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도민입니다.
저는 요즘 두더집활동(이로운커리어활동,자조모임활동,봉사활동)과 개인활동(단기아르바이트,크론병관련활동,패스파인더 프로그램,운동)으로 휴일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7월1일 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어느 덧 2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하지만 글이 겨우 10개도 채 되지 않기에 게으른 저를 다시 돌아보게 됬습니다.
처음에는 저의 글을 아무도 안 볼 것이라고 생각해서 기록일기로 썼습니다. 실제로도 최대한 저의 주관이 들어가게 썼고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두더지땅굴에 쓴 글을 보고 댓글로 공감을 해주시거나 오프라인에서 글을 잘 보고 있다고 격려를 해주셔서 정신차리고 책임감 있게 계속 글을 쓰겠습니다.
오늘도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더지땅굴 공지사항에 갑자기 이런 포스터가 나타났다. 정책토론회? 국회의원실? 처음들어보는 단어가 많았다.
정책토론회는 정부나 정당의 정책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을 통해 정책의 방향을 모색하며, 국민들에게 정책 정보를 알리는 자리입니다. 이를 통해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을 강화하고, 민주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돕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합니다.
국회의원회관은 국회본관 옆 건물로 정책과 관련된 세미나가 열리는 곳입니다.
종합해보면 여의도에 있는 국회본관 옆 건물이 국회의원회관이라는 곳인데 이곳에서 (사) 씨즈 이사장님의 주관하에 국회의원회관7간담회실에서 국회의원,센터장,정책관 등에 사람들이 모여서 정책토론회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평소에 이런 은둔고립청년문제에 관심이 많았기에 참관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서울로 올라가서 국회의사당 건물을 구경도 해볼 겸해서 신청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사장님이 전화를 주셔서 혹시 1인가구 고립시민의 고립 극복활동에 대해서 라운드테이블로 사례발표를 할 것인데 발표에 참여할 의사가 있냐고 하셔서 이런기회는 다신 오지 않을 것 같아서 흔쾌히 참여를 하였다.
이사장님이 어떤 것을 질문할지를 미리 보내주셔서 토론회에서 말할 것을 미리 적어보았다.
1) 자기 소개 부탁- 나이, 은둔고립 기간과 주요한 이유, 가구형태(부모와 거주하는지) 등
제주도/28/은둔기간은 최소 2년 (은둔기간이 쭉 이어진게 아니라 중간중간마다 건강악화로 인한 은둔)/ '크론병'이라는 희귀질환의 반복되는 입퇴원및 수술로 힘듦+전공진로의 실패로 지난 6년간 공부한 전공진로를 포기해서 사회로 내던져지니 할줄아는게 아무것도 없는 허탈감과 미래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남들처럼 사회에서 일을 하고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싶었기에 남들처럼 되지못한 열등감이 저를 고립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동생과 살고 있습니다.
2) 오늘 발표 들으면서 느낀 소감?
- 사전 발제 내용중 가장 공감되거나 인상 깊은 내용, 부족한 내용등
정책토론회라는 것이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분들이 은둔고립문제에 관심이 있어하시고 노력해주시는 것에 감사합니다.
3) 은둔고립 기간에 어떻게 생활했고 무엇이 제일 힘들었나?
- 주로 하루하루 시간 보낸 활동, 어려움 (우울, 불안, 외로움, 생계문제 등 자유롭게)
그냥 잠만자고 유튜브만 보면서 지냈습니다. 생활비는 하루에 한끼를 먹고 거의 씻지도 않으면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생활했습니다. 하루종일 침대-컴퓨터-식탁-화장실 이 루틴으로만 살았습니다. 낮과밤이 바뀌는 날은 허다했고 엄마와는 대화는 했지만 그렇게 길게 대화는 하지않았습니다. 아빠와는 거의 몇 년간 진지한대화를 해본적이 없습니다. 생계는 그때는 부모님이 같이 사셨기에 부모님용돈을 받거나 큰 돈이 나갈때는 제가 모아둔 돈으로 생활했습니다. 처음에야 불안도 하고 우울도 했지만 나중에 가니 그런 감정들이 익숙해졌고 그냥 아무생각없이 하루종일 멍하니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마치 현대사회에서 다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처럼 저도 이런 루틴에서 그냥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는 이런 생활을 하면서 우울,불안,외로움 등에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점은 이게 언제끝나냐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스스로도 밖에 나가고싶고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은둔상태일 때는 일어서는법을 잊어버렸던것같습니다. 편의점을 가서 “계산이요” 이 한마디를 하는게 엄청 어려웠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면서 웃는 것 같았습니다. 히죽이죽거리면서 저를 조롱하고 비웃는것같았습니다. 어쩔때는 환청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있으면서 처음에는 게임을 많이했는데 금방 공허해지고 게임을 하는것도 신체적으로 많이 힘들어져서 나중에는 누워서 유튜브만 봤습니다.
4) 은둔고립 해소위해 했던 노력들 무엇인가?
일단 남들 말을 거의 안들을려고 노력했습니다. 취업을해야한다,자격증을 따라,돈을 많이 벌어야된다 와 같은 말들은 실제로 저한테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하고싶지않은 직업을 구하는 과정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막상 이런 직업을 가졌을 때 행복하지 못하다는것을 느끼는데 불구하고 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습니다.
내가 갈려는 저 길은 파멸이 분명한데 아무것도 안하는게 싫어서 그 파멸의 길로 들어가는 행동을 해야한다는게 스트레스였습니다. 이런 스트레스는 크론병인 저에게는 건강악화로 돌아오기에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는 마인드로 차라리 이런 스트레스없이 사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취업을 한다기보다는 제가 하고싶은 활동을 정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쪽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Ex) 운동해서 몸키우기, 단기아르바이트 많이해보기,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육지에서 살아보고 돈도 벌어보기, 내가 관심이 있어하는 곳 가보기, 타지에서 친구 만들어보기 등
5) 은둔고립 청년 위한 일경험 활동도 소개 요청
- 본인 참여한 사업, 활동내용, 변화사항 등
씨즈-이로운커리어 탐방대 및 제주리트릿,가족피정/제주패스파인더-은둔고립이해교육
저는 일단 6개월간의 국민취업제도를 이용해봤습니다. 그에 따른 일경험도 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국민취업제도가 저한테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습니다.
첫 번째로 은둔고립을 벗어나는데 취업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방안에서 3마디도 안하는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3줄이상의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소통단절을 몇개월혹은 몇년을 한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서 갑자기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소통할 수 있겠습니까?
방안에만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있었는데 갑자기 주5일 근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개인의 수많은 어떤 상황을 무시한채 그저 취업을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의 접근방식은 오히려 재은둔고립을 초래한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했던 국민취업제도의 일경험에서는 제가 말을 별로 잘 못하고 일머리도 없었기에 직원분들이 불편해하고 일도 거의 안주시고 가만히 있다가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경험이 아니라 일방관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경험은 “아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못하는놈이 무슨 취업이야” 와 같은 생각으로 이어지고 재은둔고립을 초래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잇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예시로 NPO같은 기관은 개별적인 1대1 상담을 진행하여 은둔고립청년본인의 삶의 흥미유발 및 삶의 질 개선을 1차적인 목표를 잡고 본인이 스스로가 무언가를 하고싶다 혹은 이게 내가 할수 있구나 와 같은 자신감과 행동의지를 보이면 그 다음에 2차적으로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끔 취업을 목표로 정하여 일경험이나 사회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그 다음에 진짜 취업을 목표로 도전하게끔 한 기관이 이런 모든과정을 다합니다. 그러나 제가 본 대한민국에서 은둔고립에 관한 프로그램들은 흥미유발과같은 1차적인 목표를 가진 기관이 따로 있고 취업을 목표로 하는 기관이 따로 있는 등의 경우가 많았고 프로그램도 흥미를 유발하고 자연스럽게 취업에 임하는 형태가 아니라 일단 취업을 하는데에 초점이 맞춰줘있어서 그런 과정에서 자소서는 어떻게 쓰며 면접준비는 어떻게 해야되는지 등에 프로그램이 많았습니다. 저와같은 은둔고립청년들은 자소서나 면접준비를 할게 아니라 본인이 무엇을 하고싶은지 혹은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사람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는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배우는 과정을 최우선으로 해야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8월 27일 오전 10시30분에 제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13시에 서울 두더집에서 이사장님과 실장님을 만나서 같이 국회의원회관으로 가기로 했다.




13시에 서울 두더집에 도착을 했다. 비행기가 지연되는 바람에 30분정도 도착했다. 점심은 고기를 구워드셨는지 실장님이 늦은 나를 위해서 삼겹살을 남겨두셨고 다시 구워주셨다. 서울두더집 안은 인터뷰를 하고 있어서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져서 인터뷰가 다 끝난 뒤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나중에 밖에서 주차된 차를 보니 KBS 추척 60분 촬영팀 같았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나고 14시에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원회관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국회의원회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 공항에서 볼 수 있는 x-ray검사기기를 거쳐서 소지품검사를 하고 방문목적을 적는 표를 작성 한 후에 신분증과 같이 제출하면 회관방문증을 준다. 이 방문증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이사장님과 실장님은 15시부터 토론회장으로 들어가서 토론회준비를 하셨다. 구도케이대표님과 통역이신 미노루님의 온라인zoom준비나 토론회장의 배치 등으로 분주하셨다. 나는 첫번째사진에서처럼 세팅된 곳을 맡았다. 참가자분들의 명단을 적게 하고 자료집을 나눠주는 역할을 했다. 참가자분들중에는 제주리트릿을 오신분도 있었고 부모교육때 오셨던분도 계셨다. (너무 긴장해서 반갑게 맞이해주지 못했다....) 이런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중에서도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 감사했다. 참고로 자료집은 50부정도를 준비하셨는데 다 완판됬다.


시간이 16시에 가까워져가서 토론회장으로 들어가보니 뉴스나 TV로만 보면 익숙한장면이 눈에 띄었다. 일단 마이크부터 뉴스에서 많이보던 마이크였다.

박주민 국회의원님은 갑자기 일정이 잡히셔서 못 오셔서 영상으로 환영인사를 대체하셨고 중간에 다른 국회의원분도 왔다가 일정때문에 다시 가셨다. 나는 워낙 이런 자리가 처음이고 TV에서만 보던 그런 장면을 실제로 간접체험을 해보니 몸이 얼어붙었다. 아직도 내가 뭘 했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NPO소다테아게넷 대표님한테 일본의 히키코모리의 수가 일정하게 유지가 된다고 통계상 수치로 나오는데 그러면 일본의 은둔고립청년관련 기관이나 프로그램이 과연 은둔고립청년을 구제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했었는데 말하는 방향이 이상함을 느껴서 이상한 질문을 한게 아닌가 싶어서 조금 눈치가 보였다. 그리고 17시 20분부터 대망의 사례발표 시간이 되었다. 나를 포함한 3명의 참가자분이 사례발표를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망했다. 처음에 앞자리로 나가서 발표를 하는데 내가 정중앙에 앉게 되었다. 아직까지 시선이 집중되는게 굉장히 부담스러워서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다가 한번 고개를 들었는데 모두 나만쳐다보고있었다. 그래서 정중앙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고 옆에 두분은 말을 떨지않고 잘하셨다. 특히 내 왼쪽분은 거의 면접을 보는 면접자수준으로 핵심말만 딱딱 하셔서 준비를 철저히 해오신것 같았고 내 오른쪽분은 자기의 경험에 빗대어 취업할때 하는 질문인 공백기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따로 적어서 발표하셨다. 이런 두분에 비해서 나는 거의 울먹이며 말하다가 눈물을 보일뻔 했고 헛소리도 많이 한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되니 내가 미리 생각해온 것들은 이런 상황에선 그냥 종잇장에 불과했다. 발표가 다 끝난 후에 나는 내 자신에게 매우 실망했다. 이런 좋은 자리에서 이정도 밖에 못하다니....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인가? 혹은 노력이 부족한 것일까? 와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다끝나고 집에 갈려는데 발표자분들중에 한분이 두더지땅굴에 글을 쓰셨냐고 들어보셨고 순간 나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미 다 들켜서 아무말도 안하고 있다가 그분이 글을 잘 보고 있다고 응원해주셨다! ( 앞으로 좀 더 열심히 글쓰겠습니다 ㅠㅡㅠ)
우리가 발표를 할때 다른 센터장분들은 우리에 말을 메모하고 계셨다. 이런문제를 적극적으로 생각해주시니 엄청 감회가 새로웠다.
이번 기회는 인생에서 한번있을까말까한 경험이었다. 엄청 새롭고 신기했다. 요즘 살면서 진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해본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 퇴근시간은 지옥이다....
안녕하세요! 도민입니다.
저는 요즘 두더집활동(이로운커리어활동,자조모임활동,봉사활동)과 개인활동(단기아르바이트,크론병관련활동,패스파인더 프로그램,운동)으로 휴일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7월1일 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어느 덧 2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하지만 글이 겨우 10개도 채 되지 않기에 게으른 저를 다시 돌아보게 됬습니다.
처음에는 저의 글을 아무도 안 볼 것이라고 생각해서 기록일기로 썼습니다. 실제로도 최대한 저의 주관이 들어가게 썼고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두더지땅굴에 쓴 글을 보고 댓글로 공감을 해주시거나 오프라인에서 글을 잘 보고 있다고 격려를 해주셔서 정신차리고 책임감 있게 계속 글을 쓰겠습니다.
오늘도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더지땅굴 공지사항에 갑자기 이런 포스터가 나타났다. 정책토론회? 국회의원실? 처음들어보는 단어가 많았다.정책토론회는 정부나 정당의 정책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을 통해 정책의 방향을 모색하며, 국민들에게 정책 정보를 알리는 자리입니다. 이를 통해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을 강화하고, 민주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돕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합니다.
국회의원회관은 국회본관 옆 건물로 정책과 관련된 세미나가 열리는 곳입니다.
종합해보면 여의도에 있는 국회본관 옆 건물이 국회의원회관이라는 곳인데 이곳에서 (사) 씨즈 이사장님의 주관하에 국회의원회관7간담회실에서 국회의원,센터장,정책관 등에 사람들이 모여서 정책토론회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평소에 이런 은둔고립청년문제에 관심이 많았기에 참관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서울로 올라가서 국회의사당 건물을 구경도 해볼 겸해서 신청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사장님이 전화를 주셔서 혹시 1인가구 고립시민의 고립 극복활동에 대해서 라운드테이블로 사례발표를 할 것인데 발표에 참여할 의사가 있냐고 하셔서 이런기회는 다신 오지 않을 것 같아서 흔쾌히 참여를 하였다.
이사장님이 어떤 것을 질문할지를 미리 보내주셔서 토론회에서 말할 것을 미리 적어보았다.
1) 자기 소개 부탁- 나이, 은둔고립 기간과 주요한 이유, 가구형태(부모와 거주하는지) 등
제주도/28/은둔기간은 최소 2년 (은둔기간이 쭉 이어진게 아니라 중간중간마다 건강악화로 인한 은둔)/ '크론병'이라는 희귀질환의 반복되는 입퇴원및 수술로 힘듦+전공진로의 실패로 지난 6년간 공부한 전공진로를 포기해서 사회로 내던져지니 할줄아는게 아무것도 없는 허탈감과 미래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남들처럼 사회에서 일을 하고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싶었기에 남들처럼 되지못한 열등감이 저를 고립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동생과 살고 있습니다.
2) 오늘 발표 들으면서 느낀 소감?
- 사전 발제 내용중 가장 공감되거나 인상 깊은 내용, 부족한 내용등
정책토론회라는 것이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분들이 은둔고립문제에 관심이 있어하시고 노력해주시는 것에 감사합니다.
3) 은둔고립 기간에 어떻게 생활했고 무엇이 제일 힘들었나?
- 주로 하루하루 시간 보낸 활동, 어려움 (우울, 불안, 외로움, 생계문제 등 자유롭게)
그냥 잠만자고 유튜브만 보면서 지냈습니다. 생활비는 하루에 한끼를 먹고 거의 씻지도 않으면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생활했습니다. 하루종일 침대-컴퓨터-식탁-화장실 이 루틴으로만 살았습니다. 낮과밤이 바뀌는 날은 허다했고 엄마와는 대화는 했지만 그렇게 길게 대화는 하지않았습니다. 아빠와는 거의 몇 년간 진지한대화를 해본적이 없습니다. 생계는 그때는 부모님이 같이 사셨기에 부모님용돈을 받거나 큰 돈이 나갈때는 제가 모아둔 돈으로 생활했습니다. 처음에야 불안도 하고 우울도 했지만 나중에 가니 그런 감정들이 익숙해졌고 그냥 아무생각없이 하루종일 멍하니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마치 현대사회에서 다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처럼 저도 이런 루틴에서 그냥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는 이런 생활을 하면서 우울,불안,외로움 등에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점은 이게 언제끝나냐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스스로도 밖에 나가고싶고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은둔상태일 때는 일어서는법을 잊어버렸던것같습니다. 편의점을 가서 “계산이요” 이 한마디를 하는게 엄청 어려웠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면서 웃는 것 같았습니다. 히죽이죽거리면서 저를 조롱하고 비웃는것같았습니다. 어쩔때는 환청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있으면서 처음에는 게임을 많이했는데 금방 공허해지고 게임을 하는것도 신체적으로 많이 힘들어져서 나중에는 누워서 유튜브만 봤습니다.
4) 은둔고립 해소위해 했던 노력들 무엇인가?
일단 남들 말을 거의 안들을려고 노력했습니다. 취업을해야한다,자격증을 따라,돈을 많이 벌어야된다 와 같은 말들은 실제로 저한테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하고싶지않은 직업을 구하는 과정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막상 이런 직업을 가졌을 때 행복하지 못하다는것을 느끼는데 불구하고 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습니다.
내가 갈려는 저 길은 파멸이 분명한데 아무것도 안하는게 싫어서 그 파멸의 길로 들어가는 행동을 해야한다는게 스트레스였습니다. 이런 스트레스는 크론병인 저에게는 건강악화로 돌아오기에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는 마인드로 차라리 이런 스트레스없이 사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취업을 한다기보다는 제가 하고싶은 활동을 정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쪽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Ex) 운동해서 몸키우기, 단기아르바이트 많이해보기,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육지에서 살아보고 돈도 벌어보기, 내가 관심이 있어하는 곳 가보기, 타지에서 친구 만들어보기 등
5) 은둔고립 청년 위한 일경험 활동도 소개 요청
- 본인 참여한 사업, 활동내용, 변화사항 등
씨즈-이로운커리어 탐방대 및 제주리트릿,가족피정/제주패스파인더-은둔고립이해교육
저는 일단 6개월간의 국민취업제도를 이용해봤습니다. 그에 따른 일경험도 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국민취업제도가 저한테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습니다.
첫 번째로 은둔고립을 벗어나는데 취업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방안에서 3마디도 안하는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3줄이상의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소통단절을 몇개월혹은 몇년을 한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서 갑자기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소통할 수 있겠습니까?
방안에만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있었는데 갑자기 주5일 근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개인의 수많은 어떤 상황을 무시한채 그저 취업을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의 접근방식은 오히려 재은둔고립을 초래한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했던 국민취업제도의 일경험에서는 제가 말을 별로 잘 못하고 일머리도 없었기에 직원분들이 불편해하고 일도 거의 안주시고 가만히 있다가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경험이 아니라 일방관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경험은 “아 이런 기초적인 것도 못하는놈이 무슨 취업이야” 와 같은 생각으로 이어지고 재은둔고립을 초래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잇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예시로 NPO같은 기관은 개별적인 1대1 상담을 진행하여 은둔고립청년본인의 삶의 흥미유발 및 삶의 질 개선을 1차적인 목표를 잡고 본인이 스스로가 무언가를 하고싶다 혹은 이게 내가 할수 있구나 와 같은 자신감과 행동의지를 보이면 그 다음에 2차적으로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끔 취업을 목표로 정하여 일경험이나 사회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그 다음에 진짜 취업을 목표로 도전하게끔 한 기관이 이런 모든과정을 다합니다. 그러나 제가 본 대한민국에서 은둔고립에 관한 프로그램들은 흥미유발과같은 1차적인 목표를 가진 기관이 따로 있고 취업을 목표로 하는 기관이 따로 있는 등의 경우가 많았고 프로그램도 흥미를 유발하고 자연스럽게 취업에 임하는 형태가 아니라 일단 취업을 하는데에 초점이 맞춰줘있어서 그런 과정에서 자소서는 어떻게 쓰며 면접준비는 어떻게 해야되는지 등에 프로그램이 많았습니다. 저와같은 은둔고립청년들은 자소서나 면접준비를 할게 아니라 본인이 무엇을 하고싶은지 혹은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사람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는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배우는 과정을 최우선으로 해야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8월 27일 오전 10시30분에 제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13시에 서울 두더집에서 이사장님과 실장님을 만나서 같이 국회의원회관으로 가기로 했다.
13시에 서울 두더집에 도착을 했다. 비행기가 지연되는 바람에 30분정도 도착했다. 점심은 고기를 구워드셨는지 실장님이 늦은 나를 위해서 삼겹살을 남겨두셨고 다시 구워주셨다. 서울두더집 안은 인터뷰를 하고 있어서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져서 인터뷰가 다 끝난 뒤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나중에 밖에서 주차된 차를 보니 KBS 추척 60분 촬영팀 같았다. 그렇게 인터뷰가 끝나고 14시에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원회관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국회의원회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 공항에서 볼 수 있는 x-ray검사기기를 거쳐서 소지품검사를 하고 방문목적을 적는 표를 작성 한 후에 신분증과 같이 제출하면 회관방문증을 준다. 이 방문증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이사장님과 실장님은 15시부터 토론회장으로 들어가서 토론회준비를 하셨다. 구도케이대표님과 통역이신 미노루님의 온라인zoom준비나 토론회장의 배치 등으로 분주하셨다. 나는 첫번째사진에서처럼 세팅된 곳을 맡았다. 참가자분들의 명단을 적게 하고 자료집을 나눠주는 역할을 했다. 참가자분들중에는 제주리트릿을 오신분도 있었고 부모교육때 오셨던분도 계셨다. (너무 긴장해서 반갑게 맞이해주지 못했다....) 이런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중에서도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 감사했다. 참고로 자료집은 50부정도를 준비하셨는데 다 완판됬다.
시간이 16시에 가까워져가서 토론회장으로 들어가보니 뉴스나 TV로만 보면 익숙한장면이 눈에 띄었다. 일단 마이크부터 뉴스에서 많이보던 마이크였다.
박주민 국회의원님은 갑자기 일정이 잡히셔서 못 오셔서 영상으로 환영인사를 대체하셨고 중간에 다른 국회의원분도 왔다가 일정때문에 다시 가셨다. 나는 워낙 이런 자리가 처음이고 TV에서만 보던 그런 장면을 실제로 간접체험을 해보니 몸이 얼어붙었다. 아직도 내가 뭘 했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NPO소다테아게넷 대표님한테 일본의 히키코모리의 수가 일정하게 유지가 된다고 통계상 수치로 나오는데 그러면 일본의 은둔고립청년관련 기관이나 프로그램이 과연 은둔고립청년을 구제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했었는데 말하는 방향이 이상함을 느껴서 이상한 질문을 한게 아닌가 싶어서 조금 눈치가 보였다. 그리고 17시 20분부터 대망의 사례발표 시간이 되었다. 나를 포함한 3명의 참가자분이 사례발표를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망했다. 처음에 앞자리로 나가서 발표를 하는데 내가 정중앙에 앉게 되었다. 아직까지 시선이 집중되는게 굉장히 부담스러워서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다가 한번 고개를 들었는데 모두 나만쳐다보고있었다. 그래서 정중앙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고 옆에 두분은 말을 떨지않고 잘하셨다. 특히 내 왼쪽분은 거의 면접을 보는 면접자수준으로 핵심말만 딱딱 하셔서 준비를 철저히 해오신것 같았고 내 오른쪽분은 자기의 경험에 빗대어 취업할때 하는 질문인 공백기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따로 적어서 발표하셨다. 이런 두분에 비해서 나는 거의 울먹이며 말하다가 눈물을 보일뻔 했고 헛소리도 많이 한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되니 내가 미리 생각해온 것들은 이런 상황에선 그냥 종잇장에 불과했다. 발표가 다 끝난 후에 나는 내 자신에게 매우 실망했다. 이런 좋은 자리에서 이정도 밖에 못하다니....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인가? 혹은 노력이 부족한 것일까? 와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다끝나고 집에 갈려는데 발표자분들중에 한분이 두더지땅굴에 글을 쓰셨냐고 들어보셨고 순간 나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미 다 들켜서 아무말도 안하고 있다가 그분이 글을 잘 보고 있다고 응원해주셨다! ( 앞으로 좀 더 열심히 글쓰겠습니다 ㅠㅡㅠ)
우리가 발표를 할때 다른 센터장분들은 우리에 말을 메모하고 계셨다. 이런문제를 적극적으로 생각해주시니 엄청 감회가 새로웠다.
이번 기회는 인생에서 한번있을까말까한 경험이었다. 엄청 새롭고 신기했다. 요즘 살면서 진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해본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 퇴근시간은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