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우리를 여러 방식으로 외롭게 만들어서
결국엔 우리 자신에게로 향하도록 이끈다.
초코 이야기
/
초코님 소개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살지 고민 중인 30대 초반 초코입니다. 제가 상상한 20대 30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하고 방황 중에 있습니다.
직업에 대해 고민이 많으신가 보군요.
네, 그간 저의 직장경험이 별로 좋지 않았거든요.
직장에서의 경험이 초코님의 은둔과 관련이 있나요?
그렇죠. 첫 직장에서 적응을 잘 못하고 그 뒤에 준비한 시험에서도 떨어졌어요. 아마 그런 게 은둔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시험 준비했을 때는 가끔 친구들을 만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도 은둔이라고 생각을 못했었는데 시험에 떨어지고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안하게 되니까 사람들도 안 만나게 되고 은둔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은둔’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기보다는 ‘혼자 외롭게 지내는 존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첫 직장에서는 어떤 부분이 힘드셨나요?
상사와의 갈등이 있었어요. 일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자주 혼났어요. 제 생각에는 처음 시작하는 일이니까 당연히 적응하는 기간이 걸리는 거 같은데 저에 대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자주 들으니까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특히 제 능력에 대해서 한계 짓는 말을 많이 들으니까 더 버티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직장을 나와서 시험 준비를 시작했죠. 원래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첫 직장 구하기 전에 대학원을 갈까도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2년을 준비했는데 막상 결과가 안 좋다 보니까 열패감이나 열등감 같은 게 느껴지면서 사람들을 만날 자신이 없더라고요. 시험에 떨어졌으니까 새로 직장을 구해야 하는 게 맞는데 첫 직장에 대한 기억이 안 좋다보니까 이력서 넣는 것도 무서웠어요. 내가 평가받는 것도 그렇고 면접을 보러 가는 것도 그렇고 사회공포 비슷하게 다 무섭고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집 밖을 아예 안 나가신 건가요?
거의 그랬죠. 집에서 그냥 누워있는 시간도 많았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걸 보면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어요. 근데 너무 답답해서 가끔 밖을 나가긴 했어요. 낮에 돌아다니긴 좀 힘들었지만요. 제가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는데 밖에 나가면 동네 친구들 만날까봐 좀 조심스러웠거든요. 또 지금 사는 집 경비아저씨가 저희 식구를 다 알아서 제가 한낮에 돌아다니면 백수인 걸 다 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낮에는 거의 외출을 안했죠. 밤에 나갈 때도 꽁꽁 싸매고 나갔어요. 그 때 코로나 이전이었는데도 모자 쓰고 마스크 쓰고 막 그러고 돌아다녔죠. 그땐 누군가 날 알아보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근데 또 나갈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어요. 부모님이 집에만 있는 걸 못마땅해 하셨거든요. 원래 부모님하고 사이가 크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제가 그러고 있으니까 아빠가 크게 화를 내셨어요. 그래서 아빠와 마주치는 게 무서워서 내내 집에 있다가도 아빠 오실 때 쯤 바깥에 나가곤 했어요.
그럴 땐 주로 어디 가셨어요?
마땅히 갈 데가 없었서 카페가거나 도서관가거나 했죠. 그땐 친구들하고 연락 다 끊었으니까 수다 떨 사람도 없었고요. 또 카페 가면 돈이 드니까 어느 날은 아빠 오신 걸 알고도 방에 숨어 있었는데 오히려 인사 안한다고 또 혼이 난 적도 있었어요.
거의 사람답게 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내가 꿈꿔왔던 서른을 앞두고 있는데 20대의 마지막이 정말 비참하다고 느꼈어요. 진짜 좀 죽었으면 좋겠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증발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정말 많이 한 것 같아요.
앞으로 뭔가 나아질 거라는 생각 자체가 안 들었어요. TV에 나오는 청년 고독사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부모님이 없었으면 나는 노숙자가 됐겠다. 월세도 못 내고 혼자 죽었겠다. 그땐 스스로 자존감도 너무 낮았고 나를 비하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면서 자기연민에도 좀 빠졌던 것 같고. 한 번은 너무 갑갑해서 또 밤에 무장을 하고 외출을 하는 데 되게 단풍이 예쁘더라고요. 이런 걸 밤에만 보고 있어야 하는 제가 불쌍해서 걷다가 눈물이 났던 것도 생각나네요.
저의 은둔경험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 공감이 많이 되네요. 정말 외로웠을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 연락해 볼 생각은 안했어요?
네, 친구들 보기도 창피해서 연락이 와도 안 받았어요. 친구들이 싫었던 건 아닌데 시험 준비기간에 은둔기간까지 합치면 공백이 너무 길잖아요. 장기 백수라고 해야할지, 제 처지에 대해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만나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대학동기, 고등학교 친구들하고도 그때 연락이 다 끊긴 것 같아요.
아까 ‘꿈꾸던 30대’라는 말이 나왔는데, 혹시 초코님이 그리던 30대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그냥 꿈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모습에 가까운데요. 대리나 과장처럼 어느 정도 나이에 걸맞는 직책이 있고, 결혼을 해서 아이도 있고... 약간 그런 평범한 사람들 있잖아요. 저도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제가 이렇게 시험에 떨어져서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만 있을 줄은 전혀 생각을 못했죠.
초코님은 사전인터뷰 때도 스스로를 ‘스탠다드’라고 표현하셨던 게 기억나요. 그래서 어떤 평범하다고 생각한 궤도를 벗어났을 때 더 충격이 크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에게는 엄청나게 큰 좌절이었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뭔지 모르겠어서 제가 살아오던 방식이나 믿음 같은 게 전반적으로 흔들렸어요. 그리고 그때 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까 내가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있어도 이런 건 다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어요.
초코님이 찍은 하늘 사진
그렇게 2년 정도 은둔을 하시다가 집 밖에서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뭐였어요?
조금씩 돌아다니게 된 계기는 청년 수당을 받게 되면서인 것 같아요. 소득분위에 걸려서 국가장학금 같은 것도 못 받아봐서 진짜 기대 없었는데 이게 돼서 진짜 좋았어요. 돈이 들어오니까 조금은 편하게 밥 같은 걸 사 먹을 수 있겠더라고요. 부모님께서 주신 돈으로 생활을 했을 때는 눈치가 보이고 죄책감이 들었어요. 남들은 취직해서 돈을 벌 나이에 용돈을 받아쓰는 처지였으니까요. 한 달에 50만원씩 6개월을 받았는데 그게 남들한텐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저한테는 진짜 값진 돈이었어요.
그리고 청년수당을 받게 되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해 안내를 받는 데 그걸 통해서 ‘어슬렁 반상회’라는 곳을 알게 되었어요. 그게 집 밖을 나서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 시작점이었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니까 걱정이 많이 되어서 신청서를 다 써놓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캘리그라피 모임이었는데 배우고 싶은 욕구가 더 커서 결국 용기내서 나갔어요.
저는 처음에 다 저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올 줄 알았어요. 근데 자기소개를 할 때 보니까 다들 평범하신 거예요. 평범하게 자기 친구들 이야기하고, 프리랜서였지만 일을 하고 계시는 분도 계셨고요. 저는 첫 직장 경험도 안 좋고, 시험도 떨어져서 오래 집에 있다가 나온 건데... 사람들을 만나는 건 좋았지만 그런 차이가 저를 위축시키더라고요. 그래서 그 안에서도 사실 좀 적응을 못했어요. 그래도 배우는 거는 열심히 참여했고 대신 마지막 뒤풀이 같은 건 안 나갔어요. 막상 나가도 못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사회과학분야를 전공했거든요.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에서 실무자의 위치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참여자로 와 있다는 것에서도 마음이 불편했어요. 부모님께선 지금도 제가 상담 받으러 간다고 하면 제가 상담 받을 입장이 아니라 상담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부모님은 아직 저를 이해 못하시는 거죠.
여러 불편한 감정이 오고갔겠군요. 그럼에도 계속 모임을 나간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집에만 있으면 누워서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되니까요. 모임을 나갈 때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 받고 속상해 하고 그런 것도 있었는데 그래도 나가면 환기도 되고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자꾸 나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어슬렁 반상회 캘리그라피 사진
사전 인터뷰 때, 많은 활동에 참여하셔서 놀랐어요. 은둔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 같은 게 많이 느껴졌거든요.
맞아요. 사실 제가 주도적으로 여행을 다니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더 많은 활동을 신청했던 것 같아요. 다시 은둔했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책모임이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하는 신청해보고 단 회기 모임도 많이 했었어요. 그리고 상담도 여러 차례 받았죠.
그렇게 여러 활동을 하시면서 특별히 인상 깊은 기억이 있나요?
한 번 어떤 프로그램에서 제 이야기를 하고 공감을 받았던 게 그랬어요. 저는 제 얘기를 잘 못하는 편이거든요. 게다가 친한 친구들과도 연락을 잘 안 하던 터라 힘든 얘기를 털어 놓을 대상도 없었던지라. 근데 그 프로그램은 제 이야기를 구글 폼으로 작성하고 신청하면 다른 참가자가 제 이야기를 읽어주는 방식이었어요.
사실 제가 이야기를 잘 못했던 게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었던 이야기를 꺼내면 실제로 사람들한테 제가 일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되어버릴 까봐 두려운 것도 있었거든요. 내가 겪은 힘든 일들이 다 내 잘못 일까봐서요. 근데 그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들은 참여자들이 ‘정말 힘들었겠다.’ ‘그 사람 나쁘다’라고 말해주고 제가 받은 부당한 대우에 대해 공감해주니까 정말 기운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부터 용기랄까 그런 게 생겼죠. 이제 내 이야기를 꺼내도 괜찮겠구나 하는.
예전엔 정말 제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다른 곳에서 그룹상담 받을 때도 제 차례가 되면 눈물이 뚝뚝 흘렀어요. 내가 느끼는 감정이 너무 초라하다고 느껴지니까 너무 말하기가 싫은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데 그때는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더 위축되었던 상황이기도 해서 말하는 게 힘들었던 것도 있었는데 공감 받고 지지받고 그런 계기들을 통해서 조금 더 적극성을 띄게 된 것 같아요.
그 후에는 어느 정도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져서 활동을 더 참여하게 된 것도 있었지만 구직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회사에 원서도 넣고 면접도 보고. 근데 그거 진짜 용기 낸 거예요. 그때 공백이 시험 공부했던 기간까지 해서 그러니까 첫 직장 퇴사하고 시험공부하고 은둔한 것까지 해서 4년의 공백이었어요. 이걸 깨는 게 너무 진짜 무서웠는데 저한테는 면접을 본다는 거 자체가 진짜 대단한 거였어요.
청년수당 수기 부분 사진
다시 일을 시작할 때는 어땠어요? 첫 직장에서의 트라우마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은둔을 깨고 나와서 새로 일을 시작했을 때는 ‘뉴딜 일자리’라는 서울시 프로그램을 통해서였거든요. 근데 그게 공공성이 있는 일자리다 보니까 업무나 관계 같은 게 좀 괜찮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또 다른 활동에서 만난 사람이 뉴딜일자리 괜찮다고 추천해준 탓도 있었고요. 제가 31살이었는데 나이에 비해 공백이 엄청나게 많고 경력이 없는 게 걱정이었는데 그런 곳은 그걸 안 볼 것 같아서 넣을만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 2020년 초반이었는데 그때 뉴딜 일자리 엄청 많이 뽑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제가 원하는 분야 찾아서 넣었죠. 그래서 일하게 됐어요.
거기서 했던 일은 어땠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23개월 거의 다 채워서 일했고 첫 직장에서 만났던 상사처럼 권위적인 사람도 없었고요. 관계도 서로 서로 챙겨주는 분위기여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일이 끝나면 실업급여를 신청 할 수 도 있었는데 바로 취직을 했죠.
좀 쉬면서 직업을 더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되었을텐데 바로 취직을 이어가셨네요.
사실 그때 뉴딜일자리 끝나는 시점이랑 아버지 퇴직시기가 거의 겹쳤거든요. 집에서 또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걸 보면 아버지랑 부딪히게 되니까 그걸 피하고 싶어서 퇴직하시기 전에 먼저 취직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취직을 하긴 했는데 적응을 못하고 얼마 못가서 나왔어요. 그게 최근에 관둔 직장이에요.
세 번째 직장에서는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나요?
세 번째 직장은 예상했던 업무와 다르게 처음 해보는 업무를 맡아서 좀 낯설고 힘들었어요. 업무량도 많았고요. 그래서 1.5인분의 몫을 해내는 것 같은 정도였어요. 약간 그런데서 오는 버거움도 있었는데 회사 자체도 새로 생긴 곳이어서 자꾸 뭔가 바뀌는 게 많아 힘들더라고요. 제가 발 빠르게 적응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었어요. 동기가 여러 명 있었는데 나중에 사이가 틀어졌거든요. 특히 사이가 안 좋았던 동료는 좀 기가 세 보이는 친구였는데 저한테 너무 싫은 티를 대놓고 내는 거예요. 그래서 날을 잡고 불러서 얘기해 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저한테 서운한 감정을 토로해서 관계의 진전 같은 건 없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저한테 서운하다기보다 그냥 트집을 잡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로 사담 한 마디도 안 하고 업무만 하는 그런 분위기에서 일했어요. 밥도 저 혼자 먹었고요. 직장에서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소속감도 못 느꼈고요.
그때 이후로 3개월 정도가 지난 거군요. 지금도 은둔상태라고 봐야 할까요?
좀 애매한 것 같아요. 그룹상담을 받고 있고, 모임에도 나가고 있거든요. 지금은 은둔보다는 고립에 가까운 상태인 것 같아요. 정서적으로 친밀한 그런 걸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친한 관계들 다 끊긴 29살 이후로 고립감이 생겼는데 그게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처음 은둔을 시작했던 시기와는 다른 게, 그때는 첫 직장에서 받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그대로 흡수 했거든요. 그리고 그게 계속 영향을 미칠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최근 직장을 나왔을 때는 물론 그곳에서도 관계 때문에 힘든 일을 많이 겪었지만 그냥 운이 좀 나빴다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뉴딜 일자리에서 안정된 경험이 있어서 예전보다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은둔을 경험하고 나서 또 느껴지는 변화가 있나요?
은둔 이전의 저는 목표만 바라보고 정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러면서도 자책을 진짜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은둔 이후의 저는 좀 어떤 목표나 방향을 잃긴 했지만 그래도 좀 쉬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은둔한 이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정보를 찾으려고 노력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게 꼭 직업과 관련된 게 아니더라도 나에게 필요한 걸 찾아서 하는 것도 에너지가 들잖아요. 어쨌든 내가 살아가는 방법을 제가 찾아야 하니까요. 예전에는 일하지 않으면 뭔가 쓸모없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뭐 일하지 않아도 뭐 크게 나쁜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죄책감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느끼는 거지 불안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가질 감정은 아닌 것 같아요.
왜 은둔도 ‘스펙’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같은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볼 줄 아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사전 인터뷰를 하셨을 때도 은둔이 나쁜 경험만은 아니었다고 하셨잖아요. 그 이야기도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그냥 은둔을 하고 저 혼자만의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서 은둔했던 경험을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혼자서 일어날 힘이 없으면 외부의 도움을 받게 되잖아요. 그럼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 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저 스스로 깨우치는 작업이 되기도 하고, 또 그런 작업을 하다보면 긍정적인 말들을 옆에서 해 주더라고요. 지지해주기도 하고 괜찮다고 해주기도 하고요. 그런 말 들으면 일단 힘이 나고 또 이렇게 공백을 가지면서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니까 좋은 경험이기도 하다는 거죠. 또 상담도 받고 하면서 저의 숨겨진 강점을 찾는다든가 좀 여유롭게 쉬어도 된다라는 걸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고요.
초코님이 새로 찾은 숨겨진 강점에 대해서도 말해주세요.
근데 어떻게 보면 새로운 게 아니에요. 잊고 있던 나의 강점에 가까운데... 저는 원래 성취감을 중시하는 사람이고 열심히 하는 성실한 사람이었어요. 근데 그걸 잊고 살았구나 싶더라고요. 예전에는 그게 강점이라고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또 쑥스럽지만 자기 인생에 대한 책쓰기를 하는 모임에서 제가 잘 웃고 감성적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친절하고 배려심 있다고요. 이런 것들도 제가 잘 모르는 저의 장점에 대해 아는 계기가 됐죠.
데미안_필사 사진
마지막으로 앞으로 바라는 점에 대해 말해주세요.
앞으로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찾아서 좀 지속적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고, 실수를 많이 하더라도 그런 나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가 쓸 돈 벌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요. 그래서 당장은 취직이 목표인 것 같아요.
(끝)
interviewer_여름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심하게 고립감을 느끼며 살 던 때가 있었습니다. ‘은둔 고립 청년’이라는 명칭을 알고 나서 그때 나도 은둔을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사실 은둔이라는 범주에 속했는지 아닌지는 별로 상관없습니다. 그저 앞서 올라온 여러 편의 인터뷰 글을 공감하며 읽었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이 저에게 의미 있고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proust.sd@gmail.com
* 은둔 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dudug@theseeds.asia)
신은 우리를 여러 방식으로 외롭게 만들어서
결국엔 우리 자신에게로 향하도록 이끈다.
초코 이야기
/
초코님 소개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살지 고민 중인 30대 초반 초코입니다. 제가 상상한 20대 30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하고 방황 중에 있습니다.
직업에 대해 고민이 많으신가 보군요.
네, 그간 저의 직장경험이 별로 좋지 않았거든요.
직장에서의 경험이 초코님의 은둔과 관련이 있나요?
그렇죠. 첫 직장에서 적응을 잘 못하고 그 뒤에 준비한 시험에서도 떨어졌어요. 아마 그런 게 은둔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시험 준비했을 때는 가끔 친구들을 만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도 은둔이라고 생각을 못했었는데 시험에 떨어지고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안하게 되니까 사람들도 안 만나게 되고 은둔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은둔’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기보다는 ‘혼자 외롭게 지내는 존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첫 직장에서는 어떤 부분이 힘드셨나요?
상사와의 갈등이 있었어요. 일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자주 혼났어요. 제 생각에는 처음 시작하는 일이니까 당연히 적응하는 기간이 걸리는 거 같은데 저에 대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자주 들으니까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특히 제 능력에 대해서 한계 짓는 말을 많이 들으니까 더 버티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직장을 나와서 시험 준비를 시작했죠. 원래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첫 직장 구하기 전에 대학원을 갈까도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2년을 준비했는데 막상 결과가 안 좋다 보니까 열패감이나 열등감 같은 게 느껴지면서 사람들을 만날 자신이 없더라고요. 시험에 떨어졌으니까 새로 직장을 구해야 하는 게 맞는데 첫 직장에 대한 기억이 안 좋다보니까 이력서 넣는 것도 무서웠어요. 내가 평가받는 것도 그렇고 면접을 보러 가는 것도 그렇고 사회공포 비슷하게 다 무섭고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집 밖을 아예 안 나가신 건가요?
거의 그랬죠. 집에서 그냥 누워있는 시간도 많았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걸 보면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어요. 근데 너무 답답해서 가끔 밖을 나가긴 했어요. 낮에 돌아다니긴 좀 힘들었지만요. 제가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는데 밖에 나가면 동네 친구들 만날까봐 좀 조심스러웠거든요. 또 지금 사는 집 경비아저씨가 저희 식구를 다 알아서 제가 한낮에 돌아다니면 백수인 걸 다 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낮에는 거의 외출을 안했죠. 밤에 나갈 때도 꽁꽁 싸매고 나갔어요. 그 때 코로나 이전이었는데도 모자 쓰고 마스크 쓰고 막 그러고 돌아다녔죠. 그땐 누군가 날 알아보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근데 또 나갈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어요. 부모님이 집에만 있는 걸 못마땅해 하셨거든요. 원래 부모님하고 사이가 크게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제가 그러고 있으니까 아빠가 크게 화를 내셨어요. 그래서 아빠와 마주치는 게 무서워서 내내 집에 있다가도 아빠 오실 때 쯤 바깥에 나가곤 했어요.
그럴 땐 주로 어디 가셨어요?
마땅히 갈 데가 없었서 카페가거나 도서관가거나 했죠. 그땐 친구들하고 연락 다 끊었으니까 수다 떨 사람도 없었고요. 또 카페 가면 돈이 드니까 어느 날은 아빠 오신 걸 알고도 방에 숨어 있었는데 오히려 인사 안한다고 또 혼이 난 적도 있었어요.
거의 사람답게 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내가 꿈꿔왔던 서른을 앞두고 있는데 20대의 마지막이 정말 비참하다고 느꼈어요. 진짜 좀 죽었으면 좋겠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증발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정말 많이 한 것 같아요.
앞으로 뭔가 나아질 거라는 생각 자체가 안 들었어요. TV에 나오는 청년 고독사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부모님이 없었으면 나는 노숙자가 됐겠다. 월세도 못 내고 혼자 죽었겠다. 그땐 스스로 자존감도 너무 낮았고 나를 비하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면서 자기연민에도 좀 빠졌던 것 같고. 한 번은 너무 갑갑해서 또 밤에 무장을 하고 외출을 하는 데 되게 단풍이 예쁘더라고요. 이런 걸 밤에만 보고 있어야 하는 제가 불쌍해서 걷다가 눈물이 났던 것도 생각나네요.
저의 은둔경험과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 공감이 많이 되네요. 정말 외로웠을 것 같아요. 친구들한테 연락해 볼 생각은 안했어요?
네, 친구들 보기도 창피해서 연락이 와도 안 받았어요. 친구들이 싫었던 건 아닌데 시험 준비기간에 은둔기간까지 합치면 공백이 너무 길잖아요. 장기 백수라고 해야할지, 제 처지에 대해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만나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대학동기, 고등학교 친구들하고도 그때 연락이 다 끊긴 것 같아요.
아까 ‘꿈꾸던 30대’라는 말이 나왔는데, 혹시 초코님이 그리던 30대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그냥 꿈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떠올렸던 모습에 가까운데요. 대리나 과장처럼 어느 정도 나이에 걸맞는 직책이 있고, 결혼을 해서 아이도 있고... 약간 그런 평범한 사람들 있잖아요. 저도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제가 이렇게 시험에 떨어져서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만 있을 줄은 전혀 생각을 못했죠.
초코님은 사전인터뷰 때도 스스로를 ‘스탠다드’라고 표현하셨던 게 기억나요. 그래서 어떤 평범하다고 생각한 궤도를 벗어났을 때 더 충격이 크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에게는 엄청나게 큰 좌절이었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뭔지 모르겠어서 제가 살아오던 방식이나 믿음 같은 게 전반적으로 흔들렸어요. 그리고 그때 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까 내가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있어도 이런 건 다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어요.
초코님이 찍은 하늘 사진
그렇게 2년 정도 은둔을 하시다가 집 밖에서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뭐였어요?
조금씩 돌아다니게 된 계기는 청년 수당을 받게 되면서인 것 같아요. 소득분위에 걸려서 국가장학금 같은 것도 못 받아봐서 진짜 기대 없었는데 이게 돼서 진짜 좋았어요. 돈이 들어오니까 조금은 편하게 밥 같은 걸 사 먹을 수 있겠더라고요. 부모님께서 주신 돈으로 생활을 했을 때는 눈치가 보이고 죄책감이 들었어요. 남들은 취직해서 돈을 벌 나이에 용돈을 받아쓰는 처지였으니까요. 한 달에 50만원씩 6개월을 받았는데 그게 남들한텐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저한테는 진짜 값진 돈이었어요.
그리고 청년수당을 받게 되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해 안내를 받는 데 그걸 통해서 ‘어슬렁 반상회’라는 곳을 알게 되었어요. 그게 집 밖을 나서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 시작점이었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니까 걱정이 많이 되어서 신청서를 다 써놓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캘리그라피 모임이었는데 배우고 싶은 욕구가 더 커서 결국 용기내서 나갔어요.
저는 처음에 다 저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올 줄 알았어요. 근데 자기소개를 할 때 보니까 다들 평범하신 거예요. 평범하게 자기 친구들 이야기하고, 프리랜서였지만 일을 하고 계시는 분도 계셨고요. 저는 첫 직장 경험도 안 좋고, 시험도 떨어져서 오래 집에 있다가 나온 건데... 사람들을 만나는 건 좋았지만 그런 차이가 저를 위축시키더라고요. 그래서 그 안에서도 사실 좀 적응을 못했어요. 그래도 배우는 거는 열심히 참여했고 대신 마지막 뒤풀이 같은 건 안 나갔어요. 막상 나가도 못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사회과학분야를 전공했거든요.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에서 실무자의 위치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참여자로 와 있다는 것에서도 마음이 불편했어요. 부모님께선 지금도 제가 상담 받으러 간다고 하면 제가 상담 받을 입장이 아니라 상담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부모님은 아직 저를 이해 못하시는 거죠.
여러 불편한 감정이 오고갔겠군요. 그럼에도 계속 모임을 나간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집에만 있으면 누워서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되니까요. 모임을 나갈 때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 받고 속상해 하고 그런 것도 있었는데 그래도 나가면 환기도 되고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자꾸 나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어슬렁 반상회 캘리그라피 사진
사전 인터뷰 때, 많은 활동에 참여하셔서 놀랐어요. 은둔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 같은 게 많이 느껴졌거든요.
맞아요. 사실 제가 주도적으로 여행을 다니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더 많은 활동을 신청했던 것 같아요. 다시 은둔했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책모임이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하는 신청해보고 단 회기 모임도 많이 했었어요. 그리고 상담도 여러 차례 받았죠.
그렇게 여러 활동을 하시면서 특별히 인상 깊은 기억이 있나요?
한 번 어떤 프로그램에서 제 이야기를 하고 공감을 받았던 게 그랬어요. 저는 제 얘기를 잘 못하는 편이거든요. 게다가 친한 친구들과도 연락을 잘 안 하던 터라 힘든 얘기를 털어 놓을 대상도 없었던지라. 근데 그 프로그램은 제 이야기를 구글 폼으로 작성하고 신청하면 다른 참가자가 제 이야기를 읽어주는 방식이었어요.
사실 제가 이야기를 잘 못했던 게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었던 이야기를 꺼내면 실제로 사람들한테 제가 일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되어버릴 까봐 두려운 것도 있었거든요. 내가 겪은 힘든 일들이 다 내 잘못 일까봐서요. 근데 그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들은 참여자들이 ‘정말 힘들었겠다.’ ‘그 사람 나쁘다’라고 말해주고 제가 받은 부당한 대우에 대해 공감해주니까 정말 기운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부터 용기랄까 그런 게 생겼죠. 이제 내 이야기를 꺼내도 괜찮겠구나 하는.
예전엔 정말 제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다른 곳에서 그룹상담 받을 때도 제 차례가 되면 눈물이 뚝뚝 흘렀어요. 내가 느끼는 감정이 너무 초라하다고 느껴지니까 너무 말하기가 싫은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데 그때는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더 위축되었던 상황이기도 해서 말하는 게 힘들었던 것도 있었는데 공감 받고 지지받고 그런 계기들을 통해서 조금 더 적극성을 띄게 된 것 같아요.
그 후에는 어느 정도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져서 활동을 더 참여하게 된 것도 있었지만 구직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회사에 원서도 넣고 면접도 보고. 근데 그거 진짜 용기 낸 거예요. 그때 공백이 시험 공부했던 기간까지 해서 그러니까 첫 직장 퇴사하고 시험공부하고 은둔한 것까지 해서 4년의 공백이었어요. 이걸 깨는 게 너무 진짜 무서웠는데 저한테는 면접을 본다는 거 자체가 진짜 대단한 거였어요.
청년수당 수기 부분 사진
다시 일을 시작할 때는 어땠어요? 첫 직장에서의 트라우마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은둔을 깨고 나와서 새로 일을 시작했을 때는 ‘뉴딜 일자리’라는 서울시 프로그램을 통해서였거든요. 근데 그게 공공성이 있는 일자리다 보니까 업무나 관계 같은 게 좀 괜찮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또 다른 활동에서 만난 사람이 뉴딜일자리 괜찮다고 추천해준 탓도 있었고요. 제가 31살이었는데 나이에 비해 공백이 엄청나게 많고 경력이 없는 게 걱정이었는데 그런 곳은 그걸 안 볼 것 같아서 넣을만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 2020년 초반이었는데 그때 뉴딜 일자리 엄청 많이 뽑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제가 원하는 분야 찾아서 넣었죠. 그래서 일하게 됐어요.
거기서 했던 일은 어땠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23개월 거의 다 채워서 일했고 첫 직장에서 만났던 상사처럼 권위적인 사람도 없었고요. 관계도 서로 서로 챙겨주는 분위기여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일이 끝나면 실업급여를 신청 할 수 도 있었는데 바로 취직을 했죠.
좀 쉬면서 직업을 더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되었을텐데 바로 취직을 이어가셨네요.
사실 그때 뉴딜일자리 끝나는 시점이랑 아버지 퇴직시기가 거의 겹쳤거든요. 집에서 또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걸 보면 아버지랑 부딪히게 되니까 그걸 피하고 싶어서 퇴직하시기 전에 먼저 취직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취직을 하긴 했는데 적응을 못하고 얼마 못가서 나왔어요. 그게 최근에 관둔 직장이에요.
세 번째 직장에서는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나요?
세 번째 직장은 예상했던 업무와 다르게 처음 해보는 업무를 맡아서 좀 낯설고 힘들었어요. 업무량도 많았고요. 그래서 1.5인분의 몫을 해내는 것 같은 정도였어요. 약간 그런데서 오는 버거움도 있었는데 회사 자체도 새로 생긴 곳이어서 자꾸 뭔가 바뀌는 게 많아 힘들더라고요. 제가 발 빠르게 적응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었어요. 동기가 여러 명 있었는데 나중에 사이가 틀어졌거든요. 특히 사이가 안 좋았던 동료는 좀 기가 세 보이는 친구였는데 저한테 너무 싫은 티를 대놓고 내는 거예요. 그래서 날을 잡고 불러서 얘기해 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저한테 서운한 감정을 토로해서 관계의 진전 같은 건 없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저한테 서운하다기보다 그냥 트집을 잡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로 사담 한 마디도 안 하고 업무만 하는 그런 분위기에서 일했어요. 밥도 저 혼자 먹었고요. 직장에서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소속감도 못 느꼈고요.
그때 이후로 3개월 정도가 지난 거군요. 지금도 은둔상태라고 봐야 할까요?
좀 애매한 것 같아요. 그룹상담을 받고 있고, 모임에도 나가고 있거든요. 지금은 은둔보다는 고립에 가까운 상태인 것 같아요. 정서적으로 친밀한 그런 걸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친한 관계들 다 끊긴 29살 이후로 고립감이 생겼는데 그게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처음 은둔을 시작했던 시기와는 다른 게, 그때는 첫 직장에서 받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그대로 흡수 했거든요. 그리고 그게 계속 영향을 미칠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최근 직장을 나왔을 때는 물론 그곳에서도 관계 때문에 힘든 일을 많이 겪었지만 그냥 운이 좀 나빴다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뉴딜 일자리에서 안정된 경험이 있어서 예전보다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은둔을 경험하고 나서 또 느껴지는 변화가 있나요?
은둔 이전의 저는 목표만 바라보고 정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러면서도 자책을 진짜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은둔 이후의 저는 좀 어떤 목표나 방향을 잃긴 했지만 그래도 좀 쉬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은둔한 이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정보를 찾으려고 노력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게 꼭 직업과 관련된 게 아니더라도 나에게 필요한 걸 찾아서 하는 것도 에너지가 들잖아요. 어쨌든 내가 살아가는 방법을 제가 찾아야 하니까요. 예전에는 일하지 않으면 뭔가 쓸모없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뭐 일하지 않아도 뭐 크게 나쁜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죄책감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느끼는 거지 불안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가질 감정은 아닌 것 같아요.
왜 은둔도 ‘스펙’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같은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볼 줄 아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사전 인터뷰를 하셨을 때도 은둔이 나쁜 경험만은 아니었다고 하셨잖아요. 그 이야기도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그냥 은둔을 하고 저 혼자만의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서 은둔했던 경험을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혼자서 일어날 힘이 없으면 외부의 도움을 받게 되잖아요. 그럼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 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저 스스로 깨우치는 작업이 되기도 하고, 또 그런 작업을 하다보면 긍정적인 말들을 옆에서 해 주더라고요. 지지해주기도 하고 괜찮다고 해주기도 하고요. 그런 말 들으면 일단 힘이 나고 또 이렇게 공백을 가지면서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니까 좋은 경험이기도 하다는 거죠. 또 상담도 받고 하면서 저의 숨겨진 강점을 찾는다든가 좀 여유롭게 쉬어도 된다라는 걸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고요.
초코님이 새로 찾은 숨겨진 강점에 대해서도 말해주세요.
근데 어떻게 보면 새로운 게 아니에요. 잊고 있던 나의 강점에 가까운데... 저는 원래 성취감을 중시하는 사람이고 열심히 하는 성실한 사람이었어요. 근데 그걸 잊고 살았구나 싶더라고요. 예전에는 그게 강점이라고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또 쑥스럽지만 자기 인생에 대한 책쓰기를 하는 모임에서 제가 잘 웃고 감성적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친절하고 배려심 있다고요. 이런 것들도 제가 잘 모르는 저의 장점에 대해 아는 계기가 됐죠.
데미안_필사 사진
마지막으로 앞으로 바라는 점에 대해 말해주세요.
앞으로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찾아서 좀 지속적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고, 실수를 많이 하더라도 그런 나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가 쓸 돈 벌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요. 그래서 당장은 취직이 목표인 것 같아요.
(끝)
interviewer_여름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심하게 고립감을 느끼며 살 던 때가 있었습니다. ‘은둔 고립 청년’이라는 명칭을 알고 나서 그때 나도 은둔을 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사실 은둔이라는 범주에 속했는지 아닌지는 별로 상관없습니다. 그저 앞서 올라온 여러 편의 인터뷰 글을 공감하며 읽었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이 저에게 의미 있고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proust.sd@gmail.com
* 은둔 청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dudug@theseeds.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