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정착할 무언가를 찾아야 했기에 '나는 대체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던 중 우선 제 자신을 먼저 돌아보자는 생각에 에세이를 쓰게 되었습니다(뭔가 '에세이'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리면서도 제 글이 그 수준에 미칠까 두렵네요). 총 4편의 글로, 글을 다 쓴 후에도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지만.. 일단 올려 봅니다.
1) 회피형 인간 1: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20대 초반, 전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뭘 잘하는지, 또 뭘 좋아하는지 몰랐고, 심지어는 뭘 할 때 행복한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거엔 관심 없었습니다. 그저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으니까요. 그러니 어느 과로 가야 할지 알 리 없었습니다.
엄마는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숙사가 지원되는 학교에 입학했고, '고시반'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0대 거의 대부분을 공부를 당연시하며 지냈습니다. 매번 오는 슬럼프가 '이건 네 길이 아냐'라고 끊임없이 말해 주고 있는데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니,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공부는 취업을 해야 한다는 현실에서 벗어날 구실이 되어 줬으니까요.
그 기간 동안 제게 남은 거라곤 부정적인 생각들 뿐이었습니다. 자존감은 이미 저 밑바닥까지 내려갔으며 죽음을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한 한심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말 한순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정말 되기도 어려운 시험이지. 근데 말야, 만약 합격해서 공직 생활을 하면 그 삶이 과연 행복할까?'
답은 '아니'였습니다.
20대 후반, 전 그렇게 미련 없이 공부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니 너무도 간절히 알고 싶더군요.
'제 자신'이요.
2) 회피형 인간 2: 나를 알고자 한 시간에서조차도
제가 뭘 좋아하며,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그리고 뭘 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는지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제껏 안 해 왔던 것을 해 보기 시작합니다. 일, 사람과의 관계, 그림 그리기 등. 이와 더불어 제가 좋아했다고 생각했던 걸 하였습니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이해한 내용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었죠.
사실 취업을 피할 수단인 '공부'가 사라진 마당에 계속 취업을 안 할 수는 없었습니다. 눈치가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대뜸 캐나다로 워홀을 갈 거라 선언합니다. 마침 영어에 흥미도 있겠거니 즉흥적인 선택을 한 것이죠.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 보면 영어 공부를 한 것도, 워홀을 가겠다 한 것도 또 하나의 회피 수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3) 회피형 인간 3: 몸이 힘든 일을 함으로써
하지만 워홀 신청에 관한 어떠한 소식도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라는 어마어마한 것까지 닥쳐 왔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워홀은 사라졌고 새로운 회피 수단을 찾아야 했습니다.
워홀을 생각하면서 전 일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그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그래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핑계로 또 취업을 미루게 됩니다.
4) 회피형 인간 4: '나'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택한 종교
이때까지의 저는 그저 '공시에 실패한 사람', '스펙 하나 없는 인간', '제대로 된 직장은커녕 서비스직만 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존감이 높아질 수 없는 상태였죠. 그리고 '나'라는 존재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여러 요소를 극복하고자 종교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전부터 교회는 몇 번 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를 따라간 게 전부라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제 자신을 너무나 알고 싶어 제가 안 해 보던 걸 할 때 '소모임' 어플을 통해 알게 된 분에게 성경을 배우게 됩니다. 그 분의 말로는 성경으로 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다 하셨습니다. 그렇게 거의 1년간(?!) 그분과의 인연을 이어 갑니다. 그리고 종교에 관심이 생겼기에 (성경을 알려 주던 분과 별개인) 대학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은 정말 두려운 게 없었습니다. 비록 30이라는 나이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도, 해 봤자 알바만 하는 것인데도, 교회 생활만 하고 있는데도 좋았습니다. 전 그게 제게 평안이 찾아와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회피 수단을 하나 더 추가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회복된 줄로만 알았던 제 정신 상태는 그대로였고, 여전히 '나'라는 존재는 찾지 못했으며(그 성경을 알려 주신다는 분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신천지였습니다), 막막한 현실 또한 변한 게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감정 폭발이 왔고, 그렇게 전 일방적으로 그들과 연락을 끊게 됩니다.
5) 회피형 인간 5: 실업 급여라는 명목으로(ft. 폐인 생활)
일을 한 덕분인지 실업 급여를 받게 됩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왜냐하면 그게 저를 폐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사실 전 실업 급여 받기를 망설였습니다. 일이라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을 살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받기로 했고, 결국 우려했던 대로 장장 3개월의 시간을 암흑 속에서 보내게 됩니다(물론 이것도 제가 자초한 겁니다).
총 5개월 동안 받았는데, 그중 2개월은 종교에 빠져 있었기에 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후 현실이 보이면서 이 세상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알고자 한 시기, 즉 워홀을 회피 수단으로 삼은 시절, 제가 영어 공부와 더불어 많이 했던 것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제 '감정 일기'를 많이 올렸는데, 되지도 않는 실력에 막 번역기 써 가면서, Hellotalk의 외국인들한테 첨삭도 받아 가면서 그렇게 영어 일기를 썼습니다.
어쨌든 영어든 글쓰기든 그림이든 좋아하는 걸 찾으면 그게 저절로 직업으로 연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습니다. '역시 난 아무것도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이 온몸을 휘감았고,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돼 버렸습니다.
6) 힘을 얻은 계기
'남들 일어나는 시간에 잠들고 밤새 깨어 있는 생활의 반복. 지쳐가는 나의 정신력, 그리고 주변 사람들. 죽음을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
실업 급여라는 명목으로 위로하기엔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잘만 갔습니다. 어느덧 실업 급여 종료일이 다가왔고, 전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31살이었으니까요.
또다시 '몸이 힘든 일'의 공고를 검색했습니다. 그런데 하기 싫었습니다. 집 근처 공고가 나와도 면접은커녕 문자조차 보내기 싫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만 하면서 살기는 싫었습니다.
회피 수단인 실업 급여가 제 생각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네요. 참 아이러니하게도.
7) 회피형 인간 6: 계속되는 단념
자 그럼 뭔가 희망적인 얘기를 들려줄 차례인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불행한 건 아니었습니다. 저때만 해도, 그니까 실업 급여 이후 생각이 변했을 때만 해도 컨설팅을 통해 '번역가'라는 직업을 찾았고, 하면 될 거라는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한지 2개월만에 또다시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공부했다고 하기 민망할 정도지만 하면 할수록 '실력이 형편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에서는 언제 취직할 거냐며 얼른 나가서 제 구실을 하길 바랐습니다. 그러니 불안은 증폭됐고, 번역 공부는 더 이상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얼른 취업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군무원'.
영어와 한국사는 자격증 시험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3과목만 공부하면 되었습니다. 영어(지텔프)는 단기간에 점수 확보가 가능한 시험이었고, 한국사는 그런대로 예전에 공부하던 게 남아 있어서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3과목도 예전에 공부하던 국어, 행정법, 행정학이었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패턴대로 공부하지 못해 정신이 무너져 갔고,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군무원 현실에 대해 알게 되면서 2주만에 접게 됩니다.
8) 회피형 인간 7: 돌고돌고도는 쳇바퀴 인생
또다시 길을 잃었고, 이전과 같은 패턴을 반복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불만 끄기 일쑤였고, 서비스직을 전전합니다. 영영상점, 약국, 다이소. 그러다 뭐라도 배워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제과학교'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건 그때의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게 해 줍니다.
'1년 동안 제대로 배우면 나도 이제 뭔가를 하게 되는 거니까 입학 전까지는 이렇게 서비스직 일만 해도 돼'
참 열심히 했으면 좋으련만, 4일만에 한국제과학교를 그만둡니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또다시 서비스직을 구합니다. 하지만 이젠 정말 정착할 무언가를 정해야 했기에 그마저도 7월 말일로 그만둡니다.
이제는 정말 정착할 무언가를 찾아야 했기에 '나는 대체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던 중 우선 제 자신을 먼저 돌아보자는 생각에 에세이를 쓰게 되었습니다(뭔가 '에세이'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리면서도 제 글이 그 수준에 미칠까 두렵네요). 총 4편의 글로, 글을 다 쓴 후에도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지만.. 일단 올려 봅니다.
1) 회피형 인간 1: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20대 초반, 전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뭘 잘하는지, 또 뭘 좋아하는지 몰랐고, 심지어는 뭘 할 때 행복한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거엔 관심 없었습니다. 그저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으니까요. 그러니 어느 과로 가야 할지 알 리 없었습니다.
엄마는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숙사가 지원되는 학교에 입학했고, '고시반'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0대 거의 대부분을 공부를 당연시하며 지냈습니다. 매번 오는 슬럼프가 '이건 네 길이 아냐'라고 끊임없이 말해 주고 있는데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니,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공부는 취업을 해야 한다는 현실에서 벗어날 구실이 되어 줬으니까요.
그 기간 동안 제게 남은 거라곤 부정적인 생각들 뿐이었습니다. 자존감은 이미 저 밑바닥까지 내려갔으며 죽음을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한 한심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말 한순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정말 되기도 어려운 시험이지. 근데 말야, 만약 합격해서 공직 생활을 하면 그 삶이 과연 행복할까?'
답은 '아니'였습니다.
20대 후반, 전 그렇게 미련 없이 공부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니 너무도 간절히 알고 싶더군요.
'제 자신'이요.
2) 회피형 인간 2: 나를 알고자 한 시간에서조차도
제가 뭘 좋아하며,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그리고 뭘 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는지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제껏 안 해 왔던 것을 해 보기 시작합니다. 일, 사람과의 관계, 그림 그리기 등. 이와 더불어 제가 좋아했다고 생각했던 걸 하였습니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이해한 내용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었죠.
사실 취업을 피할 수단인 '공부'가 사라진 마당에 계속 취업을 안 할 수는 없었습니다. 눈치가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대뜸 캐나다로 워홀을 갈 거라 선언합니다. 마침 영어에 흥미도 있겠거니 즉흥적인 선택을 한 것이죠.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 보면 영어 공부를 한 것도, 워홀을 가겠다 한 것도 또 하나의 회피 수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3) 회피형 인간 3: 몸이 힘든 일을 함으로써
하지만 워홀 신청에 관한 어떠한 소식도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라는 어마어마한 것까지 닥쳐 왔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워홀은 사라졌고 새로운 회피 수단을 찾아야 했습니다.
워홀을 생각하면서 전 일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그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그래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핑계로 또 취업을 미루게 됩니다.
4) 회피형 인간 4: '나'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택한 종교
이때까지의 저는 그저 '공시에 실패한 사람', '스펙 하나 없는 인간', '제대로 된 직장은커녕 서비스직만 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존감이 높아질 수 없는 상태였죠. 그리고 '나'라는 존재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여러 요소를 극복하고자 종교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전부터 교회는 몇 번 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를 따라간 게 전부라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제 자신을 너무나 알고 싶어 제가 안 해 보던 걸 할 때 '소모임' 어플을 통해 알게 된 분에게 성경을 배우게 됩니다. 그 분의 말로는 성경으로 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다 하셨습니다. 그렇게 거의 1년간(?!) 그분과의 인연을 이어 갑니다. 그리고 종교에 관심이 생겼기에 (성경을 알려 주던 분과 별개인) 대학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은 정말 두려운 게 없었습니다. 비록 30이라는 나이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도, 해 봤자 알바만 하는 것인데도, 교회 생활만 하고 있는데도 좋았습니다. 전 그게 제게 평안이 찾아와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회피 수단을 하나 더 추가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회복된 줄로만 알았던 제 정신 상태는 그대로였고, 여전히 '나'라는 존재는 찾지 못했으며(그 성경을 알려 주신다는 분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신천지였습니다), 막막한 현실 또한 변한 게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감정 폭발이 왔고, 그렇게 전 일방적으로 그들과 연락을 끊게 됩니다.
5) 회피형 인간 5: 실업 급여라는 명목으로(ft. 폐인 생활)
일을 한 덕분인지 실업 급여를 받게 됩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왜냐하면 그게 저를 폐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사실 전 실업 급여 받기를 망설였습니다. 일이라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을 살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받기로 했고, 결국 우려했던 대로 장장 3개월의 시간을 암흑 속에서 보내게 됩니다(물론 이것도 제가 자초한 겁니다).
총 5개월 동안 받았는데, 그중 2개월은 종교에 빠져 있었기에 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후 현실이 보이면서 이 세상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알고자 한 시기, 즉 워홀을 회피 수단으로 삼은 시절, 제가 영어 공부와 더불어 많이 했던 것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제 '감정 일기'를 많이 올렸는데, 되지도 않는 실력에 막 번역기 써 가면서, Hellotalk의 외국인들한테 첨삭도 받아 가면서 그렇게 영어 일기를 썼습니다.
어쨌든 영어든 글쓰기든 그림이든 좋아하는 걸 찾으면 그게 저절로 직업으로 연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습니다. '역시 난 아무것도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이 온몸을 휘감았고,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돼 버렸습니다.
6) 힘을 얻은 계기
'남들 일어나는 시간에 잠들고 밤새 깨어 있는 생활의 반복. 지쳐가는 나의 정신력, 그리고 주변 사람들. 죽음을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
실업 급여라는 명목으로 위로하기엔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잘만 갔습니다. 어느덧 실업 급여 종료일이 다가왔고, 전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31살이었으니까요.
또다시 '몸이 힘든 일'의 공고를 검색했습니다. 그런데 하기 싫었습니다. 집 근처 공고가 나와도 면접은커녕 문자조차 보내기 싫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만 하면서 살기는 싫었습니다.
회피 수단인 실업 급여가 제 생각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네요. 참 아이러니하게도.
7) 회피형 인간 6: 계속되는 단념
자 그럼 뭔가 희망적인 얘기를 들려줄 차례인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불행한 건 아니었습니다. 저때만 해도, 그니까 실업 급여 이후 생각이 변했을 때만 해도 컨설팅을 통해 '번역가'라는 직업을 찾았고, 하면 될 거라는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한지 2개월만에 또다시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공부했다고 하기 민망할 정도지만 하면 할수록 '실력이 형편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에서는 언제 취직할 거냐며 얼른 나가서 제 구실을 하길 바랐습니다. 그러니 불안은 증폭됐고, 번역 공부는 더 이상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얼른 취업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군무원'.
영어와 한국사는 자격증 시험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3과목만 공부하면 되었습니다. 영어(지텔프)는 단기간에 점수 확보가 가능한 시험이었고, 한국사는 그런대로 예전에 공부하던 게 남아 있어서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3과목도 예전에 공부하던 국어, 행정법, 행정학이었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패턴대로 공부하지 못해 정신이 무너져 갔고,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군무원 현실에 대해 알게 되면서 2주만에 접게 됩니다.
8) 회피형 인간 7: 돌고돌고도는 쳇바퀴 인생
또다시 길을 잃었고, 이전과 같은 패턴을 반복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불만 끄기 일쑤였고, 서비스직을 전전합니다. 영영상점, 약국, 다이소. 그러다 뭐라도 배워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제과학교'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건 그때의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게 해 줍니다.
'1년 동안 제대로 배우면 나도 이제 뭔가를 하게 되는 거니까 입학 전까지는 이렇게 서비스직 일만 해도 돼'
참 열심히 했으면 좋으련만, 4일만에 한국제과학교를 그만둡니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또다시 서비스직을 구합니다. 하지만 이젠 정말 정착할 무언가를 정해야 했기에 그마저도 7월 말일로 그만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