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둔고립 청년들 중엔 흔히 조용하다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나서는 일에 조심스럽고, 매사에 숙려를 거치는 사람들. 그들은 때로 수용적이고 자포자기한 사람들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다만, 조용함이 언제나 수용을 뜻하는 것일까? 그들의 침묵은 정말 침묵일까? 안에서 끓고 있는 무언가가 그들을 움직인다.
오늘 만나볼 주인공 역시 세상에 하고픈 말이 참 많은 청년이다. 소리없이 타오르는 불꽃, 이현 씨의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보자.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름은 이현이고요, 만으로 서른.
한 3년 6개월 정도 은둔을 겪고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본인의 성격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MBTI 같은 거 하면 I가 거의 90퍼센트 이상 나올 정도로
내향적이고, 사회 공포같은 면도 조금 있는,
전형적인 내성적이고 소심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더집은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셨나요?
예전에, 은둔을 좀 탈출하기 위해 어느 단체에 연락을 했었는데
거기서 이제 씨즈라는 곳. 두더집을 추천받아서
처음엔 어느 곳인지 보러, 상담 한 번 받으러 와봤었고요.
얼마 전 두더잡 프로젝트 홍보 게시물을 보고 일경험 지원해서 현재 참여하고 있습니다.
두더집에 처음 오셨을 때 느낀 점이 궁금해요.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나요?
네, 그때 미노루 선생님이라고 일본인 매니저 분이 계셨는데
그분께 상담도 좀 받고 두더집 소개도 받았습니다.
되게 친절하고, 당사자들을 대하는 데에 진심이 느껴진다고 해야 될까요.
그래서 참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쵸, 한 명 한 명을 대하는 데에 진심이구나 느껴지면 참 긴장이 녹잖아요.
네 그렇죠. 지금은 안 계셔서 조금 아쉽네요.
두더지땅굴이라는 사이트도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이용하고 계신가요?
예. 사실 두더집에 처음 방문했던 시기랑 지금 두더잡을 통해 다시 온 사이에 텀이 꽤 있었는데,
그 사이에도 홈페이지는 간간이 접속했던 것 같아요.

*두더지땅굴 홈페이지
사전 조사에서 인생의 전환점으로 중학교 시절을 꼽아주셨는데,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일단 어렸을 때부터 불안이 좀 높은 아이였던 것 같아요.
중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중학교랑 초등학교 때랑 환경이 너무 다른 거예요.
요즘은 어떨지 잘 모르겠는데 그때만 해도 체벌도 되게 심했고,
두발 규제나 복장 규제, 뭐 이런 것도 되게 심했고.
어쨌든 학교 분위기가 경직되고 좀 폭력적이었고요.
학생들도, 이제 남중이었는데요. 애들이 사춘기가 오고 그러다 보니 조금 거칠어지고.
그러다 보니 긴장도가 훨씬 더 높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조금 강박증이 생겼고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계속 확인하고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그때부터 인생이 안 좋은 의미로 조금 변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까지 미치고 있는 영향이 있었나요?
강박증이란 게, 뭐 하나만 원인이다 할 수는 없겠지만
중학교 때 경험이 하나의 큰 요인으로 작용을 한다면, 그렇죠.
강박증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증상이고
그 문제가 은둔 고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럼 은둔 고립의 계기는 중학교 시절의 경험인가요?
강박증 때문에 학업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고
학교 시스템에 대해서도 불만이 쌓여서 이제 자퇴를 했어요.
정확히는 중학교까지만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좀 세상이 정해놓은 정규 코스를 벗어나기 시작하니까.
이게 뭔가 겉돌기 시작하고. 만성적인 고립감도 느껴지고.
아주 본격적으로는 아니지만 간헐적으로 짧게 은둔도 했었고, 그렇네요.
그렇게 되면 또 이 정규 코스로 재진입하기가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한번 궤도를 이탈하니까.
그렇게 쭉 청년기를 보내다가, 이제 코로나가 터지고.
2020년도에 마침 또 사람에 지쳐 있을 때였어요.
그래서 그게 핑곗거리가 돼서, 이젠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면 안돼. 하고.
집이 편하니까, 그때부터 그대로 한 3년 반 정도 첫번째 고립을 했던 것 같아요.
은둔 고립 생활 중에 자주 했던 생각이 있을까요?
첫 고립 당시에는 되게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그냥 모든 게 분노의 대상이었달까요.
세상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옛날에 알던 친구들도 그렇고.
되게 화가 많이 났었는데, 재고립 때는 화보다는 절망감이 컸어요.
결국 또 다시 이렇게 되는구나, 뭐 이런 느낌. 다시 되돌아온 느낌.
첫 번째 고립과 재고립 사이에 궤도에 다시 들어가기 위한 노력 같은 것들도 있으셨겠네요.
일단 두더집은 아니지만 이런 은둔고립 청년 관련 기관에 연락을 해서
조금 상담도 받고,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그랬어요. 한 1년 정도.
인터넷에서 찾은 단체를 계기로 셰어하우스에서 공동 생활도 했었고.
또 이건 좀 장기 프로젝트였는데, 은둔 고립 경험자들이
다른 은둔 고립 당사자들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는 프로그램도 했었는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은둔 고립 경험을 했었고. 어찌보면 현재진행형이니까.
그 경험을 살려서 다른 당사자들을 돕는 어떤 프로그램이라든지
그런 걸 개발하는 장기 프로젝트였는데요.
그걸 하다가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게 있어서 관두면서,
이제 재고립을 한 다섯 달 정도 한 것 같아요.
아까 얘기해주신 사람에 대한 피로감일까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은둔 고립 관련 센터, 기관들이나
그런 직원, 종사자들 몇몇에 조금 실망했것 같아요.
삶에 굉장히 굴곡이 많았잖아요.
그 굴곡 사이에서, 밑으로 꺼질 때나 다시 올라가려고 할 때
이런 게 자신을 지탱해주었다, 의미를 주었다 하는 게 있을까요?
삶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억지로 지어내서라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아까 전에 학교 시스템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때 자퇴하고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했었거든요.
청소년 인권단체였는데, 혹시 학생인권 조례라고 아시나요?
그런 걸 만드는 활동을 좀 했었고요.
여러모로 좀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변화시켜 나가고 싶기도 했고.
또 저처럼 사회에서 위축된 사람들을,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
도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
약간 이런 식으로 억지로라도 기합을 넣었던 것 같아요.
그게 조금은 도움이 됐던 거 아닐까 싶어요.

처음에 성격을 소개해 주실 때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의 전형이라 하셨는데요,
듣다 보니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해 분노하고 개혁하려는 열정이 상당히 강하신 것 같아요.
속에서 끓어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계시네요.
소심하게 계속 저항하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항상. (웃음)
앞으로 소소하게라도 해보고 싶으신 일이 있으신가요?
소소하게라면, 제가 해외 여행을 안 가봐서요.
해외 여행을 원래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요, 돈도 마련해 놨고. 시간은 항상 넘쳐났고.
근데 아까 사회 공포가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같이 갈 사람도 딱히 없고,
그렇다고 혼자 가려니까 뭔가 안 해본 걸 시도하려니까 별것도 아닌데 두렵고.
그렇게 미루다가 최근에 결심을 해서 이번 주말에 가거든요.
제일 가까운, 흔히들 제주도보다 난이도 낮다는 오사카로 가는데, 잘 다녀오고 싶고요.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을 좀 하고 싶어요. 이 세상에.
그래서 사회복지사도, 뭐 거창하게 계획이 있는 건 아닌데
그런 쪽으로 가능성을 조금 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제 첫 발자국이긴 하지만 자격증도 공부하고, 한 번 조금 알아보고 싶어서
그런 쪽으로 지금 계획 중에 있습니다.

* 오사카 여행 중 들린 카페. 이현님의 소소하고도 뜻깊은 행복이다.
멋있네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게 되실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힘든 시간 보내고 계실 테고,
또 동시에 각자의 방식으로 그 상황과 싸워 나가실 텐데
다만 그 과정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에 못하면 영원히 못한다.
이런 식으로 배수의 진을 치는 경우가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의지는 좋은데, 너무 비장한 도전은 만에 하나 실패했을 때 더 큰 좌절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조금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도전하셨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흡연자였다가 금연을 했는데요.
끊는다고 했다가 못 끊고, 끊는다고 했다가 못 끊고. 거의 수십 번 반복했던 것 같아요.
언제는 끊겠다고 하고서 3시간 있다 또 피워서 주변 사람들한테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는데
만약에 그때 제가 ‘확실히 끊지 못할 거면은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결심도 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쪽으로 갔으면 아마 지금도 피우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때 저는 호기심에 피웠다가 중독이 된 거라서, 정말 끊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계속 노력하다 보니까 어느 날, 컨디션 따라주는 날에 자연스레 끊어지더라고요.
실패했던 그 수십 번의 경험이 쌓이고 쌓인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실패하면 안 돼, 절대 이번이 마지막이고, 나이나 상황 생각하다 또 조급해지고.
그것도 일종의 완벽주의라고 생각하는데요.
역설적으로 그러면 이제 사람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완벽주의가 너무 강하다 보면.
그래서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뜻한 바대로 안 되더라도
다음에 또 하면 되니까, 마음에 조금 여유를 가지셨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
고대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이 세상을 이루는 것은 불, 즉 변화라고. 모든 것은 흐르고, 움직이고, 깎여나가며 사람과 사회 역시 변화를 겪는다.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고 그들을 묶어 이름짓기도 하며, 세상은 꾸준히 변해나간다. 소리없이 타오르는 불꽃이 그 변화를 이끈다.
기존의 불합리에 분노할 수 있는 힘은 세상을 새롭게 한다. 그야말로 이 사회를 이루는 데에 꼭 필요한 한 축이다.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새로운 미래에 한 발 가까워지게 만들 것이다.
은둔고립 청년들 중엔 흔히 조용하다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나서는 일에 조심스럽고, 매사에 숙려를 거치는 사람들. 그들은 때로 수용적이고 자포자기한 사람들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다만, 조용함이 언제나 수용을 뜻하는 것일까? 그들의 침묵은 정말 침묵일까? 안에서 끓고 있는 무언가가 그들을 움직인다.
오늘 만나볼 주인공 역시 세상에 하고픈 말이 참 많은 청년이다. 소리없이 타오르는 불꽃, 이현 씨의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보자.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름은 이현이고요, 만으로 서른.
한 3년 6개월 정도 은둔을 겪고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본인의 성격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MBTI 같은 거 하면 I가 거의 90퍼센트 이상 나올 정도로
내향적이고, 사회 공포같은 면도 조금 있는,
전형적인 내성적이고 소심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더집은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되셨나요?
예전에, 은둔을 좀 탈출하기 위해 어느 단체에 연락을 했었는데
거기서 이제 씨즈라는 곳. 두더집을 추천받아서
처음엔 어느 곳인지 보러, 상담 한 번 받으러 와봤었고요.
얼마 전 두더잡 프로젝트 홍보 게시물을 보고 일경험 지원해서 현재 참여하고 있습니다.
두더집에 처음 오셨을 때 느낀 점이 궁금해요.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나요?
네, 그때 미노루 선생님이라고 일본인 매니저 분이 계셨는데
그분께 상담도 좀 받고 두더집 소개도 받았습니다.
되게 친절하고, 당사자들을 대하는 데에 진심이 느껴진다고 해야 될까요.
그래서 참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쵸, 한 명 한 명을 대하는 데에 진심이구나 느껴지면 참 긴장이 녹잖아요.
네 그렇죠. 지금은 안 계셔서 조금 아쉽네요.
두더지땅굴이라는 사이트도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이용하고 계신가요?
예. 사실 두더집에 처음 방문했던 시기랑 지금 두더잡을 통해 다시 온 사이에 텀이 꽤 있었는데,
그 사이에도 홈페이지는 간간이 접속했던 것 같아요.
*두더지땅굴 홈페이지
사전 조사에서 인생의 전환점으로 중학교 시절을 꼽아주셨는데,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일단 어렸을 때부터 불안이 좀 높은 아이였던 것 같아요.
중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중학교랑 초등학교 때랑 환경이 너무 다른 거예요.
요즘은 어떨지 잘 모르겠는데 그때만 해도 체벌도 되게 심했고,
두발 규제나 복장 규제, 뭐 이런 것도 되게 심했고.
어쨌든 학교 분위기가 경직되고 좀 폭력적이었고요.
학생들도, 이제 남중이었는데요. 애들이 사춘기가 오고 그러다 보니 조금 거칠어지고.
그러다 보니 긴장도가 훨씬 더 높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조금 강박증이 생겼고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계속 확인하고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그때부터 인생이 안 좋은 의미로 조금 변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까지 미치고 있는 영향이 있었나요?
강박증이란 게, 뭐 하나만 원인이다 할 수는 없겠지만
중학교 때 경험이 하나의 큰 요인으로 작용을 한다면, 그렇죠.
강박증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증상이고
그 문제가 은둔 고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럼 은둔 고립의 계기는 중학교 시절의 경험인가요?
강박증 때문에 학업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고
학교 시스템에 대해서도 불만이 쌓여서 이제 자퇴를 했어요.
정확히는 중학교까지만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좀 세상이 정해놓은 정규 코스를 벗어나기 시작하니까.
이게 뭔가 겉돌기 시작하고. 만성적인 고립감도 느껴지고.
아주 본격적으로는 아니지만 간헐적으로 짧게 은둔도 했었고, 그렇네요.
그렇게 되면 또 이 정규 코스로 재진입하기가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한번 궤도를 이탈하니까.
그렇게 쭉 청년기를 보내다가, 이제 코로나가 터지고.
2020년도에 마침 또 사람에 지쳐 있을 때였어요.
그래서 그게 핑곗거리가 돼서, 이젠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면 안돼. 하고.
집이 편하니까, 그때부터 그대로 한 3년 반 정도 첫번째 고립을 했던 것 같아요.
은둔 고립 생활 중에 자주 했던 생각이 있을까요?
첫 고립 당시에는 되게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그냥 모든 게 분노의 대상이었달까요.
세상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옛날에 알던 친구들도 그렇고.
되게 화가 많이 났었는데, 재고립 때는 화보다는 절망감이 컸어요.
결국 또 다시 이렇게 되는구나, 뭐 이런 느낌. 다시 되돌아온 느낌.
첫 번째 고립과 재고립 사이에 궤도에 다시 들어가기 위한 노력 같은 것들도 있으셨겠네요.
일단 두더집은 아니지만 이런 은둔고립 청년 관련 기관에 연락을 해서
조금 상담도 받고,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그랬어요. 한 1년 정도.
인터넷에서 찾은 단체를 계기로 셰어하우스에서 공동 생활도 했었고.
또 이건 좀 장기 프로젝트였는데, 은둔 고립 경험자들이
다른 은둔 고립 당사자들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는 프로그램도 했었는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은둔 고립 경험을 했었고. 어찌보면 현재진행형이니까.
그 경험을 살려서 다른 당사자들을 돕는 어떤 프로그램이라든지
그런 걸 개발하는 장기 프로젝트였는데요.
그걸 하다가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게 있어서 관두면서,
이제 재고립을 한 다섯 달 정도 한 것 같아요.
아까 얘기해주신 사람에 대한 피로감일까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은둔 고립 관련 센터, 기관들이나
그런 직원, 종사자들 몇몇에 조금 실망했것 같아요.
삶에 굉장히 굴곡이 많았잖아요.
그 굴곡 사이에서, 밑으로 꺼질 때나 다시 올라가려고 할 때
이런 게 자신을 지탱해주었다, 의미를 주었다 하는 게 있을까요?
삶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억지로 지어내서라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아까 전에 학교 시스템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때 자퇴하고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했었거든요.
청소년 인권단체였는데, 혹시 학생인권 조례라고 아시나요?
그런 걸 만드는 활동을 좀 했었고요.
여러모로 좀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변화시켜 나가고 싶기도 했고.
또 저처럼 사회에서 위축된 사람들을,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
도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
약간 이런 식으로 억지로라도 기합을 넣었던 것 같아요.
그게 조금은 도움이 됐던 거 아닐까 싶어요.
처음에 성격을 소개해 주실 때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의 전형이라 하셨는데요,
듣다 보니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해 분노하고 개혁하려는 열정이 상당히 강하신 것 같아요.
속에서 끓어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계시네요.
소심하게 계속 저항하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항상. (웃음)
앞으로 소소하게라도 해보고 싶으신 일이 있으신가요?
소소하게라면, 제가 해외 여행을 안 가봐서요.
해외 여행을 원래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요, 돈도 마련해 놨고. 시간은 항상 넘쳐났고.
근데 아까 사회 공포가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같이 갈 사람도 딱히 없고,
그렇다고 혼자 가려니까 뭔가 안 해본 걸 시도하려니까 별것도 아닌데 두렵고.
그렇게 미루다가 최근에 결심을 해서 이번 주말에 가거든요.
제일 가까운, 흔히들 제주도보다 난이도 낮다는 오사카로 가는데, 잘 다녀오고 싶고요.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을 좀 하고 싶어요. 이 세상에.
그래서 사회복지사도, 뭐 거창하게 계획이 있는 건 아닌데
그런 쪽으로 가능성을 조금 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제 첫 발자국이긴 하지만 자격증도 공부하고, 한 번 조금 알아보고 싶어서
그런 쪽으로 지금 계획 중에 있습니다.
* 오사카 여행 중 들린 카페. 이현님의 소소하고도 뜻깊은 행복이다.
멋있네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게 되실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힘든 시간 보내고 계실 테고,
또 동시에 각자의 방식으로 그 상황과 싸워 나가실 텐데
다만 그 과정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에 못하면 영원히 못한다.
이런 식으로 배수의 진을 치는 경우가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의지는 좋은데, 너무 비장한 도전은 만에 하나 실패했을 때 더 큰 좌절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조금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도전하셨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흡연자였다가 금연을 했는데요.
끊는다고 했다가 못 끊고, 끊는다고 했다가 못 끊고. 거의 수십 번 반복했던 것 같아요.
언제는 끊겠다고 하고서 3시간 있다 또 피워서 주변 사람들한테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는데
만약에 그때 제가 ‘확실히 끊지 못할 거면은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결심도 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쪽으로 갔으면 아마 지금도 피우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때 저는 호기심에 피웠다가 중독이 된 거라서, 정말 끊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계속 노력하다 보니까 어느 날, 컨디션 따라주는 날에 자연스레 끊어지더라고요.
실패했던 그 수십 번의 경험이 쌓이고 쌓인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실패하면 안 돼, 절대 이번이 마지막이고, 나이나 상황 생각하다 또 조급해지고.
그것도 일종의 완벽주의라고 생각하는데요.
역설적으로 그러면 이제 사람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완벽주의가 너무 강하다 보면.
그래서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뜻한 바대로 안 되더라도
다음에 또 하면 되니까, 마음에 조금 여유를 가지셨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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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이 세상을 이루는 것은 불, 즉 변화라고. 모든 것은 흐르고, 움직이고, 깎여나가며 사람과 사회 역시 변화를 겪는다.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고 그들을 묶어 이름짓기도 하며, 세상은 꾸준히 변해나간다. 소리없이 타오르는 불꽃이 그 변화를 이끈다.
기존의 불합리에 분노할 수 있는 힘은 세상을 새롭게 한다. 그야말로 이 사회를 이루는 데에 꼭 필요한 한 축이다.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새로운 미래에 한 발 가까워지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