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제주도로 올때의 야경.
화려한 불빛이 우리를 반기고있다.
우리의 미래를 응원하는것 같다.
마지막 날.
토요일날 일정 마치고 제주도로 돌아갈지 고민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고민하다가, 서울 리트릿 전체 일정을 참여하는것도 의미가 깊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일요일 예배는 오전에 드린다. 그런데, 리트릿의 모든 일정을 참여하고 싶어서, 나는 새벽에 일찍 교회를 갔다.
교회도 일요일 새벽예배 드리는 곳이 드물다. 한참을 찾다가, 한군데 찾아서 새벽에 예배를 드렸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해서, 서울 두더집에서 오전 오후 프로그램을 참여했다.
오전에 진행된 내용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던것이 신에게 무엇을 맡기겠냐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프로그램 진행하시는 분이 종교를 가지고 있으신 거 같았다.
나는 새벽일찍 예배를 드리고 왔기에 더욱 와닿은 질문이었고, 나는 나의 미래와, 계획을 맡기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서로의 닉네임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에녹이라고 답했다. 운영하시는 강사님이 에녹이 성경의 그 에녹 맞냐고 물으셨다.
역시나, 강사님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으셨다. 그리고선, 에녹이 죽지않고 하늘나라간 사람이라면서 굉장히 인상적인 닉네임을 선정했다고 이야기 하셨다.
내가 에녹을 좋아하는 이유는 죽지 않고 하늘나라가서라기보단,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에 존경한다.

카톡에 이사장님 생일이 몇일전부터 알림이 왔었다.
그래서, 이사장님 생신이어서 같이 리트릿 첫재날 부터 셋째날 까지 한명씩 생각날때마다 같이 동행한 청년들에게 이사장님 생신이라고 말하고, 케익드리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실은 성수에 갔을때, 열쇠고리를 이사장님 드리려고 산게 있었다. 미피(토끼)매장에서 산 것이구 코리안 에디션 특별상품이었다. 청자와 노리개가 같이 있는 모양이라 어르신들도 좋아할 거 같았긴 해서 샀는데, 안좋아하실거 같기두 해서, 케익으로 결정했다.
점심 먹구 케익을 사려구 했는데, 이미 서울 두더집에서 일경험 하는 청년들이 케익 샀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함께 축하해 드렸다. 갑자기 나보고 케익을 들고 이사장님 초를 끌수 있도록 다가가라는 임무를 주어서 당황스럽긴했다. 리트릿 기간동안 이사장님 생일이 껴있었던것이 내 개인적으로는 의미있었고 신기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담그신 김치를 서울 두더집에서 불광동쪽에있는 지하철 역까지 약 5-10분동안 들고 이동했다.
나는 원래 허리가 아픈 상태였기에, 내가 들수 있는 무게의 한계치가 존재한다. 그 한계치가 넘어서면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다.
갑자기 나에게도 임무가 맡겨져서 들긴했는데, 들자마자 난 느꼇다. 내가 들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것을,,, 그것을 말하고 싶었지만,,,
다들 무거운걸 들고 있었던거 같았구, 엄청 빠르게 저멀리 이동한 다음이라서 말을 꺼낼 기회도 었었다. 어떻게든 끙끙 거리면서 끌고 갔구.
엘리베이터 앞까지 들고 갔다. 들고 가니 실장님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셨구. 그때 말했다. 제가 허리가 아파서 들기가 어렵다고 말을 하였구. 그다음부턴 캐리어 임무를 받아서 그것과 나의 짐을 들고 이동했다.
공항까지 생각보다 긴거리여서 약간 정신이 나가는 느낌까지 들었는데, 이 시간동안 살이 조금이라도 빠졌기를 소망했다.
나의 짐중 일부가 김치가 들어가있던 가방에 들어가있었는데, 기내에서 김치가 쏟아졌던거 같아. 추후에 내 짐을 받아보니, 김치 국물로 나의 책과 옷들이 세례를 받은 상태였다. 조그마한 책 1권이었는데 ㅎㅎ 책의 3분의 1이 김치 국물로 얼룩져있었다. 서울 다녀온지, 벌써 3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책은 덜말랐고, 얼룩은 더욱 강해졌다. 그 얼룩을 볼때마다, 서울 리트릿을 잊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김치 국물에 젖어있던 책을 보면서 당황하면서 기분이 좋지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나중에 이 얼룩을 보면서 내가 마음이 힘든시기에 서울 리트릿을 다녀왔다는 하나의 징표로서 기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을 보면서 볼펜으로 여러 표시를 하는 습관이 있다. 얼룩져진 책을 넘길 때마다, 내가 이 시기에 이런 고민을 했었었지, 그리고 서울을 다녀왔었었다라고 명확히 기억할 수 있는 장치와 추억ㅎ 하나 생겼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제주도로 올때의 야경.
화려한 불빛이 우리를 반기고있다.
우리의 미래를 응원하는것 같다.
마지막 날.
토요일날 일정 마치고 제주도로 돌아갈지 고민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고민하다가, 서울 리트릿 전체 일정을 참여하는것도 의미가 깊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일요일 예배는 오전에 드린다. 그런데, 리트릿의 모든 일정을 참여하고 싶어서, 나는 새벽에 일찍 교회를 갔다.
교회도 일요일 새벽예배 드리는 곳이 드물다. 한참을 찾다가, 한군데 찾아서 새벽에 예배를 드렸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해서, 서울 두더집에서 오전 오후 프로그램을 참여했다.
오전에 진행된 내용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던것이 신에게 무엇을 맡기겠냐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프로그램 진행하시는 분이 종교를 가지고 있으신 거 같았다.
나는 새벽일찍 예배를 드리고 왔기에 더욱 와닿은 질문이었고, 나는 나의 미래와, 계획을 맡기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서로의 닉네임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에녹이라고 답했다. 운영하시는 강사님이 에녹이 성경의 그 에녹 맞냐고 물으셨다.
역시나, 강사님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으셨다. 그리고선, 에녹이 죽지않고 하늘나라간 사람이라면서 굉장히 인상적인 닉네임을 선정했다고 이야기 하셨다.
내가 에녹을 좋아하는 이유는 죽지 않고 하늘나라가서라기보단,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에 존경한다.
카톡에 이사장님 생일이 몇일전부터 알림이 왔었다.
그래서, 이사장님 생신이어서 같이 리트릿 첫재날 부터 셋째날 까지 한명씩 생각날때마다 같이 동행한 청년들에게 이사장님 생신이라고 말하고, 케익드리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실은 성수에 갔을때, 열쇠고리를 이사장님 드리려고 산게 있었다. 미피(토끼)매장에서 산 것이구 코리안 에디션 특별상품이었다. 청자와 노리개가 같이 있는 모양이라 어르신들도 좋아할 거 같았긴 해서 샀는데, 안좋아하실거 같기두 해서, 케익으로 결정했다.
점심 먹구 케익을 사려구 했는데, 이미 서울 두더집에서 일경험 하는 청년들이 케익 샀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함께 축하해 드렸다. 갑자기 나보고 케익을 들고 이사장님 초를 끌수 있도록 다가가라는 임무를 주어서 당황스럽긴했다. 리트릿 기간동안 이사장님 생일이 껴있었던것이 내 개인적으로는 의미있었고 신기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담그신 김치를 서울 두더집에서 불광동쪽에있는 지하철 역까지 약 5-10분동안 들고 이동했다.
나는 원래 허리가 아픈 상태였기에, 내가 들수 있는 무게의 한계치가 존재한다. 그 한계치가 넘어서면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다.
갑자기 나에게도 임무가 맡겨져서 들긴했는데, 들자마자 난 느꼇다. 내가 들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것을,,, 그것을 말하고 싶었지만,,,
다들 무거운걸 들고 있었던거 같았구, 엄청 빠르게 저멀리 이동한 다음이라서 말을 꺼낼 기회도 었었다. 어떻게든 끙끙 거리면서 끌고 갔구.
엘리베이터 앞까지 들고 갔다. 들고 가니 실장님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셨구. 그때 말했다. 제가 허리가 아파서 들기가 어렵다고 말을 하였구. 그다음부턴 캐리어 임무를 받아서 그것과 나의 짐을 들고 이동했다.
공항까지 생각보다 긴거리여서 약간 정신이 나가는 느낌까지 들었는데, 이 시간동안 살이 조금이라도 빠졌기를 소망했다.
나의 짐중 일부가 김치가 들어가있던 가방에 들어가있었는데, 기내에서 김치가 쏟아졌던거 같아. 추후에 내 짐을 받아보니, 김치 국물로 나의 책과 옷들이 세례를 받은 상태였다. 조그마한 책 1권이었는데 ㅎㅎ 책의 3분의 1이 김치 국물로 얼룩져있었다. 서울 다녀온지, 벌써 3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책은 덜말랐고, 얼룩은 더욱 강해졌다. 그 얼룩을 볼때마다, 서울 리트릿을 잊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김치 국물에 젖어있던 책을 보면서 당황하면서 기분이 좋지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나중에 이 얼룩을 보면서 내가 마음이 힘든시기에 서울 리트릿을 다녀왔다는 하나의 징표로서 기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을 보면서 볼펜으로 여러 표시를 하는 습관이 있다. 얼룩져진 책을 넘길 때마다, 내가 이 시기에 이런 고민을 했었었지, 그리고 서울을 다녀왔었었다라고 명확히 기억할 수 있는 장치와 추억ㅎ 하나 생겼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