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11: 우연-2

둥둥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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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사람 많지 않나요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우연의 이야기 (2)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시작된 은둔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기간 동안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동기를 부여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나갔는데요.

고생 끝에 손에 넣게 된 입시 결과는 마음에 들었을까요?

보통 아이들은 성적을 받으면 인정을 못하지 않나요. '내가 겨우 이정도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근데 저는 제가 딱 스스로 인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제일 못 본 정도였어요.

어찌되었든 인정 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는 데에서 보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했던 입시 목표를 이루게 되었던 걸까요?

합격하게 된 대학교는 일순위의 목표까지는 물론 아니지만, 위시리스트에는 있던 학교였어요. 당시 성적표를 받고 견적을 내보니 정말 딱 욕만 안 먹는 대학교들에 지원 할 수 있었는데요. 공부는 열심히 해놨지만 희망했던 학과는 딱히 없었어요.

좋아하는 게 없으니까 그나마 메타픽이 될 만한, 한마디로 사회에 내몰렸을 때 경쟁력이 될 만한 학과. 밥그릇으로 무기가 되어줄 수 있을 학과들을 둘러보다가 컴퓨터공학과를 가게 됐었지요.



인터뷰 처음 자기소개에서 완전 은둔이 1년, 반 은둔이 반 년째라고 얘기했었잖아요. 거의 대학교를 들어가자마자 은둔이 시작되었다는 건데 그 때 어떤 계기나 사건이 있었던 걸까요?

제가 컴퓨터공학과에 지원하던 당시는 일단 수학에 정을 한참 붙여둔 수능 직후이기도 했었고 막 지원하던 시점엔 코딩이 흥미에 맞아보여서 모의코딩도 좀 해보았었는데 뭐 재밌더라구요.

그런데 막상 학교에 가보니 학과에서 배우는 것들이 생각보다 너무 재미없고 어렵게 느껴졌었던 거죠. 심지어 신입생인데 코로나로 인해 완전 비대면으로 수업이 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대학교 학업이라는 개념이 너무 막연해지게 되었어요. 여러모로 제가 상상해왔던 대학생활이 붕괴되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제 마음 속에서의 대학생활이란 게 무너져 내리면서 수업 출석조차도 점점 빈도가 줄어들어갔어요. 출석할 이유조차 못 느끼게 되어갔던 거죠.

너무 열심히 보냈던 고삼생활로 인한 번아웃에 더해서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대학교 학업에 대해 느끼는 막연함이 있었어요. 원래부터도 가뜩이나 '필요에 의한 외출'이 아니면 잘 안 나가는 성향이었던 저인데 학교조차 비대면이라 ‘반드시 밖에 나갈 필요’가 일상 속에서 전혀 없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1년을 내리 집에서 나가지 않고 보내게 되었던 거죠.



주욱 잘 지내오던 사람에게 어쩌면 물 흐르듯 이라는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찾아온 은둔이었네요. 갑작스럽게 시작된 은둔생활에 부모님이 걱정하진 않으셨나요?

초등학생 때부터 진작 엄마께서는 저희 아빠에 비해서 나이가 차면 빨리 자립하라는 얘길 많이 해오셨었어요.

아빠께서도 중간에 ‘너 이렇게 살아가도 엄마가 널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니? 아빠는 나이가 많은데 언제까지 살아서 널 데리고 살아줄 것 같니. 나 죽으면 엄마는 너 안 도와줄 거다.’ 하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었죠.

그래서 미래에 언젠가 마주하게 될 ‘부모님에게서 강제적으로 자립당하는 타이밍’을 대비해 두어야 한다는 스트레스 정도는 원래 이미 주고 계셨었는데요. 그래서인지 현재 당장의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던 이 은둔생활에 대해서는 딱히 따로 잔소리하지는 않으셨답니다. 어차피 다 미래의 네가 알아서 감당해 내야 할 현재니까 따로 잔소리하지 않으마. 같은 마인드 아니셨을까요.

 







소박하지만 만족스러웠던 은둔 생활






은둔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아무래도 남는 게 시간이었을 텐데요. 보통 어떤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요?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시간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함께했었어요. 스튜디오 원 이라는 작곡 프로그램으로 작곡을 취미로 만지기도 했었구요, 각종 온라인 PC게임도 많이 하고 유튜브도 많이 보았었죠. 인스타그램이나 디스코드같은 소셜네트워크 활동도 많이 했었어요. 

물론 하루 중 틈틈이 비대면 강의 출석과 수강(하는 척)과 시험기간일 때는 마지막 양심 정도는 담겨 있었던 시험공부도 비중이 없지는 않았답니다.


우연씨가 은둔 생활 중 취미로 만지곤 했던 작곡 프로그램



은둔 생활 중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는 편이었나요?

저는 아침과 저녁에 꾸준히 챙겨먹는 약이 있는데요. 가족의 아침식사 시간에 저는 저녁식사와 함께 아침 약을 먹었었죠. 

그 후 오전 9시 정도에 잠들어 오후 4시 즈음 일어났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6시 정도가 되면 아침식사와 함께 저녁 약을 먹는 패턴이었는데요. 아침약과 함께 먹었던 저의 저녁식사는 주로 라면, 배달음식, 간단한 요리로 먹었었어요. 저녁약과 함께 먹었던 저의 아침식사는 가족들의 저녁식사였으니 차려주시는 걸 같이 먹었었구요.

올해 시작되었던 자취생활 동안은 거의 대부분의 식사가 라면과 배달시킨 햄버거, 즉석조리식품들이었어요.


은둔 생활 중 사실상 그의 주식 역할을 했던 버거킹 햄버거. 굉장히 자주 시켰었다고.

사진들은 손에 꼽았던 외출 때 사먹었던 것들이라고 한다.




은둔 중 해보았던 경제 활동이 있었을까요?

전혀 없었어요. 지금 이 인터뷰에 응하는 게 첫 경제활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대개 은둔하는 분들 중에서 자신의 은둔 생활에 대해 '이렇게 지내고 있으면 안된다' 라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으신데요. 비교적 최근까지도 은둔과는 거리가 있으셨던 우연씨는 그런 생각이 드신 적이 있으실까요?

저는 원래 은둔생활을 너무 하고 싶었고, 은둔생활 동안 아주 행복했었어요. 제가 꿈에 그리던 노력하지 않고 지내는 삶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노력을 안 한 책임이 언젠가 제게 온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노력을 안 해서 오는 책임이라는 것도 워낙 막연한 거잖아요? 제가 또 막연한 건 그냥 지워버리는 사람이라서, 막연한 책임도 느끼지 못했었던 편이에요.



은둔생활 중 스트레스가 별로 없으셨던 편이라는 말씀으로 들려요.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현 상황 자체에 스트레스 받지는 않았던 게 맞는데요. 은둔생활을 해서 오게 될 미래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받긴 했었죠. 아까 앞에서 이야기 나왔던 엄마아빠가 예전부터 하셨다던 말씀 기억하실 거예요.

제가 당장 이렇게 사는 건 행복하긴 한데, 영원히 이렇게 사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니까. 이 일상이 반드시 끝나는 타이밍이 오겠죠. 그 타이밍이 왔을 때 제가 은둔 생활 중에 해놓은 게 있어야만 할 거에요.

아무것도 없는 채로 그 타이밍이 오면 하염없이 강을 떠내려가는 오리알이 된 기분일 테니까요. 미래에 대한 생각은 그렇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스트레스 없이 지내고 있어요.



은둔 생활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되었던 신체적인 변화나 문제가 있었을지 궁금해요.

일단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지 않게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장발이 되었는데요.

자르는 걸 귀찮아하던 참에 엄마께서도 마침 ‘너는 키가 크고 마르고 얼굴도 작으니 장발 어울리겠다.’라고 말씀 해주셔서 길러보게 되었던 것이었죠. 기르다 보니 저도 생각보다 괜찮게 느껴져서 딱히 관리를 안 하는 채로 지내게 되었었어요. 아주 손에 꼽는 외출 때는 에센스 정도를 바르고 나가곤 했었답니다. 


은둔 생활이 시작된 후 그의 현재 머리 상태



문제가 있었던 건 소리 내어 말하는 데에서 겪었었던 문제인데요.

제 생각에 저는 정말 진성 히키코모리와 단순한 집돌이 사이 정도 인 것 같아요. 스무살이 막 되었을 땐 여느 은둔형외톨이처럼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땅을 보고 다니고, 사람을 피하고 그랬었어요. 말도 잘 못하구요. 이게, 말을 되게 오랫동안 안하고 지내다 보면 자기 목소리가 어떤 볼륨으로 들릴지 감이 안 잡히는 지경이 오는데요. 저도 그런 일을 겪었던 거죠. 말을 할 수는 있긴 한데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듯 작아져있다거나 해서 나름 신경 써서 말을 크게 하더라도 상대방은 계속 작다고 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정말 크게 소리 지르듯 말하면 중간이 없이 볼륨이 너무 크다고 하기도 하구, 뭐 그랬었네요.


지금은 잘 적응해서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답니다.



은둔 중 외로웠던 때가 있지는 않았나요?

종종 외롭긴 했는데 어차피 온라인에서는 사람들과 접촉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나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오프라인으로 나갈 수 있다, 즉 탈출할 수 있다.’라는 감정선을 유지하기 위해 그 접촉을 오프라인으로 확장시킬 여지 정도는 남겨두는 디테일은 챙겼었어요. 그래서 전반적으로는 외롭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어요.

 







마치며






마치면서 마지막 공통질문을 드릴까 해요. 현재 우연씨는 삶에서 희망이 있으신가요?

저는 ‘삶의 낙’에 대한 희망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볼게요.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잖아요? 당장 1초 후의 일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인데 여러 가지 일들이 제 앞에 나타나겠죠. 그 일들은 제가 고대해왔던 희망찬 낙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지금보다도 더한 무력함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렇게 통제할 수 없을 뿐인 삶이라면 세상 그 누구도 희망을 품지 않을 거예요.

해서 문득 외람된 표현을 쓰고 싶어요. 망망대해를 표류할 때 무인도를 발견할 수도 있고 어선이나 유람선을, 심지어는 도시를 발견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간간히 발견한 행운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심지어 인생은 이것보다 훨씬 확률이 높을 테니까요. 누군가는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어리니까 가질 수 있는 희망 아닐까요. 해서 저는 삶의 낙에 대해서 인생이 망망대해라고 할 때 간간히 찾게 될 그 작은 행운들을 삶의 낙이자 희망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혹시 다른 은둔자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다들 불안해하면서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나에게 닥친 현재의 환경을 인식하는 능력만큼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천천히 '현재의 나'를 만나고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유의미한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현재의 나와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게 되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요. 환경이 닥치게 되면 뭐라도 하게 되어있더라고요.

뭐라도 해낼 여러분들을 향해 섣부른 축하를 미리 보내둘게요. :)





(끝)



interviewer_연희 | 인생의 절반이상을 온라인에서 보낸 인터넷 망령. 나이같은 건 먹지 않습니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히키코모리로서 자신의 일상에는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고있습니다. 온라인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얘기나누며 지내온 덕에 은둔 생활 중인 친구들 사이에서 발이 넓다는 이유로 졸지에 인터뷰어로 일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당신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는 없겠지만 공감과 이해가 필요할 때만큼은 자신있게 보듬어 줄 수 있을거라나요. 저를 대신해 인터뷰어에 지원하고 싶으신 분들 어서 지원해주세요. 늘 놀면서 지내고 싶은 히키코모리입니다.(seruna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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