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고립청년 릴레이 인터뷰_#11: 우연(1)





저 같은 사람 많지 않나요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우연의 이야기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은둔 경력은 완전 은둔이 1년, 반쯤 은둔이 반 년 정도 되었습니다. 

1학년 때 완전 비대면수업이라서 집에서 나가지 않고 살다가 자취를 대학교 2학년 때 시작하게 된, 지금 현재는 방학이라서 본가로 내려와 있는 대학생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번엔 존재 소개를 부탁드려요. 

존재 소개란 직업 학력 거주지 등의 사회적인 정보 외에 정말로 나라는 사람에 그 자체에 대해 소개하는 방식이랍니다.

태어나고부터 여태 인생 내내 게으름뱅이, 베짱이, 한량, 집순이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은, 노력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우연입니다.

현재는 하고 싶은 게 아예 없고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게 된 이후로 쭉 은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뭐 하고 싶은 일이 드문드문 있긴 했었으나 그마저도 별 노력은 안 해왔었습니다. 딱 한 번 인생에서 딱 한 번은 빼고요. 그 한 번의 예외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말씀드릴게요.

 







분명 저랑 비슷한 형태의 은둔자 분들이 많을 거예요






다른 분들과 달리 특별하게도 우연 씨 쪽에서 먼저 인터뷰에 자원해주셨는데요. 지원해 주신 계기 같은 게 특별히 있으신 걸까요?

지금까지 인터뷰로 소개되셨던 다른 은둔형외톨이분들에 비하면 저 친구의 은둔은 저 정도 밖에 안 돼?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이 세상에 가장 흔한 은둔형외톨이 군상은 저 같은 타입의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분명 제 스스로도 은둔 및 고립자라고 생각하는데 인터뷰들을 읽어보면서 나와는 먼 이야기들로 느껴진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분명 나 같은 느낌의 어쩌면 가볍게 보이는 은둔자들도 많지 않을까? 라는 마음인거죠.

제 인터뷰가 저처럼 지금까지 올라온 인터뷰해주신 분들의 말씀에 대해서 혹여나 벽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있을 분들을 위해. 그런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거 같다는 마음으로 지원했습니다. 

뭐랄까 일종의 대표본*의 대표를 자처한 거예요.

*대표본: 통계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표본을 일컫는 말



재미있고 특이하게 들리는 계기네요. 그렇지만 좋아요. 은둔의 정도와 방식은 꼭 한 가지 모습이 아니라 다양하다는 것, 맞는 말씀이니까요.

우연 씨가 자처하신 '대표본'을 보충설명 해주시자면 어떤 분들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존재소개에서 말했다시피 저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 많을 거예요. 흔히 죽지 못해서 살아간다고 하지 않나요. 인생의 목표라거나 하는 걸 넘어서 매 순간순간의 당장조차도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채로 말 그대로 '살아가고만 있다'는 느낌을 느끼시는 분들인 거죠.



왜 우연씨는 스스로를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왜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관련된 사연과 계기들이 궁금해요.

인생 내내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 이라... 엄청 솔직히 사실은, 아주 드문드문은 하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던 것들이 인생 사이사이에 있기는 있었는데 어차피 그 일들에 대해서도 절실한 노력 같은 건 전혀 안했었으니 의미 없는 셈이라고 생각해요.

드문드문 인생 사이사이 있던 하고 싶었던 일들에 대해 예시로 말씀드리자면 초등학생 때는 커서 고고학자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중학생 때는 좋아하던 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와 이성교제를 해보고 싶었고요. 고등학교 2학년 때도 짝사랑이 있어 중학생 때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까 '인생에서 단 한번 있었던 절실한 노력' 에 대해 뒤에서 말씀드리겠다고 했는데 그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시기별로 '하고는 싶었지만 딱히 노력하지 않았던 일들'이 있었네요. 사전 인터뷰에선 위에 말씀해주신 어릴 적 시기 별로 하고 싶었던 일들에 대해서 어릴 때부터도 해당 시기마다 노력은 전혀 안하게 되었던 사연들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괜찮으시다면 각 시기마다의 사연들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시기마다 겪었던,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쌓인 게 현재의 '하고 싶은 게 사라져버린 채 살아가는 우연' 씨가 되는 데에 영향을 주었을 테니까요.

네. 시기별로 자세히 설명 드려 볼게요.







노력해 볼 틈이 없었던 10대





초등학생 때는, 책을 정말 많이 좋아했었어요. 그중에서도 동양사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었죠. 인생의 낙 같은 거였어요.

유명한 학습만화 시리즈 중에 '00에서 보물찾기' 시리즈가 있거든요. 거기 멋진 등장인물들과 예쁜 유물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저런 걸 직접 발굴해보고 싶다는 꿈을 키웠던 거였죠. 만화 속 캐릭터인 지구본 박사처럼 유물을 딱 보면 어떤 시대상과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유물인지 딱 알아버리고. 그런 거 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뭐, 초등학생 때의 꿈들이 으레 그렇듯 막연하게 가지고만 있다가 사라져버린 꿈이라서 노력을 안 했었네요.



우연씨에게 어릴 적 꿈을 만들어주었던 학습만화 시리즈와 만화 속 캐릭터인 '지구본 박사'

우연씨에게 어릴 적 꿈을 만들어주었던 학습만화 시리즈와 만화 속 캐릭터인 ‘지구본 박사’


중학생 때는 짝이 된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었는데, 그 친구는 제게 별 생각은 없었지만 그 친구와 늘 함께하는 친구들 무리가 있었거든요. 당시 제가 외관적으로 괜찮은 편이 아니어서 이었을지 그 친구를 제가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그 친구의 친구들 무리가 저를 싫어한다는 게 되게 잘 느껴질 만큼 저를 대놓고 싫어했어요. 그러니 그 친구 입장에선 주변 친구들이 다 그러니 어찌 저와 가까이 지낼 수 있었겠어요. 해서 자연스레 노력도 못하고 포기해야 했죠. 친구들 무리 없이 그 친구와 단 둘이 마주쳐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그 친구 집 앞에서 세 시간을 기다려 본 적도 한 번 있었는데 마주치지 못하고 나서 마음을 딱 접었었네요.


고등학생 때도 역시나 짝이 되었던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었는데 공부도 굉장히 잘하고 예쁘고 성격이 좋아서, 만인의 아이돌 같은 친구였었어요. 저를 대해주는 것도 모든 친구들에게 다 살갑게 대해주듯이 다른 사람들 모두와 똑같이 대하는 거였지만 제게는 너무 특별했어요. 그게. 

‘나도 다른 사람들만큼의 가치는 있구나’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렇지만 인기 많은 친구였으니까 다른 친구들과도 많이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저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고 엄친아 같은 친구가 낚아채가게 되면서 노력해보지도 못한 채 마음을 접어야 했답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만큼의 가치는 있구나’ 라는 마음과 생각이 ‘나는 딱 다른 사람들만큼의 가치만큼만 있을 수 밖에 없구나’ 로 변질되어갔던 것 같아요.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 노력이 시작되다





드디어 제 인생의 최초이자 마지막인 노력이 있었던 고등학교 3학년 때네요.

채팅 어플에서 알게 되어서 오래 연락하고 지냈던 온라인으로 아는 누나가 있었는데요. 그 누나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해서 그 누나를 만나겠다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려고 한참 공부를 열심히 했었어요. 제가 본가가 서울이랑 많이 멀어서, 당시엔 인터넷 누나 보겠다고 서울에 갔다 오는 걸 부모님께 허락받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해서 정식으로 인정받으면서 서울에서 자취 같은 걸 할 수 있게 될 명분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려고 미친 듯이 공부를 했었던 거죠. 

그 누나가 정말 악질인 게 ‘목소리 좋다, 옷 잘 입는다, 너 정말 귀엽다’ 같은 이야기들을 입에 달고 살면서 만나자는 이야기는 절대 안하는 거예요. 

(연희 : 아니 그게 왜 악질인게 되는거에요)

물론 악질이라는 건, 반쯤 농담이긴 한데 당시엔 진짜 그렇게 생각하긴 했었어요(웃음)

수능 입시에 대한 불안감과 누나가 결국 안 만나 줄까봐 하는 생각들 같은 게 겹쳐서 혼자 악질이라는 결론을 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이유가 참 어이없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력을 하게 만들어줬던 트리거*였으니까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는 있어요.

*트리거: 계기


당시 서울에 가겠다는 굳센 목표를 만들어 주었던 누나와 나눈 대화 중 일부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3월 말부터 누나를 보러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는걸 시작했었는데, 6월 모의평가쯤 부터 연락이 갑자기 뜸해지기 시작했었어요.

그때 쯤 부터 근 2주마다 한 번?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사랑스러운 장문이 간간히 오는 게 그 누나와 주고받는 연락의 전부였었지요. 진짜 악질이지 않나요? (웃음)

( 연희 : 그게 왜 악질인거냐구요 (웃음) )

그 고단수 누나의 밀당... 아니 지금 생각하면 어장 같기는 한데요. 밀당 덕에 공부는 계속 붙잡을 수 있었던 거죠. 희망을 계속 주니까요. 그런데 10월쯤부터는 그마저 연락도 안 왔었네요.



그런 슬픈 일이. 그럼 그때부터 다시 공부를 놓았나요?

아뇨, 공부는 계속 이어가긴 했었어요. 사실 내면적으론 이 누나와 내가 뭔가 될 수 없을 거란 걸 무의식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는데 그냥 스스로 쥐어 짜내서 부여했던 동기였다고, 이 누나는 어차피 내가 공부하는 거랑 별개였던 거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있었어요. 지금까지 6달 넘게 난 죽었다 하고 공부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누나가 사라졌다고 다 놓아버리기엔 해온 게 아깝기도 하고요. 그래서 마저 공부는 이어갔었던 것 같아요.

또 제 학창시절 유일하게 연락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친한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제가 그 친구를 성적으로 이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하기도 했었어요.

누나 때처럼 그냥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공부를 할 동기였던 거죠 뭐.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문제집







십대의 끝, 은둔이 시작되다





정말 굉장히 열심히 보내셨던 고등학교 3학년 기간 이었네요. 그런데 왜 그 기간 이후 갑작스러운 은둔이 시작되었을까요?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노력으로, 제 나름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느낌으로 굉장히 엄청난 양을 공부해냈었으니 수능을 다 보고 고사장을 나오자마자 굉장히 후련했었어요. 그런데 정시지원이 끝나고 나니 후련함에 엄청난 허무함이 더해지더라구요. 흔히 번아웃이라고 하지 않나요. 하얗게 불태워버리고 나서, 너무나 무기력해지고 모든게 허무해져 버리는.

또 코로나 학번이다 보니 완전 비대면으로 대학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스무살 때부터 은둔이 시작되었어요.


은둔 생활이 시작되기 전, 십대 시절을 마무리하는 그의 고등학교 졸업사진




(2편에 이어서)



interviewer_연희 | 인생의 절반이상을 온라인에서 보낸 인터넷 망령. 나이같은 건 먹지 않습니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히키코모리로서 자신의 일상에는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고있습니다. 온라인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얘기나누며 지내온 덕에 은둔 생활 중인 친구들 사이에서 발이 넓다는 이유로 졸지에 인터뷰어로 일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당신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는 없겠지만 공감과 이해가 필요할 때만큼은 자신있게 보듬어 줄 수 있을거라나요. 저를 대신해 인터뷰어에 지원하고 싶으신 분들 어서 지원해주세요. 늘 놀면서 지내고 싶은 히키코모리입니다.(seruna9@naver.com)


* 은둔청년 릴레이 인터뷰는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 됩니다.

* 인터뷰를 받고 싶은 분의 신청도 받습니다. 또는 은둔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tintin@theseed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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