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두더집 활동


제주 두더집에서의 활동을 기록해 주세요.

제주 두더집 활동제주 일경험 3~6일차 (5/1, 5/2, 5/3, 5/4)

모난
2025-05-06
조회수 51

5월 1일 (3일차)


오늘은 비 예보로 인해 하루가 조금 서두르듯 시작됐다. 이른 아침 7시 반부터 텃밭에서 씨를 뿌리고 돌 캐는 일을 했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11시가 다 되어서야 손을 놓았다. 

지루해지루해지루해지루해힘들어지루해힘들어히히재밌당지루해힘들어지루해지루해・・・.

반복노동에 젬병인 나의 머리속에는 휴식 없이 작업 시작 두 시간을 지나자 지루하단 불평이 물밀듯 밀려들어왔다. 아, 힐링이 아니라 흙을 만지며 묵묵히 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한 나의 오만함이여... 난 직업이 농부밖에 안 남는다면 굶어 죽을 것이다... 분명하다.


그렇지만! 난 일체험을 하러 온 것이니 맡은 바 책임을 다 해야했다. 내가 지루해 한다고 돌이 ‘에에올’의 돌맹이처럼 알아서 움직여 주진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마냥 지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푸른 작물들의 모습이 날 힘내게 해주었다. 이사장님은 씨앗마다 성격이 다르고, 심는 간격도 제각각이라며 일일이 설명해주셨다. 씨를 아무렇게나 뿌리면 뿌리끼리 엉키거나 그림자가 져 잘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사람 사이의 거리감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가깝게만 붙어 있으면 서로 숨을 못 쉬잖아. 순간 엄마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ㅡ조금은 거리를 두고, 내가 나답게 자라게 지켜봐 주는 사람.


ㅡ (볍씨학교 공간 사진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오후엔 볍씨학교 공동체 공간에서 정신과 선생님과 함께 집단상담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깊은 상처를 지닌 나에게, 선생님은 본인의 경험을 공유해 주시며 공감과 조언을 해주셨다. 오후내 내리던 봄비와 어울리는 분위기 속에서, 나뿐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울타리가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저녁의 차담회는 은둔 경험 청년들이 창업한 브랜드의 차 블랜딩 시간이었다. 평소 차에 관심은 있었지만, 지식은 깊지 않았는데 따뜻한 차도 많이 마시고, 여러가지 재료들로 나만의 차를 만들어 볼 수 있어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나도 직접 모과, 오렌지, 레몬밤, 시나몬을 넣어 나만의 차를 만들었다. 어떤 향과 맛이 날지 정말 기대된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시간. 아주 깊은 이야기가 늦은 밤까지 이어져 갔고, 우린 서로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차담회를 진행하는 동안 생각난 친구가 있었다. 평소 서로에게 속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사이이기에 이 친구는 힘들고 아파도 병원에 가는 것을, 가끔은 나보다도 나가는 것을 꺼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득 그런 친구도 이 프로그램에 같이 참가했다면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에게 내가 제주에 와서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은둔고립 청년들을 위한 것임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친구는 이미 본인이 은둔고립이라 느끼고 있었다. 미디어 속 왜곡된 이미지 때문에 나조차 그 단어에 약간의 편견이 있었고, 창피하게 느꼈었는데 바로 내 가까이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었던 거다. 그래서 말했다. 나중에 같이 서울 두더집에 가자고. 내가 힘이 되어 주겠다고.


5월 2일 (4일차)


- 하나의 액자 같은 텃밭 풍경

오늘은 비교적 가벼운 오전이었다. 텃밭에서 잡초를 뽑는 작업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씨를 뿌리고 돌을 캐는 것보단 훨씬 수월했고 묘하게 재미있기까지 했다. 


- 내가 뽑은 잡초(?). 

이 친구들은 최소 더덕이라고 불러줘야 예의에 맞을거 같다.

땅 위에선 고작 작은 새싹인 줄 알았던 풀들이 뽑아보면 깊고 단단한 뿌리를 가진 ‘잡초’였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새삼 식물에게 배웠다. 우리도 겉으로는 흔들리고 약해보여도 속은 무겁고 단단할 수 있는 존재니까. 비록 맞는 땅에 뿌리 내리지 못 해 뽑혀졌지만, 잡초는 어디서든 다시 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우리들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난 이 강함이 맘에 들었다.


- 사진은 그냥 귀여운 야호. 하지만 고양이는 24시간 요가를 하는 것처럼 몸이 유연하니 관련이 아주 없지는 않다.

짧은 밭일이 끝나고 베키님의 요가 수업이 이어졌는데, 도도와 야호가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요가의 창시자가 고양이라는 설이 있던데 내 허접한 동작을 보고 한심함에 훈수를 둔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베키님은 내가 몸을 잘 쓴다고 해주셨다고~ㅠㅠ 네 발로 걷는 고양이가 이족보행 인간의 허리 통증을 이해할리 없지... 아무튼 오랜만의 스트레칭에 온 관절이 다 풀리며 허리의 아픔 역시 가셨다. 베키님이 하시는 요가는 한국에 없는 요가라고 하던데, 나 역시 처음 경험했다. 동작들이 물이 흐르듯 유연하게 이어지는게 신기했다.


- 돌담 사진이 없어서 대신 아름다운 학교 풍경 사진으로 대체한다・・・.

오후엔 볍씨학교에서 돌담 쌓기 봉사를 했다. 요가를 이 이후에 했어야 했는데...ㅇ<< 처음엔 운 나쁘게도(?) 무지막지하게 크고 무거운 돌들을 몇 번 들고 옮겼어야 했는데, 사람 신체 조건을 생각 못 한 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리가 안 좋은 나는 잘못하면 부상을 입거나 민폐가 될 거 같았다. 중간에 다행히 사람이 부족했는지 속돌 채우는 쪽으로 옮겨졌는데, 돌들이 비교적 작아서 들기가 한결 수월했다. 첫 시작이 수월하지 않았을 뿐 모양이 맞는 돌들을 찾아 알맞은 방향으로 이리저리 조립하는 과정은 퍽 재밌었다. 그리고 맞는 돌을 잘 찾아 왔다고 칭찬을 들었을 땐 어린 아이처럼 기쁘기까지 했다. 실패가 두려워 늘 도전을 미뤄왔던 내게 “처음이니까 못 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해주시던게 생각난다. (물론 모두에게 해주신 전체 메세지 같은거였음!)


돌담 쌓기가 끝나고는 볍씨 학교 사람들과 일년서가라는 책방 오픈식에 참석했다. 장화에 몸빼바지를 입고 그런 행사에 가다니 처음엔 창피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 같은 모습이라 곧 마음이 편해졌다. 서점을 둘러보다 그림책 한 권을 샀는데, ‘매일매일은 단 한번뿐’이라는 책의 마지막 문장이 마음을 울렸다. 그 말처럼, 하루하루를 정말 내 삶처럼 소중하게 살다 갈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아직 많이 어려운 과제이지만, 그림책의 ‘나중에는 나중 자체가 없어졌어.’ 같은 장면은 더이상 재현해 내고 싶지 않다. 

 


5월 3일 (5일차)


오늘도 잡초 뽑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보다 뿌리가 작은 것들이라 수월은 했지만, 중간에 옥수수 새싹과 잡초의 구분이 어려운 일이 생겨 인터넷 찬스를 사용했다. 그저 시켜서 하는 일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무엇이 옥수수 새싹이고 잡초인지 알아보는 지식이 생기자 순간 내 밭을 가꾸는 것처럼 능동적인 기분이 들었다. 또한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이런 것들도 알아간다는 게 묘하게 기뻤다.


- 정원에서 채취해 온 재료들로 만든 채식 김밥. 예상외로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꽃덤불이라는 공간에 다녀왔다. 규격화된 화원이 아닌, 자연 그대로를 고수하는 곳. 선생님은 잡초도 함께 자라게 둔다며, 모든 잡초에는 이름이 있다는 말을 하셨는데 그 말이 유독 가슴에 남았다. 내가 잡초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거 같다. 아따맘마라는 만화의 오프닝처럼,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았던 다른 존재들이 어느 순간 중심이 되는 장면이 떠오른다. 잡초도, 나도, 지나쳐가는 사람들 모두 그렇게 각자 본인의 이야기가 있다는걸.


- 당황스러웠던 협곡(?) 트래킹・・・ 나중에 선생님께 물어보니 무려 2년간 이런 트래킹을 하셨다고 한다・・・. 빠를 수밖에 없었다.

오후에는 자폐 청년들과의 트래킹 프로그램이 있었다. 난 자폐같은 심한 정신질환자들과 함께 있는 것에 상당한 트라우마가 있어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어 질 것을 예상해서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크게 할 일은 없었다. 왜냐면 산책이란 말과는 다르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위산이었다・・・. 산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협곡을 트래킹 하는 것이었다.(두둥...) 2:1 마킹을 할 틈도 없이 그들은 닌자처럼 빠르게 앞으로 사라져버렸다. 초보자인 나에게는, 심지어 청바지에 평범한 운동화로는 너무나 힘든 코스였기에 따라갈 수 있을리 만무했다. 결국 선행팀을 놓친 나와 서진님은 다시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야만 했다. 스케줄에 산책이 아니라 트래킹이라고 정확한 설명이 있었다면 적당한 운동화도 챙겨오고, 좀 더 마음의 준비를 했을텐데 정보의 부족함이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었다.


<육회 비빔밥 사진>

저녁엔 혜진님이 일하시는 식당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었다. 꽤 오랜만에 먹는 육회였는데 고기가 굉장히 신선했던 기억이다. 식당 바로 옆의 편의점에도 들렀더니 마치 친구들과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원래 여행을 가면 친구들과 편의점 터는게 국룰인 것이다! 그렇게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편의점에서 서로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 덕에, 모두와 좀더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5월 4일 (6일차)


- 이사장님이 만들어주신 꽃팔찌!

오늘 오전은 유기견 보호소에 청소 봉사를 갔다. 인원이 많아 대규모 보호소일거라 예상했는데, 걱정과 달리 작은 보호소였고, 놀랄 만큼 깨끗했다. 예전에 개에게 물린 적이 있어서 무서워진 나는 산책 봉사를 포기하고 청소를 택했다. 청소하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잘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산책 후 다시 견사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표정이 잊히질 않았다. 캣펄슨인 나는 그들이 몸통 박치기를 해올 때 많이 당혹스러웠지만, 막상 떠나려니 많이 아쉬웠다. 산책을 못 한 아이도 있던거 같았는데 내가 청소 대신 산책을 택할걸 그랬나 약간의 후회도 들었다. 그들이 하루빨리 좋은 가족을 만나길 바란다.


오후엔 쉬는 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누적된 피로로 숙소에서 혼자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다. 허접한 몸은 자도자도 피곤해서 결국 거의 저녁때까지 누워서 보내고 말았다. 그치만 아무도 없는 조용한 숙소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에겐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역시 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


- 입체 미술 야호와 두더지 도도. 결국 방에 임시 격리를 당하고 말았다.

저녁엔 그림을 그렸다. 제주에서의 기억을 배경 삼아 커다란 고양이 그림을 몇 개 그렸고, 언젠가 나도 고양이 보호소를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다시 한 번 꾸게 되었다.

4 0

사단법인 씨즈

Tel | 02-355-7910   Fax | +82.2.355.7911   E-mail | dudug@theseeds.asia   URL | https://theseeds.asia

후원계좌 | 신한은행 100-026-478197 (예금주: 사단법인 씨즈)

사업자 등록번호 | 110-82-15053

 

 서울두더집 Tel.02-356-7941  Phone.010-3442-7901 Addr.서울시 은평구 불광로 89-4

 제주두더집 Tel.064-763-0901  Phone.010-5571-7901 Addr.제주시 조천읍 대흘리 1075-25

 

  "두더지땅굴"은 2022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 2022년 서울시 청년프로젝트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Copyright ⓒ 2022 두더지땅굴 All rights reserved.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