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13: 연희(3)

둥둥
2022-08-24
조회수 81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던데

이미 망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한평생 놀면서 살아가고 싶은 연희의 이야기 (2)






자퇴 이후 이모저모



그렇게 학교를 나와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된 이후, 바로 은둔이 시작되었던 걸까요?

아뇨. 극단적으로 완전히 외출이 없는 은둔은 20살 즈음부터 시작되었어요.


자퇴 이후에, 자퇴할 적 계획 중 아르바이트가 있었으니 계획대로 일을 구했었는데요. 개인 레스토랑에서 첫 알바를 할 적에, 일하는 게 너무나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끔찍하리만치 힘들었어요.
겨우겨우 한 달을 딱 채우자마자 바로 관두고 나서, 한동안 일할 엄두를 도무지 못 냈었었죠.

그래서 한동안 집에 박혀있는 생활이 지속되다가, 집에서 쫓겨나게 되는데요.
제 부모는 원래 저희 가정을 말할 때 ‘우리 집’이 아니라 ‘내 집’이라고 표현했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살 거면 내 집에서 나가! 난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다!’ 하면서 내쫓겼던 거예요.


그렇게 18살 때 집을 나와서 고시원에 약 세 달 정도 살게 되었답니다.

고시원에서 사는 동안 백화점에서 일을 했었어요. 그때도 일이 엄청 힘들고 고되긴 했는데 일단 그건 둘째고, 중요한 건 일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야말로 일-잠-일-잠-일-잠...만으로 구성된 일상을 보냈었죠. 한 달에 4~6일 정도 있던 쉬는 날만이 숨쉬는 날이었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돈을 벌어도 혼자 살아가면서 남는 돈이 거의 없는 거예요. 당시엔 시급도 지금보다 훨씬 낮았었다 보니.
그래서 자금난으로 오래 버티지는 못하고 세 달 정도만에 집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었죠.

이런 경험들 때문에 사회에서 사회인으로 돈을 벌면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잃어가게 되었던 건데요.


제가 살아온 세상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돈을 버는 일은 너무나도 불행하고 힘든 일이었어요. 반면 돈을 쓰면서 얻게 되는 행복은 너무나도 잠깐이며 아주아주 조금밖에 안되는 거예요.
그런 세상의 광경을 보면서, ‘그럼 사람들은 왜 돈을 벌면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거람? 살아가기 위해 너무나 기본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게, 행복함보다 불행함이 더 큰 일인 아주 끔찍한 세상인데.’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어서 인터뷰 첫 주차에 언급했던 인생관을 가지게 된 거였어요.
부모가 죽어서 직접 돈을 벌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면, 돈을 벌면서 사느니 그냥 뭐 죽는 게 낫겠다는.


그런 경험과 생각들로 사회에서의 근로를 포기하게 되면서 은둔하게 되셨던 거군요.

네. 그런 편이에요. 그렇게 자퇴 이후 대부분은 계속 집에 빌붙어 박혀서 거의 게임과 온라인 생활만 하면서 히키코모리로 쭉 지냈었죠.
계속 그렇게 지내다 19살~20살 사이 잠깐 학교밖 청소년 지원기관을 다니면서 검정고시도 보고 대학도 지원해보고 했었는데요, 대학은 물론 못 붙었답니다.
검정고시는 대학 지원용으로 보았던 거다 보니 매우 고득점을 따냈었어요. 대부분 만점이었죠. 학교 다닐 적 시험만 일부러 제대로 안 봤던 거지, 학교 수업은 늘 착실히 잘 듣는 편이었고 여러 기본 상식들에 워낙 자신이 있는 편이라서 검정고시 준비와 공부는 되게 수월했어요.
물론 사회부적응자의 면모는 여전해서, 학교밖 청소년 지원기관에서의 생활도 잘하지 못해서 되게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관이었는데도 검정고시만 보고 금방 관두어야 했지요.

대학교는 아동학과에 지원했었는데요. 아동학과에 지원했던 이유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나쁜 부모는 되물림 된다는 말, 흔하잖아요.


어릴 적 보았던 공익광고 포스터가 하나 있었어요.



해당 공익광고 포스터. 가정폭력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자라서 나중에 똑같은 부모가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정말이지 나는 ‘저런 사람들’만큼은 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제게 있어선 매우 끔찍한 사진이 아닐 수가 없었는데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유명한 양육 코칭 TV프로가 있었잖아요?
그 프로그램의 진행을 보면 프로그램 시작부터 내내 ‘아이의 잘못된 행동들’을 보여주는데, 이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교정을 시작하면 아이 장본인을 교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아이의 부모를 교정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부모가 변하면 아이도 변한다.’ 양육 코칭에서의 기본 진리니까요.
저도 그렇게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알고자, 나쁜 부모가 되지 않고자 대학교에 지원했던 거였죠.
검정고시 점수는 만점 수준이었으니 수시 등급 환산으로 1차 서류는 합격했었지만, 면접까지 가서 떨어졌었어요.
면접에서도 나름 대답 되게 잘한 것 같았는데 말이에요...

나름 대학교에 가보겠다고 공부도, 면접 준비도 정말정말 의욕적으로 열심히 했었지만 그렇게 모든 게 좀 허무한 느낌으로 싹 무산이 되어버리고 나선, 학업에 대해서도 무언가 하려고 시도해본 적이 없었어요.
계속 집에 박혀서 연명만 했었던 거죠 뭐.

그렇게 돈을 버는 일도, 학업도, 사회생활도 전부 다 포기한 연명 생활이 길어지면서 일 년 외출이 한 자릿수 수준이었던 은둔이 자연스레 삼사 년 정도씩이나 길게 이어지게 되었어요.



외출이 전무한 수준이던 은둔 생활 중, 별 이유와 의미는 없지만 방 창문 밖 사진을 계절별로 남겨두곤 했었다.





은둔생활의 이모저모



은둔하는 동안의 생활 패턴이나 일상을 보내며 했던 일들, 그리고 식사 해결 방식 등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일단 생활패턴은 밤낮이 바뀐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개판이고 랜덤이었어요. 그냥 졸리면 자고, 자다 깨면 생활하고. 그런 거죠.
일상에서 주로 하던 온라인 게임 장르가 웬만해선 MMORPG였거든요? 이게 게임 장르 특성상 게임 속에서 아예 살아가야 하고 시간개념도 있다 보니까요. 그야말로 충실하게 게임 속 세상의 일원이 되어서 살아갔달까요. 은둔 기간 대부분이 온라인 게임이었으니.


그렇게 평생 열심히 해왔고 인생 대부분을 차지하던 온라인 게임을 작년 초여름쯤에 크게 마음먹고 정리했었어요.
이유는 그냥 뭐 더 이상 게임들에서 별 재미가 느껴지지 않아서라는 근본적인 이유가 크긴 하지만, 게임 속 사람들 커뮤니티에서도 워낙 잘 녹아들지 못해서 쌓여오던 스트레스도 좀 있고 했으니까요.

게임을 정리한 이후의 일상에서는 여러 가지 영상물들을 되게 많이 보려고 했었어요. 예능이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안 가리구요.
그러기로 정했던 이유는, 일단 그런 것들은 도통 안 봐서 잘 모르는 상태로 게임만 하며 살아왔더니 유행을 잘 몰라서 사람들이랑 말이 안 통하는 때가 간간이 있기도 하고, 또 제가 그냥 개인적으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물들을 보는 것 자체를 책읽기처럼 되게 백익무해한, 자기개발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거든요.

요즘까지도 영상물을 보고 지내는 일상을 이어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보통은 혼자서 보진 않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같이 볼 아이들을 모아서 보면서 여러 생각들을 얘기 나누면서 봐요. 그저 킬링타임용보다는 지성을 높이는 시간 같은 걸로 삼고자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영화를 볼 때는 이 감독의 작품들이 어떤 미장셴이 담겨있는지, 이 작품이 영화사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라거나, 연애 코칭 예능을 보면서는 너희라면 이 시청자의 고민이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해? 하고 토론을 나눈다거나, 그런 거예요.
한마디로 말해서 요즘 일상의 방향은 ‘이야기 나누며 영상물 보기’라는 거구요.


식사는 10대~20대 초반까진 거의 대부분 라면이었던 때가 좀 잦았어요.
집에서 밥을 먹으면 혼났던 때가 있었거든요. 돈도 안 버는 게 밥을 축낸다고.
그래서 라면 50봉지를 사도 삼사 주를 안 가고 다 먹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완전히 삼시세끼가 라면이었던 기간이 길어요.
그때의 기억들 때문에 아직까지도 제 식비에 돈을 쓰는 걸 심리적으로 버거워하는 편인데요.

그래도 요즘은 비교적 식사를 식사답게 챙겨 먹으려 하고 있는데, 취미로 요리를 자주 하게 되었거든요.
현 시점에 요리를 취미로 가지게 된 것에도 물론 사연이 좀 있어요.


은둔하는 동안 당연히 늘 집에 혼자 있었는데, 저는 겁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유독 되게 버거운 게 하나 있어요. 공간적으로 어떠한 장소에 혼자 있는 걸 되게 힘들어하거든요.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해진달까?
그래서 웬만해서 저는 방에 있었지만, 안 보는 TV를 거실에 켜놓곤 했었어요.
TV 소리가 들려오면 문 밖에 사람이 있는 느낌이라서 마음이 안정되곤 했었거든요. 가끔은 컴퓨터 쉴 땐 나가서 멍하니 볼 때도 있긴 했구요.

그때 TV에서 늘 나오던 채널이 CJ에서 운영하던 Olive라는 채널이었거든요.
아시는 분도 있을 텐데, 요리 전문 채널이라서 굉장히 다양한 요리 관련 프로그램들이 주구장창 나오던 채널이었어요. 지금은 폐국해서 사라진 채널이지만요.
언젠가 갑자기 쿡방이 대세가 되면서 요즘은 많은 셰프들이 TV에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TV에서 셰프들의 화려한 요리쇼를 전문적으로 예능으로 만들어 담던 곳은 올리브가 거의 유일했어요.
해서 그 채널에서 요리하는 장면들을 항상 켜져 있던 TV를 통해 늘 듣고 보면서 나도 요리를 좀 해보고 싶고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깊게 가지게 되었었죠.

또한, 인터넷에서 스스로 자존감을 키우기에 도움이 되는 행동으로 흔히 추천되는 게 요리를 직접 해서 먹는 일이라고 하더라구요.
맛있는 요리를 스스로 만들어 먹는 게 스스로를 귀하게 대접한다는 느낌을 주어 자존감을 키우는 데 좋다고, 라면 같은 걸로 끼니를 대충대충 때우는 게 되게 안 좋다는 글을 몇 번 봤었거든요.
저는 라면을 너무 장기간 먹어온지라 살도 굉장히 찌고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건강이 되게 안 좋아진 상태이기도 했죠.

해서 중간에 이대로 계속 지낼 수는 없겠다,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이어트 식단관리 겸 자존감 케어 겸 그저 하고 싶었던 취미 겸이라는 이유로 요리를 시작하게 된 지 좀 되었어요.
여전히 자존감 상승여부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이어트 효과는 꽤 많이 봤거든요.
요리를 취미로 시작한 이후 지금은 은둔생활중 가장 살쪘을 때보다 15키로 이상이 빠졌답니다.
요리 레시피는 대부분 tv프로그램과 유튜브에서 보고 따라했구요, 은둔 생활 중 장보기는 인터넷으로 해결했었어요.
그래서 한마디로 말해 저의 식사해결은, 은둔 기간 대부분은 라면이었지만, 현 시점에는 거의 매끼를 정성스레 요리해 먹고 있는 편이라는 거지요.



연희씨가 만들었던 요리들. 왼쪽부터 두부김치, 삼겹살 버터구이, 토마토소스 푸실리



현재도 진행중인, 기나긴 은둔 생활을 오래 유지해 오시면서 연희씨가 ‘은둔’에 대해 가지게 되었던 여러 생각들이 있으실 텐데요.
특별한 게 있었다면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음. 저는 현 시점에서의 제 ‘히키코모리로서의’ 일상과 그동안의 기록들에 꽤 많이 만족하고 지내는 인물이거든요? 저는 어서 히키 생활을 탈출해 사회인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거의 없으니까요.
온라인을 제외하고 현실에서는 작은 사회생활조차도 거의 하지 않던 완전 고립 히키 생활에 대해서 너무나 불만 없이 지내왔다는 거지요.

그래서 주변 히키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가장 이해가 크게 안 되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너희는 안 나가면 안 답답해? 답답할 때 어떻게 해소해?’라는 대화 주제였는데요. 저는 정말 몇 달씩을 안 나가도 전혀 하나도 안 답답했거든요. 나가면 되려 바로 숨이 턱턱 막혔는데 말이죠.
제가 나중에라도 밖을 안 나가서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아볼 일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저는 그냥 태생이 은둔고립의 인재인 거 아닐까요.
사회엔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은둔은 굉장히 수월하게, 묵묵히, 잘 수행할 수 있는.


요즈음은 해탈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텐데, 은둔 생활에 대해 어차피 망한 인생~ 이라는 마음으로 굉장히 욕심 없이 어느 정도는 무념무상으로 지내고 있는 느낌인데요.
충분히 저 스스로가 안녕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더 나아질 일만 있다고 여겨요.
누가 되었든 간에, 지금 자신이 처했다고 느끼는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현재’에 만족할 줄 알게 되면, 지금이 최악이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더 나아지는 것밖엔 없다는 생각으로 미래를 보는 시선이 좀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더라구요.

뭐 엄청 건강한 생각이진 않은 것 같긴 한데요, 아무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현재 은둔 중이거나 은둔 예정인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음. 바로 전 답변에서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느낌으로 예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때 유명했던 이미지를 하나 소개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해충 방역 업체 세스코의 QnA 게시판에 어떤 사람이 문의글을 올린 거였거든요.



소개하려는 해당 문의글



장기간 시험 준비를 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이가 자신은 다른 주변인들에 비해서 돌이킬 수 없이 시간을 낭비해 뒤처져버렸다며 좌절하는 내용의 문의글이었어요.
이 글을 읽어주고 계신 은둔고립 청년분들 중에서도, 이 문의글의 작성자분처럼 자신은 허송세월로 시간을 보내와서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어 많은 것들을 놓아버리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게 있으실 텐데요.

그렇지만 세스코에서 이 글 작성자분에게 굉장히 센스있는 위로 답변을 달아주었던 거예요.
화랑곡나방이라는 곤충은, 주변 환경에 따라 애벌레로 지내는 기간을 2주에서 무려 300일까지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다가 자신이 날아오르기 가장 좋은 시기가 오면 성충으로 우화를 하는데요, 애벌레로 지냈던 기간이 2주였든 300일이었든 이후에 성충으로 우화하고 나서는 어차피 비슷한 수명을 산다는 거죠.
한마디로 어차피 나중엔 다 따라갈 수 있을 테니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으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인데요.


저도 이 글과 마찬가지로 생각하기 때문에 같은 내용의 위로와 응원을 건네드리고 싶은 거죠.
말씀드리는 저는 사회에 나가 사회인 노릇을 하는 일 자체는 사실상 포기한 사람이지만 은둔 생활에 만족하고 은둔 생활이 헛된 시간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편이거든요. 다 나중에 어떤 의미를 가지겠지,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지내온 편이에요.
어차피 막 당장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만 계속 하고 있는 거, 아무 도움도 안 되거든요. 의미 없이 스트레스랑 자괴감만 늘죠.

근데 말이죠, 제가 보니까 이 ‘날아오를 때’라는 게 자신이 노력한다고 어찌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누구에게든, 기다리고 있다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그런 거던데요.
각종 노력들은 그냥 ‘그때’를 좀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진행하기 위한 준비 과정 정도인 거지.

여러분들도 혹시나 내가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내버렸고, 그래서 남들보다 뒤처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말을 기억하길 바라요.
나도 누구에게나 있었던 애벌레 기간을 보내왔고, 보내고 있는 거고, 스스로가 날아오르기 좋은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는 거.
한번 날아오른 이후엔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걸 넘어서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을 거라고.

여러분이 스스로를 믿고, 자연스레 다가올 자신의 ‘그때’를 초조하지 않은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길 바랍니다.


저처럼, 조급해하지 않고 해탈한 느낌으로 살아가는 이의 마음가짐이,
여러분의 은둔 기간과 인생을 헛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interviewer_연희 | 인생의 절반이상을 온라인에서 보낸 인터넷 망령. 나이같은 건 먹지 않습니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히키코모리로서 자신의 일상에는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고있습니다. 온라인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얘기나누며 지내온 덕에 은둔 생활 중인 친구들 사이에서 발이 넓다는 이유로 졸지에 인터뷰어로 일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당신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는 없겠지만 공감과 이해가 필요할 때만큼은 자신있게 보듬어 줄 수 있을거라나요. 저를 대신해 인터뷰어에 지원하고 싶으신 분들 어서 지원해주세요. 늘 놀면서 지내고 싶은 히키코모리입니다.(seruna9@naver.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이번 편 이후로 재정비 시간을 갖고 9월 중 재개할 예정입니다.

* 인터뷰를 받고 싶은 분의 신청도 받습니다. 또는 은둔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tintin@theseed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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