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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17: 모험가(2)

**17번째 모험가님 인터뷰가 업로드 중 누락 되어 재업로드 합니다. 1월부터 원래 순서대로 배치 될 예정입니다.**




두려움보다는 기대를


긍정의 힘을 가진 ‘모험가’입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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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를 기점으로 모험가라는 닉네임을 쓰게 되셨는데요.

‘긍정’은 원래 제가 쓰던 건데 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닉네임을 찾은 것 같아서 좋아요. 어렸을 때부터 꿈이 과학자였거든요. 그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가슴 두근거리는 모험을 하고 싶고, 모험가가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네, 모험가처럼 도전적으로 살고 싶기도 하고, 설명하신 대로 앞으로의 일상이 이제는 나한테 모험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모험가시군요.

그리고 거기서 또 재밌는 걸 찾아 나가면 되는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보통 모험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 때문에 기대도 있지만, 또 두려움도 있기 마련이잖아요. 모험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양립할 수 있는데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시고 계세요?

이거는 제가 사람이랑 좀 연관 지어서 생각할 수 있는 건데 누군가를 만난다고 했을 때 계속 만나느냐 안 만나느냐를 판단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그 사람이 가진 장점이 단점보다 크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마찬가지로 모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내가 이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두려움보다 크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뭔지 몰라서 더 재밌는 것도 있잖아요. 저도 봉사활동을 시작했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했던 건데 지금 이 자리까지 이어진 거잖아요. 인생은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런 부분에서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보다는 기대를 더 크게 생각하고 도전하시는군요. 정말 모험가다운 답변이시네요.

저한테는 그 가치가 더 소중하죠. 원래는 저는 다른 사람보다 두려움이 훨씬 큰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긴 기간 운동을 했던 거고, 여자 눈을 못 본다거나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잘 못 쳐다보고 그랬어요. 한번은 책방에서 알바를 하고 싶은데 문 앞에서만 한 30분에서 1시간 서성거리다가 돌아온 적이 있어요. 그런 정도로 저는 되게 소심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때 모험가님의 두려움은 어떤 것이었나요?

음, 내가 손님으로 들어가는 거랑 거기 가서 평가를 받아야 된다는 게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구직하는 입장에서요?

손님으로서는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평소에 많이 다니던 책방이었는데 거기서 일을 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사회로 나가기 힘들었던 거랑 비슷한 느낌이에요.


네, 그런 두려움이 있으셨군요.

그리고 보통 은둔 경험이 있는 중에는 식당에서 “저기요~” 이렇게 사람 불러서 요청하는 거 힘들어하는 친구가 좀 많은 편인 것 같아요. 그나마 벨이 있으면 좀 편하지만. 그래서 작은 목소리로 사람을 불렀는데 안 오면 기다리는 거예요. 다음에 조용해질 때까지. 지금은 안 그렇지만 옛날에는 그랬어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해주거나.


지난번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면서 보니까 모험가님한테는 저변에 굉장히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깔린 것 같아요. 그런데 자신의 내면에 깔린 긍정성을 끄집어 올리는 것은 모험가님의 노력이 필요한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혼자만의 갈등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현실을 탈피하려고 노려가는 모습과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모습과 갈등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럴 때 어떤 노력을 하셨어요?

그렇죠. 음, 일단 그거 설명하기 전에 긍정에 관한 얘기를 조금만 할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많이 봤어요. 집에서 부모님은 항상 일 나가서 안 계시니까 집에서 항상 투니버스 채널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만화는 보통 긍정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잖아요. 그래서 그런 게 굉장히 많이 어렸을 때 학습이 된 것 같아요. 거기서 나오는 대사 중의 하나는 ‘살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다.’라는 게 있었어요.


만화의 긍정적인 면이네요.

그렇죠. 그리고 어머니의 장점이 굉장히 선하시고 되게 착하신 면이 많고 되게 낙천적인 부분이 있으세요. 좋은 일 있으면 막 되게 신나고 기분 좋아하시고 이런 게 있어요. 아이 같은 면이. 그런 게 저한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을 하고요. 다시 돌아가서 혼자 있으면 보통 컴퓨터 앞에만 있을 수밖에 없고 인터넷 방송을 주로 보는데, 저는 우울하거나 슬프거나 비극적으로 끝나는 내용은 많이 피했어요. 항상 저는 재밌는 사람, 그리고 나랑 친숙한 사람, 보통 형 같은 사람들의 방송을 보는 것을 많이 좋아했었거든요. 그렇게 재밌는 거를 항상 찾아서 보고 가끔은 나 혼자 거기서 재밌는 채팅 같은 걸 하는 거를 즐거워하고, 또 가끔은 노래를 틀어놓고 혼자서 그냥 춤을 추기도 했었거든요. ‘나는 되게 재밌는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그거는 사실 노력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내가 재밌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니까요. 현실로 돌아오면 슬프니까 항상 재밌는 걸 항상 찾아 헤맸던 것 같고, 그냥 노력 같은 거는 전에 말했듯이 명동에서 프리허그를 한다든지, 인터넷 방송을 제가 유튜브랑 인터넷 방송을 한 6개월 정도 했어요.


직접 채널을 운영하셨어요?

네, 많이 볼 때는 잠시지만 50명, 100명 이렇게 볼 때도 있었고.


BJ 활동을 하셨던 거에요?

비슷해요. 그리고 유튜브도 잘해서 2만 조회 수 이렇게 나오기도 하고. 사실 별 볼 일 없고 되게 재미없게 방송을 했거든요. 실제로도 재능도 없었고 콘텐츠를 위해서 노력도 많이 안했어요. 편집도 안 하고 그냥 했을 뿐인데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었고 그런 데서 사람들한테 감사함이나 소통하는 방법을 간접적으로나마 익혔던 거죠. 그러고 나서 나중에 직접 크리스마스 기부대회에 나가서 BJ는 아니지만 스트리머로서 참여해서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데 좀 이바지해본 경험도 있었고요.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가기 전에 연습하신 거네요.

그렇죠. 나름대로 조금씩 깎여 나간 거죠.

그리고 살이 많이 찌고 스스로 포기하는 게 극에 달하면 사람을 오히려 신경 안 쓰게 돼요. ‘어차피 내가 이렇게 있든 저렇게 했든 너희들은 나를 되게 안 좋게 볼 거잖아, 혐오스럽게 볼 거잖아.’ 이런 게 깔려 있으니까 머리도 안 깎고 수염을 2, 3주 이렇게 안 깎아도 별로 상관없고. 젊었을 때는 잠깐 슈퍼 나갈 때도 머리 감고 옷 차려입고 나가야 했는데 그렇게 되고 나서는 점점 나를 내려놓으면서 그냥 대충대충 편하게 그냥 지금 당장 나만 행복할 수 있는 말초적인 행복만 찾아 헤매는 그런 삶을 살았던 거에요. 그렇게 내려놓은 상태가 되면 좀 더 사람들을 대할 때 편해진다고 할까, 여기서 더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오히려 거기서 더 뻔뻔해지고 프리허그도 할 수 있고.


어떤 한 면만 있는 건 아니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나를 다 내려놓고 나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그냥 그렇게 포기를 하면서 ‘미움받을 용기’ 이런 것일 수도 있겠네요.


‘나를 내려놓고 좀 더 편해졌다.’라고 하신 것과 ‘미움받을 용기’라고 하는 거는 약간 상충한 게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다르지만, 그 두 가지가 같이 갈 수 있는 것인가 잠깐 생각해 보게 되네요.

모험가님께서는 결국 은둔 중에 겪는 외모의 변화나 사람들의 시선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게 되셨고 내면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현실의 좋은 것, 긍정적인 것, 웃을 수 있는 것을 찾으셨다고 하셨는데요.


그렇죠. 지금 내 상황에서 가장 재밌게 살 방법, 그리고 심지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부모님께 감사함과 죄송함을 동시에 느꼈어요. 친구들은 이 시간에 일하고 되게 힘들다고 난리인데 나는 이렇게 집에서 편하게 이러고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재밌게 있을 수 있을 때는 재밌어서 상관없는데 또 그런 소재가 끝나고 나면 이제 또 그런 게 밀려오는 거죠. 남들이 많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오는 거죠. ‘날짜가 바뀌고 세월이 가고 계절이 변했고 몇 년이 지났어. 나는 이제 어디 가서는 신입으로 받아줄 나이도 아니야 쉽게 받아줄 나이가 아니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장에 가서나 할 수 있다고 주변에서 말해.’ 조금 현실적인 얘기들이죠. 그리고 나는 연애에 대한 열망이 되게 큰 사람이라서 오히려 그런 걸 아예 다 배제하고 있고 포기하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그게 다시 찾아왔을 때 ‘진짜 연애하고 싶은데 근데 할 수 있을까? 지금 내 나이에 내 옛날 취향의 애를 만나면 안 돼. 사회적으로 손가락질당해. 물론 그게 쉽지도 않겠지만….’ 여러 가지로 그랬던 것 같아요.


모험가님의 마음이나 기대는 20대 초반에 머물러 있고, 시간은 지났으니까 현실과 부딪히는 면들이 생기셨나 보네요.

그런 게 매우 크죠.


제가 은둔 경험하신 분들을 만나 뵈니까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들을 은연중에나 혹은 직접 표현하시기도 하는데, 모험가님은 어떠셨어요? 외로움이 많이 느껴지셨나요?

여자친구가 없어서 생기는 외로움은 많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자다가 옛날 첫사랑이 꿈에 나온다거나 아니면 뭔가 누군가 미지의 여성과 연애를 했다던가, 뭐 이런 게 올 때는 ‘살 빼야지.’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에 나는 혼자뿐이고 옆에 사람이 있어도 외롭고 하는 근본적인 외로움이나 공허함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사실 그렇게 크게 공감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본성이 긍정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현재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고 남들과도 잘 지낼 수 있는 상태인 거고, 예전에 나는 혼자서만 잘 지내는 아니면 중고등학교 친구들만 곁에 두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가끔 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보다는 자기혐오가 있었어요. 주변에서 나를 어둡고 음침한 사람이라고 평가했거든요. 나는 그냥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거로 생각했거든요. 보통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변화 같은 걸 느끼면서 재미를 느끼는 건데, 저는 아직도 나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는 거에 서투른 사람이라서 그런 거를 요즘 많이 연습하고 있어요. 특히 예쁜 여자나 젊은 여자 앞에서는 더 위축되는 경향이 있어서 요즘 그런 걸 천천히 연습하고 있어요.


그러면 지금 말씀하시는 대로라면 은둔했을 때의 어떤 외로움은 있기는 했지만, 인간 본연의 존재로서 갖는 외로움이라기보다는 이성 관계가 끊어지거나 연애를 갈망하는 데서 오는 그런 외로움이신 건가요?

네, 그런 것도 있고, 그것보다 더 큰 건 자기혐오에요. ‘나는 게으르다, 할 수 있는데 하고 싶지 않다.’였어요.


태생이 긍정적이시고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요소를 어떻게든 찾으시는데, 자기혐오가 있으셨다, 사람들로부터 음침하다는 평가도 받으셨다고 하니까 조금 괴리가 느껴져요.

20대 초반까지는 저는 좀 조용하고 과묵하고 어둡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다 내려놓고 나니까 되게 긍정적인 게 보이는 거예요. 그랬던 것 같아요.


어떻게 자신을 내려놓으셨어요?

사람들에게 경멸 어린 시선을 여러 번 겪다 보면 내려놓게 돼요. 그리고 사람들 피하는 것도 좀 생기는 것 같고, 그리고 제가 은둔을 되게 오래 하면서 친척 집에 안 내려간 지도 되게 오래됐어요. 실제로 저를 초등학교 때 보고 그 이후로 못 본 사촌들이 되게 많아요.


친척 간에도 왕래가 없으셨군요.

부모님은 가도 저는 안 갔으니까. 그리고 부모님도 ‘얘는 좀 이제 아프니까, 혹은 살이 너무 쪘으니까.’ 하면서 어느 순간 포기를 하는 거죠.


20대 전까지는 친척이나 친구 간에 자주 왕래도 하고 소통하면서 지내셨나요?

중학교 이후로 잘 안 갔던 것 같아요. 집안에 큰 행사들이 있잖아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거나 할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되는 건데 전 안 갔어요. 그래서 그런 걸 좀 후회하는 것도 있어요.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외동아들이세요?

누나가 둘 있는데, 둘 다 시집을 굉장히 일찍 갔어요. 제가 살이 찌기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둘 다 시집을 갔어요.


그러면 은둔하던 기간에는 부모님과 모험가님, 이렇게 세 분이 같이 사셨네요.

네.


그 기간에 부모님의 역할이랄까, 모험가님에게 어떤 얘기들을 해주신다거나 도움을 주신 부분이 있으신가 궁금해요.

29살이 되었을 때, 그 나이면 취업할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 어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화를 내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청개구리 기질이 있고 그때는 한참 비틀어져 있던 시절이었어요. 사람이 은둔을 오래 하면 사회성도 떨어지고 충동적으로 되고 좋은 것을 봐도 좋게 생각 못 하고 비뚤어진 성격을 가지게 되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하니까 저는 오히려 더 반항했었죠.

취업하라고 강하게 좀 하셨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 약간의 사소한 다툼이 있게 되고 어머니는 ‘얘는 이렇게 하면 말을 오히려 더 안 듣는다.’를 학습하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얘는 말을 좋게 해줘야 듣는 사람이다.’라는 걸 인식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요. 밥을 안 먹고 라면을 사 와서 그것만 먹는다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유치한 방법으로 나한테는 강하게 얘기하지 않고 좋은 말로 얘기해 달라고 어필했던 거죠. 그 이후에는 어머니가 좀 포기하신 것 같아요. 대체적으로는 어머니는 그냥 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항상 그런 의미에서 저는 부모님을 잘 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금전적으로도 어머니든 아버지든 항상 용돈을 주셨어요. 우리 집이 그렇게 잘 사는 집이 아니고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 건설 현장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분인데 항상 돈을 주셨어요. 남들 앞에서 부족하지 말라고. 근데 나는 그 돈이 힘든 돈인 걸 아니까 과소비를 못 하는 습관이 들어버린 거예요. 오히려 책장에는 돈이 쌓여 있고 은행에는 넣지도 않고…. 내가 이 돈을 막 쓰면 죄를 짓는 것 같았어요. 항상 아껴 쓰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자식에게 아낌이 없으셨던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부모님들은 무시당하고 힘들게 살아오셨으니까 자식만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런 기대가 저한테 사회로 나가는 데 부담이 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넌 잘 살아야 해.’ 뭐 이런 거. 그런데도 그렇게 잘해줬으면 내가 잘해야 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나를 더 싫어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요.


어쩌면 마음 한편으로는 모험가님도 그런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는 한데요.

아버지는 70이 넘으셨는데 아직도 일하세요. 일을 그만하시라고 하는데도 계속하세요. 몸 여기저기가 정말 다 망가졌는데 그나마 타고난 건강이 있어서 버티실 수 있는 건데, 그렇게 혹사를 하시고도, 무릎 망가지고 이빨 다 망가지고 돈도 망가지고 일하다가, 그런데도 아직도 일하시니까 그래서 그만하라고 해도 내가 벌 수 있을 때까지 벌어야 한다고 하세요. 그래서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였던 것 같아요. 내가 아버지 노력에 반만 해도 무조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런 게 있는데 그런데도 아버지랑은 곧잘 부딪혔던 것 같아요. 저희 집안이 전체적으로 다 고집이 세요. 그래서 이성적으로, 세대 차이 있는 부분에서, 타협이 안 되는 부분에서는 서로 막 싸우는 거예요.

아버지는 자식이 나한테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하는 거고, 나는 아버지를 약간 좀 고지식하거나 꼰대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정말 사소한 거로 싸움이 크게 벌어져서, 대화로 심한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아빠로 가슴에는 대못이 박혔을 거예요. 지금은 잘 지내요.


가족 간에 갈등이 있을 때 부모님이나 모험가님 각자의 뜻을 서로 굽히지 않고 말하자면 대화를 좀 세게 하셨네요. 그래도 아버님, 어머니는 되게 선하고 긍정적인 분이라고 표현하셨고 아버지에 대해서도 존경한다고 얘기하시고,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 아버지와 좋은 관계로 지내시는 것 같아서 좋아 보여요.

실제로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셨어요.


모험가님은 예전에 부모님과의 갈등이나 안 좋았던 관계들이 계속 이어지지 않으셨어요.

은둔할 때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사람은 가족이니까 그 은둔의 과정에서 가족들 간에 겪는 갈등이 이후에 은둔 경험이 끝난 이후에도 관계의 어려움으로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모험가님은 그런 문제들은 없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죠. 대부분의 은둔하는 분들은 가족 문제가 정말 많고 저보다 훨씬 심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좋은 상태일 수 있는 거는 부모님의 역할인 거죠.


부모님들이 좋은 분이시고 긍정적인 성격을 물려주셨고, 모험가님도 타고난 긍정성을 잃지 않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지금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되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길고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모험가님에게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늘 꿈꿔왔던 소중한 일상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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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도전



좋은 소비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좋은 소비요?

지금까지 항상 아끼고 살았잖아요. 근데 많이 좋아지고 나서 용돈을 나 스스로 벌고 은둔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이후에 산책 모임에서 어떤 친구가 신라 호텔에 망고 빙수를 먹으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빙수 하나에 8만 4천 원이래요. 그럼 둘이서 먹으면 4만 얼마잖아요. 옛날에 나라면 못할 선택이었겠는데 ‘이제 나도 그런 걸 해보자, 올해는 새로운 걸 많이 해보는 해다.’ 하면서 갔어요. 실제로 굉장히 실내장식도 좋고 앞에서 직접 피아노를 쳐주고 이랬는데 그런 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랑 오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쓴 돈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네, 때로는 돈을 쓰는 것도 필요하다, 쓸 때는 잘 써야 한다는 거네요.


네, 그런 거예요. 부자들은 돈으로 경험을 사잖아요. 시간이나 그런 것에 대한 의미를 좀 배웠던 것 같아요.


모험가 같으세요. 요즘 MZ세대들은 나중을 위해서 아끼고 절약하기보다는 지금, 오늘이 즐겁고 행복하기 위한 선택들을 많이 한다고 하잖아요. 경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뜻깊은 경험을 위해서 충분히 돈도 시간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또 그런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내 수명이 남들보다 평균적으로 짧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걸 너무 못하고 살았어요. 너무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았어요. 그 조금의 용기를 못 내서 지금이라도 이런 걸 투자해서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를 위해서.


그 정도로 좋은 경험이셨군요. 모험가님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모험가님을 있게 한 자극이나 동기 부여가 된 것 같기도 한데요. 이제는 은둔의 경험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시고, 그 과정을 헤쳐나가는 그 과정도 물론 어려움이 있으셨겠지만, 지금 얘기하시는 모습을 봤을 때는 무난하게 정말 잘 넘어오셨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지 못한 다른 은둔 고립 청년들, 모험가님처럼 긍정성도, 인적 네트워크도 없거나 부족한 분들도 많으실 것 같은데요.


맞아요. 맞아요.


그런 분들이 은둔을 끝내고 세상 밖으로 나오시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본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이나 세상에 나가기 위해서 주변에서 좀 도와줄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있다면요?

가장 핵심은 자기 자신한테 한 약속을 지키는 거예요. 지키지 못해도 괜찮아요. 계속 다시 하면 돼요. 될 때까지. 한 번만 해봐도 괜찮아요. 계속 천천히 늘려가면 되니까. 뭐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해도 상관없어요. 계속한다는 게 중요한 거고, 실패해도 나가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몇 번 다시 실수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지금 당장 하라고 하긴 힘들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영역에서 시작해야 해요. 자기가 흥미 있고 좋아하는 거.


일단 약속을 먼저 해야겠네요.


하나하나 약속을 지킬 때마다 자신이 조금씩 커져요. 맨 처음에는 ‘나는 안 돼, 나는 못 믿어, 나는 못 해.’ 였다가, ‘이번엔 했네, 이번에 좀 더 했네,’ 이렇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은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 이렇게 하다가 좀 더 가면 ‘나 생각보다 괜찮네.’ 이렇게 계속 키워나가다 보면 나를 사랑한다고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 자신과 어떤 약속을 할 수 있을까요?

저의 경우는 살 빼는 거였죠. 내가 운동을 하는 거, 아침에 일어나는 거, 그리고 되게 중요한 건데 씻는 거,

네네.


그리고 이불을 개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워요. 그것도 하라고 하고 싶은데 그건 나중에 해도 괜찮아요. 씻는 거랑 좋은 향기가 나는 거, 머리 자르는 거 그거는 최소한의 자기를 관리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몸이 정신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내가 쓰레기 같은 환경에서 쓰레기같이 막 이렇게 하고 있으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너무 힘들어요. 씻고 나서 좀 개운해지고 머리도 좀 자르고 단정해지면 훨씬 더 뭔가를 하기가 수월해요. 창문 열고 환기시키고.


반복되는 일상이네요.

햇빛 보는 거 진짜 중요해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하루에 그냥 잠깐이라도 5분, 10분이라도 햇빛 받으면 훨씬 컨디션 좋아지거든요. 그러다가 창문도 열어보는 거고 바람도 쐬고 그러다가 가끔 나갈 수도 있는 거고. 저 같은 경우에는 저 자신과의 약속은 살을 빼는 거였고 이불을 개는 거였고 하루에 한 번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는 거, 양치질하는 거였어요.


 

나와의 약속, 살을 빼기 위해 걷고 또 걸었던 석촌호수 둘레길, 나를 깨워가는 시간이 가득한 곳이다


결국, 일상속에서 자기 자신을 가꾸고 돌보는 것들이네요.

네, 그런 것들이에요. 하다못해 향초 이런 거 하나 방안에 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향에 되게 민감한 사람이거든요. 담배 냄새, 차 냄새 되게 싫어하고 좋은 향 나면 기분 좋고, 보들보들하고 차갑고 시원한 좋은 이불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좀 좋아요.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걸 개선하는 게 되게 정서에 좋은 것 같아요.


감각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네요. 몸이 마음에 영향을 준다고 하시기도 했지만, 몸이 둔해지면 감각적으로도 그 느끼기 어렵잖아요. 둔감해지잖아요.


정신이 망가지면서 몸이 망가지고 그 망가진 몸은 이제 더 몸을 망가뜨리고, 악순환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둘 중 하나를 좋게 하면 선순환으로 계속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굉장히 사소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약속을 조금씩 해나가는 거예요.


스스로 할 수 있는 그런 약속이나 다짐들은 그런 것들이 있고, 그리고 주변에서 줄 수 있는 도움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해낼 힘이 없으면 본인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한테 주고 그거를 누군가가 좀 이끌어주기를 요청하면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어요. 내가 만약에 만화를 좋아하면 같이 보러 가자고 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가는 길에 가볍게 공원에서 산책할 수도 있는 거죠. 자신의 욕구를 일깨우는 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욕구를 산책하면서 사람을 관찰하는 데서 얻었고 또 내가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사람들을 사랑스럽게 느꼈던 적도 있는 거죠.


모험가님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많으시죠?

그럼요. 저는 잘할 수 있습니다. 행복할 거고.


앞으로 계획이 가득하실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해놓지 않았지만 버킷리스트 같은 것은 많이 적어놨어요.


버킷리스트 중 몇 가지 소개해 주실 거 있으세요?

일단 제일 하고 싶은 거는 여자친구를 만나는 거예요. 여자친구랑 장을 보고 소풍하러 가고 그리고 음식을 같이 하고 얘기하는 거, 밤새 얘기하는 거, 뭐 그런 거예요. 가끔 내가 힘들 때 여자친구가 와서 안아주는 거, 경험적인 걸로 말하자면 스노클링 같은 걸 해보던가 해외여행을 한다든가 캐리비안 베이를 가본다든지 하는 거요. 아직 한 번도 못 가봤거든요.


한때 유행했던 인생네컷,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뭔가 해보고 싶어요. 왜냐면 그런 거는 절대 집에서 할 수 없는 경험들이니까, 근데 제일 제가 원하는 건 그냥 일상을 나누고 행복하게 보내는 거, 결국 그런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말씀하신 버킷리스트 하나하나 이루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연말 안에 또는 내년이라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꿈은 사회 활동가로서 경험을 쌓고 창업을 하는 거요.


창업은 어떤 내용으로 하실 계획이신가요?

은둔형 외톨이들을 지원하는 쪽으로요. 그리고 개인적인 목표는 여자친구 만드는 거,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그게 제일 큰 동기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니까 나아가서 안정적인 화목한 가정 이루고 싶어요. 젊었을 때 좀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어요. 왜냐면 저희 어머니 아버지는 비교적 나이대가 좀 있으신 분이었고 그래서 저는 젊은 아빠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이미 늦어버렸지만 지금이라도….


삶의 목표가 분명하시고 기대감도 있으시니까 그게 이제 사그라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시는 이상, 지금의 페이스를 잘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가실 것 같네요.






(3편에 이어서)







interviewer_써니 |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

약 15년 동안 사회복지사로 아동, 청소년, 청년들,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왔습니다. 자립의 문턱앞에서 머뭇거리거나 행여 문턱을 넘었더라도 쉽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섞이기 힘들어하며 고립과 은둔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러 청년들을 보며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 외로움에 관해서 함께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와 두 번째 책 준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sunnyokay79@gmail.com

 



* 은둔 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dudug@theseed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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