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1일차)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처음으로 김포공항에 가게 되었다. 버스를 오래 탄 탓에 멀미하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연착된 덕분에 조금 쉬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비행기는 생각보다 많이 흔들리고 어지러웠지만 다행히 탈 없이 잘 도착했다.
숙소로 가는 차에서 팀장님이 제주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다. 제주는 아주 큰 공동체 마을이라고 하셨는데,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한 내가 공동체 마을에서 리트릿을 하러 오게 된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이번 제주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 다른 분들과 인사를 했다. 가기 전에는 혼자 여자라서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좋은 분들 같았다. 방이 과분하게 멋져서 기뻤다. 짐을 간단히 푼 후에 간식을 먹고 텃밭에 갔다.
저녁에는 고기를 구워주셨다. 매일 혼자 집에서 밥을 먹다가 낯선 사람들이랑 먹으니까 평소의 절반도 먹지 못했고 그마저도 체를 했다. 밥을 많이 남기게 되어서 죄송했다. 일주일간 컨디션 조절을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체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면접에서 말했던 나에 대한 정보만으로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참 감사했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지만, 그저 민폐끼치지 않고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리가 있다는 것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5/12(2일차)

오전에는 볍씨학교라는 곳의 아이들의 수업 현장에 같이 참여했다. 동자석과 지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고 자유롭게 창작 시간을 가졌다. 돌의 영원성을 강조하시길래 영원성과 대비되는 유한성과 연약성을 가진 나비를 지물로 선택했다. 내 생에서 지물이 될만큼 의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고루하지만 희망이라는 의미에서 나비를 고르기도 했다.
점심 식사도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볍씨학교의 취지와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엉겁결에 그들의 틀에 모양을 맞춰야 함에 부담을 느꼈다. 사전 정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나의 경우엔 비교적 규율이 명확한 어린 집단에 갑자기 함께 한다는 것이 낯설었던 것 같다. 규칙으로 작동하고 있는 어떤 것의 의미를 물었을 때 아이들이 답을 하지 못해 망설이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작은 아쉬움도 있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부터 갑자기 비가 왔었는데 밥을 먹고 나오니 금세 개서는 아주 맑은 날이 되었다.
예상치 못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돼서 당황했지만, 그 덕에 제주 청년학교분들과의 유대가 더 생기기도 했다. 분명 어제까지는 낯선 분들이었지만 이날의 나는 그런 걸 차치하고 불안한 마음이 컸는지, 자연스럽게 눈알을 굴려 그들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말도 걸어주시고 다가와주셔서 많이 감사했다.
드로잉 수업을 하면서는 서로의 그림을 볼 수도 있고,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기회가 된 것 같아서 좋았다. 낯선 경험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저녁에는 집단상담을 했다. 나에게 쓰는 편지를 읽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때의 나는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최대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문제가 있음을 증명해야한다는 느낌에 부담이 들기도 했다.
나에 대한 전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들과 둥글게 앉아서, 공감을 요구하는 치기어린 말과 행동을 경계하는 동시에, 시간 관계상 보편적 이해가 가능할 적당히 가벼운 소재를 골라 표현하고 말하는 것이 까다롭긴 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서로를 알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5/13(3일차)

자유여행이었던 3일차에는 바다가 보고 싶어서 근처 함덕해수욕장에 가게 되었다. 아침버스를 타고 바다를 가는 기분이 좋았다. 제주에서만 진행하고 있는 포토프레임을 찍기 위해서 바다 앞 포토이즘에 갔다. 사진이 마음에 들게 나왔다.
사진을 찍은 후에는 바다 앞에 앉아서 모래도 만지고 영상이랑 사진도 많이 찍었다. 바다가 이정도로 파란지 몰랐어서 놀라웠다. 오후에는 바로 시내로 갈 계획이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든 탓에 바다를 더 위에서 볼 수 있는 근처 서우봉에 올라 보기로 했다. 봉우리가 낮은 편이라 금방 오른데다 아무도 없어서 혼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내려갔다.
그 이후엔 시내에 가서 괜찮은 갈치구이를 먹고 이런저런 구경을 했다. 이동을 할때마다 버스시간이 잘 풀리지 않아서 점점 에너지가 소진된 탓에,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애석하게도 뿌듯함보다는 피곤함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있었다.
•5/14(4일차)

4일차에는 텃밭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잠이 덜 깨어 있었는데 소소한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잠이 깼다. 로즈마리를 묶어서 방향제도 만들었다.
후엔 휴양림공원에 출사를 가서 초록과 빛을 주제로 사진을 찍었다. 산책도 하고 새로운 분들과도 짧은 대화를 나눴다.
숙소에 도착해 잠깐 휴식한 후에는 두 번째 집단 상담을 했는데 저번보다 인원수가 적어서 시간에 따른 체력 부담이 덜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보는 일이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힌트가 된 것 같다.
좋았던 일이 많았던 하루였지만 이날 밤 내내 머리가 아프고 계속 눈물이 흘러서 다음날 오전까지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이 퉁퉁 부어있었다. 원래도 특정한 이유없이 종종 있는 일이지만 유독 심한 날이었다.
•5/15(5일차)

5일차에는 돌담 건축을 위해 돌의 한 면을 평평하게 다듬는 것을 배우고 두시간동안 작업을 했다. 나에겐 이석증에 소음진동이 더해진 탓인지 그 장소를 떠난 이후에도 시야가 회전하는 동시에 뇌가 진동했는데 변명을 하듯 빠르게 토로해야만 모면할 수 있는 작은 상황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피로감이 있었다. 그래도 쉽게 해볼 수 없는 경험이기에 최선을 다했다. 활동의 취지는 좋았는데 내가 능숙히 버티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이 문제는 내가 겉으로 티내지 않는 탓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이기적이게도 내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나를 알아주길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에게 피해주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주로 작동하면서도, 내가 아주 무리하게 되었을 때 되려 상대에게 줄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나를 표현하는 적정선을 찾는 것은 항상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다른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관찰하고 유추하기 때문에 남도 그래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듯하다.
밥을 먹고서 오후에는 동문시장에 갔다. 사람이 많고 소란스러워서 한 군데만 들렸다가 바로 시장을 나왔다. 괜찮은 카페를 발견해서 각자 이 리트릿 일지를 작성하기 위해 시간을 가졌다.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한시간 반 남짓한 시간동안 계속 글을 썼는데, 이것 덕분에 조금 환기가 돼서 좋았다.
약속한 시간까지 숙소로 복귀해 밥을 먹고 잠깐 이야기를 했다. 좋았던 점보다는 피드백이 될수도 있는, 있었으면 좋았을 점에 초점을 맞춰 얘기하다보니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비쳐졌을까봐 걱정이 됐다. 평소에도 최대한 생략하고 함축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는데 말을 할수록 오해가 쌓이는 느낌에 내 자신이 답답했다. 말은 주워담을 수가 없어서 무섭게 느껴진다. 그래도 많이 뱉어보면서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말로 잘 표현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
•5/16(6일차)

오전에 청소와 정리를 하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친절을 베풀어주신 모든 분들과, 이른 아침에 내 이불 안에 들어와 자고 가던 고양이도, 멋진 집과도, 모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그리고 이호 해변의 해녀탈의실 전시회를 보기 위해 버스에 탔다. 내 옆에 귀여운 할머니가 앉으셨는데, 내 이곳저곳을 빤히 관찰하시며 어디가냐고 웃으시며 물으셨다. 나도 웃으면서 답을 해드렸다. 버스 소음 때문에 내 답이 잘 안 들리셨는지 더 대화는 없었지만, 가는 동안 잠깐씩 시선이 느껴져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가 옆에 앉기 전까지는 혼자 습관적인 자살충동을 삼키면서 청승을 떨고 있었는데 귀여운 할머니 덕분에 눈물이 들어갔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환승시간 문제가 생겨서 택시를 불렀다. 도착하니 전시는 오픈 시간 전이었지만, 비행기 일정을 말씀드리니 전시도 보고 해녀할머니들과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해주셨다. 잠깐이었지만 마지막 날에 바다를 한 번 더 볼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제주도에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보다 기상상태가 훨씬 좋아서 많이 흔들리지 않았다. 도착하고선 서로 또 만나자고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갔다. 새로운 분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했던 생각들도 많았고 동기부여도 받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쏟아지듯 많은 움직임이 생겼던 터라 휴식을 취하면서 이곳에서의 경험을 곱씹어 봐야겠다. 당장 일상에 큰 변화가 일진 않겠지만, 분명 내 마음에는 변화가 생겼을 것 같다. 내 부족한 점을 이해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다.
•5/11(1일차)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처음으로 김포공항에 가게 되었다. 버스를 오래 탄 탓에 멀미하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연착된 덕분에 조금 쉬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비행기는 생각보다 많이 흔들리고 어지러웠지만 다행히 탈 없이 잘 도착했다.
숙소로 가는 차에서 팀장님이 제주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다. 제주는 아주 큰 공동체 마을이라고 하셨는데,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한 내가 공동체 마을에서 리트릿을 하러 오게 된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이번 제주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 다른 분들과 인사를 했다. 가기 전에는 혼자 여자라서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좋은 분들 같았다. 방이 과분하게 멋져서 기뻤다. 짐을 간단히 푼 후에 간식을 먹고 텃밭에 갔다.
저녁에는 고기를 구워주셨다. 매일 혼자 집에서 밥을 먹다가 낯선 사람들이랑 먹으니까 평소의 절반도 먹지 못했고 그마저도 체를 했다. 밥을 많이 남기게 되어서 죄송했다. 일주일간 컨디션 조절을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체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면접에서 말했던 나에 대한 정보만으로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참 감사했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지만, 그저 민폐끼치지 않고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리가 있다는 것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5/12(2일차)
오전에는 볍씨학교라는 곳의 아이들의 수업 현장에 같이 참여했다. 동자석과 지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고 자유롭게 창작 시간을 가졌다. 돌의 영원성을 강조하시길래 영원성과 대비되는 유한성과 연약성을 가진 나비를 지물로 선택했다. 내 생에서 지물이 될만큼 의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고루하지만 희망이라는 의미에서 나비를 고르기도 했다.
점심 식사도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볍씨학교의 취지와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엉겁결에 그들의 틀에 모양을 맞춰야 함에 부담을 느꼈다. 사전 정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나의 경우엔 비교적 규율이 명확한 어린 집단에 갑자기 함께 한다는 것이 낯설었던 것 같다. 규칙으로 작동하고 있는 어떤 것의 의미를 물었을 때 아이들이 답을 하지 못해 망설이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작은 아쉬움도 있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부터 갑자기 비가 왔었는데 밥을 먹고 나오니 금세 개서는 아주 맑은 날이 되었다.
예상치 못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돼서 당황했지만, 그 덕에 제주 청년학교분들과의 유대가 더 생기기도 했다. 분명 어제까지는 낯선 분들이었지만 이날의 나는 그런 걸 차치하고 불안한 마음이 컸는지, 자연스럽게 눈알을 굴려 그들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말도 걸어주시고 다가와주셔서 많이 감사했다.
드로잉 수업을 하면서는 서로의 그림을 볼 수도 있고,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기회가 된 것 같아서 좋았다. 낯선 경험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저녁에는 집단상담을 했다. 나에게 쓰는 편지를 읽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때의 나는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최대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문제가 있음을 증명해야한다는 느낌에 부담이 들기도 했다.
나에 대한 전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들과 둥글게 앉아서, 공감을 요구하는 치기어린 말과 행동을 경계하는 동시에, 시간 관계상 보편적 이해가 가능할 적당히 가벼운 소재를 골라 표현하고 말하는 것이 까다롭긴 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서로를 알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5/13(3일차)
자유여행이었던 3일차에는 바다가 보고 싶어서 근처 함덕해수욕장에 가게 되었다. 아침버스를 타고 바다를 가는 기분이 좋았다. 제주에서만 진행하고 있는 포토프레임을 찍기 위해서 바다 앞 포토이즘에 갔다. 사진이 마음에 들게 나왔다.
사진을 찍은 후에는 바다 앞에 앉아서 모래도 만지고 영상이랑 사진도 많이 찍었다. 바다가 이정도로 파란지 몰랐어서 놀라웠다. 오후에는 바로 시내로 갈 계획이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든 탓에 바다를 더 위에서 볼 수 있는 근처 서우봉에 올라 보기로 했다. 봉우리가 낮은 편이라 금방 오른데다 아무도 없어서 혼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내려갔다.
그 이후엔 시내에 가서 괜찮은 갈치구이를 먹고 이런저런 구경을 했다. 이동을 할때마다 버스시간이 잘 풀리지 않아서 점점 에너지가 소진된 탓에,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애석하게도 뿌듯함보다는 피곤함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있었다.
•5/14(4일차)
4일차에는 텃밭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잠이 덜 깨어 있었는데 소소한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잠이 깼다. 로즈마리를 묶어서 방향제도 만들었다.
후엔 휴양림공원에 출사를 가서 초록과 빛을 주제로 사진을 찍었다. 산책도 하고 새로운 분들과도 짧은 대화를 나눴다.
숙소에 도착해 잠깐 휴식한 후에는 두 번째 집단 상담을 했는데 저번보다 인원수가 적어서 시간에 따른 체력 부담이 덜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보는 일이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힌트가 된 것 같다.
좋았던 일이 많았던 하루였지만 이날 밤 내내 머리가 아프고 계속 눈물이 흘러서 다음날 오전까지는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이 퉁퉁 부어있었다. 원래도 특정한 이유없이 종종 있는 일이지만 유독 심한 날이었다.
•5/15(5일차)
5일차에는 돌담 건축을 위해 돌의 한 면을 평평하게 다듬는 것을 배우고 두시간동안 작업을 했다. 나에겐 이석증에 소음진동이 더해진 탓인지 그 장소를 떠난 이후에도 시야가 회전하는 동시에 뇌가 진동했는데 변명을 하듯 빠르게 토로해야만 모면할 수 있는 작은 상황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피로감이 있었다. 그래도 쉽게 해볼 수 없는 경험이기에 최선을 다했다. 활동의 취지는 좋았는데 내가 능숙히 버티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이 문제는 내가 겉으로 티내지 않는 탓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이기적이게도 내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나를 알아주길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에게 피해주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주로 작동하면서도, 내가 아주 무리하게 되었을 때 되려 상대에게 줄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나를 표현하는 적정선을 찾는 것은 항상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다른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관찰하고 유추하기 때문에 남도 그래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듯하다.
밥을 먹고서 오후에는 동문시장에 갔다. 사람이 많고 소란스러워서 한 군데만 들렸다가 바로 시장을 나왔다. 괜찮은 카페를 발견해서 각자 이 리트릿 일지를 작성하기 위해 시간을 가졌다.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한시간 반 남짓한 시간동안 계속 글을 썼는데, 이것 덕분에 조금 환기가 돼서 좋았다.
약속한 시간까지 숙소로 복귀해 밥을 먹고 잠깐 이야기를 했다. 좋았던 점보다는 피드백이 될수도 있는, 있었으면 좋았을 점에 초점을 맞춰 얘기하다보니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비쳐졌을까봐 걱정이 됐다. 평소에도 최대한 생략하고 함축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는데 말을 할수록 오해가 쌓이는 느낌에 내 자신이 답답했다. 말은 주워담을 수가 없어서 무섭게 느껴진다. 그래도 많이 뱉어보면서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말로 잘 표현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
•5/16(6일차)
오전에 청소와 정리를 하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친절을 베풀어주신 모든 분들과, 이른 아침에 내 이불 안에 들어와 자고 가던 고양이도, 멋진 집과도, 모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그리고 이호 해변의 해녀탈의실 전시회를 보기 위해 버스에 탔다. 내 옆에 귀여운 할머니가 앉으셨는데, 내 이곳저곳을 빤히 관찰하시며 어디가냐고 웃으시며 물으셨다. 나도 웃으면서 답을 해드렸다. 버스 소음 때문에 내 답이 잘 안 들리셨는지 더 대화는 없었지만, 가는 동안 잠깐씩 시선이 느껴져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가 옆에 앉기 전까지는 혼자 습관적인 자살충동을 삼키면서 청승을 떨고 있었는데 귀여운 할머니 덕분에 눈물이 들어갔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환승시간 문제가 생겨서 택시를 불렀다. 도착하니 전시는 오픈 시간 전이었지만, 비행기 일정을 말씀드리니 전시도 보고 해녀할머니들과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해주셨다. 잠깐이었지만 마지막 날에 바다를 한 번 더 볼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제주도에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보다 기상상태가 훨씬 좋아서 많이 흔들리지 않았다. 도착하고선 서로 또 만나자고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갔다. 새로운 분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했던 생각들도 많았고 동기부여도 받을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쏟아지듯 많은 움직임이 생겼던 터라 휴식을 취하면서 이곳에서의 경험을 곱씹어 봐야겠다. 당장 일상에 큰 변화가 일진 않겠지만, 분명 내 마음에는 변화가 생겼을 것 같다. 내 부족한 점을 이해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