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은신과 변신의 기술 - 제주로 떠난 청년들1 (세계님)

둥둥
2022-09-16
조회수 98




제주도 여행기

세계님





씨즈에서의 제주도 여행은 예상치 못한 여정이었고 내 삶의 일부를 바꿔놓았던 것 같다. 처음 미노루 선생님이 여행을 권유할때만 해도 내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과거 해외여행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사실 어떤 여행이든 가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근데 막상 여름에 하염없이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하기도 해서 바람이나 쐬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결국 승낙을 했다.


8월 31일 아침에 걱정이 많이 되었고 기분이 나빴다. 혹시 나에게 닥칠 여러 예상치 못한 상황들의 전조였을까? 하지만 약을 먹고 기분이 다시 좋아지고 심지어 오랜만에 비행기를 탄다는 것에도 많은 설렘을 느꼈다. 택시 타고 공항에 일찍 도착해서 일행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9년만에 타보는 비행기가 너무 설레고 즐거웠다.



일찍 도착한 공항과 제주로 떠난 우리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함덕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했는데 그냥 물에 덥석 풍덩 들어가는게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러고 나서 볍씨학교에 도착했을 때... 솔직히 긴장감이 흘렀다. 우리 일행 중 대부분이 그냥 즐겁게 노는 줄 알고 왔는데 부리부리한 눈빛을 가진 검게 그을린 야생마같은 아이들이 우릴 맞이했다. 아이들 중 한명이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했지만 솔직히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긴장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밥을 먹을 때에도 살짝 당황했다. 반찬을 서로 덜어주는 관습과 맛이 없더라도 절대 남기면 안 되는 규정... 기름기 없는 설거지일 경우 친환경으로 세제 없이 씻고 물에 헹구는 모습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래 남기지 않고 잘 먹는 식성이라 다 받아들이고 맛있게 잘 먹었다. 뭔가 적응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난 심지어 밥 한 그릇을 더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본교는 광명시에 위치하고 제주에 분교를 두었다고 들은 볍씨학교는 저녁 시간에도 '하루나눔'이란 이름의 독자적인 관습과 규칙을 가진 공동체였다. 대략 저녁식사 끝나고 7시부터 노래를 30분간 부른 다음 자기만의 만트라를 하고 명상을 잠깐 한 뒤에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돌아가면서 반드시 그걸 공개적으로 발표를 한다. 우리 씨즈 일행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노래를 부를 때 볍씨학교 아이들이 환영인사로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합창하며 불렀는데 아이들의 합창실력에 일단 놀랬고 이상하게 가사를 음미하면서 듣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바보같이 살짝 눈물이 나왔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시간에도 난 최대한 진솔하게 내 자신을 소개하려 노력하면서 책에서 읽었던 퀘이커(Quaker) 교도들의 삶이 이 학교에서 연상된다고 말했다. 하루나눔이 끝나고 우리 일행 중 한명인 감수님이 아무래도 허전해서 좀 더 먹어야 될 것 같다고 했고 나도 커피를 좀 더 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볍씨학교의 양선생님 도움을 받아 근처 편의점에서 물을 포함해 생필품을 잔뜩 샀다.

 

첫날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잠들고 나서 둘째날이 되었다. 일어나서 또 다른 우리 일행인 연두님을 만났다. 연두님이 아침 달리기와 요가를 볍씨학교 학생들과 어울려 했던 내용을 들어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어제 갔던 해수욕장으로 가서 나와 연두님과 감수님 셋이서 커피를 마셨는데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저녁식사와 하루나눔을 하기 직전 그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모모님과도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즐거운 하루였다.



하루나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볍씨학교 친구들



그리고 셋째날인 9월 2일...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아침부터 볍씨학교 학생들과 밀 고르는 노동을 같이 하도록 스케줄이 짜여져 있었고 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가면서 즐겁게 그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잠깐 숙소에 급하게 들러야 할 일이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잠시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서 다시 정문으로 들어갈때 문을 지키고 있던 강아지 라봉이가 나를 물었다. 그것은 참으로 무섭고도 이상한 경험이었다.

보통 강아지가 사람을 물땐 일단 짖으면서 위협을 하기 마련인데 라봉이는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내게 접근해 나를 살짝 깨물고 나를 빤히 노려보았다. 난 순간적으로 두려워졌다. 일단 내가 물린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내가 물린 사실을 알렸더니 그들도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다들 첫마디가 '라봉이는 무는 개가 아닌데...' 였으니까...


어찌됐든 신속하게 이영이 교장선생님에게 내가 물렸다는 사실이 전달된 듯 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친절하시게도 직접 자기 차로 시내에 있는 병원까지 데려다 주셨다.


교장선생님과 이런저런 많은 대화를 그 와중에 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내가 첫날 퀘이커교도 얘기를 꺼내는걸 보고 식견이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과찬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사실 볍씨학교는 아미시(Amish) 스타일에 더 가깝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 이후에 교장선생님께서 뼈있는 농담을 하셨는데 개가 사람을 무는건 뉴스거리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거리가 된다고 하면서 웃으셨다. 그러면서 흔치 않은 나쁜 일만 뉴스가 되니까 뉴스의 온갖 부정적인 내용들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이 개에 물린 내 상태와 관련해서 우연히 나온 말씀인지 아니면 내 평소 모습을 단번에 파악하고 말씀하신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만약에 후자라면 정말 사람을 보는 통찰력이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지금도 두고두고 든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이빨자국이 패인것은 전혀 없다고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소독해주고 연고와 항생제를 처방해주었다. 나는 모든 관계자님들의 양해를 얻어 하루종일 숙소에서 쉬었다.

 

저녁엔 씨즈 멤버들이 괜찮으면 다른 숙소로 오라고 불러내서 갔다. 그곳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카드로 진실게임 비슷한 것을 하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숙소로 돌아오고 나서 내 마음은 웬지 슬펐다. 룸메이트인 감수씨와 그날 밤 새벽 3시까지 얘길 했는데 와인에 취한 탓인지 눈물도 좀 흘렸다.



볍씨학교에서 만난 동물들



넷째날인 9월 3일에는 정오에 이은애 이사장님께서 동백동산을 같이 산책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하셨다. 난 기꺼이 응했고 이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같이 동백동산을 걸었는데 비가 많이 쏟아지다가 갑자기 그쳤다가 하는 변덕스런 날씨의 방해만 빼면 동백동산 자체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사장님께서 친절하게 점심까지 사주셨는데 너무 좋았다.


4시에는 리스(꽃꽃이의 일종인 것 같다)를 했다. 처음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난감했지만 담당선생님 옆자리에서 설명을 들으며 집중하면서 작업을 했더니 의외로 쉬웠다. 완성된 꽃바구니를 보니 정말 흐뭇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마지막 하루나눔을 했다. 그러고 나서 소감을 서로 교환했고 볍씨학교 학생들은 대체로 이런 소감을 공통적으로 밝혔던 것 같다. 히키코모리라는 게 솔직히 뭔지도 몰랐고 그게 대략 은둔자라는 뜻이란걸 알고서 여기서 적응하실수 있을지 많이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너무나 밝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고... 낯가림이 심한 나지만 끝나고 나서 헤어질 때 최대한 용기를 내어 볍씨학교 학생들에게 일일이 먼저 악수를 청했다. 학생들은 기뻐하면서 악수를 받아주었고 마음이 뭉클했다.

교장선생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밖에 계시다고 해서 나갔더니 앞에 서계셨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더니 나를 꼭 안아주셨다. 정말 뭉클했다.




리스 만들기 체험과 만족스러운 작품




제주공항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정리해보았다. 정말 예상치 못한 여정이었고 시행착오도 많은 여정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나의 많은 부분을 또한 바꿔놓았음이 분명하다. 난 원래 마스크 벗고 담배피는 사람만 봐도 인상을 쓰며 노려보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내 반찬에 자기 먹던 젓가락을 대기만 해도 질색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적응해보자는 마음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옆사람에게 웃으며 서로의 젓가락으로 반찬을 덜어주고 노마스크로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던 그 경험들을 어찌 잊을수 있을까?


고생스럽고 힘들고 예상치 못한 사고도 겪었지만 가치있는 여정이었던것 같다... 우리 씨즈 멤버들에 대해서도 더 많은 디테일을 얘기하고 싶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연두'님,'감수'님,'모모'님,'하나'님...다 소중한 사람들이고 착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이미 많이 친해졌지만 사적으로 더욱 친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