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안녕하세요. 제주 두더집 집단상담에서 불안에 대해 얘기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보게 되었어요.
전혀 전문적인 내용이 아니고 주제넘을 수 있지만, 저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해서 남겨보아요. 갑자기 쓴 것이라 글이 매끄럽지 못할 수 있어요.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는 정도로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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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불안도 충분히 쓸만한 연료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두 가지 방법을 들어서 하고 싶어요.
첫 번째는 상상에 관한 이야기예요. 불안에 따른 모든 행동을 실행하게 된다고 전제했을 때, 불안은 힘이 일정치 못한 연료임을 주의하시면 좋아요. 저는 불안한 마음과 실제 행동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조금 웃길 수 있는데, 저의 경우엔 과거에 정말 힘이 부족했을 때, 제 눈앞에 어떤 버튼이 있다고 상상할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버튼을 누르면, 깊숙한 곳에 잔류해 있던 에너지까지 모두 끌어모아 쓸 수 있다는 이미지를 그려요. 어느 순간부턴 상상을 굳이 하지 않아도 비슷한 상황을 극복하게 돼요.
이미지가 어렵다면 문장이나 단어도 괜찮아요. 다른 상황을 예시로 들면, 저는 어릴 때부터 불안할 때마다 ‘나는 심각한 상황에서 오히려 차분해지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세뇌하듯 자주 했더니, 실제로 조금은 그렇게 되기도 했어요. 상상은 어떤 것이든 가능하니,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떠올려서 반복적으로 소환할 수 있잖아요. 되도록 구체적이라면 더 좋구요. 잘 모르겠다면 상투적인 희망메시지라도 좋을 것 같아요.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 불안의 반복적인 성질을 이용해보는 거예요. 저도 어렵지만, 현재 상태를 부정하지 않고 인식한 후에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고민하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두 번째도 내 불안을 인지하고, 더 잘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는 거예요. 창문을 비유로 들어볼게요. 어제 비가 왔을 때 하게 된 생각인데, 창문의 방충망은 비가 와서 네모난 칸들에 비가 알알이 맺혔을 때 비로소 그 존재를 인지하게 돼요.
관련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우리의 뇌는 반복해서 보이는 어떤 모양이나 패턴을 임의적으로 보이지 않게 한다고 들었어요. 불안도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불안이 일상적인 반복 패턴이 되어버리니, 불안을 탓하기보다는 불안해하고 있는 나를 탓하는 때가 있어서요.
또,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뚫린 창문과 방충망이 있는 조금 열린 창문, 투명한 유리창이 덮여있는 창문은 창문 앞에 섰을 때 느낄 수 있는 바람의 세기가 매우 달라요. 바람을 느끼고 싶을 때는 완전히 뚫린 창문이 내게 이롭겠지만, 바람을 피하고 싶을 때는 유리창이 덮인 창문이 낫고, 그보단 방충망도 있고 여닫을 수 있는 창문이 나을 때도 있겠죠.
비유가 조금 복잡해진 것 같긴 하지만, 자신이 가진 특성을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유리하게 작동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불안이라는 연료를 오랫동안 태우고 태워 사용하고 있는 저의 경우엔, 어떤 특정한 경우엔 분명 득이 되지만, 그 기세를 조절하는 것이 어려워서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 한해 브레이크가 밟히고 에너지가 아주 떨어져 버리는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그걸 조율하는 게 현재의 과제예요. 저는 욕심이 많아서 멈출 생각이 없기 때문에 몸이 저를 대신해 브레이크를 밟는 걸 수도 있어요.
집에서 드물게 나가게 된 것도 일 년 반쯤 전에 몸에 좋지 않은 병이 생겼고 수술하게 된 탓이었어요. 저는 운 좋게도 열심히 하면 결과가 그대로 나오는 종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시엔 혼자 속도가 정체되어 버린 것 같은 그 상황이 많이 미웠어요. 수술을 하긴 했지만 후유증이 남았고, 언제 더 심해질지 몰라서 병원에 다니며 추적 관찰을 하고 있고요. 물론 고립감은 아주 오래 전부터 느끼긴 했지만요ㅎㅎ
과거를 반추하는 생각은 이미 많이 하실 거라 짐작되기에, 지금은 과거로부터 비롯된 나의 현재 상태가 어떠한지에 집중해 보시거나, 때로는 내가 어떤 괜찮은 사람이 될만한 가능성이 있는지 하는 미래의 것들을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큰 것들에 몰입하다보면 일상의 작은 것들은 비교적 덜 불안하게 느껴질지도 몰라요.
그리고, 불안하다는 건 삶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것이 되기도 하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쉽지 않겠지만,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일 때 불안이 연료로서 사용될 수 있는 것이죠. 그 전에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삶의 가치와 기대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아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기에 끊임없이 해야 하는 과제인 것 같아요.
저도 이 편지를 쓰면서 저의 불안에 대해 생각해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다 쓰고보니 제가 그동안 살기 위해 지독한 긍정주의를 택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거북한 기분이 들고 스스로 다시 읽기는 힘들 것 같지만요. 원래 인터넷에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없어서 낯설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상황이 많이 다르니 혹여 경솔한 글이 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고요ㅎㅎ 한편으론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는 게 제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조심스레 시도해본 것이에요.
굳이 제 얘기를 꺼낸 것은 하나의 사례로서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이었어요.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상태에서 저의 경우만을 빗대서 썼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아주 마음이 힘들 때 예전에 받았던 편지들을 두고두고 모아서 꺼내 읽어보는 게 힘이 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쓰게 되었어요. 함께 시간을 보냈던 모든 분들이 무탈하시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마쳐요. 조금씩이라도 편안한 하루가 모이길 바라요.
편지.
안녕하세요. 제주 두더집 집단상담에서 불안에 대해 얘기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보게 되었어요.
전혀 전문적인 내용이 아니고 주제넘을 수 있지만, 저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해서 남겨보아요. 갑자기 쓴 것이라 글이 매끄럽지 못할 수 있어요.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는 정도로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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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불안도 충분히 쓸만한 연료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두 가지 방법을 들어서 하고 싶어요.
첫 번째는 상상에 관한 이야기예요. 불안에 따른 모든 행동을 실행하게 된다고 전제했을 때, 불안은 힘이 일정치 못한 연료임을 주의하시면 좋아요. 저는 불안한 마음과 실제 행동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조금 웃길 수 있는데, 저의 경우엔 과거에 정말 힘이 부족했을 때, 제 눈앞에 어떤 버튼이 있다고 상상할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버튼을 누르면, 깊숙한 곳에 잔류해 있던 에너지까지 모두 끌어모아 쓸 수 있다는 이미지를 그려요. 어느 순간부턴 상상을 굳이 하지 않아도 비슷한 상황을 극복하게 돼요.
이미지가 어렵다면 문장이나 단어도 괜찮아요. 다른 상황을 예시로 들면, 저는 어릴 때부터 불안할 때마다 ‘나는 심각한 상황에서 오히려 차분해지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세뇌하듯 자주 했더니, 실제로 조금은 그렇게 되기도 했어요. 상상은 어떤 것이든 가능하니,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떠올려서 반복적으로 소환할 수 있잖아요. 되도록 구체적이라면 더 좋구요. 잘 모르겠다면 상투적인 희망메시지라도 좋을 것 같아요.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 불안의 반복적인 성질을 이용해보는 거예요. 저도 어렵지만, 현재 상태를 부정하지 않고 인식한 후에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고민하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두 번째도 내 불안을 인지하고, 더 잘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는 거예요. 창문을 비유로 들어볼게요. 어제 비가 왔을 때 하게 된 생각인데, 창문의 방충망은 비가 와서 네모난 칸들에 비가 알알이 맺혔을 때 비로소 그 존재를 인지하게 돼요.
관련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우리의 뇌는 반복해서 보이는 어떤 모양이나 패턴을 임의적으로 보이지 않게 한다고 들었어요. 불안도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불안이 일상적인 반복 패턴이 되어버리니, 불안을 탓하기보다는 불안해하고 있는 나를 탓하는 때가 있어서요.
또,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뚫린 창문과 방충망이 있는 조금 열린 창문, 투명한 유리창이 덮여있는 창문은 창문 앞에 섰을 때 느낄 수 있는 바람의 세기가 매우 달라요. 바람을 느끼고 싶을 때는 완전히 뚫린 창문이 내게 이롭겠지만, 바람을 피하고 싶을 때는 유리창이 덮인 창문이 낫고, 그보단 방충망도 있고 여닫을 수 있는 창문이 나을 때도 있겠죠.
비유가 조금 복잡해진 것 같긴 하지만, 자신이 가진 특성을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유리하게 작동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불안이라는 연료를 오랫동안 태우고 태워 사용하고 있는 저의 경우엔, 어떤 특정한 경우엔 분명 득이 되지만, 그 기세를 조절하는 것이 어려워서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 한해 브레이크가 밟히고 에너지가 아주 떨어져 버리는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그걸 조율하는 게 현재의 과제예요. 저는 욕심이 많아서 멈출 생각이 없기 때문에 몸이 저를 대신해 브레이크를 밟는 걸 수도 있어요.
집에서 드물게 나가게 된 것도 일 년 반쯤 전에 몸에 좋지 않은 병이 생겼고 수술하게 된 탓이었어요. 저는 운 좋게도 열심히 하면 결과가 그대로 나오는 종류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시엔 혼자 속도가 정체되어 버린 것 같은 그 상황이 많이 미웠어요. 수술을 하긴 했지만 후유증이 남았고, 언제 더 심해질지 몰라서 병원에 다니며 추적 관찰을 하고 있고요. 물론 고립감은 아주 오래 전부터 느끼긴 했지만요ㅎㅎ
과거를 반추하는 생각은 이미 많이 하실 거라 짐작되기에, 지금은 과거로부터 비롯된 나의 현재 상태가 어떠한지에 집중해 보시거나, 때로는 내가 어떤 괜찮은 사람이 될만한 가능성이 있는지 하는 미래의 것들을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큰 것들에 몰입하다보면 일상의 작은 것들은 비교적 덜 불안하게 느껴질지도 몰라요.
그리고, 불안하다는 건 삶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것이 되기도 하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쉽지 않겠지만,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일 때 불안이 연료로서 사용될 수 있는 것이죠. 그 전에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삶의 가치와 기대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아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기에 끊임없이 해야 하는 과제인 것 같아요.
저도 이 편지를 쓰면서 저의 불안에 대해 생각해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다 쓰고보니 제가 그동안 살기 위해 지독한 긍정주의를 택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거북한 기분이 들고 스스로 다시 읽기는 힘들 것 같지만요. 원래 인터넷에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없어서 낯설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상황이 많이 다르니 혹여 경솔한 글이 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고요ㅎㅎ 한편으론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는 게 제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조심스레 시도해본 것이에요.
굳이 제 얘기를 꺼낸 것은 하나의 사례로서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이었어요.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상태에서 저의 경우만을 빗대서 썼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아주 마음이 힘들 때 예전에 받았던 편지들을 두고두고 모아서 꺼내 읽어보는 게 힘이 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쓰게 되었어요. 함께 시간을 보냈던 모든 분들이 무탈하시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마쳐요. 조금씩이라도 편안한 하루가 모이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