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다른 삶을 살아내는 4박 5일 간의 여정
연두님
7월 중순 은둔고립 청년의 제주살이 홍보 문자가 왔을 때, 볍씨학교가 무엇인지 검색해보았는데 끌리지 않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8월 초쯤 미미에게 제주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받았고 여러 이유로 거절을 했었다. 장기간 집을 떠나야 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긴 시간동안 함께 해야하니 여러 불편한 점들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쉬러 여행을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가, 다른 일도 생겨서 대인관계 문제가 신경쓰일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두 번의 거절을 하였으나 티케팅이 완료됐다는 걸 확인한 나는 제주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러 걱정과 달리 막상 캐리어에 짐을 쌓을 때는 ‘정말 여행을 가는구나’라는 실감이 나서 약간의 설렘이 있었다. 참가하는 사람과 일정표에 대한 문의를 계속 하였으나 제주에 떠나기 하루 전이 돼서야 상세 일정표를 받을 수 있었고, 볍씨학교 관련해서는 낯선 용어들이 많이 있었다. 어쨌든 미리 알고가면 좋으니 볍씨학교에 대한 기사와 영상을 보며 준비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김포공항에 도착하고 감수, 세계와 언제 비행기를 타봤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코로나와 상관없이 여행을 잘 다니지 않아서 제주도에 가는 것은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이후로 십오년만이고, 마지막 비행기도 오년 전에 타보고 정말 오랜만이었다. 여러 수속을 밟고 자연스레 제주에 오게 되었는데 관광지를 다니는 게 아니다보니 처음에는 시골에 온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함덕해수욕장에 오니 내 감각이 깨어났다. 푸르른 바다와 회색으로 보이는 저편의 바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힘차게 귀에 닿는 바람소리에 집중해보았다. 쏴아-, 쏴아-. 이제서야 제주도에 온 기분이 났다.

15년만에 마주한 제주도의 바다
그러고는 볍씨학교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새로운 생명이 온 것에 대한 감사와 밥가, 선분식이 이어졌다. 반찬을 한 그릇에 나눠먹는 것이 불편했고, 옥수수 스프도 입맛에 맞지 않았다. 볍씨학교 친구들은 영양가 없는 옥수수 스프를 너무나 잘 먹고, 또 영양사 없이 아이들이 직접 밥을 짓는다하니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숙소도 확인해 보았는데 4~6명이 좁은 곳에서 함께 잔다는 사실을 알고 쾌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연의 선순환을 위해 생태화장실을 쓰는 어린 학생들의 선택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놋그릇을 쌀뜨물에 씻으면서 제주도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는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남은 4박 5일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됐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일기를 공유하듯 발표하는 ‘하루나눔’을 하는 아이들의 말소리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깨어있어서 피곤했고, 아이들의 일과를 모른 채 일방적인 소통에 불과한 내용을 듣자니 첫날에는 어리둥절하고 흥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숙소와 학교를 오고가는데 제주 하늘은 금방 바뀌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보는 나의 기분도 자연스레 풀리고 노을의 색이 빠르게 짙어지는 하늘의 작품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첫날엔 제주하늘처럼 내 마음도 여러색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첫날이고 낯선 곳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한 나는 새벽에도 잠을 설치며 그렇게 제주에서의 하루를 보냈다.
둘째날은 볍씨 친구들과 약속한대로 새벽에 동백동산을 뛰었다. 처음엔 끝까지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숨이 차서 중간부터는 걸었다. 이미 도착해서 땡땡과 나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에게 미안해 얼른 뛰어가고 싶었지만 숨이 찼다. 새벽부터 뛰는 것에 대해 후회했다. 그러다가 요가를 하는데, 반복되는 단순한 동작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제주 새벽공기를 마시며 내 몸의 동작에 집중하니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나는 정적인 자세에서 힘이 더 나나 보다. 점심에는 흑돼지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함덕해수욕장에 한 번 더 갔는데, 어쩌다보니 각자 흩어져 놀게 되었다. 나는 근처의 서우봉에 오르려다가 길을 잃을까봐 그 근처만 맴돌았고, 다시 해변가에서 세계, 감수를 만나 스타벅스에서 여행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에너지를 채운 뒤 우리는 저녁 밥지기가 되어 볍씨 친구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해드리기로 했다. 소불고기를 만들어 먹고 이사장님이 갖고 오신 파김치, 오이소박이를 함께 곁들이니 아이들이 정말 잘 먹어주었다. 나는 집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밥만 먹는데 내가 이곳에서 요리를 하다니.. 수고스러움이 더해지는 요리이다 보니 더 값진 경험이었다.


볍씨학교의 모습과 하루나눔 현장
셋째날에도 학교의 0교시처럼 아이들과 새벽일정을 함께 했다. 그러고는 오전에는 밀 분리를 하며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친해질 수 있었다. 좌식으로 앉아 밀을 분리하고 있자니 몸이 불편해 노동요도 틀고 밀로 다른 여러 모양을 만들며 지루함을 달래기도 했다. 그러다가 등허리가 너무 아파 미미에게 숙소에 들어가서 쉬겠다고 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작업하던 볍씨 친구들에겐 미처 말을 못 하고 숙소로 왔다. 같이 하기로 한 시간이 있었는데 끝까지 하지 못해 속상하기도 했고, 너무 새벽부터 일정을 무리했나 싶었다. 하나, 모모와 이야기를 하며 일정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 나누기도 했다. 나는 점심도 먹지 않은 채 누워 있다가 집에만 가만히 있는 것 같아 머리가 아파서 밖에 나가고 싶었으나 길을 잘 모르기도 하고, 날씨도 안 좋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존에 공유해준 일정표와는 다르게 진행되는데, 이후 일정에 대해 이렇다할 대안을 관리자분들이 안내를 해주면 좋을텐데하며 아쉬움도 들었다. 그러다가 양언니께서 인근의 카페를 알려주셨고, 땡땡, 모모, 하나, 감수와 함께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각자의 활동을 하다가 한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예쁜 동네 카페에 온 느낌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렇게 소소하게나마 대화를 하고 맛있는 음료를 마시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이곳 카페에서의 기억이 없었다면 제주에 온 걸 후회할 뻔 했다.


밀 분리를 하고 다녀온 달콤했던 카페
넷째날에는 거의 모든 일과를 볍씨 친구들과 함께 했다. 그런데 개별활동을 하는 씨즈 친구들을 미미나 이사장님께서 챙겨주고 땡땡은 저녁식사를 위한 고기를 재우러 가다보니 나 혼자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드로잉시간에 볍씨의 재우군이 씨즈의 히키코모리 분들이 오셨다고 얘기할때도 그렇고, 드로잉 시간에 오기로 한 씨즈 분들의 정확한 도착시간을 묻는 미술교사의 말에 나는 무안했다. 나는 마치 외딴별의 사람같이 느껴졌었다. 활동은 재미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나는 학창시절에도 혼자 알아서 잘 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학생이었는데, 이곳에서도 왠지 그런 느낌을 받아 속상했다.
자폐인 아동과 같이 고구마 경단을 만들 때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나는 숙소 화장실을 이용하려다 최대한 시간에 맞춰달라는 땡땡의 말에 불편하지만 가까운 화장실을 다녀오고 자리를 지켰는데 담당자의 공백이 있기도 했다. 별로 배려 받지 못 한다는 느낌이었다. 자폐 아동과 함께할 때도 볍씨 친구들이 잘 하지만, 어떻게 하는 행동이 맞을까 지도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가이드 해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자폐 친구 한명이 사라져 다 같이 동네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결국엔 찾았지만 그렇게 볍씨 친구들도 힘든 하루를 보냈다.
아쉬운 와중에도 새로이 느낀 점은 있었다. 자폐 아동 중 의사소통이 일부 가능한 아동은 오히려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울고 있는 다른 아동을 걱정하는 자폐아도 있는 걸 보고 사회성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 그들 안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의사소통을 하고 사회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먹기보다는 열심히 경단을 굴리는 자폐아동도 있었고, 여기에 참여한 모두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든 경단을 자폐아동 부모님께서 리스를 만드는 공간에 배달을 주하양과 같이 갔고, 나는 모모의 추천으로 리스를 조금 만들다가 손재주가 없어 어려워했다. 이영이 선생님께서 꽃을 한 송이씩 챙겨주셨음에도 완성하지 못 하고 다시 자폐 아이들이 있는 볍씨커뮤니티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고 만족스럽지 않은 하루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던 나는 저녁시간에도 미리 식당에 들어가 대화를 하지 않고 밥만 먹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이영이 선생님께서 내가 만들다만 리스를 완성해서 주셨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풀리고 감사했다.


혼자 묵묵히 견딘 드로잉 시간
작별인사를 하는 마지막 하루나눔 시간이 되었다. 촛불을 켜고 한마디씩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하는 만트라 명상을 할 때 눈물이 조금 났다. 그러다가 재우군이 첫순서로 하루나눔을 해주셨는데, ‘연두님이 제일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라고 해서 한 번 더 눈물이 났다. 내가 발표를 할 땐 울지 않고 싶었는데, 이영이 선생님의 리스 부분을 얘기할 때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도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하루 일과를 같이 하다 보니 볍씨 친구들의 하루나눔 시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이렇게 적응을 해가는 날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특히나 현재나 과거 반추를 많이 하는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인데, 이곳에서의 경험은 가끔씩 떠올라 생각에 잠기게 할 것 같다. 가끔씩 떠올려 볼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4박 5일간 씨즈 사람들을 챙겨준 제일 어리지만 반장같은 재우, 이모뻘인 내게 언니라며 친근하게 다가와준 서정,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였던 주하, 기타를 잘치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주었던 은유. 모두 프로그램을 하며 가까워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서울에 돌아온 뒤엔 걷다가 볍씨 친구들이 떠올라 뛰기도 하고, 오늘의 제주하늘은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제주도에 갈 때는 내게 쉬어가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했지만, 결국에는 평소의 나대로 열심히 참여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내는 4박 5일 간의 여정
연두님
7월 중순 은둔고립 청년의 제주살이 홍보 문자가 왔을 때, 볍씨학교가 무엇인지 검색해보았는데 끌리지 않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8월 초쯤 미미에게 제주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받았고 여러 이유로 거절을 했었다. 장기간 집을 떠나야 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긴 시간동안 함께 해야하니 여러 불편한 점들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쉬러 여행을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가, 다른 일도 생겨서 대인관계 문제가 신경쓰일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두 번의 거절을 하였으나 티케팅이 완료됐다는 걸 확인한 나는 제주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러 걱정과 달리 막상 캐리어에 짐을 쌓을 때는 ‘정말 여행을 가는구나’라는 실감이 나서 약간의 설렘이 있었다. 참가하는 사람과 일정표에 대한 문의를 계속 하였으나 제주에 떠나기 하루 전이 돼서야 상세 일정표를 받을 수 있었고, 볍씨학교 관련해서는 낯선 용어들이 많이 있었다. 어쨌든 미리 알고가면 좋으니 볍씨학교에 대한 기사와 영상을 보며 준비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김포공항에 도착하고 감수, 세계와 언제 비행기를 타봤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코로나와 상관없이 여행을 잘 다니지 않아서 제주도에 가는 것은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이후로 십오년만이고, 마지막 비행기도 오년 전에 타보고 정말 오랜만이었다. 여러 수속을 밟고 자연스레 제주에 오게 되었는데 관광지를 다니는 게 아니다보니 처음에는 시골에 온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함덕해수욕장에 오니 내 감각이 깨어났다. 푸르른 바다와 회색으로 보이는 저편의 바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힘차게 귀에 닿는 바람소리에 집중해보았다. 쏴아-, 쏴아-. 이제서야 제주도에 온 기분이 났다.
15년만에 마주한 제주도의 바다
그러고는 볍씨학교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새로운 생명이 온 것에 대한 감사와 밥가, 선분식이 이어졌다. 반찬을 한 그릇에 나눠먹는 것이 불편했고, 옥수수 스프도 입맛에 맞지 않았다. 볍씨학교 친구들은 영양가 없는 옥수수 스프를 너무나 잘 먹고, 또 영양사 없이 아이들이 직접 밥을 짓는다하니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숙소도 확인해 보았는데 4~6명이 좁은 곳에서 함께 잔다는 사실을 알고 쾌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연의 선순환을 위해 생태화장실을 쓰는 어린 학생들의 선택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놋그릇을 쌀뜨물에 씻으면서 제주도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는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남은 4박 5일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됐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일기를 공유하듯 발표하는 ‘하루나눔’을 하는 아이들의 말소리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깨어있어서 피곤했고, 아이들의 일과를 모른 채 일방적인 소통에 불과한 내용을 듣자니 첫날에는 어리둥절하고 흥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숙소와 학교를 오고가는데 제주 하늘은 금방 바뀌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보는 나의 기분도 자연스레 풀리고 노을의 색이 빠르게 짙어지는 하늘의 작품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첫날엔 제주하늘처럼 내 마음도 여러색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첫날이고 낯선 곳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한 나는 새벽에도 잠을 설치며 그렇게 제주에서의 하루를 보냈다.
둘째날은 볍씨 친구들과 약속한대로 새벽에 동백동산을 뛰었다. 처음엔 끝까지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숨이 차서 중간부터는 걸었다. 이미 도착해서 땡땡과 나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에게 미안해 얼른 뛰어가고 싶었지만 숨이 찼다. 새벽부터 뛰는 것에 대해 후회했다. 그러다가 요가를 하는데, 반복되는 단순한 동작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제주 새벽공기를 마시며 내 몸의 동작에 집중하니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나는 정적인 자세에서 힘이 더 나나 보다. 점심에는 흑돼지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함덕해수욕장에 한 번 더 갔는데, 어쩌다보니 각자 흩어져 놀게 되었다. 나는 근처의 서우봉에 오르려다가 길을 잃을까봐 그 근처만 맴돌았고, 다시 해변가에서 세계, 감수를 만나 스타벅스에서 여행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에너지를 채운 뒤 우리는 저녁 밥지기가 되어 볍씨 친구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해드리기로 했다. 소불고기를 만들어 먹고 이사장님이 갖고 오신 파김치, 오이소박이를 함께 곁들이니 아이들이 정말 잘 먹어주었다. 나는 집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밥만 먹는데 내가 이곳에서 요리를 하다니.. 수고스러움이 더해지는 요리이다 보니 더 값진 경험이었다.
볍씨학교의 모습과 하루나눔 현장
셋째날에도 학교의 0교시처럼 아이들과 새벽일정을 함께 했다. 그러고는 오전에는 밀 분리를 하며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친해질 수 있었다. 좌식으로 앉아 밀을 분리하고 있자니 몸이 불편해 노동요도 틀고 밀로 다른 여러 모양을 만들며 지루함을 달래기도 했다. 그러다가 등허리가 너무 아파 미미에게 숙소에 들어가서 쉬겠다고 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작업하던 볍씨 친구들에겐 미처 말을 못 하고 숙소로 왔다. 같이 하기로 한 시간이 있었는데 끝까지 하지 못해 속상하기도 했고, 너무 새벽부터 일정을 무리했나 싶었다. 하나, 모모와 이야기를 하며 일정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 나누기도 했다. 나는 점심도 먹지 않은 채 누워 있다가 집에만 가만히 있는 것 같아 머리가 아파서 밖에 나가고 싶었으나 길을 잘 모르기도 하고, 날씨도 안 좋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존에 공유해준 일정표와는 다르게 진행되는데, 이후 일정에 대해 이렇다할 대안을 관리자분들이 안내를 해주면 좋을텐데하며 아쉬움도 들었다. 그러다가 양언니께서 인근의 카페를 알려주셨고, 땡땡, 모모, 하나, 감수와 함께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각자의 활동을 하다가 한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예쁜 동네 카페에 온 느낌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렇게 소소하게나마 대화를 하고 맛있는 음료를 마시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이곳 카페에서의 기억이 없었다면 제주에 온 걸 후회할 뻔 했다.
밀 분리를 하고 다녀온 달콤했던 카페
넷째날에는 거의 모든 일과를 볍씨 친구들과 함께 했다. 그런데 개별활동을 하는 씨즈 친구들을 미미나 이사장님께서 챙겨주고 땡땡은 저녁식사를 위한 고기를 재우러 가다보니 나 혼자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드로잉시간에 볍씨의 재우군이 씨즈의 히키코모리 분들이 오셨다고 얘기할때도 그렇고, 드로잉 시간에 오기로 한 씨즈 분들의 정확한 도착시간을 묻는 미술교사의 말에 나는 무안했다. 나는 마치 외딴별의 사람같이 느껴졌었다. 활동은 재미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나는 학창시절에도 혼자 알아서 잘 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학생이었는데, 이곳에서도 왠지 그런 느낌을 받아 속상했다.
자폐인 아동과 같이 고구마 경단을 만들 때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나는 숙소 화장실을 이용하려다 최대한 시간에 맞춰달라는 땡땡의 말에 불편하지만 가까운 화장실을 다녀오고 자리를 지켰는데 담당자의 공백이 있기도 했다. 별로 배려 받지 못 한다는 느낌이었다. 자폐 아동과 함께할 때도 볍씨 친구들이 잘 하지만, 어떻게 하는 행동이 맞을까 지도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가이드 해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자폐 친구 한명이 사라져 다 같이 동네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결국엔 찾았지만 그렇게 볍씨 친구들도 힘든 하루를 보냈다.
아쉬운 와중에도 새로이 느낀 점은 있었다. 자폐 아동 중 의사소통이 일부 가능한 아동은 오히려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울고 있는 다른 아동을 걱정하는 자폐아도 있는 걸 보고 사회성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 그들 안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의사소통을 하고 사회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먹기보다는 열심히 경단을 굴리는 자폐아동도 있었고, 여기에 참여한 모두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든 경단을 자폐아동 부모님께서 리스를 만드는 공간에 배달을 주하양과 같이 갔고, 나는 모모의 추천으로 리스를 조금 만들다가 손재주가 없어 어려워했다. 이영이 선생님께서 꽃을 한 송이씩 챙겨주셨음에도 완성하지 못 하고 다시 자폐 아이들이 있는 볍씨커뮤니티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고 만족스럽지 않은 하루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던 나는 저녁시간에도 미리 식당에 들어가 대화를 하지 않고 밥만 먹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이영이 선생님께서 내가 만들다만 리스를 완성해서 주셨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풀리고 감사했다.
혼자 묵묵히 견딘 드로잉 시간
작별인사를 하는 마지막 하루나눔 시간이 되었다. 촛불을 켜고 한마디씩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하는 만트라 명상을 할 때 눈물이 조금 났다. 그러다가 재우군이 첫순서로 하루나눔을 해주셨는데, ‘연두님이 제일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라고 해서 한 번 더 눈물이 났다. 내가 발표를 할 땐 울지 않고 싶었는데, 이영이 선생님의 리스 부분을 얘기할 때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도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하루 일과를 같이 하다 보니 볍씨 친구들의 하루나눔 시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이렇게 적응을 해가는 날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특히나 현재나 과거 반추를 많이 하는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인데, 이곳에서의 경험은 가끔씩 떠올라 생각에 잠기게 할 것 같다. 가끔씩 떠올려 볼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4박 5일간 씨즈 사람들을 챙겨준 제일 어리지만 반장같은 재우, 이모뻘인 내게 언니라며 친근하게 다가와준 서정,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였던 주하, 기타를 잘치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주었던 은유. 모두 프로그램을 하며 가까워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서울에 돌아온 뒤엔 걷다가 볍씨 친구들이 떠올라 뛰기도 하고, 오늘의 제주하늘은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제주도에 갈 때는 내게 쉬어가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했지만, 결국에는 평소의 나대로 열심히 참여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