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쯤이었을까. 제주의 햇살은 따가웠다. 꽃덤블에 들어서자 오랜만에 마주하는 얼굴이 있었다. 혜진님이었다. 1년 전보다 피부가 검게 그을려 있었고 마치 이곳의 스태프처럼 분주히 움직이며 프로그램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꽃덤블 지기인 현경숙 선생님이 무언가 요청을 하면 혜진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응답했다.
나는 1년 전, 혜진님을 비롯해 지금은 쉬고 있는 김예림 매니저, 그리고 두더집 이용자 몇몇과 함께 발굴단 2기 활동을 했었다. 당시 활동의 내용은 집 안에 은둔 중인 청년들에게 두더집을 알리고 이곳에서 사람들과의 교류를 권장하는 취지였다. 하지만 내 안의 예민함 때문인지 그들과의 활동을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다. 오랜 단체 생활 탓인지 강한 규율 속에서 살았던 나는 두더집 이용자들의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수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준비 없이 무성의하게 참여하고 주제를 벗어난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는 모습들. 스스로 결정 짓기보다는 하나하나 타인의 허락을 구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는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그때 처음 본 혜진님은 말 없이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사람쯤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난 혜진님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스스로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제주가 가진 공간의 힘 때문이었을까 혜진님에게서는 은둔의 음습함이 아닌 든든하게 뻗어 있는 고목 같은 힘이 느껴졌다. 그 존재만으로도 이곳을 지탱하고 있었다.
현경숙 선생님은 우리를 이끌고 꽃덤블 정원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셨다. 옥수수, 꽃, 허브,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고 있었지만 따가운 햇살 탓에 온전히 감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짜증스러운 기분을 달래주었다. 선생님은 직접 키운 식물들을 손으로 만져보라 하셨고, 심지어 꺾어도 된다고까지 하셨다. "꺾어도 된다고...? 진짜? 왜???"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성을 들여 키운 것들을 왜 꺾으라고 하셨던 걸까.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꽃이며 풀이며 허브며 손에 잡히는 대로 꺾었다. 어느새 손에는 식물들이 한가득 쥐어져 있었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 앉아 각자 자기 소개를 마친 뒤에서야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굵은 실로 꺾은 식물들을 한 데 묶으면 향기로운 뭉탱이(?)가 완성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활동의 결과물이었던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눈으로만 보세요' 라는 문구가 익숙할 정도로 조심스러운 접근을 허락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 곳 꽃덤블에서는 몸으로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선생님만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식물 하나하나를 손으로 느끼며 흥미롭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후, 방앗간에서 뽑은 가래떡과 꿀을 선생님께서 내어주셨다. 따뜻한 배려 덕분에 맛있게 배를 채운 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발달장애인과 그들의 부모들이 이곳에서 제법 오랜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들이 손수 심은 옥수수는 무럭무럭 자라 사람 키만해졌다. 혜진님과 동생 지혜님이 키운 옥수수도 눈에 띄었다. 그 옥수수를 직접 따서 먹을 수 있었는데 초당옥수수는 조리 없이 바로 먹을 수 있어서 간편하고 또 맛있기도 해서 마음에 들었다.
무언가를 만들고 키우고 지키는 것은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현경숙 선생님의 삶의 태도는 내가 아는 그것들과는 달랐다. 꽃덤블 정원을 돌보는 일 뿐만이 아니라 제주 고유의 자연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계셨다. 화산섬 제주의 특색과 자연유산에 대한 자부심도 선생님 말씀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조금은 무례한 질문들이 떠올랐다. '왜 돈 되는 귤나무를 베어버리고 남 좋을 일만 골라서 하실까, 관광객인 내 입장에서는 즐겁지만 이 생활을 지속하려면 만만찮은 비용이 들텐데...이렇게 퍼주기만 해도 괜찮은 걸까?' 따위의 질문들.. 입 밖으로 꺼내볼까 했지만 이내 삼켰다. 이런 질문들에 답은 스스로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날 즐거운 체험이었지만 동시에 여러 질문들과 고민을 안고 돌아가게 되었다.





오후 3시쯤이었을까. 제주의 햇살은 따가웠다. 꽃덤블에 들어서자 오랜만에 마주하는 얼굴이 있었다. 혜진님이었다. 1년 전보다 피부가 검게 그을려 있었고 마치 이곳의 스태프처럼 분주히 움직이며 프로그램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꽃덤블 지기인 현경숙 선생님이 무언가 요청을 하면 혜진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응답했다.
나는 1년 전, 혜진님을 비롯해 지금은 쉬고 있는 김예림 매니저, 그리고 두더집 이용자 몇몇과 함께 발굴단 2기 활동을 했었다. 당시 활동의 내용은 집 안에 은둔 중인 청년들에게 두더집을 알리고 이곳에서 사람들과의 교류를 권장하는 취지였다. 하지만 내 안의 예민함 때문인지 그들과의 활동을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다. 오랜 단체 생활 탓인지 강한 규율 속에서 살았던 나는 두더집 이용자들의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수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준비 없이 무성의하게 참여하고 주제를 벗어난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는 모습들. 스스로 결정 짓기보다는 하나하나 타인의 허락을 구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는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그때 처음 본 혜진님은 말 없이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사람쯤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난 혜진님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스스로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제주가 가진 공간의 힘 때문이었을까 혜진님에게서는 은둔의 음습함이 아닌 든든하게 뻗어 있는 고목 같은 힘이 느껴졌다. 그 존재만으로도 이곳을 지탱하고 있었다.
현경숙 선생님은 우리를 이끌고 꽃덤블 정원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셨다. 옥수수, 꽃, 허브,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고 있었지만 따가운 햇살 탓에 온전히 감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짜증스러운 기분을 달래주었다. 선생님은 직접 키운 식물들을 손으로 만져보라 하셨고, 심지어 꺾어도 된다고까지 하셨다. "꺾어도 된다고...? 진짜? 왜???"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성을 들여 키운 것들을 왜 꺾으라고 하셨던 걸까.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꽃이며 풀이며 허브며 손에 잡히는 대로 꺾었다. 어느새 손에는 식물들이 한가득 쥐어져 있었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 앉아 각자 자기 소개를 마친 뒤에서야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굵은 실로 꺾은 식물들을 한 데 묶으면 향기로운 뭉탱이(?)가 완성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활동의 결과물이었던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눈으로만 보세요' 라는 문구가 익숙할 정도로 조심스러운 접근을 허락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 곳 꽃덤블에서는 몸으로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선생님만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식물 하나하나를 손으로 느끼며 흥미롭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후, 방앗간에서 뽑은 가래떡과 꿀을 선생님께서 내어주셨다. 따뜻한 배려 덕분에 맛있게 배를 채운 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발달장애인과 그들의 부모들이 이곳에서 제법 오랜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들이 손수 심은 옥수수는 무럭무럭 자라 사람 키만해졌다. 혜진님과 동생 지혜님이 키운 옥수수도 눈에 띄었다. 그 옥수수를 직접 따서 먹을 수 있었는데 초당옥수수는 조리 없이 바로 먹을 수 있어서 간편하고 또 맛있기도 해서 마음에 들었다.
무언가를 만들고 키우고 지키는 것은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현경숙 선생님의 삶의 태도는 내가 아는 그것들과는 달랐다. 꽃덤블 정원을 돌보는 일 뿐만이 아니라 제주 고유의 자연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계셨다. 화산섬 제주의 특색과 자연유산에 대한 자부심도 선생님 말씀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조금은 무례한 질문들이 떠올랐다. '왜 돈 되는 귤나무를 베어버리고 남 좋을 일만 골라서 하실까, 관광객인 내 입장에서는 즐겁지만 이 생활을 지속하려면 만만찮은 비용이 들텐데...이렇게 퍼주기만 해도 괜찮은 걸까?' 따위의 질문들.. 입 밖으로 꺼내볼까 했지만 이내 삼켰다. 이런 질문들에 답은 스스로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날 즐거운 체험이었지만 동시에 여러 질문들과 고민을 안고 돌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