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수다방

일상의 기분, 느낀 점 등 아무거나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2025.10.9 < 시작 >

도민
2025-10-09
조회수 88

어렸을때부터 소화기관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아버지네 가족들이 모두 다 장이 안좋아서 설사나 변비 등을 달고 살았다.

나는 아침을 먹으면 항상 배가 아팠지만 그땐 다른사람들도 아침을 먹으면 항상 다들 배가 아픈줄 알았다.

초등학교때 아침밥을 먹고 바로 운동장에 가서 축구를 하는 애들을 보면서 배가아픈것을 참으면서까지 축구하는게 대단하다고 느꼈다.



배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어

 

나는 신체에 칼을 대어본 적은 없었지만 배가 칼로 쑤시듯이 아팠다.

마침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첫날이라서 수업을 하지않기에 엄마와 함께 지방병원으로 갔었다.

그 지방병원에 간 이유는 친척분들 중에 간호사분이 지방병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갔었다.

병원에서는 내 대장에 염증이 심해서 부분부분이 부었었고 그 사이에 대변이 껴서 장의 흐름이 완만하지 않아 복통이 심하다고 했었다.

그래서 입원을 해서 항생제를 맞으면서 경과를 지켜보면 곧 나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때까지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재수가 없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지방병원에서의 입원생활은 최악이었다. 냉난방시설은 열악했고 내 입원자리는 창가자리라 항상 더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금식이라서 

아무것도 마실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진통제를 맞으면서 통증이 없어지니 기분이 좋았고 빨리 나가고만 싶었다. 그렇게 버티다가

일주일정도가 지나고 음식도 먹게되어서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음식맛이 매우 이상했고 토하고 싶었다.

그날 저녁 아침과 점심에 먹은 음식들을 다 토했다. 다음날 아침회진때 의사선생님은 나의 증상에 매우 의문점이 드는 표정으로 다시 금식처방을 

내렸고 엄마가 계속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들어보니 처음에 진단했을때랑 전혀 다른 질병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그때 엄마는 깨달았다. 아 이사람 돌팔이구나....

엄마는 바로 이 병원에 근무중인 친척간호사에게 그 의사에 대해 물어봤다.

예상대로 의사는 지방병원내에서 평판이 되게 좋지못했고 환자들에게 컴플레인이 엄청 들어오는 의사였다.

엄마는 바로 퇴원절차를 하고 상위병원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로비에서 다시 의사선생님을 만났는데 아직도 그말을 기억한다.

"오늘 상위병원에 가면 입원이 안되서 응급실에서 한참 기다려야되니깐 주말 지나서 월요일날에 가면 입원이 수월할 겁니다."

퇴원하는 날이 금요일이라서 이런 정보를 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를 돌봐주었던 의사였기에 감사히 생각했다.

그렇게 돌팔이 의사선생님과의 짧은 인사를 마치고 친척간호사분한테 인사를 하러 가니 간호사분은 지금바로 곧장 상위병원에 가라고 했다.

"지금 진통제를 맞고 있어서 그렇지 약기운이 가시면 다시 복통이 심해질 수 있으니 곧장 가야돼요!"

상위병원에 가니 바로 CT와 MRI를 찍어보고 응급실에서 대기하다가 주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부모님한테 바로 수술을 권했다.

"지금수술을 안하면 장이 터질수가 있습니다." 

내 장은 지금 밑에는 무슨이유에서인지 막혀있지만 위로는 계속해서 먹었던 소량의 음식물이나 공기,대변 등으로 가득찼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압력이 세져서 중간에 있던 장부분이 터질 수 있다고 했었다. 그렇게 나는 배를 갈라서 소장의 1/4정도를 부분절제했다.

절제된 부위는 마치 외계인의 신체부위같았다. 사람의 몸에서 저런게 나온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상했다. 

(나중에 절제된 부위는 크론병에 연구하시라고 병원에 기증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크론병"이라는 희귀병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수술을 처음받아봤고 앞으로는 이런일이 없을 거라 고 생각했었다.

인생에 있어서 한두번받는것이 수술이 아닐까? 병원생활도 인생에서 한두번하는거 어린나이에 했다고 치지뭐

그러나 퇴원후에는 몸이 예전같지 않았다. 일단 뛸수가 없었다. 수술부위가 아픈것도 있지만 뛰는 법을 까먹었다.

몇달동안 움직이지 않았고 뛰어본적이 없었기에 몸의 감각을 익히는게 중요했다.

그러나 이런 신체적인 불편함보다 체감이 컸던것은 주변에서의 시선이었다. 

주변에서는 나를 "환자"로 취급했었다. 나의 고등학교별명은 "할아버지"였다. 살이 빠지면서 얼굴이 해골바가지가 되면서 늙어보인 것도 있었지만

수술을 하고나서 친구들이 나한테 배려를 많이해줬다. 마치 대중교통에서 노약좌석을 양보하는 청년들처럼말이다.

같이 놀거나 어딜 가더라도 얘들은 항상 나를 배려해주었다. 어쩔때는 불만의 소리도 나왔다. "쟤는 뭐가 특별한데 저렇게 해주는거야?"

그렇게 나는 항상 "약자" 였었고 "소수자"였다. 항상 배려를 받아왔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사람들이 나를 동정하는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나도 배려받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지만 강제적으로 사람들은 약하고 아픈 내 모습을 보면서 호의를 베풀려고 한다. 

주위에서 "쟤는 아픈애래"," 나이도 어린데 안타깝네", "사연이 있는 애였구만" 등에 뒷말이 나한테까지 들리게 되는게 정말 너무 싫었다.

내가 타인에게 그런 이미지를 심어줘서 나를 신경쓰게 만드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냥 희귀병 좀 걸리면 어떤가 나름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대학시절내내 나는 항상 아팠다. 원래 소화기관이 약하기도 하고 면역억제제라는 약을 복용하기에 항상 나는 피곤했고 음식도 소량으로 먹었기에 항상 왜소했고 힘이 없었다. 병원에서 입원했을때는 40kg초반대의 몸무게를 가질때 도 있었다. 나는 항상 아프고 왜소한 사람이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절망적으로 보기 싫었다. 거울을 보거나 사진을 찍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내 모습을 내가봐도 혐오스러웠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보다 다른사람들과 대화를 못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많은 곳을 가지 못했고 어느집단을 가도 나는 존재감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모습은 자연스럽게 타인과의 관계를 다 끊게 되었다. 대학교4학년 전까지 대학교 친구가 없었다. 그나마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20대 중반까지는 친구만들기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법 배우는게 인생과업일 정도로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같은 나이대의 다른애들은 학점,연예,진로,술,얘기를 할때 나는 병원에서 입원을 해서 천장만 보고 멍하니 있을때가 많았다.

천장을 보면서 크론병에 걸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될지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내가 가진 경험이나 식견이 부족하기에 이런 고민은 혼자하지말고 다른사람들과 같이하는게 좋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아무튼 하루종일 했던 생각을 또하는 생각만 했다. 이때부터인가 말을 별로 안했다. 평소에도 과묵한성격이었는데 입원을 하면 말을 별로 하지 않으니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게 힘들었다.

나중에가서는 그냥 핸드폰에 하고싶은말을 쓰거나 이모티콘으로 대화를 대신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생기고 난뒤에 더욱더 사람들과 대화하는게 싫어졌다. 이때의 나는 한번도 타인과 대화를 먼저 시작해본적이 없다. 

타인에게 다가가는법도 모르고 다가오는사람도 이상한사람이라고 생각되어 무조건 적으로 인식을 했다. 상대가 호의를 베풀면 상대가 나를 무시해서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을 했고 내가 불쌍하니깐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불쌍한 나의 모습이 싫어서 그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냈다.

이런 악순환을 통해서 사회와 나를 점점 단절시켰던 것 같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는 이런 모습들이 많이 사라지거나 좋아졌다. 

가끔씩 그때는 왜 저런생각을했을까 라는 의문도 많이 들었다.

글쓰기의 좋은점이 바로 이런점같다. 사람의 기억력은 일시적이고 빨리 사라진다. 하지만 글쓰기는 글이라는 실물이 존재하기에 객관적이고 사라지지 않는다. 이래서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많이 권장하는 것 같다.

 

 

 

3 0

사단법인 씨즈

Tel | 02-355-7910   Fax | +82.2.355.7911   E-mail | dudug@theseeds.asia   URL | https://theseeds.asia

후원계좌 | 신한은행 100-026-478197 (예금주: 사단법인 씨즈)

사업자 등록번호 | 110-82-15053

 

 서울두더집 Tel.02-356-7941  Phone.010-3442-7901 Addr.서울시 은평구 불광로 89-4

 제주두더집 Tel.064-763-0901  Phone.010-5571-7901 Addr.제주시 조천읍 대흘리 1075-25

 

  "두더지땅굴"은 2022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 2022년 서울시 청년프로젝트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Copyright ⓒ 2022 두더지땅굴 All rights reserved.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