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17: 모험가(3)

**17번째 모험가님 인터뷰가 업로드 중 누락 되어 재업로드 합니다. 1월부터 원래 순서대로 배치 될 예정입니다.**



순하고 참을성이 많았던 어린 시절

긍정의 힘을 가진 ‘모험가’입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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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험가님의 어린 시절, 유년 시절의 경험들과 성장 과정의 이야기를 좀 되짚어 보면서 그것이 20대 초반 이후에 거의 한 10년이라고 하셨던 은둔 생활에 영향을 미쳤던 어떤 일이나 원인이 되었던 것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단 저는 그래도 나름대로 사랑이 받았던 것 같아요. 누나가 둘이 있는데 저는 기억은 안 나지만 제가 어렸을 때 누나들이 뽀뽀도 해줬대요.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순둥이 어린 시절의 모험가님


그 정도로 누나들에게 사랑을 받으셨군요. 누나분들이랑 나이 차이가 좀 있으신가요?

3살, 4살 차이나요. 학년으로는 3학년 5학년 차이 나고요. 근데 유치원 다닐 때는 동네에 한 살 어린 동생 친구랑 되게 많이 놀았거든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거의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하면서 동네에서 뛰어노느라고 누나랑은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쯤에 비교적 순하고 참을성이 좀 많은 아이, 순종적인 아이였어요. 주사 맞으러 가면 잘 참고 안 울고. 참는 거를 잘했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참으면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으니까. 나를 표현하는 거에서 좀 소극적으로 된 게, 그 당시 나름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것 같아요.

동네에 한두 살 정도 차이나는 친구(동생)를 만났는데 보통은 저를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저는 굳이 그 정도 나이 차이에 형, 동생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이름 부르며 친구처럼 지내자고 했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얕보이기 시작했어요. 다 같이 놀 때 어느 순간 나를 무시하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 그게 쌓이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돼서 싸웠던 기억이 있어요.


보통은 어렸을 때 한두 살 차이를 더 예민하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모험가님은 안 그러셨네요.

저는 안 그랬던 것 같아요. 그냥 다 같이 친구로 지내고 싶어 했어요.


친하게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게 좋으셨던 거네요.

뭔가 평화주의자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도 동네 아줌마들이 예쁘다고 업어 키우고 그랬어요. 그 정도로 사랑받았어요. 그런데 크면서 밖에서 노는 애들끼리 욕도 좀 하고 거칠게 뛰어놀기도 했어요. 동네에 동갑 친구 하나가 있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웠어요. 주변에 거친 친구들도 많았고요. 처음에는 그 친구랑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순간 제가 그 친구의 부하가 된 거예요. 그런 생활을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5학년까지 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그때까지 했던 것 같아요. 가끔은 그 친구가 저를 도와줄 때도 있었지만 서로 친하니까 자기가 필요할 때 뭘 시키고 제가 3천 원을 받으면 한 2천 원을 준다든가, 그러니까 돈을 뜯기는 거죠. 집에 있는 먹을 걸 좀 갖다 준다든가 하기도 하고. 그 친구네 집이 몹시 어렵기도 했고, 비행 청소년 누나, 형들이 친구네 집에 와서 아지트처럼 쓰고 그랬어요. 친구는 약간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고 저는 약간 순종적인 성향이니까 그게 서로 맞았던 거예요. 그래서 그 관계가 좀 오래가다가 어느 순간 그게 싫어져서 친구랑 저희 어머니한테 얘기했어요. 그래서 어머니 둘이 해결을 하고 그 이후로는 그 친구를 못 만난 것 같아요.


어머니가 해결하셨다는 거는 우리 아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이야기하셨다는 거예요?

건들지 말아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요. 그냥 엄마들이 알아서 하신 것 같아요.


뭔가 친구와의 관계에서 선을 그어주셨나 보네요.

나중에 걔네 동네도 가끔 놀러 가고 그랬었는데, 만날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네를 가면 약간 뭔가 위축되고 막 움츠러들고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성장한 후에도요?

20대 후반까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친구네 동네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이사를 가셨나 봐요.

그 친구가 멀지 않은 근처 동네로 이사를 했어요. 몇 년에 한 번씩은 그 동네에 지나갈 일이 생길 수 있는데, 갈 때마다 뭔가 좀 위축된 느낌이 드는 게 싫은 거예요. 그래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죠.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인데 됐어.’ 하면서…. 제가 한참 살이 쪄 있을 때 자전거를 타면서 뭔가 좀 나를 이겨내려고 할 때쯤 거기를 다시 갔는데 처음에는 약간 위축되길래, 일부러 몇 번 더 지나갔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점점 그게 약해지더라고요. 어느 순간, 그 동네를 지나가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그때는 제가 살을 뺐을 때인 것 같아요. 그때는 나에 대한 인정을 그래도 조금 할 수 있게 됐을 때니까, 나를 좀 키워냈기 때문에, 그 이후로 갔을 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힘들었던 기억이 있던 장소에 가면 누구나 불편함이 생길 수 있는데, 모험가님은 용기 있게 그것을 직면하면서 해결하셨네요. 그러면서 더 자신감도 생기신 것 같고요.

네. 어렸을 때 그 친구가 폭력적이고 뭔가 불만족이 많으니까 친구들을 좀 때리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다른 친구가 손을 들면(때리는 시늉) 저는 이러고(피하는 시늉), 맞는 게 좀 익숙해진…. 몸에 밴 게 있었던 거예요. 그 경험 때문에 약간 위축되었던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분에 대한 기억이 진하게 남아 있으신 것보다는 지금처럼 기억을 더듬어서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이미 안 좋았던 기억을 많이 떨쳐 내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그러므로 지난 두 번의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그분의 이야기가 먼저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제 해결됐고 그 일로부터 본인이 이제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분들은 어렸을 때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혀서 성장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상처로 남아서 힘든 분들도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네, 사실은 그런 분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자신을 괴롭혔던 성별의 사람과는 자기 속을 잘 못 털어놓는 사람이 꽤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여자한테 괴롭힘당한 적이 있으면 여자랑 어느 정도 지낼 수 있어도 다 털어놓는 관계까지는 발전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몇 명 본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또 그런 관계가 남이 아니라 가족 간이라고 하면 나중에 그 갈등이 더 깊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여러 경우를 보더라도 모험가님은 여러 고비를 잘 헤쳐오신 것 같아요. 모험가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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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조금씩 내 마음을 표현하게 됐어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조금 주저하거나 신중하게 되는 게 있으셨나요?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졸업할 때까지 표현을 한 번도 못 한 것 같더라고요. 그런 소극적인 게 남아서 나중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20대 중반까지 많이 굳어진 것 같아요. 그 친구를 제가 정말 많이 좋아했었는데…. 어렸을 때 만화를 많이 읽으면서 뭔가 얘랑 나랑 운명이면 언젠가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감수성이 많은 타입이에요. 비가 올 때 집도 잘 모르는데 왠지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아서 집 근처를 찾아서 가보기도 했어요. 가끔 꿈에 나왔어요. 요즘은 안 나오는데. 내가 살을 빼고 싶었던 동기가 되었죠. 그때 당시에 살이 많이 쪘으니까 ‘지금 상태로 만날 수가 없다, 빨리 살을 빼야겠다.’ 하면서 더 나이 들기 전에 찾아보려고 졸업장 뒷면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해보기도 했어요. 없는 번호라고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 부끄러움 많고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다가가고 고백하기 어려웠던 모습 하고는 다르게, 성인이 돼서는 좋아하는 이성에게 연락처도 남기는 모습을 보면 적극적으로 변하신 것 같아요. 용기를 내셨나 봐요.

이제는 나름대로 조금씩은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오히려 상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다가가서 문제죠. 마음만 앞서서 혼자 이만큼 먼저 앞서 나가는 거죠. 그런 시행착오를 이제 줄여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럼, 모험가님은 성격의 변화가 생겼다고 느끼시는 거죠?

그럼요. 훨씬 좋아졌죠. 그리고 제가 전화번호를 줬던 롯데월드 테마파크에서 일하던 친구는 개인적으로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살을 못 뺐을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네요. 건강도 전보다 훨씬 좋아지셨고요. 활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집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것만 해도 그분은 모험가님의 인생에 아주 큰 역할을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만 어쨌든 그것을 자신의 어떤 변화의 계기로 삼으신 모험가님도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죠. 사실 그분은 평범한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제가 의미를 부여해서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었죠. 일면식도 없고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일 뿐인데….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거절을 당할 수도 있었잖아요. 그렇지만 거절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어떤 자기 욕구를 발견해 내셨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나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파악하시고 실제로 그 변화를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셨다는 것 모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살기 위한 마지막 노력이었죠.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느낌으로 걸었어요.


모험가님은 지난번에 어린 시절은 어머니의 부재에 대한 결핍이 있다고 하셨고,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이성 친구가 있었고, 만화에 나오는 완벽한 여신 캐릭터에 꽂혀 있기도 했다고 하셨는데요. 그 이야기를 좀 해주시겠어요?

‘오, 나의 여신님!’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거기 나오는 캐릭터가 되게 착하고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고 그런 완벽한 여신 캐릭터였어요. 약간 현모양처 같은 느낌이고 막 예쁘고 젊고 착한 그런 캐릭터예요. 남자들의 이상형 같은? 인기가 되게 많았던 캐릭터예요. 저는 극장판을 감명 깊게 봐서 여러 번 봤었어요.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어요?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사실은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그런 캐릭터 같은데요.

애초에 신분 자체가 여신이에요. 어렸을 그림 찾아서 컬러 프린트해서 막 모아놓고 재방송한다고 하면 가지고 있는 것이어도 녹화를 5번, 6번 해서 테이프가 여러 개 있었어요. 본편 내용은 아직도 잘 몰라요. 안 봤어요. 극장판 내용이 좋아서 그냥 그것만 여러 번 봤어요. 그렇게 그 캐릭터를 20대 초반까지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만화 속에서 두 캐릭터가 대학교에 가서 만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래서 저도 대학교쯤 되면 (짝사랑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수줍음 많고 소극적이었던 모험가님이 자유롭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던 캐릭터, 미래의 화목한 가정을 꿈꾸게 하는 기분 좋은 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러면 어렸을 때 어머니가 안 계신 적이 있고 하면서 어머니의 부재를 느끼셨다고 했는데 그 캐릭터를 좋아하게 된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지금 돌이켜보면 연결이 되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상상 때문에 창조된 캐릭터가 실존하는 엄마의 부재 상황을 채워주는 대리만족이 있으셨던 것인지, 아니면 이성으로도 그 캐릭터가 맘에 드셨던 건지, 만화 캐릭터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하셨던 부분이 있고 어머니의 부재와 연결이 된다고 하시니 궁금점이 생기네요.

음…. 그냥 내가 어렸을 때 보다가 꽂혀서 좋아했던 캐릭터니까, 그냥 예쁘고 그냥 좋은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일 수도 있어요.


막연하지만 그런 그것들이 연결되었을 그거로 생각하시는 거군요.

네, 맞아요.


모험가님이 어렸을 때 어머니의 부재를 크게 느꼈고, 그 빈자리는 외로움을 느끼게 했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만능의 여신 캐릭터를 보며 기쁨을 얻고 일종의 만족감을 얻게 된 것 같네요.

모험가님은 어린 시절의 본인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편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내가 좋아할 수 있고 내 마음을 표현해도 괜찮은 어떤 하나의 캐릭터가 생겨난 것으로 인해 일상에 활력을 얻으신 것으로 보이네요.

네, 그런 것 때문에 결혼을 좀 일찍 하고 싶었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빨리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군요.

네, 화목한 가정에 대한 판타지가 있어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연세가 좀 있으셔서 더 빨리 결혼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젊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고. 모험가님에게는 이성에 대한 마음? 연애 감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이 사그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것이 일상의 활력을 주기도 하고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네, 저를 변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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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점점 더 당당해진다



누군가에게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좀 어색하고 머뭇거려지는 일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어떠셨나요?

재밌었어요.


저도 모험가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긍정의 힘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구나 생각했어요. 저도 무척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다른 분들도 인터뷰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무거웠던 마음도 털어내시고 조금이라도 편해지시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봐요.

네네, 어떤 치료보다도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빠른 치료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저를 성장시켰던 방법의 하나가 남들에게 저 자신의 얘기, 특히 말하기 어렵거나 힘들었던 얘기를 할 때였는데, 이렇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죠.


저도 좋은 기회를 얻어서 모험가님의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어 좋았고, 은둔의 시간을 잘 극복하시고 활력 있게 잘 지내시는 모험가님의 모습을 보게 되어서 기분 좋았습니다.



(끝)




interviewer_써니 |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

약 15년 동안 사회복지사로 아동, 청소년, 청년들,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왔습니다. 자립의 문턱앞에서 머뭇거리거나 행여 문턱을 넘었더라도 쉽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섞이기 힘들어하며 고립과 은둔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러 청년들을 보며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 외로움에 관해서 함께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와 두 번째 책 준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sunnyokay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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