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를 보고 있는 여러분은 복지 정책을 찾아본 적이 있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작성하고 있는 나만 해도 모르는 정책이 참 많다. 이런저런 지원 사업과 복지가 있겠거니 대충 알기만 할 뿐, 찾아보는 것도 일이라고 금방 지쳐서는 다시 침대로 들어가 스스로를 비관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더지땅굴을 알게 되고, 두더집을 방문하며 삶의 새로운 한켠이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고백한다. 이런 정책을 통해, 지원사업을 통해 다시 발돋움할 수 있었노라고.
오늘의 주인공은 여러분께 바로 그 삶의 새로운 한켠을 전하고자 한다.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에 몸소 참여하며, 더 나아가 새로운 청년정책을 구상하고 있는 사일런스 씨. 함께 알아보자.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닉네임은 사일런스라고 합니다. 제가 좀 조용한 편이고 해서요.
은둔 고립을 한 지는 5년 좀 넘었고요, 올해 만으로 37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성격이실까요?
그냥 평소에 말수가 그리 많지 않고요,
프로그램을 가든 아님 무슨 모임을 가든 곧잘 조용히 있고 그럽니다.
은둔 고립 청년으로서의 평상시 일과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5년 동안 은둔 고립으로 지내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예. 최근에는 청년 도전 지원사업에 참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다니고 있고요. 그 외에도 서울 청년 기지개 센터나,
서울광역청년센터, 그리고 씨즈 두더집 같은 곳에서 프로그램 참여하고 있고요.
그리고 서울시 청년 정책 네트워크에도 한 달에 한 번씩 활동을 나가고 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계시네요.
여러 곳에 다니시고 나오시고, 흔히들 은둔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다르네요.
아, 제가 직장을 못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우울증도 심하고,
고립 상태다 보니 대인 관계를 맺는 것도 힘들고 그렇습니다.
대인 관계의 어려움과 정신적인 괴로움이군요.
혹시 은둔 고립이 된 사연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가 청소년 때 집단 따돌림, 소위 말하는 학교 폭력을 당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친구도 별로 없고, 그렇게 학창 시절을 우울하게 보냈고요.
20대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는데 30대 되고 나니까,
제가 일했던 직종이 주로 사무 위주였어요. 사무 보조.
주로 나이 어린 분들을 채용하는 걸 회사 쪽에서도 선호하다 보니까.
경력이 단절된 거죠. 우울증은 심해졌는데 일을 못 하고, 그러다 보니 은둔 고립이 된 거죠.
어디 나갈 데도 없고 말이죠.
그쵸. 나가면 다 비용이 들고 하니까, 경제적으로도 좀 힘들죠.
다양한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마음에 상처가 될 만한 일이 참 많으셨네요.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아까도 언급해 주셨는데,
은둔 고립 청년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잖아요.
네. 여기 두더집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집단 상담을 여기서 받았거든요.
스트레스로 인해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8회기의 집단상담을 했어요.
진행하면서 같은 은둔 고립 청년분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이렇게
교류도 좀 하고, 서로 위로도 해주는 게 참 좋았습니다.
지원 프로그램의 정보는 직접 찾아보시는 건가요?
두더지 땅굴 홈페이지도 확인하고, 그리고 두더집 단톡방이 있어요.
단톡방에도 공지가 올라오고 해서 그걸 많이 참고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기관에 관련된 정보 역시 두더집 내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얻으시나요?
아, 예. 가끔 다른 데서도 얻긴 하지만, 두더집 같은 경우는
주로 두더지 땅굴이나 두더지 톡방을 통해서
프로그램, 공지 사항 같은 게 올라오고. 그렇습니다.
두더집에 처음 오신 날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찾아오는 데에 힘든 부분은 없으셨나요?
제가 여기 처음 온 게 작년 2월쯤이었어요.
그때 11시쯤에 뵙기로 했었는데, 두더집이 한 12시부터 운영하니까.
두더집에 와서 면담을 했던 게 특히 기억에 남고요.
그때 이사장님과 면담을 했거든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여기서 활동하고 싶다. 그렇게 말씀을 드렸고,
프로그램이 뜰 때마다 신청을 하면서 여기 다니게 되었습니다.
물론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놀러 와도 된다 해주셨는데요, 거리상 멀어서.
프로그램이라도 참여하는 게 아니면 자주 가기 부담스럽고 해서 그게 좀 아쉬워요.
그래도 여기 공간도 편하고 해서 종종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전 조사에서 이런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말해주셨는데,
자세히는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은둔 고립 청년분들과 교류하다 보니까,
그분들의 아픔이나 곤란에 대해서도 좀 더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다른 은둔 고립 청년분들도 우울증이 있으신 분들이 많고,
그 외에도 공황 같은 문제도 있는 경우가 있는데,
저도 많이 겪어봤으니까. 서로 좀 위로도 해 주고
서로서로 이해하는 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힘듦을 나눌 수 있는 존재는 역시 위로가 되네요.
두더집에서 만난 은둔 고립 청년들과 구체적으로
이런 포인트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하는 예시가 있을까요?
다른 센터는 나이도 좀 제한된 게 있어서,
좀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많이 공감을 나눴던 것 같아요.
이런 지원 프로그램 같은 데에 쓰이는 청년의 기준이 보통은 만 39세까지인데,
일부 기관은 만 34세까지만 하는 곳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35세 넘는 분들은 참여하기가 좀 힘들어요. 취업 같은 것도 더 힘들고.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두더집에서 만나면, 같은 고충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도 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지원 프로그램들에 바라는 점이기도 하네요.
이런 사각지대가 있다, 하고.
네. 그렇습니다. 서울시도 그렇고요, 지방에 계신 분들은 특히
두더집 같은 은둔 고립 청년 지원 센터가 근처에 별로 없어요.
지방에 계신 은둔 고립 청년들도 많은데, 그에 대해 좀 제도가 잘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소소하게라도 해보고 싶으신 일이 있으신가요?
저는 지금 청년 정책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거기서 제가 주로 하는 일이 은둔 고립 청년분들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고,
의원분들께 좀 설득 같은 걸 하고.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은둔 고립 청년분들을 대표해서 의견을 잘 전달하고,
좋은 청년 정책들을 많이 제안하고 만들어서
저뿐만 아닌 다른 은둔 고립 청년분들께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게 되실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도 뭐 정책 의원이기 전에 은둔 고립 청년 당사자고요.
그러다 보니까 다른 고립 은둔 청년분들이 많이 겪는
정서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좀 더 은둔 고립 청년들에 대한 정책을 많이 제안하고.
그분들께 도움이 돼서, 많은 분들이 은둔 고립에서 벗어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방에도 은둔 고립 청년분들이 많으시니까,
전국 각지에 청년 센터들이 생겨서 지방에 계신 분들도
은둔 고립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
도움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도움을 구해 본, 도움을 받아 본 사람은 그 절실한 마음을 알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새로운 도움을 주고자 한다.
어쩌면 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사람들 아닐까.
오늘도 수많은 용기가 모여, 여러분께 손을 내밀고 여러분의 설 자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기사를 보고 있는 여러분은 복지 정책을 찾아본 적이 있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작성하고 있는 나만 해도 모르는 정책이 참 많다. 이런저런 지원 사업과 복지가 있겠거니 대충 알기만 할 뿐, 찾아보는 것도 일이라고 금방 지쳐서는 다시 침대로 들어가 스스로를 비관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더지땅굴을 알게 되고, 두더집을 방문하며 삶의 새로운 한켠이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고백한다. 이런 정책을 통해, 지원사업을 통해 다시 발돋움할 수 있었노라고.
오늘의 주인공은 여러분께 바로 그 삶의 새로운 한켠을 전하고자 한다.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에 몸소 참여하며, 더 나아가 새로운 청년정책을 구상하고 있는 사일런스 씨. 함께 알아보자.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닉네임은 사일런스라고 합니다. 제가 좀 조용한 편이고 해서요.
은둔 고립을 한 지는 5년 좀 넘었고요, 올해 만으로 37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성격이실까요?
그냥 평소에 말수가 그리 많지 않고요,
프로그램을 가든 아님 무슨 모임을 가든 곧잘 조용히 있고 그럽니다.
은둔 고립 청년으로서의 평상시 일과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5년 동안 은둔 고립으로 지내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예. 최근에는 청년 도전 지원사업에 참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다니고 있고요. 그 외에도 서울 청년 기지개 센터나,
서울광역청년센터, 그리고 씨즈 두더집 같은 곳에서 프로그램 참여하고 있고요.
그리고 서울시 청년 정책 네트워크에도 한 달에 한 번씩 활동을 나가고 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계시네요.
여러 곳에 다니시고 나오시고, 흔히들 은둔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다르네요.
아, 제가 직장을 못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우울증도 심하고,
고립 상태다 보니 대인 관계를 맺는 것도 힘들고 그렇습니다.
대인 관계의 어려움과 정신적인 괴로움이군요.
혹시 은둔 고립이 된 사연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가 청소년 때 집단 따돌림, 소위 말하는 학교 폭력을 당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친구도 별로 없고, 그렇게 학창 시절을 우울하게 보냈고요.
20대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는데 30대 되고 나니까,
제가 일했던 직종이 주로 사무 위주였어요. 사무 보조.
주로 나이 어린 분들을 채용하는 걸 회사 쪽에서도 선호하다 보니까.
경력이 단절된 거죠. 우울증은 심해졌는데 일을 못 하고, 그러다 보니 은둔 고립이 된 거죠.
어디 나갈 데도 없고 말이죠.
그쵸. 나가면 다 비용이 들고 하니까, 경제적으로도 좀 힘들죠.
다양한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마음에 상처가 될 만한 일이 참 많으셨네요.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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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언급해 주셨는데,
은둔 고립 청년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잖아요.
네. 여기 두더집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집단 상담을 여기서 받았거든요.
스트레스로 인해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8회기의 집단상담을 했어요.
진행하면서 같은 은둔 고립 청년분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이렇게
교류도 좀 하고, 서로 위로도 해주는 게 참 좋았습니다.
지원 프로그램의 정보는 직접 찾아보시는 건가요?
두더지 땅굴 홈페이지도 확인하고, 그리고 두더집 단톡방이 있어요.
단톡방에도 공지가 올라오고 해서 그걸 많이 참고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기관에 관련된 정보 역시 두더집 내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얻으시나요?
아, 예. 가끔 다른 데서도 얻긴 하지만, 두더집 같은 경우는
주로 두더지 땅굴이나 두더지 톡방을 통해서
프로그램, 공지 사항 같은 게 올라오고. 그렇습니다.
두더집에 처음 오신 날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찾아오는 데에 힘든 부분은 없으셨나요?
제가 여기 처음 온 게 작년 2월쯤이었어요.
그때 11시쯤에 뵙기로 했었는데, 두더집이 한 12시부터 운영하니까.
두더집에 와서 면담을 했던 게 특히 기억에 남고요.
그때 이사장님과 면담을 했거든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여기서 활동하고 싶다. 그렇게 말씀을 드렸고,
프로그램이 뜰 때마다 신청을 하면서 여기 다니게 되었습니다.
물론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놀러 와도 된다 해주셨는데요, 거리상 멀어서.
프로그램이라도 참여하는 게 아니면 자주 가기 부담스럽고 해서 그게 좀 아쉬워요.
그래도 여기 공간도 편하고 해서 종종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전 조사에서 이런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말해주셨는데,
자세히는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은둔 고립 청년분들과 교류하다 보니까,
그분들의 아픔이나 곤란에 대해서도 좀 더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다른 은둔 고립 청년분들도 우울증이 있으신 분들이 많고,
그 외에도 공황 같은 문제도 있는 경우가 있는데,
저도 많이 겪어봤으니까. 서로 좀 위로도 해 주고
서로서로 이해하는 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힘듦을 나눌 수 있는 존재는 역시 위로가 되네요.
두더집에서 만난 은둔 고립 청년들과 구체적으로
이런 포인트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하는 예시가 있을까요?
다른 센터는 나이도 좀 제한된 게 있어서,
좀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많이 공감을 나눴던 것 같아요.
이런 지원 프로그램 같은 데에 쓰이는 청년의 기준이 보통은 만 39세까지인데,
일부 기관은 만 34세까지만 하는 곳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35세 넘는 분들은 참여하기가 좀 힘들어요. 취업 같은 것도 더 힘들고.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두더집에서 만나면, 같은 고충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도 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지원 프로그램들에 바라는 점이기도 하네요.
이런 사각지대가 있다, 하고.
네. 그렇습니다. 서울시도 그렇고요, 지방에 계신 분들은 특히
두더집 같은 은둔 고립 청년 지원 센터가 근처에 별로 없어요.
지방에 계신 은둔 고립 청년들도 많은데, 그에 대해 좀 제도가 잘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소소하게라도 해보고 싶으신 일이 있으신가요?
저는 지금 청년 정책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거기서 제가 주로 하는 일이 은둔 고립 청년분들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고,
의원분들께 좀 설득 같은 걸 하고.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은둔 고립 청년분들을 대표해서 의견을 잘 전달하고,
좋은 청년 정책들을 많이 제안하고 만들어서
저뿐만 아닌 다른 은둔 고립 청년분들께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게 되실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도 뭐 정책 의원이기 전에 은둔 고립 청년 당사자고요.
그러다 보니까 다른 고립 은둔 청년분들이 많이 겪는
정서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좀 더 은둔 고립 청년들에 대한 정책을 많이 제안하고.
그분들께 도움이 돼서, 많은 분들이 은둔 고립에서 벗어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방에도 은둔 고립 청년분들이 많으시니까,
전국 각지에 청년 센터들이 생겨서 지방에 계신 분들도
은둔 고립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
도움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도움을 구해 본, 도움을 받아 본 사람은 그 절실한 마음을 알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새로운 도움을 주고자 한다.
어쩌면 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사람들 아닐까.
오늘도 수많은 용기가 모여, 여러분께 손을 내밀고 여러분의 설 자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