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던데
이미 망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한평생 놀면서 살아가고 싶은 연희의 이야기 (2)
부모에 대해선 한없이 삐뚤어져버린 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어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음. 이쯤에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일단 부모가 부모답지 못한 행동을 했던 적은 원체 많아서 여기에서 할 뒷담들이 정말 차고 넘치긴 하거든요?
House의 역할이야 하지만 Home의 역할을 정말 굉장히 못하고 있는 집안이니까요.
그렇지만 요즈음은, 내 부모가 이러이러 했었다라는 걸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걸 망설이게 되긴 해요.
세상에는 저보다 월등히 운 좋게도 행복한 가정의 좋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단 말이죠.
그런 사람들 앞에서 연희네 집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반응이 다 똑같았거든요.
‘부모를 나쁘게 이야기하다니, 그건 네 얼굴에 침 뱉는 거야.’
‘그렇게 부모 욕하고 다녀봤자 너 좋게 보는 사람 아무도 없다.’ 라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뭐 당연한 반응들이겠죠.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이 강한 나라니까. 효(孝)가 의무시되는 나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나쁘게 이야기한다는 게 안 좋게만 보였던 거겠죠.
오죽하면 패륜이라는 말을 쓰겠어요. 인륜,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고.
예전의 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아, 내가 잘못했나 보다. 이러면 안 되겠다. 했던 때도 있긴 한데요.
지금의 저는 이미 삐뚤어져버려서, 그런 반응을 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사회부적응자’다운 생각을 해버리곤 해요.
‘그래, 너는 운이 좋아서 좋은 부모를 만나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왔을 테니까. 부모를 나쁘게 말할 일도, 나쁘게 말할 필요도 없었겠지. 그래서 부모를 나쁘게 이야기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해버리게 된 거 있죠.
처음엔 ‘나는 삐뚤어졌으니까.’ 라는 생각에 그렇지 않은 걸 일부러 그렇게 생각해버릴 거야, 라는 심술의 영역에서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냥 정말로 그런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요. 얘들은 행복하게 살아와서 불행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맞는 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뭐,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은 여기까지만 해볼게요. 행복하게 자란 이들에게 또 삐뚤어진 생각을 하게 될 것만 같아서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럼 다른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억울한 일들을 겪게 했던, 스스로 정하지 못한 자신의 요소 중 가장 비중이 큰 건 단언해서 성별이라고 말씀하셨었는데요.
그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릴게요.
이야기에 앞서서 지금부터 제가 할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이해 받을 내용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시작하려고 해요.
저는 사람마다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나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할 때 앞에 자주 쓰는 말버릇 같은 표현이 하나 있거든요?
제 인터뷰를 눈여겨서 여러 번 읽어주셨다면 어떤 걸 애기하는지 아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표현 말씀이실까요?
‘제가 살아온 세상’ 이라는 표현 말이거든요.
제 인터뷰를 읽어주고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공지랄까, 부탁이랄까,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도무지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부디 그저 ‘이 아이가 살아온 세상에선 정말 저랬나보다.’ 라고 가볍게 생각해주시길 바라요.
뭐, 세상에 그리 보편적이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분명 있잖아요. 꼭 뉴스에 나올 급은 아니더라도.
제가 그 중 하나일 뿐인 거죠. 특별하지는 못하고, 특이하기만 한. 그런 인생.
아무튼,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그러한 제가 살아온 세상에서 있어왔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당연하지 않은데, 옳지 않은데, 그럼에도 굉장히 흔하고 일반적인, 온라인 속의 슬픈 현실적 이야기.
그렇지만 온라인 세상의 보편을 안다면 공감하지 않는 이가 없을, 그런 이야기.
내가 살아온 세상 속 남자와 여자
일단 이야기해야 할 게, 왜 온라인 속 세상이 이야기의 기준점인가일 텐데요.
저는 엄청 어릴 때부터 오랜 맞벌이 가정이었거든요.
그렇게 혼자서 맞벌이 가정에 방치된 아이들은 흔히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친해지게 되다보니까요.
해서 저는 어릴 적부터 굉장히 다양한 온라인 게임들을 해오게 되었었는데요. 온라인 게임 세상 속에서 제가 재미있어 했던 건 게임들의 게임성 그 자체가 아니라 게임 속에서 사람들과 주고받는 채팅이었어요.
저는 소위 말하는 채팅러였던 거지요.
그렇게 오랫동안 다양한 게임들 속에서 많은 어른들과 이야기하며 수도 없이 느끼게 되었던 건,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은 남초 커뮤니티'였고, 그렇기에 여자가 우대받고 남자가 하대받는 게 표준적인 온라인 세상이었다는 거지요.
오빠오빠 소리, 아양 몇 번에 호구들이 돈이든 시간이든 무언가를 아낌없이 퍼주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반면, 남자가 남자에게 형 대접을 받음으로써 가오 같은 걸 잡고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것도 밥먹듯 볼 수 있었거든요.
그랬기에 전 어릴 적부터 신분을 신비주의로 유지했던 거지요. 오랜기간.
제가 온라인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남자인지 여자인지일 거예요. 마주하는 사람마다 제게 확답을 들을 때까지 수십 번씩도 물어보니까.
저는 아무래도 온라인 속에서 저를 만난 상대가 단박에 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확실하게 알아채긴 힘든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상태가 좋고, 계속 그러길 바랐었어요.
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같은 것들로 상대가 저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극과 극으로 달라지곤 했었으니까요.
나는 어차피 연희라는 사람인 건데, 내가 정한 것도 아닌 성별과 나이로 나를 대하는 모습이 양 극단을 오가는 모습이 저는 도무지 좋게 보이지 않았었어요.
보통은 특정 성별과 나잇대에게 호의적이라는 게, 그 대상에게 썩 좋지는 않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내포하고 있기도 했고 말이죠.
이렇게 제가 현실 속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캐묻는 사람 중 대부분은 현실에서의 저를 알게 되면 거의 태반이 ‘아니나 다를까’ 라는 느낌으로 태도가 급변하곤 했었어요.

어릴 적 당시, 현실에서의 연희씨에 대해 알게 되고 나서 태도가 급변해버린 후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해주었던 분도 있었다
몇 년치 유대감의 인간관계가 한 번의 만남으로 아예 끝나버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죠.
그렇게 태도가 급변해버리는 분들에게 반드시 듣는 질문이 있어요.
‘대체 왜 남자면서 여자처럼 행동하고 여자 말투를 쓰는 거예요?’ 라는 질문이었지요.
제 가치관은 여기에 되게 큰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여자 말투’와 ‘남자 말투’의 기준점은 뭘까? 누가 그걸 나누었을까? 그리고 왜 다른 성별의 말투를 쓰면 안 되는 걸까? 라는 내용인데요.
남녀 사이 아이덴티티를 의미 없이 나누고, 그 아이덴티티를 지키지 못한 자를 좋게 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지요.
저번주 인터뷰의 자기소개에서도 성별을 명확히 얘기하지 않았던 걸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성별이 그만큼 제게 중요하지 않은 요소였다는 의미로 받아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추구하고 끌렸던 어떤 요소들이 있어요.
색 중에서 분홍색을 선호한다거나, ‘라라의 스타일기’ 나 ‘캐릭캐릭체인지’ 같은 여자아이를 주 시청자층으로 둔 만화들을 재밌어한다거나, 나라는 이가 늠름하거나 듬직한 사람보다는 예쁘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거나, 이런 것들인데요.
세상에선 남자의 요소와 여자의 요소를 나눠서 정해놨더라구요.
파란색은 남자, 빨간색은 여자.
멋있는 건 남자, 예쁜 건 여자 같은 식으로요.
그런데 그렇게 나눈 요소에서, 남자쪽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여자보다 안 좋은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세상에서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지요.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건지 상상과 이해를 좀 더 돕기 위해 작은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면, 아이들이 읽는 대부분의 학습만화 스토리에서 ‘전형적’인 레퍼토리가 하나 있는데요.
어느 굉장히 행동이 미성숙하고 아는 게 없고 말썽쟁이인, 정말 나쁜 경우는 변태이기도 한 남자주인공을 굉장히 똑부러지고 유식하고 어른스러운 여자주인공이 혼내고 지적하며 가르쳐주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런 장면에 대부분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아요.
남자는 당연히 그런 요소들이 어울리는 존재고, 여자는 당연히 그런 요소들이 어울리는 존재라는 생각이 세상에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이거든요.
저런 류의 레퍼토리는 성별이 바뀌면 바로 아주 큰 난리가 난답니다. 요즘 세상은요.
이렇게 제가 살아온 세상에선, 사회적으로 남자의 요소와 이미지는 여자쪽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압도적으로 나빴었는데요.
그럼에도 웃긴 건, 상대적으로 좋은 요소들을 가져온 것일 ‘여성스러운 남자’ 라는 존재가 좋은 취급을 받는 건 또 아니었다는 거예요.
‘남성스러운 여자’ 는 걸크러쉬 같은 말로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신여성으로 좋게 얘기되는 현 시대에, 여성스러운 남자라는 건 세상에서 그저 동성애자 취급과 오만가지 멸시와 무시를 받는 지름길일 뿐이었거든요. 그리고 전 그런 취급을 받고 살아가던 사람의 전형이었고 말이에요.
저는 ‘부당한 일들과 불의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회부적응자’였잖아요. 이런 걸 너무나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질 못했었어요.
부정적 이미지들의 전형이 아닌 멀쩡하고 괜찮은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던 나였고, 그저 사회에서 여성스러운 것들이라고 분류되어있는 요소들 때문에 좋은 소리 한번을 들어볼 수가 없던 나였기에,
그러한 남녀 간의 아이덴티티를 나누고 강요하는 걸, 그리고 그 강요를 거부하면 굉장한 사회부적응자로 치부되는 세상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여겨버릴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그랬기에 저는,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야. 여성스러운것도 아니고, 그냥 연희스러운 연희야.
여자가 되고 싶어서 여성스러운 일들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냥 어떤 것들이 하고 싶고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것들인 거야. 그걸 사회가 여자 것이라고 분류해 둔 것뿐이지.
여자의 요소가 아니었어도, 남자의 요소가 아니었어도, 나는 어떠한 일들을 어차피 선택하고 행했을 텐데.
너무 부당하고 억울해. 나는 이런 게 보편적인 사회에 녹아들 수가 없어. 아니, 애초에 녹아드는 걸 포기하는 게 나을 지경이야.
이건 잘못된 세상이고, 내가 잘못된 걸로 생각하고 사회와 타협하고 나를 고치기에는, 도저히도 나는 그럴 수가 없어.’
라고 생각하는, 삐뚤어진 사회부적응자가 되어버리기를 선택했던 거예요.
일반인들의 사회에 타협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해서, 차마 할 수가 없는.
그런 사회 고립자.
또 다른 은둔의 핵심, 학교에 대한 이야기
인터뷰 사전질문에서 말씀해주시기를 , 연희씨는 고등학교를 자퇴하셨었는데 특이하게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었다고요.
어떤 사연이 담겨있는 건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일단 중학생 때 꽤 확고했던 진로희망이 있었던 데까지 올라가야 할 텐데요.
당시에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현재까지도 인생에서 거의 유일했던 희망 진로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미술고등학교에 가고자 입시를 했었고, 당연하게도 입시결과는 실패였지요.
이 부분에서 인터뷰 첫주차에 언급했던, 내가 선택하지 못한 걸로 겪은 억울함이 당당하게 있긴 한데요.
노력을.. 정말 최선을 다했다 라는 말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큼 했었거든요. 정말 정말 정말 열심히 연습했었는데, 재능이 어지간히 없었던 거죠. 시원하게 떨어졌구요.

연희씨가 만화가를 꿈꾸던 청소년 시절 모작으로 그렸던 그림들
해서 별 수 없이 일반고에 진학하게 되었었지요.
일반고에 가더라도 진로희망을 유지하는 데에 무리가 되는 건 아닌 거지만 어렸던 당시에는 애초에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니라는 마음에 벌써부터 등교가 내키지 않았던 거죠.
그렇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그래도 운이 조금은 괜찮았다고 해야할지, 제 학창시절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참교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나게 되기도 했고, 반 아이들도 너무 괜찮고 좋은 아이들이 많아서 나쁘지 않은 1년이었거든요.
문제는 2학년 때 문이과가 나뉘면서 시작되었었어요.
요즘은 문이과 통합 등 많은 변화들이 있어 제 학창시절과 조금 다르지만, 제가 학교 다닐 적만 해도 공부를 잘하면 이과, 공부를 안 하면 문과로 가는 암묵적 룰 같은 게 있었거든요.
저는 물론 문과였구요.
그런 배경 속에서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펼쳐진 광경은 끔찍했어요.
그 학교에서 문제아로 꼽히는 아이들이 전부 다 모인 반에 배정되었었거든요.
당시 저는 6반이었는데요, 새 학년이 되어 반 배정을 받고 복도나 급식실에서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을 만나면 ‘너 몇 반 됐어?’ 하고 물어보잖아요?
6반이라고 대답하면, ‘헐 진짜? 어떡하냐..’ 라는 소리를 들었었을 정도로, 벌써 아이들 사이에서도 최악의 학급으로 꼽히고 있는 문제아 집합소가 바로 6반이었던 거지요.
교내 양아치들을 전부 모아둔 반답게 교실은 매일매일마다 새로이 난장판이 되었고, 매일매일 단체 기합을 받았었어요. 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학업 분위기도 개판에 매일매일 아무 이유 없이 벌이나 받고 있는 거죠.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학교에 와서 기껏 받는 게, 교육이 아니라 그저 체벌과 스트레스였던 거예요.
왜 내가 학교를 오는 건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해서 자퇴했었어요.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딴 경험을 하려고 다니는 것만큼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일반고에서 그렇게 첫 번째 자퇴를 하고 나서 그 다음해, 중학교 졸업자 자격으로 실업계 학교에 1학년 신입생으로 입학하게 되어요. 미술고등학교에서 걷고자 했던 길과는 좀 다르지만, 실업계 학교에서의 디자인이라도 전공하려는 마음으로요.
그 학교에서는 무책임했던 교사 때문에 학생들이 부당한 일을 겪게 되는데요.
교사의 잘못된 행동으로, 이득을 보는 아이들과 손해를 보는 아이들이 생기게 되었었어요.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말이지요.
해서 부당하거나 잘못된 걸 납득하지 못하는 ‘사회부적응자’인 제가 총대를 잡고
교사들과 긴 시간 크게 다투면서 이 사건을 해결해내고 마는데요,
이때 아이들이 보았던 이득은 ‘원래 보았을 이득’이 아니지만 교사 때문에 ‘잘못 지급된 이득’이었던 거잖아요? 그렇지만 미성숙한 나이니까, 이득을 보던 아이들이 제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어요.
‘아, 연희 쟤가 나대지만 않았어도 보던 이득 계속 보던 건데. 쟤가 나대서 손해를 보게 되었잖아.’
라고 말이지요.
그때 이득을 보던 아이들 중에는 반에서 상대적으로 주축이 되는 아이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그런 분위기였기에 저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억울한 손해를 보던 절반의 반 친구들을 구해낸 사람이었지만, 이 사건 외에도 메이크업을 하고 다닌다거나, 나이가 한 살 많다거나 하는 여러 요소들을 이유로, 주축이 되는 아이들이 따돌리고자 하는 아이가 되어버려요.
아무래도 따돌림의 당사자가 아닌 아이들이어도, 그런 연희의 상황에 대해 방관 말고 할 수 있는 건 없었지요.
현실적으로는 누군가가 따돌림 당할 때 아무도 손을 내밀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 교실에서 어떤 아이든 미워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냥 내 처신에 대한 대가라고 스스로 순응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선택한 일들로 생긴 결과니까요.
‘잘못된 처신들이 쌓여서 나온 결과’였지만, 저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들을 할 거예요.
누군가에겐 최선이 아닌 일들이겠지만, 당시의 제게는 분명 최선인 선택들이 맞았다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마찬가지의 결론을 낼 것 같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따돌림을 당해 급식을 혼자 먹어야 하게 되었었는데, 저는 식당 같은 곳에서 혼밥은 전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급식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도저히 혼자 밥을 먹을 수가 없더라구요.
학교 수업 시간 내내 혼자 보내는 건 어찌어찌 그럴 수 있어도, 이 홀로 보내는 점심시간을 견딜 수 없음을 큰 이유로 저는 두 번째 자퇴를 결심했었어요.
꼬인 학교 생활은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담긴 상황 판단이 있었다 보니까요.
해서 학생 장본인인 저는 확고하게 자퇴를 마음먹었는데, 장본인들도 아닌 담임교사와 부모가 두 번째 자퇴를 허락하질 않았었어요.
‘너는 남들 다 잘 다니는 별 것도 아닌 학교 하나를 대체 왜 못 다니는 거니’
‘돌이킬 수 없는 문제 같은 건 없어. 절대라는 건 없으니까 좀만 노력해보자.’
무책임한 어른들의 상황 모르는 속편한 조언과 오지랖. 정말 한숨밖엔 안 나왔었는데요.
어차피 안 가면 되는 학교인 거지만, 어른들끼리 정했던 결론은 이랬어요.
2주일 동안만 학교를 더 다녀보자.
그동안 문제들을 해결해보려 최선을 다해보고, 도무지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자퇴를 하자.
그렇게, 제 마음속에서의 저는 이미 ‘자퇴한 년’이었는데도, 단호하고 확실하게 마음속에서 자퇴를 내정했는데도, 학교를 꾸역꾸역 2주씩이나 더 나가야 했던 거죠.
얼마나 가기 싫었겠어요. 저는 2주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어차피 자퇴를 선택할 거였고, 그저 시간낭비로밖에는 안 느껴졌었지요.
그래서 아침에 등교시간에 집에선 나왔지만 제시간에 학교에 들어가지는 않고, 학교 근처 시장과 시내를 멍하니 한참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4교시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기어들어가서 등교를 했었어요.
제가 수업시간 중에 문을 드르륵 열고 나타나면 다같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짧은 정적이 흘렀었죠.
수업중이던 교사들도 이 학급에 저번에 교무실에서 그렇게 크게 싸우던 문제아가 있다는 걸 다들 전해들어서였을지, 그렇게 수업시간 중에 교시마다 결석 처리되어 있던 학생이 갑자기 들어오더라도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하던 수업을 진행하곤 했었어요.
전 그렇게 등교해서 바로 책상에 얼굴을 박고 엎드린 채로 잠깐 영겁의 시간을 보냈었지요.
그럼 잠시 후 점심시간이 되고 교실이 비었었구요.
교실이 비고 나서야 고개를 들고 일어나서는, 급식실에 가봤자 혼자 밥을 먹는 걸 차마 해낼 수가 없었으니
다시 담을 넘어 학교를 나왔었어요.
나와서는 시장 밥집이나 시내 식당에서 고등어찜, 순대국, 그런 메뉴들을 사먹고 돌아가곤 했었답니다.
그리곤 또 다시 여기저기를 하염없이 거닐다가 학교가 거의 끝나갈 때쯤에서야 다시 돌아가서 등교할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시간 중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서 책상으로 달려가 엎드렸었지요.
학교에 있는 게 얼마나 힘들고 싫었겠어요.
당연히 학교에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으니 자퇴하겠다고 한 거였을 텐데. 어른들은, 부모는, 그런 저를 이해해주지 않았던 거지요. 제가 학교를 ‘안’ 가는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못’ 가는 건데.
등교한다고 집에서 나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반나절 동안 제 머릿속은 저를 자퇴시켜주지 않은 무책임한 어른들에 대한 한없는 원망만으로 가득했었죠.
그렇게 내내 끔찍한 하루를 보낸 어느날 원망에 깔려 죽어가면서 집 문을 열고 터덜터덜 들어갔더니 그날 일찍 퇴근해서 먼저 집에 와있던 엄마가 저를 보고 말을 꺼냈어요.
‘학교 잘 다녀 왔니?’ 하고 말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눈 앞이 갑자기 확 캄캄해지더라구요.
내가 지금 대체 누구 때문에, ‘갈 수가 없는’ 학교를 억지로 꾸역꾸역 가서 하루종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끔찍해하고 와야 했던 건데, 대체 무슨 낯짝으로 저렇게 물어볼 수가 있지? 라는 생각에
“엄마. 나는.. 나는. 학교를... 잘 다녀올 수가 없어.”
하고 말했더니 그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리는 거예요.
너무 서럽고 억울해서 그렇게 몇 시간을 꺼이꺼이 울었었죠.
인생에서 가장 오래 울었던 날로 기억하고 있는 사건인데요.
원래도 하던 생각이지만, 그때 정말 확고히 다잡고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어요.
사람들은, 어른들은, 내 부모라는 작자들은, 절대로 나를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구나.
나는 평생 이해받지 못하는 채로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
(다음주에 계속)
interviewer_우연 | 피할 수 없을 때까지 피한다. 피할 수 없으면 죽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뭐라도 해야할 때가 온다면 그때의 내가 무언가 하든가 그냥 죽든가 하겠죠.
굶어죽지 않고 놀고 먹는 지금의 삶이 너무 행복하지만
사회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버려서 왠지 뭐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만이 제 유일한 고민거리네요.
그래서 뭐라도 하고 있는 우연이라고 합니다.
(fallower9999@gmail.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인터뷰를 받고 싶은 분의 신청도 받습니다. 또는 은둔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tintin@theseeds.asia)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던데
이미 망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한평생 놀면서 살아가고 싶은 연희의 이야기 (2)
부모에 대해선 한없이 삐뚤어져버린 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어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음. 이쯤에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일단 부모가 부모답지 못한 행동을 했던 적은 원체 많아서 여기에서 할 뒷담들이 정말 차고 넘치긴 하거든요?
House의 역할이야 하지만 Home의 역할을 정말 굉장히 못하고 있는 집안이니까요.
그렇지만 요즈음은, 내 부모가 이러이러 했었다라는 걸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걸 망설이게 되긴 해요.
세상에는 저보다 월등히 운 좋게도 행복한 가정의 좋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단 말이죠.
그런 사람들 앞에서 연희네 집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반응이 다 똑같았거든요.
‘부모를 나쁘게 이야기하다니, 그건 네 얼굴에 침 뱉는 거야.’
‘그렇게 부모 욕하고 다녀봤자 너 좋게 보는 사람 아무도 없다.’ 라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뭐 당연한 반응들이겠죠.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이 강한 나라니까. 효(孝)가 의무시되는 나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나쁘게 이야기한다는 게 안 좋게만 보였던 거겠죠.
오죽하면 패륜이라는 말을 쓰겠어요. 인륜,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고.
예전의 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아, 내가 잘못했나 보다. 이러면 안 되겠다. 했던 때도 있긴 한데요.
지금의 저는 이미 삐뚤어져버려서, 그런 반응을 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사회부적응자’다운 생각을 해버리곤 해요.
‘그래, 너는 운이 좋아서 좋은 부모를 만나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왔을 테니까. 부모를 나쁘게 말할 일도, 나쁘게 말할 필요도 없었겠지. 그래서 부모를 나쁘게 이야기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해버리게 된 거 있죠.
처음엔 ‘나는 삐뚤어졌으니까.’ 라는 생각에 그렇지 않은 걸 일부러 그렇게 생각해버릴 거야, 라는 심술의 영역에서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냥 정말로 그런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요. 얘들은 행복하게 살아와서 불행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맞는 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뭐,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은 여기까지만 해볼게요. 행복하게 자란 이들에게 또 삐뚤어진 생각을 하게 될 것만 같아서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럼 다른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억울한 일들을 겪게 했던, 스스로 정하지 못한 자신의 요소 중 가장 비중이 큰 건 단언해서 성별이라고 말씀하셨었는데요.
그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릴게요.
이야기에 앞서서 지금부터 제가 할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이해 받을 내용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시작하려고 해요.
저는 사람마다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나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할 때 앞에 자주 쓰는 말버릇 같은 표현이 하나 있거든요?
제 인터뷰를 눈여겨서 여러 번 읽어주셨다면 어떤 걸 애기하는지 아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표현 말씀이실까요?
‘제가 살아온 세상’ 이라는 표현 말이거든요.
제 인터뷰를 읽어주고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공지랄까, 부탁이랄까,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도무지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부디 그저 ‘이 아이가 살아온 세상에선 정말 저랬나보다.’ 라고 가볍게 생각해주시길 바라요.
뭐, 세상에 그리 보편적이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분명 있잖아요. 꼭 뉴스에 나올 급은 아니더라도.
제가 그 중 하나일 뿐인 거죠. 특별하지는 못하고, 특이하기만 한. 그런 인생.
아무튼,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그러한 제가 살아온 세상에서 있어왔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당연하지 않은데, 옳지 않은데, 그럼에도 굉장히 흔하고 일반적인, 온라인 속의 슬픈 현실적 이야기.
그렇지만 온라인 세상의 보편을 안다면 공감하지 않는 이가 없을, 그런 이야기.
내가 살아온 세상 속 남자와 여자
일단 이야기해야 할 게, 왜 온라인 속 세상이 이야기의 기준점인가일 텐데요.
저는 엄청 어릴 때부터 오랜 맞벌이 가정이었거든요.
그렇게 혼자서 맞벌이 가정에 방치된 아이들은 흔히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친해지게 되다보니까요.
해서 저는 어릴 적부터 굉장히 다양한 온라인 게임들을 해오게 되었었는데요. 온라인 게임 세상 속에서 제가 재미있어 했던 건 게임들의 게임성 그 자체가 아니라 게임 속에서 사람들과 주고받는 채팅이었어요.
저는 소위 말하는 채팅러였던 거지요.
그렇게 오랫동안 다양한 게임들 속에서 많은 어른들과 이야기하며 수도 없이 느끼게 되었던 건,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은 남초 커뮤니티'였고, 그렇기에 여자가 우대받고 남자가 하대받는 게 표준적인 온라인 세상이었다는 거지요.
오빠오빠 소리, 아양 몇 번에 호구들이 돈이든 시간이든 무언가를 아낌없이 퍼주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반면, 남자가 남자에게 형 대접을 받음으로써 가오 같은 걸 잡고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것도 밥먹듯 볼 수 있었거든요.
그랬기에 전 어릴 적부터 신분을 신비주의로 유지했던 거지요. 오랜기간.
제가 온라인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남자인지 여자인지일 거예요. 마주하는 사람마다 제게 확답을 들을 때까지 수십 번씩도 물어보니까.
저는 아무래도 온라인 속에서 저를 만난 상대가 단박에 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확실하게 알아채긴 힘든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상태가 좋고, 계속 그러길 바랐었어요.
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같은 것들로 상대가 저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극과 극으로 달라지곤 했었으니까요.
나는 어차피 연희라는 사람인 건데, 내가 정한 것도 아닌 성별과 나이로 나를 대하는 모습이 양 극단을 오가는 모습이 저는 도무지 좋게 보이지 않았었어요.
보통은 특정 성별과 나잇대에게 호의적이라는 게, 그 대상에게 썩 좋지는 않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내포하고 있기도 했고 말이죠.
이렇게 제가 현실 속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캐묻는 사람 중 대부분은 현실에서의 저를 알게 되면 거의 태반이 ‘아니나 다를까’ 라는 느낌으로 태도가 급변하곤 했었어요.
어릴 적 당시, 현실에서의 연희씨에 대해 알게 되고 나서 태도가 급변해버린 후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해주었던 분도 있었다
몇 년치 유대감의 인간관계가 한 번의 만남으로 아예 끝나버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죠.
그렇게 태도가 급변해버리는 분들에게 반드시 듣는 질문이 있어요.
‘대체 왜 남자면서 여자처럼 행동하고 여자 말투를 쓰는 거예요?’ 라는 질문이었지요.
제 가치관은 여기에 되게 큰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여자 말투’와 ‘남자 말투’의 기준점은 뭘까? 누가 그걸 나누었을까? 그리고 왜 다른 성별의 말투를 쓰면 안 되는 걸까? 라는 내용인데요.
남녀 사이 아이덴티티를 의미 없이 나누고, 그 아이덴티티를 지키지 못한 자를 좋게 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지요.
저번주 인터뷰의 자기소개에서도 성별을 명확히 얘기하지 않았던 걸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성별이 그만큼 제게 중요하지 않은 요소였다는 의미로 받아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추구하고 끌렸던 어떤 요소들이 있어요.
색 중에서 분홍색을 선호한다거나, ‘라라의 스타일기’ 나 ‘캐릭캐릭체인지’ 같은 여자아이를 주 시청자층으로 둔 만화들을 재밌어한다거나, 나라는 이가 늠름하거나 듬직한 사람보다는 예쁘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거나, 이런 것들인데요.
세상에선 남자의 요소와 여자의 요소를 나눠서 정해놨더라구요.
파란색은 남자, 빨간색은 여자.
멋있는 건 남자, 예쁜 건 여자 같은 식으로요.
그런데 그렇게 나눈 요소에서, 남자쪽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여자보다 안 좋은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세상에서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지요.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건지 상상과 이해를 좀 더 돕기 위해 작은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면, 아이들이 읽는 대부분의 학습만화 스토리에서 ‘전형적’인 레퍼토리가 하나 있는데요.
어느 굉장히 행동이 미성숙하고 아는 게 없고 말썽쟁이인, 정말 나쁜 경우는 변태이기도 한 남자주인공을 굉장히 똑부러지고 유식하고 어른스러운 여자주인공이 혼내고 지적하며 가르쳐주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런 장면에 대부분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아요.
남자는 당연히 그런 요소들이 어울리는 존재고, 여자는 당연히 그런 요소들이 어울리는 존재라는 생각이 세상에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이거든요.
저런 류의 레퍼토리는 성별이 바뀌면 바로 아주 큰 난리가 난답니다. 요즘 세상은요.
이렇게 제가 살아온 세상에선, 사회적으로 남자의 요소와 이미지는 여자쪽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압도적으로 나빴었는데요.
그럼에도 웃긴 건, 상대적으로 좋은 요소들을 가져온 것일 ‘여성스러운 남자’ 라는 존재가 좋은 취급을 받는 건 또 아니었다는 거예요.
‘남성스러운 여자’ 는 걸크러쉬 같은 말로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신여성으로 좋게 얘기되는 현 시대에, 여성스러운 남자라는 건 세상에서 그저 동성애자 취급과 오만가지 멸시와 무시를 받는 지름길일 뿐이었거든요. 그리고 전 그런 취급을 받고 살아가던 사람의 전형이었고 말이에요.
저는 ‘부당한 일들과 불의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회부적응자’였잖아요. 이런 걸 너무나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질 못했었어요.
부정적 이미지들의 전형이 아닌 멀쩡하고 괜찮은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던 나였고, 그저 사회에서 여성스러운 것들이라고 분류되어있는 요소들 때문에 좋은 소리 한번을 들어볼 수가 없던 나였기에,
그러한 남녀 간의 아이덴티티를 나누고 강요하는 걸, 그리고 그 강요를 거부하면 굉장한 사회부적응자로 치부되는 세상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여겨버릴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그랬기에 저는,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야. 여성스러운것도 아니고, 그냥 연희스러운 연희야.
여자가 되고 싶어서 여성스러운 일들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냥 어떤 것들이 하고 싶고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것들인 거야. 그걸 사회가 여자 것이라고 분류해 둔 것뿐이지.
여자의 요소가 아니었어도, 남자의 요소가 아니었어도, 나는 어떠한 일들을 어차피 선택하고 행했을 텐데.
너무 부당하고 억울해. 나는 이런 게 보편적인 사회에 녹아들 수가 없어. 아니, 애초에 녹아드는 걸 포기하는 게 나을 지경이야.
이건 잘못된 세상이고, 내가 잘못된 걸로 생각하고 사회와 타협하고 나를 고치기에는, 도저히도 나는 그럴 수가 없어.’
라고 생각하는, 삐뚤어진 사회부적응자가 되어버리기를 선택했던 거예요.
일반인들의 사회에 타협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해서, 차마 할 수가 없는.
그런 사회 고립자.
또 다른 은둔의 핵심, 학교에 대한 이야기
인터뷰 사전질문에서 말씀해주시기를 , 연희씨는 고등학교를 자퇴하셨었는데 특이하게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었다고요.
어떤 사연이 담겨있는 건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일단 중학생 때 꽤 확고했던 진로희망이 있었던 데까지 올라가야 할 텐데요.
당시에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현재까지도 인생에서 거의 유일했던 희망 진로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미술고등학교에 가고자 입시를 했었고, 당연하게도 입시결과는 실패였지요.
이 부분에서 인터뷰 첫주차에 언급했던, 내가 선택하지 못한 걸로 겪은 억울함이 당당하게 있긴 한데요.
노력을.. 정말 최선을 다했다 라는 말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큼 했었거든요. 정말 정말 정말 열심히 연습했었는데, 재능이 어지간히 없었던 거죠. 시원하게 떨어졌구요.
연희씨가 만화가를 꿈꾸던 청소년 시절 모작으로 그렸던 그림들
해서 별 수 없이 일반고에 진학하게 되었었지요.
일반고에 가더라도 진로희망을 유지하는 데에 무리가 되는 건 아닌 거지만 어렸던 당시에는 애초에 ‘가려고 했던 곳’이 아니라는 마음에 벌써부터 등교가 내키지 않았던 거죠.
그렇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그래도 운이 조금은 괜찮았다고 해야할지, 제 학창시절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참교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나게 되기도 했고, 반 아이들도 너무 괜찮고 좋은 아이들이 많아서 나쁘지 않은 1년이었거든요.
문제는 2학년 때 문이과가 나뉘면서 시작되었었어요.
요즘은 문이과 통합 등 많은 변화들이 있어 제 학창시절과 조금 다르지만, 제가 학교 다닐 적만 해도 공부를 잘하면 이과, 공부를 안 하면 문과로 가는 암묵적 룰 같은 게 있었거든요.
저는 물론 문과였구요.
그런 배경 속에서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펼쳐진 광경은 끔찍했어요.
그 학교에서 문제아로 꼽히는 아이들이 전부 다 모인 반에 배정되었었거든요.
당시 저는 6반이었는데요, 새 학년이 되어 반 배정을 받고 복도나 급식실에서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을 만나면 ‘너 몇 반 됐어?’ 하고 물어보잖아요?
6반이라고 대답하면, ‘헐 진짜? 어떡하냐..’ 라는 소리를 들었었을 정도로, 벌써 아이들 사이에서도 최악의 학급으로 꼽히고 있는 문제아 집합소가 바로 6반이었던 거지요.
교내 양아치들을 전부 모아둔 반답게 교실은 매일매일마다 새로이 난장판이 되었고, 매일매일 단체 기합을 받았었어요. 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학업 분위기도 개판에 매일매일 아무 이유 없이 벌이나 받고 있는 거죠.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학교에 와서 기껏 받는 게, 교육이 아니라 그저 체벌과 스트레스였던 거예요.
왜 내가 학교를 오는 건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해서 자퇴했었어요.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딴 경험을 하려고 다니는 것만큼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일반고에서 그렇게 첫 번째 자퇴를 하고 나서 그 다음해, 중학교 졸업자 자격으로 실업계 학교에 1학년 신입생으로 입학하게 되어요. 미술고등학교에서 걷고자 했던 길과는 좀 다르지만, 실업계 학교에서의 디자인이라도 전공하려는 마음으로요.
그 학교에서는 무책임했던 교사 때문에 학생들이 부당한 일을 겪게 되는데요.
교사의 잘못된 행동으로, 이득을 보는 아이들과 손해를 보는 아이들이 생기게 되었었어요.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말이지요.
해서 부당하거나 잘못된 걸 납득하지 못하는 ‘사회부적응자’인 제가 총대를 잡고
교사들과 긴 시간 크게 다투면서 이 사건을 해결해내고 마는데요,
이때 아이들이 보았던 이득은 ‘원래 보았을 이득’이 아니지만 교사 때문에 ‘잘못 지급된 이득’이었던 거잖아요? 그렇지만 미성숙한 나이니까, 이득을 보던 아이들이 제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어요.
‘아, 연희 쟤가 나대지만 않았어도 보던 이득 계속 보던 건데. 쟤가 나대서 손해를 보게 되었잖아.’
라고 말이지요.
그때 이득을 보던 아이들 중에는 반에서 상대적으로 주축이 되는 아이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그런 분위기였기에 저는,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 억울한 손해를 보던 절반의 반 친구들을 구해낸 사람이었지만, 이 사건 외에도 메이크업을 하고 다닌다거나, 나이가 한 살 많다거나 하는 여러 요소들을 이유로, 주축이 되는 아이들이 따돌리고자 하는 아이가 되어버려요.
아무래도 따돌림의 당사자가 아닌 아이들이어도, 그런 연희의 상황에 대해 방관 말고 할 수 있는 건 없었지요.
현실적으로는 누군가가 따돌림 당할 때 아무도 손을 내밀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 교실에서 어떤 아이든 미워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냥 내 처신에 대한 대가라고 스스로 순응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선택한 일들로 생긴 결과니까요.
‘잘못된 처신들이 쌓여서 나온 결과’였지만, 저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들을 할 거예요.
누군가에겐 최선이 아닌 일들이겠지만, 당시의 제게는 분명 최선인 선택들이 맞았다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마찬가지의 결론을 낼 것 같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따돌림을 당해 급식을 혼자 먹어야 하게 되었었는데, 저는 식당 같은 곳에서 혼밥은 전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급식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도저히 혼자 밥을 먹을 수가 없더라구요.
학교 수업 시간 내내 혼자 보내는 건 어찌어찌 그럴 수 있어도, 이 홀로 보내는 점심시간을 견딜 수 없음을 큰 이유로 저는 두 번째 자퇴를 결심했었어요.
꼬인 학교 생활은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담긴 상황 판단이 있었다 보니까요.
해서 학생 장본인인 저는 확고하게 자퇴를 마음먹었는데, 장본인들도 아닌 담임교사와 부모가 두 번째 자퇴를 허락하질 않았었어요.
‘너는 남들 다 잘 다니는 별 것도 아닌 학교 하나를 대체 왜 못 다니는 거니’
‘돌이킬 수 없는 문제 같은 건 없어. 절대라는 건 없으니까 좀만 노력해보자.’
무책임한 어른들의 상황 모르는 속편한 조언과 오지랖. 정말 한숨밖엔 안 나왔었는데요.
어차피 안 가면 되는 학교인 거지만, 어른들끼리 정했던 결론은 이랬어요.
2주일 동안만 학교를 더 다녀보자.
그동안 문제들을 해결해보려 최선을 다해보고, 도무지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자퇴를 하자.
그렇게, 제 마음속에서의 저는 이미 ‘자퇴한 년’이었는데도, 단호하고 확실하게 마음속에서 자퇴를 내정했는데도, 학교를 꾸역꾸역 2주씩이나 더 나가야 했던 거죠.
얼마나 가기 싫었겠어요. 저는 2주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어차피 자퇴를 선택할 거였고, 그저 시간낭비로밖에는 안 느껴졌었지요.
그래서 아침에 등교시간에 집에선 나왔지만 제시간에 학교에 들어가지는 않고, 학교 근처 시장과 시내를 멍하니 한참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4교시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기어들어가서 등교를 했었어요.
제가 수업시간 중에 문을 드르륵 열고 나타나면 다같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짧은 정적이 흘렀었죠.
수업중이던 교사들도 이 학급에 저번에 교무실에서 그렇게 크게 싸우던 문제아가 있다는 걸 다들 전해들어서였을지, 그렇게 수업시간 중에 교시마다 결석 처리되어 있던 학생이 갑자기 들어오더라도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하던 수업을 진행하곤 했었어요.
전 그렇게 등교해서 바로 책상에 얼굴을 박고 엎드린 채로 잠깐 영겁의 시간을 보냈었지요.
그럼 잠시 후 점심시간이 되고 교실이 비었었구요.
교실이 비고 나서야 고개를 들고 일어나서는, 급식실에 가봤자 혼자 밥을 먹는 걸 차마 해낼 수가 없었으니
다시 담을 넘어 학교를 나왔었어요.
나와서는 시장 밥집이나 시내 식당에서 고등어찜, 순대국, 그런 메뉴들을 사먹고 돌아가곤 했었답니다.
그리곤 또 다시 여기저기를 하염없이 거닐다가 학교가 거의 끝나갈 때쯤에서야 다시 돌아가서 등교할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시간 중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서 책상으로 달려가 엎드렸었지요.
학교에 있는 게 얼마나 힘들고 싫었겠어요.
당연히 학교에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학교를 다닐 수가 없으니 자퇴하겠다고 한 거였을 텐데. 어른들은, 부모는, 그런 저를 이해해주지 않았던 거지요. 제가 학교를 ‘안’ 가는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못’ 가는 건데.
등교한다고 집에서 나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반나절 동안 제 머릿속은 저를 자퇴시켜주지 않은 무책임한 어른들에 대한 한없는 원망만으로 가득했었죠.
그렇게 내내 끔찍한 하루를 보낸 어느날 원망에 깔려 죽어가면서 집 문을 열고 터덜터덜 들어갔더니 그날 일찍 퇴근해서 먼저 집에 와있던 엄마가 저를 보고 말을 꺼냈어요.
‘학교 잘 다녀 왔니?’ 하고 말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눈 앞이 갑자기 확 캄캄해지더라구요.
내가 지금 대체 누구 때문에, ‘갈 수가 없는’ 학교를 억지로 꾸역꾸역 가서 하루종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끔찍해하고 와야 했던 건데, 대체 무슨 낯짝으로 저렇게 물어볼 수가 있지? 라는 생각에
“엄마. 나는.. 나는. 학교를... 잘 다녀올 수가 없어.”
하고 말했더니 그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리는 거예요.
너무 서럽고 억울해서 그렇게 몇 시간을 꺼이꺼이 울었었죠.
인생에서 가장 오래 울었던 날로 기억하고 있는 사건인데요.
원래도 하던 생각이지만, 그때 정말 확고히 다잡고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어요.
사람들은, 어른들은, 내 부모라는 작자들은, 절대로 나를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구나.
나는 평생 이해받지 못하는 채로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
(다음주에 계속)
interviewer_우연 | 피할 수 없을 때까지 피한다. 피할 수 없으면 죽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뭐라도 해야할 때가 온다면 그때의 내가 무언가 하든가 그냥 죽든가 하겠죠.
굶어죽지 않고 놀고 먹는 지금의 삶이 너무 행복하지만
사회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버려서 왠지 뭐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만이 제 유일한 고민거리네요.
그래서 뭐라도 하고 있는 우연이라고 합니다.
(fallower9999@gmail.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인터뷰를 받고 싶은 분의 신청도 받습니다. 또는 은둔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tintin@theseeds.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