀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뭐, 나잇값 못하기의 끝장판인 생각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별 수 없어요. 저는 이미 그런 사람으로 자라버렸는 걸.

제가 로또라도 맞거나 운좋게 평생 먹여살려줄 누군가를 만나길 바라 주세요.

그럼 사람 한 명 안 죽고 사는 건데.

뭐 이런 모든 생각들도 다, 부모가 돈 많고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안 하고 살았을 생각이겠죠.



스스로 정하지 못한 것들은 달가워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사연이 궁금해요.

세상을 살면서 제가 결정하지 않은 것들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안 좋은 일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런 상황들이 잦아지면서 처음에는 ‘이게 다 내가 ~하지 못한 탓이야.’ 하고 스스로를 탓했었어요.

자존감이 부족하니 그랬겠죠. 지금 생각해보면 보통 잘못된 건 일방적으로 상대방이었던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말이죠.


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스스로를 많이 미워하고 지내다가 중간에 아주 조금 정신을 차렸다고 해야할지, 현실 부정을 시작했다고 해야할지, 스스로를 탓하는 건 그만두게 되었는데, 뭐 그렇다 한들 제가 결정하지 않은 것 때문에 겪는 안 좋은 일들이 끝난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정말이지 너무 속상해서 저 스스로를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해서 이러고 살 바에는 정신승리라도 해야겠다 하고 “나는 ‘이거’다. ‘나’는 어차피 내가 고른 것도 아닌데.” 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정한 것들로 나를 치장한 거죠.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라도 스스로 정한 것들로 살아가려고 해요



그 스스로 정하지 못한 것들이란 건 어떤 것들이 있나요?

대표적으로는 나이, 성별, 이름, 부모(인성, 재력 등), 캐릭터(키, 얼굴, 목소리 등) 같은 것들이 있을 텐데요. 더 나아가면 국적이라거나 여러 가지 능력과 재능 같은 것들도 있겠죠?

그런데 스스로 정하지 못한 것들이라고 모든 것들을 전부 다 하나하나 맘에 안 들어하고 바꾸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그 요소들로 안 좋은 일을 겪게 될 때에나 억울함을 느꼈는데, 그런 때가 잦아지면서 억울함을 넘어 세상에 대해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거죠.

저는 저처럼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을 사회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아는데요. 뭔지 예상이 되시나요?



글쎄요, 어떻게 부르던가요?

‘사회부적응자’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엄청난 사회부적응자인 거죠.

제가 살아온 세상에선 사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란 부당한 일들과 불의를 잘 참는 사람이었거든요.

저는 그런 걸 도무지 잘 못 참아서요. 그래서 제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그러지 못해왔으니까,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라도 스스로 정한 것들로 살아가려고 하는 거죠.



연희라는 이름을 직접 손수 지으셨다고 하셨는데요, 그 이름에 담긴 사연이 궁금해요.

부모가 정해준 원래 이름이 이상하고 나쁜 이름은 아니었지만, 태어나서 동명이인을 한번도 본 적이 없을 만큼 사람 이름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 이름이었어요.


한번은 컴퓨터실에서 아이들끼리 자기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서 어떤 사람이 나오는지 보면서 하하호호했던 날이 있었는데요. 그 때 반 친구 중 40명 중에 이름을 검색해서 아무 인물도 나오지 않던 아이가 유일하게 저 혼자뿐이었던 적도 있을 정도였어요.

또 그런 이름이기에 이름을 말했을 때 한번에 알아듣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사람들은 원래 익숙치 않은 단어를 들으면 발음이 비슷한 다른 익숙한 단어로 바꿔 듣잖아요.


그러다 열네 살이 되던 해 어느날, 온라인 속에서 쓸 닉네임 겸 나의 가명으로 예쁘고 흔하면서도 한자로 좋은 뜻을 담을 수 있는 이름을 하나 지어야겠다! 하고 당시 알고 지내던 온라인 친구 하나와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했었어요.



 연희로 개명했다는 사실이 담긴 주민등록초본

 



그 이름이 연희군요.

네, 당시에 나온 여러 후보 중에서 연희라는 이름을 골랐던 거죠.

이름은 골랐으니 한자로 넣을 이름에 담긴 뜻도 고민했는데요.

사람들에게 좋은 인연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인연 연’에 ‘기쁠 희’로 지었었어요.

그런데 10년 넘게 실제로 개명을 하지는 않고 살아갔었죠.

개명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은둔 생활로 인해서 실제 이름을 쓸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다 올해에 들어와서 슬슬 사회생활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실제로 개명을 했는데요.

근데 개명할 땐 한자를 바꿔서 ‘고울 연’에 ‘아름다울 희’로 신청했어요.

곱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거죠.

이름을 처음 지을 때보다 의미가 좀 더 여성스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자를 바꿨던 건데요.

앞으로 이름값을 해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죠?(웃음)



앞에서 스스로 정하지 못한 것들로 억울한 일을 많이 겪어왔다고 하셨는데요.

스스로 정하지 못한 것들 중 달갑지 않은 것에 어떤 것이 있을까요? 또 그로 인해 어떤 일을 겪어왔나요?

뭐 여러 요소로 억울한 일을 다채롭게도 겪었죠.

성별, 나이, 부모, 외면, 타고나지 못한 재능 등의 요소로 이런저런 억울한 일을 겪어봤지만

그 중 가장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고 중요한 건 단언해서 성별이에요.

그 얘기는 너무 길고 핵심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어서 맨 뒤로 미뤄둘게요.


그 다음으로 비중을 생각하자면 아무래도 당연히 부모일거에요.

부모의 됨됨이와 경제력은 인생의 시작점에서 너무나 큰 영향을 주잖아요.

그런데 제 부모는 좋은 부모가 아니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내 부모가 나쁜 부모라고 생각하진 않았었어요.

사람들은 다들 기본적으로 자신의 가정이 평범한 가정이라고 생각하고 지내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나이를 먹고 학교 등지에서 주변 아이들과 부모와 있었던 일, 받아온 가정교육이나 훈육방식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바람직한 부모의 양육방식’ 같은 걸 여러 매체를 통해 배우게 되면서 우리집에 문제가 좀 있음을 깨닫게 되어갔던 거죠.



그렇게 집안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던 상황이나 사건들의 예시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원래는 무지막지하게 많은데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이야기해볼까 해요.

일단 한 가지는 용돈 지급 방식이었어요.

저는 현 시점에서 확고하게 하는 생각으로, 아이를 키울 때는 ‘아이가 온전히 자신의 의사대로 소비할 수 있는 돈’ 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가 주기적인 용돈을 받아서 돈을 어디에 쓸 건지 허락 받지 않아도 쓸 수 있어야 하고, 특별히 큰 돈이 필요하다면 욕구를 잘 참고 돈을 모아서 하고 싶던 일을 하거나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것이 꼭 필요하고 정말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희 부모는 아이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 내내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는 채로 살아왔던 거죠.

학교 매점이나 학교 앞 분식집에서도 무언가 사먹어 본 적이 없고 PC방, 노래방 같은 곳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어요.

나이를 먹고 아이들과 주고받은 이야기가 쌓여가면서, 내가 초중교 생활에서 또래들과 함께 해봤어야 하는, 일반적인 그 나잇대 아이들에게는 있는 수많은 경험과 기억이 결여된 채 자라버렸다는 걸 깨닫게 되었던 거죠.


또 다른 이야기는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어릴 적에 EBS 다큐프라임에서 전국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프로젝트 특집다큐가 방송되었어요.

워낙 잘 만들어진 다큐였어서 학교에서도 몇 번을 보여줬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편을 보게 되었는데, 그중에 자존감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내용은 이랬어요.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과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을 한데 모아서 여러 가지 활동과 실험을 해요.

그런데 어떤 활동과 실험이든,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보다 높은 아이들에게서 한결같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거죠.

자존감이 부족한 아이들은 뭘 해도 잘 해내질 못하고 결과도 부정적이었어요.

저는 당시 제가 자존감이 낮은 아이인지 높은 아이인지는 모르는 채로 ‘아 저렇구나, 자존감이 낮다는 건 사실상 인생을 조졌다는 거구나.’ 하면서 멍하니 그 다큐를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자존감이 높은 아이과 낮은 아이 사이에 있는 부모의 양육방식 차이’ 에 대해서 나오더라구요.

똑같은 상황에서 자존감이 높은 아이의 부모와 자존감이 낮은 아이의 부모가 각각 자녀에게 하는 말이 어떻게 다른지 말이죠.

그 다큐 속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들어왔던 말을 연극하듯 재연했는데,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 부모가 했다는 언행들이 문장 그대로,

단 한글자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내 부모랑 너무 똑같은 거에요.

그때 나는 자존감이 개판난 아이로 자라기에 너무나 완벽한 부모를 두었다는 걸 깨달았죠.

실제로 지금의 저는 자존감이 돌이킬 수가 없게 난리가 나있고 말이지요.






그때 그 발언 이후로 부모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아요



세 번째로 해 볼 이야기는 이로 인해 부모에 대해 한없이 불신하게 되고 깊은 상처를 받았던 이야기인데요.

제가 중학교 1학년일 때 수준별 분반수업에서 최상반 담당 영어교사가 담임교사였어요.

저는 쭉 최상반이 아니었기 때문에 담임과 마주치는 순간은 조례시간과 종례시간 뿐이었죠.


어느 날 담임선생이 찾아와서 상담을 하고 가자고 하더라구요.

하루 40분 남짓, 깊은 대화도 한번 없이 과장 섞어 얼굴만 아는 사이인 수준이던 담임이 상담이랍시고 만든 자리에서 제게 했던 첫마디가 ‘연희는 너무 연희만의 세계에 심하게 빠져있는 것 같다.’였어요.

제 입장에선 어이가 없었죠.

우리가 뭐 언제 본 사이라고. 자기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이 아줌마가 지금 개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이라는 생각만 들었었죠.


상담은 대충 흐지부지 끝났었어요. 그런데 그 선생이 부모한테 상담 내용으로 전화도 했더라고요.

집에 오니 부모가 이랬었지요.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너를 데리고 정신과에 가보라더라.’

저는 그때 강력하게 얘기했었어요. 그 선생 학생들 사이에서 교사로서 평도 되게 나쁠 뿐더러 나랑 하루에 조례와 종례 말고는 마주치지도 않는데, 즉 교사 같지도 않은 게 나에 대해 뭣도 아는 것도 없이 한 소리인데 뭐라는 거냐고.


그러나 부모는 당사자인 저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교사의 말만 무지성으로 맹신했었어요.

결국 정신과에서 아주아주 비싼 오만가지 검사를 했었죠.

당시 첫 검사결과는 당연히 아무 문제가 없다 못해 오히려 조금 똑똑한 편이라고 나왔었는데요.

그런데도 부모는 의사한테 구태여 adhd 약이라도 받아오더라구요.

그때가 뭐 좀 adhd 약을 머리 좋아지는 약이랍시고 자녀한테 먹이는 부모가 전국에 흔하게 있기도 했었어 가지구요.

이후에 다른 심리상담기관에서 또 장기간 상담과 검사를 받았었는데 그곳에서도 최종결론으로 자녀분에게서 별달리 눈에 띄는 문제가 없어 상담이 반드시 필요해보이지는 않는다는 결론을 받았었죠.

저는 그래서 받아온 ADHD 약을 안 먹었었거든요. 아니, 문제가 없다는데. 애초에 문제 있었어도 되게 먹기 싫었겠지만요.

이 약을 먹으면 내가 정신병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기분이잖아요. 절대 그럴 수 없었지.


이후 시간이 좀 흐르고 어느날 부모가 큰 소리를 내면서 부부싸움을 하던 날이 있었는데요. 대화 맥락으로 대충 유추해보니 제가 학교에서 연락이 올 정도로 문제가 있게 자랐다는 걸 서로 탓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당사자인 아이도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의사가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도 말이죠.

그러다 아빠가 소리치기를 ‘그러니까 애새끼한테 약을 진작 먹였어야지!’ 라고 했었는데요.

이제 12년 전 일인데도 아직까지도 그 소리가 꽤 생생하게 귓가에 남아있을 정도로 되게 기억에 깊게 남아있거든요.


저는 그때 그 발언 이후로 부모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들이 낳은 자식이고 너희들이 그렇게 막 키웠어도 이정도 잘 자라줬는데도, 자식한테 듣게 한다는 게 저런 소리, 자식한테 가진다는 생각이 저런 꼬라지라니.

너무나 한심하고 끔찍했었던 거죠. 그런 나의 부모가.




(2부에 계속)

 




interviewer_우연 | 피할 수 없을 때까지 피한다. 피할 수 없으면 죽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뭐라도 해야할 때가 온다면 그때의 내가 무언가 하든가 그냥 죽든가 하겠죠.

굶어죽지 않고 놀고 먹는 지금의 삶이 너무 행복하지만

사회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버려서 왠지 뭐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만이 제 유일한 고민거리네요.

그래서 뭐라도 하고 있는 우연이라고 합니다.

(fallower9999@gmail.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인터뷰를 받고 싶은 분의 신청도 받습니다. 또는 은둔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tintin@theseed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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