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아침이면 수많은 발걸음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무표정한 얼굴들, 회사 앞 카페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면접을 기다리는 청년들, 그리고 집 안에서 세상으로 한 발짝 내딛기를 망설이는 이들까지. 겉으로는 제각각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모두 같은 하늘 아래서 치열하게 인생을 헤쳐나가는 '사람'이다.
오늘 알아볼 인물 역시 남들에게 지지 않는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유머러스하고 호쾌한 답변 사이에 세상을 바라보는 진중함을 담아낸 팝이 씨의 이야기. 시원시원한 입담과 뜨거운 열정 사이, 36.5도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름은 팝이고요, 나이는 만으로 27살입니다.
본인의 성격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음, 외향적이고 진취적인 성격 같습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이루고자 하는 식으로, 목표 지향적 삶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의 중요한 가치가 성취, 성공이라서요. 이런 면에서 진취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겠죠.
MBTI로 말하자면 ENTJ 입니다.
두더집은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셨나요?
제가 삶을 비교적 좀 힘들게 살아온 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때 상담을 목적으로, 심리 상담이 간절히 필요했던 지라.
무료 상담을 알아보던 차에, 마침 집 근처였기도 하고.
여기 이사장님께서 직접 상담을 하시더라고요. 그 분께 상담을 몇 번 받게 되었습니다.

*두더집 내부 모습
요즘은 얼마나 자주 오시나요?
집이랑 10분 거리거든요.
집이 머신 분들은 1시간 넘게 걸리시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집이랑 가깝다 보니까,
보통 주 3회에서 4회 이런 식으로. 요즘은 매일매일 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 상주하는 멍멍이라고, 친구가 그런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웃음)
두더집에 처음 오셨을 때 느낀 점이 궁금해요.
2층 주택이라, 가정집같이 편안하고 안락했던 기억이 나요.
첫 상담 당시엔 펑펑 울었었는데 이후에 여기 계신 분들께서
너무 따뜻하게 저를 맞아주시고 차도 끓여주셔서,
마음이 따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두더지땅굴이라는 사이트도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이용하고 계신가요?
온라인 활동은 원래 잘 안 하는 편이라서···. 사이트는 잘 알고 있었는데 이용을 안 하다가,
여기 (두더집) 상주해계시는 매니저님께 권유를 받으면서 게시글을 하나 정도 올려 봤거든요.
같이 집밥 모임 했던 사진을 받아서, 2월 마지막 주 목요일 집밥 모임 기록을 남긴 이력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이용할 의향이 있습니다.

*다같이 만든 토마토 시금치 리조또
사전 인터뷰에서는 본인이 은둔고립 청년은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네.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했고요.
그곳에서 만난 동료들,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만난 여러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살면서 친구가 끊긴 적이 없어요.
친화력이라고 하죠. 외향적인 성격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를 지지해주시는 제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이 계시는데요,
그분을 저는 어머니처럼 생각해서 ‘엄마’라고 부르거든요.
저희 ‘엄마’랑은 지금 23살 때부터 4년간 쭉 일주일에 한 번씩 연락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이 은둔 고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더집 시설을 이용하다 보면 아무래도 은둔 고립 청년들을 많이 접하시죠.
혹시 은둔 고립 청년들과 어울리며 이런 점이 인상 깊었다, 하시는 게 있으실까요?
아, 예. 저 같은 경우엔 개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사람을 보는 기준인데요,
많은 분들이 두더집에 방문해주시는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이 설령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어떤 사연이 있더라도 이 시설을 방문함으로 벗어나 보겠다. 발전을 해 보겠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온다는 걸 같이 어울리면서 느낄 수 있었고요.
다양한 경험을 은둔 고립 청년 분들께 들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선, 가치관 등을 접하면서 저의 식견도 많이 넓어졌어요.
현 상태에서 벗어나 변화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의지를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신 게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은둔고립 청년들의 이야기에 동질감을 느낀 에피소드도 듣고 싶어요.
힘들게 사셨던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세상에 나 혼자만 힘들게 살지 않았구나 하고 동질감도 느껴지면서,
우리네 삶을 이야기하면서 위로함과 동시에 함께 울고, 웃고, 이해하면서 공감을 할 때
세상에 나 혼자만이 아니다. 이런 동질감을 크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얘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대답하기 힘드시다면 편하게 넘기셔도 괜찮습니다.
좀 뭉뚱그려서 제 인생에 대해 요약을 하자면, 정부가 지정하는 사회 4대악.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정신적, 육체적 폭력 등을 전부 겪었고요.
그런 여러 트라우마적 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라고 자신을 칭할 수 있겠네요. 여기까지입니다.
힘든 말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힘든 시기를 버텨내기 위한 예리님만의 생존 방식이 궁금합니다.
나만의 취미나 마음가짐, 소소한 규칙 같은 게 있었나요?
다들 힘든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다양한 방식이 있을 텐데요.
저는 외향적인 편이라서, 취미 활동이 굉장히 많거든요. 특히 스포츠 같은 경쟁적인 취미를 통해서,
국내 프로야구라던지 축구같은 프로 구단의 팬으로 응원을 하면서 여러 힘든 시기를 잘 이겨냈던 것 같습니다.
취미 활동을 통해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는 걸 추천 드릴게요.
그렇다면 보통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보통 7시에 일어나고요, 대학교 도서관에 머무르면서, 3시간 정도 공부를 집중해서 하고요, 두더집이 12시에 오픈을 하는데, 12시부터 한 8시까지 이 곳에서 여러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즐기면서 중간중간 틈틈이 쉬는 시간이 있으면 공부를 하거나, 휴대폰 시청 같은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요. 8시 이후에는 다시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9시부터 12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학교에 심야버스가 다니거든요. 심야버스 노선도가 마침 집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새벽 1시 30분 경에 집에 도착해서 잠을 자는 삶. 요즘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와···. 굉장히 부지런하게 사시네요. 대단하세요.
아, 아닙니다. (웃음)
관심사가 굉장히 많으신 편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관심사들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저는 몰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절대음감이었습니다.
이 재능을 조금 더 일찍 살렸으면 예술대학교에 진학을 할 수 있었을텐데, 스무 살 이후로 저의 재능을 깨달아 좀 아쉬웠어요.
절대음감은 전세계 0.001%로 분포되어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음악, 예술 쪽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더라고요. 피아노나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를 때 마음의 위안을 많이 얻습니다.
흔히 요즘 말로 마음챙김이라고들 하잖아요. 좋아하는 취미 활동,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마음챙김이라고 부르는데요, 예술적인 것들의 영향이 요즘 제 마음을 챙겨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랄까, 제가 살면서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활동적이고 발전적으로 살고 계신 것 같아요. 게으름이 없고.
아이 뭐, 아닙니다.
앞으로 소소하게라도 해보고 싶으신 일이 있으신가요?
요즘 들어서는 실내 암벽 클라이밍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있습니다.
12월 초부터 1월 말까지 잠깐 왕십리 쪽에 있는 마케팅 학원에 다녔는데요,
그 곳에서 같이 배웠던 동기가 클라이밍 동아리 회장이어서요.
실내 암벽 클라이밍을 도전해보고 싶다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게 되실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제가 되게 외향적이고, 사회적 교류를 많이 하는 편에 속하지만요. 대부분의 사람들. 소위 현재 대기업 재직하는 잘나가는 사람이든, 현재 힘들어하던 사람이든, 내 위에 사람 없고, 내 밑에 사람 없다가 제 가치관이거든요. 사람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네 삶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모두 같은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개성과 사연을 지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 현재 상황이 어떻든 간에 모두 잘 헤쳐나가고 열심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누구라도 변화할 수 있을 거예요. 이건 제 자신에게도 해줄 수 있는 말일 것 같네요.
현재 자신의 나이가 어떻든 상관없이. 넘어져도 괜찮다. 천천히 쉬었다 일어나면 된다. Step by step. 이게 제 인생의 모토입니다.
*
우리네 삶. 사람마다 성격도 환경도 살아온 방식도 천차만별, 자신을 표현하는 말들도 제각각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다. 이곳을 찾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다를지라도 같은 공간의 온기를 나눈다. 공통 관심사로 왁자지껄 떠들기도 하고,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기도 하면서.
오늘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 함께 나아가자 말하고 싶다.
매일 아침이면 수많은 발걸음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무표정한 얼굴들, 회사 앞 카페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면접을 기다리는 청년들, 그리고 집 안에서 세상으로 한 발짝 내딛기를 망설이는 이들까지. 겉으로는 제각각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모두 같은 하늘 아래서 치열하게 인생을 헤쳐나가는 '사람'이다.
오늘 알아볼 인물 역시 남들에게 지지 않는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유머러스하고 호쾌한 답변 사이에 세상을 바라보는 진중함을 담아낸 팝이 씨의 이야기. 시원시원한 입담과 뜨거운 열정 사이, 36.5도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름은 팝이고요, 나이는 만으로 27살입니다.
본인의 성격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음, 외향적이고 진취적인 성격 같습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이루고자 하는 식으로, 목표 지향적 삶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의 중요한 가치가 성취, 성공이라서요. 이런 면에서 진취적인 성격이라 할 수 있겠죠.
MBTI로 말하자면 ENTJ 입니다.
두더집은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셨나요?
제가 삶을 비교적 좀 힘들게 살아온 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때 상담을 목적으로, 심리 상담이 간절히 필요했던 지라.
무료 상담을 알아보던 차에, 마침 집 근처였기도 하고.
여기 이사장님께서 직접 상담을 하시더라고요. 그 분께 상담을 몇 번 받게 되었습니다.
*두더집 내부 모습
요즘은 얼마나 자주 오시나요?
집이랑 10분 거리거든요.
집이 머신 분들은 1시간 넘게 걸리시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집이랑 가깝다 보니까,
보통 주 3회에서 4회 이런 식으로. 요즘은 매일매일 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 상주하는 멍멍이라고, 친구가 그런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웃음)
두더집에 처음 오셨을 때 느낀 점이 궁금해요.
2층 주택이라, 가정집같이 편안하고 안락했던 기억이 나요.
첫 상담 당시엔 펑펑 울었었는데 이후에 여기 계신 분들께서
너무 따뜻하게 저를 맞아주시고 차도 끓여주셔서,
마음이 따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두더지땅굴이라는 사이트도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이용하고 계신가요?
온라인 활동은 원래 잘 안 하는 편이라서···. 사이트는 잘 알고 있었는데 이용을 안 하다가,
여기 (두더집) 상주해계시는 매니저님께 권유를 받으면서 게시글을 하나 정도 올려 봤거든요.
같이 집밥 모임 했던 사진을 받아서, 2월 마지막 주 목요일 집밥 모임 기록을 남긴 이력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이용할 의향이 있습니다.
*다같이 만든 토마토 시금치 리조또
사전 인터뷰에서는 본인이 은둔고립 청년은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네.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했고요.
그곳에서 만난 동료들,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만난 여러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살면서 친구가 끊긴 적이 없어요.
친화력이라고 하죠. 외향적인 성격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를 지지해주시는 제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이 계시는데요,
그분을 저는 어머니처럼 생각해서 ‘엄마’라고 부르거든요.
저희 ‘엄마’랑은 지금 23살 때부터 4년간 쭉 일주일에 한 번씩 연락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이 은둔 고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더집 시설을 이용하다 보면 아무래도 은둔 고립 청년들을 많이 접하시죠.
혹시 은둔 고립 청년들과 어울리며 이런 점이 인상 깊었다, 하시는 게 있으실까요?
아, 예. 저 같은 경우엔 개선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사람을 보는 기준인데요,
많은 분들이 두더집에 방문해주시는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이 설령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어떤 사연이 있더라도 이 시설을 방문함으로 벗어나 보겠다. 발전을 해 보겠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온다는 걸 같이 어울리면서 느낄 수 있었고요.
다양한 경험을 은둔 고립 청년 분들께 들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선, 가치관 등을 접하면서 저의 식견도 많이 넓어졌어요.
현 상태에서 벗어나 변화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의지를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신 게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은둔고립 청년들의 이야기에 동질감을 느낀 에피소드도 듣고 싶어요.
힘들게 사셨던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세상에 나 혼자만 힘들게 살지 않았구나 하고 동질감도 느껴지면서,
우리네 삶을 이야기하면서 위로함과 동시에 함께 울고, 웃고, 이해하면서 공감을 할 때
세상에 나 혼자만이 아니다. 이런 동질감을 크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얘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대답하기 힘드시다면 편하게 넘기셔도 괜찮습니다.
좀 뭉뚱그려서 제 인생에 대해 요약을 하자면, 정부가 지정하는 사회 4대악.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정신적, 육체적 폭력 등을 전부 겪었고요.
그런 여러 트라우마적 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라고 자신을 칭할 수 있겠네요. 여기까지입니다.
힘든 말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힘든 시기를 버텨내기 위한 예리님만의 생존 방식이 궁금합니다.
나만의 취미나 마음가짐, 소소한 규칙 같은 게 있었나요?
다들 힘든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다양한 방식이 있을 텐데요.
저는 외향적인 편이라서, 취미 활동이 굉장히 많거든요. 특히 스포츠 같은 경쟁적인 취미를 통해서,
국내 프로야구라던지 축구같은 프로 구단의 팬으로 응원을 하면서 여러 힘든 시기를 잘 이겨냈던 것 같습니다.
취미 활동을 통해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는 걸 추천 드릴게요.
그렇다면 보통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보통 7시에 일어나고요, 대학교 도서관에 머무르면서, 3시간 정도 공부를 집중해서 하고요, 두더집이 12시에 오픈을 하는데, 12시부터 한 8시까지 이 곳에서 여러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즐기면서 중간중간 틈틈이 쉬는 시간이 있으면 공부를 하거나, 휴대폰 시청 같은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요. 8시 이후에는 다시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9시부터 12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학교에 심야버스가 다니거든요. 심야버스 노선도가 마침 집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새벽 1시 30분 경에 집에 도착해서 잠을 자는 삶. 요즘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와···. 굉장히 부지런하게 사시네요. 대단하세요.
아, 아닙니다. (웃음)
관심사가 굉장히 많으신 편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관심사들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저는 몰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절대음감이었습니다.
이 재능을 조금 더 일찍 살렸으면 예술대학교에 진학을 할 수 있었을텐데, 스무 살 이후로 저의 재능을 깨달아 좀 아쉬웠어요.
절대음감은 전세계 0.001%로 분포되어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음악, 예술 쪽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더라고요. 피아노나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를 때 마음의 위안을 많이 얻습니다.
흔히 요즘 말로 마음챙김이라고들 하잖아요. 좋아하는 취미 활동,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마음챙김이라고 부르는데요, 예술적인 것들의 영향이 요즘 제 마음을 챙겨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랄까, 제가 살면서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활동적이고 발전적으로 살고 계신 것 같아요. 게으름이 없고.
아이 뭐, 아닙니다.
앞으로 소소하게라도 해보고 싶으신 일이 있으신가요?
요즘 들어서는 실내 암벽 클라이밍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있습니다.
12월 초부터 1월 말까지 잠깐 왕십리 쪽에 있는 마케팅 학원에 다녔는데요,
그 곳에서 같이 배웠던 동기가 클라이밍 동아리 회장이어서요.
실내 암벽 클라이밍을 도전해보고 싶다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게 되실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제가 되게 외향적이고, 사회적 교류를 많이 하는 편에 속하지만요. 대부분의 사람들. 소위 현재 대기업 재직하는 잘나가는 사람이든, 현재 힘들어하던 사람이든, 내 위에 사람 없고, 내 밑에 사람 없다가 제 가치관이거든요. 사람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네 삶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모두 같은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개성과 사연을 지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 현재 상황이 어떻든 간에 모두 잘 헤쳐나가고 열심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누구라도 변화할 수 있을 거예요. 이건 제 자신에게도 해줄 수 있는 말일 것 같네요.
현재 자신의 나이가 어떻든 상관없이. 넘어져도 괜찮다. 천천히 쉬었다 일어나면 된다. Step by step. 이게 제 인생의 모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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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 사람마다 성격도 환경도 살아온 방식도 천차만별, 자신을 표현하는 말들도 제각각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다. 이곳을 찾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다를지라도 같은 공간의 온기를 나눈다. 공통 관심사로 왁자지껄 떠들기도 하고,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기도 하면서.
오늘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 함께 나아가자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