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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씨는 엄마가 아니잖아요. 이런 식으로 둘이 계속 붙어 있으면 그건 둘 다 망하는 길이에요. 떨어져야 해요. 조금씩 동생이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서 궁극적으로는 각자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야 해요."
요 며칠 전부터 선생님께서는 동생 진료 후에 나도 따로 진료실로 불러서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신 뒤 여러 말씀을 해 주신다. 선생님은 내가 지금 멈춰 있는 상태라고 하셨다. 동생을 케어하느라 내 삶을 살지 못하는 상태라고. 이런 식으로 뭐든 다 해 주다가는 동생도 나도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아직 분리불안이 있는 동생이 한 번에 변하지 못하니 우선 1시간씩 떨어져 있는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산책을 하더라도 1시간은 둘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서 그 시간 동안은 마주치지 않도록, 그렇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하셨다. 1시간의 경험에 동생이 '아, 이렇게 혼자 있어도 괜찮구나.'라고 느끼면 그 시간을 조금씩 늘려 보라고.
"너랑 마주치지 않으려면 난 너가 가기 싫어하는 사슴 책방에 가면 되겠다. ㅎㅎ"
"언니는 기분 좋아 보이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에 나도 모르게 엄청 싱글벙글하며 말했나 보다. 이런 내 모습에 동생은 조금 실망한 듯 보였다.
동생은 아직 스스로 뭔가를 하는 게 어렵다. 씻는 것도, 밥 먹는 것도. 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언성을 높이며 하게끔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이런 걸 스스로 못하는 게 우울 증상인데 언니는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호소했다. 아직은 안 된다라.. 안 된다고 그 상태 그대로 놔두면 그 상태 그대로이지 않은가. 안 되어도 옆에서 이렇게 하라고하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으면 억지로라도 하게 되니, 그게 반복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의지를 내지 않을까. 그럼에 '떨어져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해야 스스로도 할 수 있다는 걸 알 테니까.
수요일에는 1시간을 재고 혼자 나갔다 오려 한다. 그 시간이 동생에게 무언의 깨달음을 주길. 혹여 그 하루에 어떤 깨달음이 없더라도 반복되는 상황 속에 나아지는 때가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