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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제주의 햇살은 오후 4시가 되어서도 약해지기는 커녕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버틸 수 있었지 안 그랬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꽃덤블을 뒤로한채 예상에도 없었던 이사장님의 제안으로 함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바다가 좋아서 군생활도 해군을 선택했던 나였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바다를 못 본지도 횟수를 해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잊고 살았었다. 그런 바다와 오랜만에 조우하다보니 가슴이 벅찼다. 내게 익숙했던 동해바다의 비릿함은 아니었지만 제주의 바다는 곱고 예뻤다.
친한 사람들이 아닌 낯설고 이질적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역시나 부대낌의 연속이었다. 같이 서울에서 출발한 여성 한 분과 남성 한 분, 혜진님과 지혜님, 제주도민 남성 한 분, 여성 한 분... 주제가 던져지고 프로그램 진행 중일때는 적어도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 그게 아니었을때는 말 없이 각자만의 시간을 보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켜켜이 묵혀놓은 내 문제들이 드러나고 그것들을 마주하는 것에 압도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었던 탓이다. 신기하게도 제주에 오고부터는 오랜 시간동안 짓눌렸던 것들로부터 해방된 기분을 느꼈다.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나이는 한 살 한 살 먹어 가지만 명확히 내 길이다 하는 것 없이 막연하게 이런 게 내 길일거야 같은 흐릿함은 스스로를 매우 불안에 젖게 만들었다. 그럴때마다 게임으로 유튜브로 넷플릭스로 도망쳤던 나였지만 이상하게 제주에서만큼은 그것들이 무엇인지 가만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숙제가 있는 것처럼 열심히 몰두하며 자기 문제에 빠져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도 없이 모아놓은 돈으로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식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을 구하고 돈이 모이면 다시 불안해지기를 반복하는 삶. 위태로운 나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 역시 나 또한 원치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패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게 답답하고 그런 내 자신이 한심스럽고 미웠다.
작은 아버지는 광고회사에 재직하며 대기업의 수주를 받아 사람들이 알만한 광고들을 만들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런 작은 아버지의 커리어에 압도 되어 버린 나는 나도 모르게 작은 아버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하나의 가치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원두야 다른 사람들만큼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남들만큼 사는 거 그거 쉽지 않은 거다." 알게 모르게 나 역시도 남들만큼 사는 걸 표준으로 삼았었다. 남들이 하는 건 해야 했고 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탓하고 원망하고 하게 되면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는 식이었다. 남들만큼에 가까워질수록 가치 있는 인간처럼 여겨졌고 남들과 멀어질수록 쓸모 없는 인간처럼 여겨졌다. 남들처럼 사는 삶의 질서를 거부하고 자기 식대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의 등장은 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쓸모는 도대체 무엇일까, 쓸모를 규정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주체적 삶이란 무엇일까, 왜 주체적인 삶으로 살아야 하는걸까? 그렇게 선택한 삶은 조금의 위선이나 거짓없이 스스로 만족스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