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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15: 세계(3)



나의 외로움은...

힘들지만, 버티며 살아온 나의 세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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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어렸을 때부터 살아오면서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그중 힘들었던 기억들과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 관해서 이야기하셨는데요. 세계님이 버티며 살아왔다고 하셨던 그 시간과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해주셨어요. 그리고 10여 년간 해오고 계시는 상담ㆍ치료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계님과 어머니가 힘든 일상을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계님은 고립과 은둔의 경험에 대해서 다른 사람과 좀 다른 기준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중에 또 외로움의 문제는 세계님에게도 떼놓으려야 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세계님의 외로움은 어떤 것이었는지 듣고 싶어요.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는데 사실 말로 표현하기에 너무 복잡한 부분이어서….

이게 좀 여러 가지가 얽혀 있는데 얽혀 있는 부분을 하나씩 얘기를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일단 그 외로움이라는 문제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고, ‘나는 너무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고 싶어.’ 이런 부분이 아니에요. 저의 외로움에는 ‘괴로움, 두려움, 위기감’ 이런 것들이 좀 섞여 있어요.


일단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울 때가 있고, 그리고 이제 제일 큰 문제는 나중에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 혼자서 살아가게 될 날이 올 거 아니에요. 내가 어떤 큰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전혀 없다. 그 부분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는 고민과 두려움이 있어요. 사실 전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하고 살았어요. 근데 언제 이런 걸 생각하기 시작했냐면, 작년 4월에 지하철 계단으로 열차를 잡으려고 계단을 아주 급하게 뛰어 내려가다가 굴렀는데 너무 심하게 굴렀어요.


계단에서요?


네, 계단에 완충이 돼 있는데도 심하게 굴렀어요. 결국, 정신을 차려보니까 오른손 손목이 부러졌더라고요.


크게 다치셨네요.


네, 그래서 119가 와서 가까운 동네 병원에다 저를 데려다 줬는데, 거기는 신뢰를 할 수 없는 분위기, 그다지 시술 능력이 좋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병원이 작은 규모라 치료에 대해 신뢰하기가 어려우셨나 봐요.


네, 그리고 코로나 상황이라서 보호자가 없는 상태에서 저 혼자 수술 해야 한다고 하니 이건 진짜 아니다 싶어서 병원에서 나왔어요. 부러진 손목을 부여잡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병원으로 안 가시고요?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집으로 들어왔는데 아버지가 제 손목이 부러졌다는 얘기를 듣고 급하게 회사에서 돌아왔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그냥 울며 불며 막 거의 발광하듯이, ‘내 손목 부러졌는데 이거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막 난리를 쳤더니, 아버지가 조용히 어딘가에 전화하더라고요. 전화 내용을 들어보니까 전에 근무했던 직장에 친한 부하 직원한테 ‘우리 동네에서 좀 가깝고 시설도 좋은 괜찮은 수술을 잘하는 병원이 어디 있는지 좀 알아봐 달라. 부탁한다, 내 아들이 다쳤다.’ 이렇게 연락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직원분이 추천해 준 병원이 강서구에 있는 이대 서울병원이었어요. 새로 지은 병원이고 집에서도 가깝고 하니까 바로 직행해서 거기서 수술을 받았어요.


네, 좋은 병원을 추천 받으셔서 다행이네요.


근데 거기서 바로 수술이 되는 건 아니었어요. 시설도 좋고 보호자 동반도 시켜줬지만 바로 되는 건 아니어서 거기서 하루를 기다려야 했어요. 그래서 실제로는 손목 부러진 지 24시간 거의 지나서 수술을 받은 거죠.


손목에 있는 상처를 보면 과거의 아픔보다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하루 동안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끔찍했죠. 다행히 수술은 잘 됐는데, 원래는 1시간이면 끝나는 수술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놓고 깨어나 보니까 3시간 지나 있더라고요. 의사 선생님이 얘기하기를 뼈가 수술하기 어려운 형태로 깨지듯이 부러져서 수술에 조금 시간이 더 걸렸다고 얘기를 하시면서 그렇지만 경과는 좋다고 하셨어요. 그 이후로 재활을 하면서 많이 걱정됐죠. ‘혼자 살면 다칠 때가 제일 문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면….


혼자 사는데 크게 다치면 이거는 진짜 문제구나, 아픈 것도 힘든데 이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재활을 도와주고 간호해 줄 사람도 필요하죠. 병원 정보가 부족하니까 알아봐 줄 사람도 필요하죠. 이런 게 다 인적 네트워크란 말이죠. ‘지금까지는 이걸 부모가 해줬는데 부모가 이제 돌아가시고 없으면 난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고 어떻게 위급 상황에서 대처하지?’라는 생각을 하니까 이제 그때부터 이제 아찔해지는 거죠. 그게 작년의 일이었어요. 그때부터 이제 ‘계속 고립돼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작년 4월 14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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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날짜까지 기억하시네요? 그 일 이후로 고립, 외로움,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게 되셨네요.


세계님은 외로움 안에 괴로움도 있고 지금처럼 되게 위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좀 막막함이나 걱정스러움도 가지고 계시는 것 같아요. 그러면 단순하지 않은 이 외로움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하면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뚜렷한 해결책은 못 찾았어요.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그 시도 중 하나가 바로 씨즈 쪽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고, 상담하고 미노루 선생님을 만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알게 된 것? 이게 제 나름의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괜찮은 시도였던 것 같으세요?


어떤 면에서는 성공적이었고 또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까지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네,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 채워야 할 필요가 있으시잖아요. 또 다른 시도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으신지 궁금해요.


사실 그 부분을 얘기하려면 더 개인적인 얘기로 또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좀 제가 좀 밝히기가 싫은 부분이기도 한데, 이왕 다 오픈을 하기로 했으니까 밝히자면…. (숨을 고르며)


혹시 너무 힘들어서 하기가 좀 어렵다 생각하시면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아니에요. 얘기할 수 있어요. 사실 이게 수많은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얘기지만 저한테는 조금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네, 그럴 수 있죠. 어떤 것이든 세계님이 편한 대로 말씀을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10월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이번 10월 2일부터요.


얼마 안 되셨네요.


네, 그러니까 이게 누가 끌고 간 게 아니고 제가 먼저 연락을 했어요. 다니고 싶다고.


학교 다닐 때도 교회에 가셔서 좀 긍정적인 그런 경험을 하셨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나요.


네, 제 발로 교회를 찾아간 게 이번이 두 번째에요. 그리고 거의 24년 만이네요.


정말 긴 시간을 지나서 다시 또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셨네요.


저는 두 번 다시 이렇게 할 거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어요?


다소 충동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뭔가 가야 할 것 같은, 그런 게 좀 있었어요. 제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우리나라 3대 메이저 종교를 다 경험해 본 사람’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사실 농담도 아니고 진담이죠.


불교, 가톨릭, 기독교, 이렇게 3대 종교요?


네, 제가 유심히 관찰해본 바로는 어떤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라는 부분하고 또 친절하게 그냥 좀 잘 대해준다는 부분하고 어떤 사교성을 키울 수 있다는 부분,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따져볼 때, 이런 부분이 개신교 쪽에 강점이 좀 있더라고요. 그게 저한테 결핍된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거기(교회)를 다녀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울에 한 집 건너 다 교회지만 우리 동네는 특히 교회가 밀집된 구역이라고 뉴스에 소개될 정도더라고요. 진짜로 많거든요. 저희 지하철역에 내려서 쭉 걷다 보면 전도지 뿌리는 사람도 많아요.


많은 교회 중에 어디를 선택하셨어요?


충동적으로 선택했어요. 제가 보관하고 있는 화장지에 000권사라는 사람의 이름이랑 전화번호가 쓰여있더라고요. 그래서 앞뒤 가리지 않고….


전화하셨군요?


문자를 보냈어요. 그랬더니 1분 후에 바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10월 초부터 교회에 다니게 됐어요. 그게 9월 말이었으니까, 선생님이랑 첫 인터뷰를 하고 바로 다음 날이네요.

이 얘기는 처음 하는 얘기인데, 사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얘기일 수 있는데 저한텐 의미도 크고 말하기도 조금 쑥스러웠어요.


네, 그래도 쉬운 결정 아니셨을 것 같아요. 오랜만에 교회에 가신 건데 어떠셨어요?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러셨어요?


근데 아직은 24년 전처럼 뭔가 확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은 안 드네요.


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다녀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뭐랄까, 거기서 친절하게 대해줘서 안도감도 느끼고 여러 가지 좋은 피드백도 받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회의감 같은 게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굉장히 복잡한 감정을 느끼죠. 따뜻한 환대에 감사함과 좋은 피드백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자꾸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와요. ‘이거 믿는다고 뭘 달라지겠나?’ 하는….


아무쪼록 지금 기대하시는 것들이 많이 충족되는 그런 좋은 경험이었으면 좋겠어요. 세계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감사합니다.


어쨌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뭔가 탈피해보고자 하고 바꿔보고자 하는 것을 세계님 스스로 노력하고 계시니까 반가운 소식인 것 같아요. 그런데도 외로움의 문제가 여전히 있고 또 앞으로도 어쩌면 계속 겪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잖아요.


아마 평생 달고 살 거예요.


그런데 외로움은 사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이기는 할 것 같아요. 각기 자기의 외로움이 다를 뿐이죠. 외로움은 불쑥불쑥 찾아오기도 하고 사람들하고 섞여 있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더라고요.


그럼요. 왜냐하면, 자기랑 마음에 맞고 좋은 관계인 사람들이랑 섞여 있을 때 비로소 일체감이라는 게 느껴지는 거지,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100명이 있어도 다 싫고 안 맞는 사람뿐이라고 하면 정말 외롭죠.


맞아요. 그래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외로움이지만 세계님의 외로움은 어떤 모습일까? 또는 지금까지 어떤 영향을 받으셨을까? 외로움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다루어 나가실까 궁금했어요. 고립의 경험이 있으신 분들에게 외로움이 큰 의미가 있더라고요. 

지난번에 가족의 이야기를 잠깐 나누다가 말았었는데 가족 안에서도 외로움을 많이 느끼세요?


외로움이라는 표현보다는 답답함이…. 가끔은 짜증이 나기도 해요.


대화가 안 되는 문제들 때문에 그러실까요?


아무래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었는데 계속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끼세요?


그렇게 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또 최근에 제가 아버지한테 불쾌함을 느끼는 게 있어요.


그 부분 때문에 약간 정체된 것처럼 느끼시나 봐요. 불편함에 대해서는 좀 해소할 방법이 없으신가요?


일단 제가 아버지랑 터놓고 많은 얘기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대화를 피하는 스타일이에요. 아버지랑 대화하면서 누적된 많은 실망감이 쌓여서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가 좀 어려운 문제이긴 해요.


앙금 같은 게 있으신가 봐요


저는 되게 깊죠. 아버지하고 저하고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을 하면 이해가 될까 생각해봤는데요. 대화 중에 척하면 척하고 딱 통하는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척하면 척’을 한 번도 못 느껴본 거예요. ‘착착 맞네’, 하는 걸 대화하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세계님이 말씀하시는 거에 대해서 아버지께서 충분히 이해하신다는 느낌이 안 드시나 봐요.


원래 아버지 성격이 자기 말만 하기 좋아하고 으스대기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많이 아팠죠.


부모님과 자식은 아주 가까운 사이잖아요. 그런데 그 관계 속에 답답함이 계속 있다고 하면 굉장히 힘든 일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가깝고 가장 친밀해야 하는 관계가 어떻게 보면 좀 피하고 싶은 관계가 되니까 좀 괴로울 수도 있고요. 어머니하고는 좀 잘 통하시나요?


어머니하고는 잘 지내요. 저하고 어머니랑 사이가 좋고 어머니랑 아버지랑 사이가 좋은데 저하고 아버지는 뭔가 틀어져 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중간에서 중재를 많이 하세요.


어머니의 역할이 되게 중요하시네요. 아들하고 아버지의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부단히 애를 많이 쓰실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애쓰시죠.


어머니께서 어떤 노력을 해오셨어요?


제 입장을 아버지한테 전달하고 아버지의 입장을 저한테 전달하고 양쪽을 오가면서 전달자의 역할을 하셨죠.


특별한 갈등 상황이 있으셨나요?


문제를 크게 만드는 건 다 원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최대한 조심하면서 지내려고 애는 쓰는데 워낙 기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의사소통도 잘 안 되고 하니까, 속에 쌓이는 게 계속 있어요. 자연스럽게 아버지랑 밥을 같이 안 먹기 시작했어요. 같이 먹으면 아버지가 제 감정을 건드리는 소리를 꼭 하거든요. 근데 그게 잔소리는 아니에요. 그런 직접적인 잔소리면 전 폭발했겠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아버지가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데 그 말이 거슬리는 게 있는 거죠. 밥 먹으면서 그렇게 반응이 나오면 비위가 상하니까.


편하게 식사하기가 어려운 상황을 부딪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피하기도하시나 봐요.


제일 최근에 있던 일을 예로 들자면, 제가 제2 외국어 공부를 좀 해보려고 독일어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한 4~5년 전 쯤. 독일어 강의를 들으면서 배운 내용을 밥 먹다가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아버지한테 얘기했어요. 독일어는 이러이러한 특징이 있고 한국어랑 비교했을 때 이러저러한 특징이 있다고 얘기를 했죠. 그런데 아버지가 가만히 듣고 있더니, 자기 학교 친구 중에 독일에 건너가서 몇십 년째 교포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친구 말로는 독일인들이 동양인한테 냉정하고, 차갑고 겉으로만 예의 바른 척하지 실제로는 약간 인종차별적인 경향도 있다고 하더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제가 이제 수많은 제2 외국어가 있는데 독일어를 선택한 이유는 뭐겠어요?

물론 영어를 전공했으니까 영어랑 문법이 제일 비슷한 언어라서 한 것도 있지만 독일에 호감이 있으니까 독일어를 배우려고 하는 거겠죠. 나름 독일에 대해서 호감이 있어서 강의 신청도 하고 공부하면서 얘기를 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뭐 그딴 반응인 거죠.

처음에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이도 없고, ‘나보고 공부하지 말라는 얘기인가?’ 생각도 들고 도대체 그런 말을 하는 의중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경우가 많았거든요.


네, 답답하셨겠어요.


늘 답답하죠.


아버지가 그런 반응을 보이시면 어떠세요? 괜히 얘기했나 그런 마음이 드시나요?


괜히 얘기했다 싶고 앞으로 대화하지 말아야겠다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게 쌓이고 쌓여서 이제 같이 밥을 안 먹는 거죠.


그냥 말문이 딱 막혀버리셨군요.


말문이 막히죠. A라는 반응을 기대하고 얘기를 했더니 B나 C까지만 나오면은 그래도 수긍을 하겠는데 이건 X, Y, Z가 나오니까 완전히 삼천포로 빠지는 얘기잖아요.


만약에 지금과 같은 그런 경우에 어머니는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실제로 그 자리에는 어머니가 밥을 같이 안 드셨지만, 나중에 제 얘기를 듣고서 어머니가 같이 속상해하시더라고요. 그건 정말 기본 개념도 없는 반응이라고.


그래도 어머니는 세계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시고 공감하고 반응해 주시는 것 같아요.


저희 엄마는 좋아요. 엄마는 정말 좋고, 엄마같이 좋은 사람이 곁에 없었으면…. 그러면 진작 죽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세계님에게 어머니는 중요한 분이시군요.

제가 지난번에 드린 질문 중에 지금까지의 시간을 버티게 해준 힘이 되었던 무언가, 혹은 누군가 있으시냐고 여쭤봤을 때 별로 그런 게 없다고 답하셨거든요. 지금 다시 질문을 드린다면 세계님의 지금까지 인생에서 힘이 되었던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 어머니죠.


어머니는 세계님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분이시고 지금도 여전히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그런 관계시네요. 어머니 외에 두 번째로 그렇게 꼽을 사람이 있으신가요? 내 인생에서 힘이 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라고 하면?


현재 기준으로 따지면 제 상담사 선생님이요.


상담 선생님이 들으셨으면 엄청나게 기분 좋으실 것 같아요. 지난번에도 상담 선생님에 대해서 공감 능력이 되게 탁월하고 잘 호응해주시고 힘이 많이 되신다고 했는데, 그럼 어머니와 지금의 상담 선생님, 그렇게 두 분이시네요.


현재는 그렇죠.


혹시 그러면 앞으로는 좀 그런 사람이 더 많이 생길 것 같다는 기대가 좀 있으신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어요. 확신이 모 아니면 도일 것 같아요. 더 많이 생길 수도 있고 더 줄어들 수도 있고 어느 길일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약간 기로에 있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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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힘을 내!




그래도 24년 만에 교회에도 다시 발을 딛게 되셨으니까, 세 번째, 네 번째 좋은 분을 또 만나시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형태지만 은둔과 고립을 경험했던 한 사람으로서,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현재 그런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그렇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한다면, 지금 세상의 흐름이 그리고 전 세계의 트렌드가 고립과 은둔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우호적이고 유리한 트렌드로 바뀌고 있으니까 ‘조금 더 힘을 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이걸 뒷받침할 근거는 엄청 많죠. 지금 다들 결혼 안 하고, 다들 개인화된 분위기고 비대면이 일상화된 분위기고요.


네, 팬데믹 이후에 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지금 좋은 스펙을 가지고 좋은 회사에 입사한 사람들한테도 ‘조용한 퇴사’라는 그런 흐름이 불 정도로. 기존의 조직 문화에 대한 저항이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죠. 근데 이 조용한 퇴사라는 게 저는 우리나라 MZ 세대들에게만 있는 줄 알았더니 전 세계적이더라고요.


맞아요. 일본도 그런 분위기에요.


미국도 그렇고요. 지금의 이런 길을 가고 있는 청년들이 한 90년대에만 하더라도 엄청 힘들었을 거예요. 근데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조금 더 용기를 내도 되지 않을까, 조금 더 자기 자신한테 당당해져도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하신 얘기가 세계님에게도 해당하는 거죠?


저한테도 해당하는…. 거겠죠?


왠지 스스로 힘을 내보자 하는 어떤 다짐의 이야기처럼 들렸어요.


세상이 많이 달라졌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좀 더 다양해진 느낌이 있고 각자의 삶의 방식을 인정해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살 수도 있고, 저렇게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인정이요. 그리고 반드시 누가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내가 나에게 가장 좋은 걸 선택하면 된다.’는 흐름이 생기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세상의 흐름이 어떤 부분은 되게 어지럽고 엉망진창인 흐름으로 가면서, 어떤 부분은 굉장히 바람직하고 올바르게 가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두 가지가 같이 진행이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너무 거창한 얘기긴 하지만 전쟁이라든지 환경오염이라든지 잔혹한 범죄라든지 이런 것들은 불안정하고 안 좋은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되고,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기존의 획일적인 조직 문화는 이제 아니다, 바뀌어야 한다는 식으로 가는 건 바람직한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저도 공감해요. 아까 말씀하신 엉망으로 좀 흐르고 있는 것 중에서는 뭔가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사회 문제로 발전되는 그런 현상들을 보면서 염려스럽기도 해요.


그러니까요. 뉴스 보기가 때로는 겁날 때가 있더라고요. 전 그런 지가 몇 년 됐어요.


맞아요. 그런데도 세상이 엉망으로 가든 올바르게 가든 또 살기는 살아야 하잖아요. 삶은 계속돼야 하잖아요. 그래서 때로는 그 괴로움과 그 괴리감 때문에 괴로운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와 방향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거지 답을 잘 모르겠고 누구한테 물어본다고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니까 결국 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건데.


어떻게 답을 찾아가야 할까요?


정말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긴 해요. 그래도 한 가지 큰 위안이 되는 소식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성공했다고 평가받고 좋은 스펙을 쌓은 사람들조차도 과거처럼 ‘난 참 잘 살고 성공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못한 세상이 되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지금 같은 처절한 무한 경쟁 사회에서 그 무한 경쟁의 길을 뚫고 뭔가를 취득한 사람들조차도 내면은 뭔가 공허하고 불행하다고 끊임없이 말하는 게 지금 증명되고 있고, 이 사회의 흐름이기도 하죠. 어떤 면에서는 지금의 청년들한테 위안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역설적인 위안, 역설적인 위로네요.


그래서 지금 고립의 길로 가고 있는 청년들이 자기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 세상은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그 나름대로 불행하다고 느끼기도 하거든요. 각자의 불행이 다 있으니까 자기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할 필요 없고, 단지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준비는 천천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게 제가 그분들한테 해드리고 싶은 말이에요.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어쩌면 ‘앞으로 나는 이렇게 살겠다,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또는 ‘우리 그냥 현실은 좀 힘들고 막막한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 우리는 좀 이렇게 견뎌보자, 나름의 돌파구도 찾고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말자. 대신에 사람들하고 어느 정도 연결될 수 있는 연결고리들은 조금씩은 마련해 두고 그렇게 살면 그 나름의 삶도 괜찮은 삶이다.’라는 말씀으로 들었어요.


정리를 너무 잘해 주셨어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은 갈수록 개인화되고 다양성이 인정받는 시대지만, 초연결 사회이기도 하잖아요.


그렇죠.


누군가와 계속 연결되고 싶고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되게 아이러니한 것 같아요.


혼자 있고 싶고 독립적으로 되고 싶지만, 그렇지만 또 끊임없이 연결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날이 갈수록 수그러들지 않는 것 같거든요.


맞아요. 되게 기이한 현상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인터넷에 글들이 그렇게 엄청나게 넘쳐나는가 봐요. 메신저 단톡방, SNS. 인터넷에서 글이 폭발하는 이유가 결국 일상생활에서의 연결이 끊어진 것을 거기에서 풀려고 다들 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되게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이 생겨나는 것 같고 그래서 유튜브라든지 SNS와 같은 플랫폼이 계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죠.


아마 안 수그러들 거예요. 말씀하신 대로 지금 약간 이중적으로 가고 있거든요. 한쪽에서는 더 개인화된 삶을 추구하지만, 한쪽에서는 또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하고 이러다 보니까, 결국 오프라인에서는 끊어지는 쪽으로 가는 대신 온라인에서는 연결되는 쪽으로 가는 상황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분리되면서 연결되고 연결되면서 또 떨어져 있는 그런 것 같아요. 혹시 세계 님은 그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신지, 교회에 가신다는 얘기를 하셨고, 또 다른 커뮤니티 활동을 하시나요?


제가 옛날에 블로그를 한 5년 했어요. 제 닉네임도 거기서 시작됐어요. 원래는 다른 세계라고 했는데 처음 이제 씨즈 모임에 갔더니 거기서 분위기가 닉네임을 두 글자로 줄여서 말하는 분위기더라고요. 그럼 나는 ‘다른 세계’에서 ‘세계’로 바꾸게 된 거죠.


블로그에는 주로 어떤 글들 쓰셨어요?


처음에는 팝송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린킨 파크의 음악을 올렸는데 사람들이 감상하러 많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블로그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다가 이제는 음악만 올리는 건 좀 재미가 없는 것 같아서 다른 주제로 글쓰기를 확장하기 시작했어요. 영화 리뷰도 쓰고 책 감상평도 쓰고, 일상이라고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 놓고 실제로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 자유롭게 쓰는 것도 만들었어요. 그렇게 한 5년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어느 순간 쓸 것도 다 바닥나고 음원은 올리면 차단되고 하니 더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서 그냥 초기화를 해버렸어요. 처음에는 후회를 안 했어요. 오랫동안 후회하지 않았는데 올해부터 엄청 후회되더라고요. 왜냐하면, 처음에 후회를 안 했던 이유는 그 5년간의 세월이 즐겁기도 했지만 질린 것도 많았어요. 왜냐면 이제 리액션이 칭찬이 90이라면 10 정도는 악플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저는 90 이상의 칭찬이나 찬사보다는 결국 10도 안 되는 악플, 모욕이 머리에 박히는 스타일이었고, 그때만 해도 그게 되게 심했어요. 처음에는 없애길 잘했다, 시원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올해 들어서 뉴스에서 네이버 블로그가 제2의 전성기라고 하는 거예요. 경쟁 블로그는 다 없어지고 네이버 혼자 블로그를 유지하면서 독야청청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거예요. 저도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했거든요. 또 그때는 그런 시스템이 없었는데 이제는 네이버도 포스팅을 잘하면 조금씩 돈이 들어온다고 하니까요.


그냥 유지하기만 하셨어도 좋았을 텐데요.


그러니까 비공개로 했으면 될 텐데…. 굳이 초기화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후회가 됐어요.


다시 시작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그게 초기화를 한 번 했더니 제 아이디가 좀 찍혔어요.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글을 써도 글이 안 올라가는 거예요. 제가 시도를 안 해본 게 아니거든요. 상위 페이지에 노출이 안 돼서 그냥 포기했어요.


그래도 꾸준하게 콘텐츠를 쌓아가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죠. 그러면 되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니까. 이전에 조회 수가 대박을 찍은 경험이 있어서 다시 그것보다 더 오랫동안에 밟아 나가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러시군요.


쑥스럽네요.


저는 세계님한테 되게 좋은 소스가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도 좋아하시고 책도 꾸준히 읽고 계신다고 하시니까요. 책 리뷰, 영화 리뷰를 꾸준히 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충분히 좋은 콘텐츠가 될 것 같아요.


막상 실천이 어렵더라고요. 새로운 아이디라도 파서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하긴 해봐야 하겠는데….


무엇이 됐든 세계님의 강점과 좋아하고 잘하시는 경험을 활동으로도 잘 연결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블로그 활동도 다시 시작하시면 좋을 것 같고요. 응원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블로그에 얽힌 재밌는 경험도 들었고 세계님이 다른 분들에게 해주시는 당부의 말씀은 세계님의 다짐처럼 들리기도 해서 좋았어요. 그동안보다 더 편해지신 것 같아서 그것도 좋았고요. 그리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라도 교회에 가고 사람들하고 만나면서 스스로 세상을 향한 하나의 문을 여신 것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계속 외출도 하고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상담 치료도 하셨지만 뭔가 세계님만의 세계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문을 다시 또 여신 것 같아서 그 부분도 반가웠어요. 오늘 어떠셨어요?


저도 너무 좋았어요. 오늘은 조금 더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참 좋았어요. 미리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주제(외로움)에 대해서도 사실 고민이 많아서 오늘 말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얘기하니까 술술 얘기할 수 있게 되고 상당히 편안하고 좋았어요.


오늘도 좋은 대화 나누게 돼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4편에 이어서)







interviewer_써니 |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

약 15년 동안 사회복지사로 아동, 청소년, 청년들,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왔습니다. 자립의 문턱앞에서 머뭇거리거나 행여 문턱을 넘었더라도 쉽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섞이기 힘들어하며 고립과 은둔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러 청년들을 보며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의 고립과 은둔, 외로움에 관해서 함께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와 두 번째 책 준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sunnyokay79@gmail.com





* 은둔 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dudug@theseed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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