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수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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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20.화] 익숙하고도 낯선

Hyejin
2026-01-21
조회수 195

 어렸을 적 나는 병원 냄새가 싫었다. 지금과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난, 심장재단의 도움을 받아 심장 심실에 생긴 구멍을 메꾸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7살 때까지인가? 심하게 뛰지도 말라고 했고, 수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높이 뜨는 놀이기구도 심장이 울렁거려 타질 못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잘 달리지만 놀이기구는 여전히 타지 못한다. 그런 류의 분위기나 놀이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어쨌든 수술 자국은 아직도 몸에 선명하다.

 그런가 하면 7살쯤인가? 구급차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빌라에 살 때인데, 엄마의 참외 먹으라는 말도 무시한 채 집 앞 담장에 올라가다 담장 밑에 누가 버려 놓은 깨진 무언가를 밟아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 사실 그때의 상황이 잘 떠오르지 않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랬던 듯하다. 남아 있는 잔상으로는 울며 계단을 오른 것뿐. 그때가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 때문에 엄마가 병원에서 한동안 애를 먹어야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11살쯤 흉터를 제거하러 오라고 하신 것 같았는데 엄마는 몰랐는지 가지 못했다. 그럼에 이것도 수술 자국이 다리에 선명하다.

 이것들이 너무 크게 자리잡아 다른 것들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아빠랑 공놀이를 하다 이마를 다쳐 몇 바늘 꿰맨 일, 고3 때 신종 플루(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생긴 새로운 바이러스에 의하여 일어나는 감기. 갑작스러운 고열, 근육통, 두통 등의 전신 증상과 마른 기침, 인후통 등의 호흡기 증상을 일으킨다. 2009년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발생시켰다_우리말샘)에 걸려 동생들이 학교에서 강제 귀가한 일, 노량진 고시원에서 살며 공무원 공부할 때 교통사고를 당해 물리치료를 받은 일 등.

 이런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감기에도 잘 안 걸리게 되었다. 평생에 아플 걸 이미 어렸을 때 다 아파서 그런가? 커서부터는 병원에 간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건강한 나날을 보냈다.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알약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못 삼킨다. 내겐 한 손으로 자전거 타는 것보다 알약을 삼키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간혹 아플 때면 가루약의 그 쓴맛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그럼에 병원에 안 가고 웬만하면 그냥 푹 자는 걸로 해결을 봤다. 이 때문에 병원에 잘 안 가는 몸이 된 것인가? 잘 모르겠다.


 제주에 있은 지 1년 5개월 동안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은 없었다. 그 사이 잠깐 육지에 갔을 때 자전거를 타다 이가 깨져 치과에 간 것, 그리고 스케일링과 더불어 아래 이 레진 받은 거 말고는 순전히 몸이 아파 간 적은 없었다. 또한 21살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알바를 하면서 다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이 때문에 병원에 간 적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 병원에 갔다.


(...)


 내가 일하는 식당은 주변 식당이 쉬는 화요일이 가장 바쁜 날이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이지 최고라 할 정도로 바빴는데 이는 주방장님이 바뀌어서이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오늘 처음 오신 듯한 모습. 그래서 여자 사장님께서 주방 일을 함께하셨다. 밀려드는 손님에 밀려드는 주문. 쉴 새 없이 나르고 치웠다. 그러다 나중에 나온 한우탕을 갖다 드리라고 주셨는데 스테인리스 그릇에 손을 대는 순간 엄청난 따가움을 느꼈다. 처음 느껴 본 고통. 얼른 수도로 달려가 찬물에 손을 대었지만 화끈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화상을 입은 것 같다는 내 말에도 여자 사장님은 뜨거운 건 조심해야 한다 했던가? 그런 류의 말만 던질 뿐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었다. 찬물에 손을 대고 있는 순간에도 그저 빨리 음식을 내가라는 말만 할 뿐. 그때의 상황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상황임은 분명했다. 손가락이 너무 화끈거렸지만 너무도 바빴기에 일을 계속 해 나갔다. 그러다 오른손은 안 되겠어서 되도록 왼손으로 일을 하였다. 오른손을 들고 왼손으로 더디하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바쁜 게 좀 가시자 여자 사장님은 다친 손을 좀 보자고 하셨다. 엄청 화끈거린다는 내 말에도 보고는 별로 심한 게 아니어서 그런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고 집에 가는 그 시간까지도 괜찮냐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평소에 한우탕을 담은 그릇은 뜨겁지 않았다. 따뜻은 했지만 손이 데일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유독 불에 손을 갖다 댄 마냥 뜨거웠다. 왜 그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우탕을 데우는 큰 웍 옆에 스테인리스 그릇이 있는 게 보였다. 불 옆에 자리하고 있던 스테인리스 그릇은 고스란히 내게로 왔고, 마침 그 부분에 내가 손을 댄 게 아닌가 싶었다. 그때의 정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럴 확률이 높았다.

 주방장님이 바뀌지 않았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상황. 숙련된 자라면 어느 누가 불 옆에 그릇을 놓겠는가. 너무도 바삐 돌아가는 상황 속에 그저 마음이 급한 사람의 실수겠지. 웍 옆에 자리했던 사람이 사장님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맞는 것 같기도. 어쨌든 그렇게 나온 뜨거운 그릇을 누군가는 집었을 테고, 그 대상이 나였을 뿐이다.


 내가 손을 데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안, 같이 일하는 중국인 직원 분은 주방에서 일하는 다른 중국인 직원 분께 중국어로 뭐라 하시더니 내게 화상 연고를 건네주셨다. 병원 갈 필요없다고. 그거 바르면 낫는다고. 그 연고는 거의 다 쓴 거였는데 '이들은 다쳐도 이렇게 바르고 다시 일했던가?'라는 생각에 마음이 안 좋기도 하였다. 손님이 끊기고 거의 알바가 끝날 무렵 연고를 바르고 방수밴드를 붙였다. 수저를 마저 정리한 뒤 먼저 가 본다는 내 말에도 대꾸 없이 자기들의 이야기만 하는 사장님 부부를 뒤로 하고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곳에서 일은 2월까지만 하기로. 청년학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에는 다른 단기 알바를 구하기로. 오늘이 아니었으면 3월부터는 가장 바쁜 화요일만 알바를 하자 했을 건데 이곳을 끊어 낼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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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태가 그리 심하지는 않았기에 처음에는 병원에 갈 생각이 없었다. 화끈거림도 적어졌고. 하지만 제미나이에 내 상태를 물어본 게 화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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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로 압박하면 안 된다는 말에 얼른 떼어 정류장 옆 수돗가에서 약을 씻어냈다. 물집이 잡혔다면 '2도 화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얼른 갈 수 있는 병원을 물었다.


 화상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 하여 갔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있는 곳이었다. 대학병원의 작은 버전 느낌. 돈이 많이 나올 걸 예감하며 접수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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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진료를 봐 주시더니 화상은 4~5일 정도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내일도 병원에 나와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은 물집이 없는 엄지도 부풀 수도 있고.. 물집이 차오르면 터트리고 이후 어떤 치료를 진행한다고 하셨다(들은 용어가 이해되지 않아 뭐라 하셨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그러고는 연고를 바르고 화끈거림 정도를 물으며 뒤 처치를 맡기고 가셨다. 이렇게 약도 처방 받지 않은 채 이 처치 하나로 오늘 알바비를 고스란히 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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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하루3감사

1. 집에 가니 동생이 저녁을 차려 주었다. 오른손엔 물이 닿으면 안 되기에 설거지도 당분간 동생이 계속 하기로 하였다. 이 순간 저를 혼자 두지 않으심에 감사드립니다.

2. 동생이 드디어 태어나 처음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였다. 내가 알바하는 동안 했다고. 조금씩 움직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3. 저를 걱정해 주는 이들을 곁에 두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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