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8일 주간조선이 만난 은둔청년 재희씨(가명)가 은둔 청년 쉼터 ‘두더집’의 상담공간에서 자신의 은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사계절 내내 옷 두 벌로 생활을 했어요.”
25살 고재희씨(가명)는 이불 속에서 2년을 지냈다. 몇 시에 일어났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유튜브를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은둔생활을 묘사하는 그의 표현들은 흐릿했다. 눈이 떠지는 시간에 눈을 뜨면, 누운 채로 ‘그때그때 재밌어 보이는 영상’들을 끊임없이 보다가 배가 고파지면 잠시 침대를 빠져나와 밥을 먹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고, 병원을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외출하지 않았다.
재희씨의 시계를 멈추게 한 건 예고 없이 찾아온 교통사고였다. 운동으로 우울감을 풀어오던 재희씨는 사고 이후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됐고,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간섭이 심했어요. 5년 전부터는 집안에서 발생한 법정 소송에 참고인으로 불려다니며 무기력함이 심해졌고요.” 은둔생활 중 우울감이 심해진 어느 날엔 부모님 앞에서 약을 과다복용하는 극단적 시도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렇게 은둔청년이 됐다”
중학교 때부터 10년 동안 은둔생활을 한 강민지(26·가명)씨는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계속 울었다”고 자신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봤다. “부모님이 이혼해서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단둘이 살았는데, 엄마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이셨어요. 저와의 대화에서 동문서답을 하거나, 모든 문제를 제 탓으로 돌렸어요.”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어 대학도 자퇴했다. 은둔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가 막막했다”는 것이었다. 알바도 서너 번 지원했지만 “잘 버티다가도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찾아와 적응하지 못하고 이내 그만뒀다. 현재는 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다.
8년 동안 은둔생활을 한 이도현(32·가명)씨는 초등학생 때 부모로부터 “네 성격 때문에 왕따를 당하는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늘 소외감을 느끼던 그는 족저근막염이 생기면서 서서히 은둔생활에 빠져들었다. 요즘은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과도 소통을 하지 않는다. 교회, 당근마켓에서 열리는 소모임 등에 가끔 나가보기도 했지만 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일회성 관계에 그쳤다. 은둔 생활의 힘든 점으로 “외로움”을 말한 그는 “꾸준하게 계속 이어지는 인연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재희씨, 민지씨, 도현씨의 시계가 조금씩 다시 돌아가게 된 건 은둔·고립 청년 쉼터 ‘두더집’에서다. 사단법인 ‘씨즈’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은 은둔청년들이 다시 세상과 교류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공간이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은 “은둔하는 청년들을 보고 두더지가 떠올랐어요. 지금은 땅속에서 홀로 생활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땅 밖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온라인 교류를 통해 어느 정도 훈련을 마친 ‘두더지’ 청년들은 오프라인 모임공간 ‘두더집’으로 나오기도 한다. 지난 5월 기준 온라인 두더지 땅굴 회원은 980명, 오프라인 두더집을 찾은 은둔청년은 총 1000명에 이른다.
‘두더집’ 마당.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18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두더집을 찾아 ‘두더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금요일마다 열리는 점심밥모임은 두더집의 가장 인기 있는 행사다. 오전 10시부터 점심밥모임이 시작되는 낮 12시까지 총 6명의 청년이 들어와 하나둘 거실에 둘러앉았다. 이들은 이사장을 “외할머니”라고 불렀다. 마당이 딸린 다세대주택, 삶은 고사리와 싱그러운 청귤더미가 있는 부엌의 풍경은 영락없이 푸근한 외갓집을 떠올리게 했다.
은둔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인정, 그리고 일상성의 회복이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처럼 가족, 친구 등으로부터 무관심이나 폭력을 경험한 후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파스타에 들어갈 고사리를 다듬던 재희씨는 “같이 밥을 만들어 먹고 같이 청소하는 일상을 함께하는 게 은둔을 벗어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며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생활이 망가진 은둔청년들은 잘 일어나고, 잘 씻는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훈련해야 한다”며 “있는 그대로 이들을 인정하고 가만히 관심을 가져주면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여기 온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고, 일반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기자랑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냐”며 인터뷰를 거부하던 한 은둔청년은 하루종일 곁에 있던 기자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청귤청을 함께 담그면서 여느 청년들처럼 MBTI 이야기도 나눴다.
‘두더집’에서는 상담치료, 영화동아리 등 은둔청년의 일상 회복을 돕는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지난 8월 18일 두더집에 모인 은둔청년들이 함께 청귤청 담그기 활동을 하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우리끼리 일상을 나누는 게 가장 큰 도움”
두더집은 지난 4월 24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방문해 은둔청년들의 현실과 고충을 살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서울시가 발표한 ‘고립·은둔청년 지원 종합대책’에는 두더집과 같은 공동생활숙소 및 활동공간을 설치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이사장은 이 같은 사업계획에 대해 “은둔청년은 예민하고 상처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단순히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가 아닌 은둔생활을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가 보살펴야 한다”라며 “청년들이 언제든지 머물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더집을 통해 한 발짝 세상으로 나온 은둔청년들도 경쟁을 생각하면 여전히 두렵다고 했다. 최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민지씨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지만, 혼자 일하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요. 컴퓨터 자격증을 공부하려고 하는데 몸이 잘 안 움직여져요.” 은둔생활을 벗어나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는 기자의 말에 “나이도 차고 아는 건 없으니 조바심이 나는 것 같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해외 명문 고등학교 출신인 재희씨도 주변과 스스로를 계속 비교하게 된다고 했다. “친구들은 좋은 대학에서 스펙을 쌓고 있는데 저 혼자만 뒤처지다 보니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돼요.”
한국의 은둔청년 연구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다.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한국형 은둔청년’을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두더집’에서 일하는 일본인 미노루 팀장은 “일본 히키코모리는 부모에게 소속돼 방안에 갇혀 지내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한국의 은둔청년은 경쟁에서 밀려난 1인 가구나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외부 활동도 하는 등 문화적 배경과 특징이 다르다”며 “한국만의 정의를 정립해 은둔청년을 발굴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가 강하다. 미국·일본 등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보다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가 더욱 심각한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권아현 기자
기사 원문 보기 링크 :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8539
지난 8월 18일 주간조선이 만난 은둔청년 재희씨(가명)가 은둔 청년 쉼터 ‘두더집’의 상담공간에서 자신의 은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사계절 내내 옷 두 벌로 생활을 했어요.”
25살 고재희씨(가명)는 이불 속에서 2년을 지냈다. 몇 시에 일어났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유튜브를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은둔생활을 묘사하는 그의 표현들은 흐릿했다. 눈이 떠지는 시간에 눈을 뜨면, 누운 채로 ‘그때그때 재밌어 보이는 영상’들을 끊임없이 보다가 배가 고파지면 잠시 침대를 빠져나와 밥을 먹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고, 병원을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외출하지 않았다.
재희씨의 시계를 멈추게 한 건 예고 없이 찾아온 교통사고였다. 운동으로 우울감을 풀어오던 재희씨는 사고 이후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됐고,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간섭이 심했어요. 5년 전부터는 집안에서 발생한 법정 소송에 참고인으로 불려다니며 무기력함이 심해졌고요.” 은둔생활 중 우울감이 심해진 어느 날엔 부모님 앞에서 약을 과다복용하는 극단적 시도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렇게 은둔청년이 됐다”
중학교 때부터 10년 동안 은둔생활을 한 강민지(26·가명)씨는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계속 울었다”고 자신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봤다. “부모님이 이혼해서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단둘이 살았는데, 엄마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이셨어요. 저와의 대화에서 동문서답을 하거나, 모든 문제를 제 탓으로 돌렸어요.”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어 대학도 자퇴했다. 은둔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가 막막했다”는 것이었다. 알바도 서너 번 지원했지만 “잘 버티다가도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찾아와 적응하지 못하고 이내 그만뒀다. 현재는 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다.
8년 동안 은둔생활을 한 이도현(32·가명)씨는 초등학생 때 부모로부터 “네 성격 때문에 왕따를 당하는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늘 소외감을 느끼던 그는 족저근막염이 생기면서 서서히 은둔생활에 빠져들었다. 요즘은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과도 소통을 하지 않는다. 교회, 당근마켓에서 열리는 소모임 등에 가끔 나가보기도 했지만 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일회성 관계에 그쳤다. 은둔 생활의 힘든 점으로 “외로움”을 말한 그는 “꾸준하게 계속 이어지는 인연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재희씨, 민지씨, 도현씨의 시계가 조금씩 다시 돌아가게 된 건 은둔·고립 청년 쉼터 ‘두더집’에서다. 사단법인 ‘씨즈’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은 은둔청년들이 다시 세상과 교류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공간이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은 “은둔하는 청년들을 보고 두더지가 떠올랐어요. 지금은 땅속에서 홀로 생활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땅 밖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온라인 교류를 통해 어느 정도 훈련을 마친 ‘두더지’ 청년들은 오프라인 모임공간 ‘두더집’으로 나오기도 한다. 지난 5월 기준 온라인 두더지 땅굴 회원은 980명, 오프라인 두더집을 찾은 은둔청년은 총 1000명에 이른다.
‘두더집’ 마당.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18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두더집을 찾아 ‘두더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금요일마다 열리는 점심밥모임은 두더집의 가장 인기 있는 행사다. 오전 10시부터 점심밥모임이 시작되는 낮 12시까지 총 6명의 청년이 들어와 하나둘 거실에 둘러앉았다. 이들은 이사장을 “외할머니”라고 불렀다. 마당이 딸린 다세대주택, 삶은 고사리와 싱그러운 청귤더미가 있는 부엌의 풍경은 영락없이 푸근한 외갓집을 떠올리게 했다.
은둔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인정, 그리고 일상성의 회복이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처럼 가족, 친구 등으로부터 무관심이나 폭력을 경험한 후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파스타에 들어갈 고사리를 다듬던 재희씨는 “같이 밥을 만들어 먹고 같이 청소하는 일상을 함께하는 게 은둔을 벗어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며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생활이 망가진 은둔청년들은 잘 일어나고, 잘 씻는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훈련해야 한다”며 “있는 그대로 이들을 인정하고 가만히 관심을 가져주면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여기 온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고, 일반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기자랑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냐”며 인터뷰를 거부하던 한 은둔청년은 하루종일 곁에 있던 기자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청귤청을 함께 담그면서 여느 청년들처럼 MBTI 이야기도 나눴다.
‘두더집’에서는 상담치료, 영화동아리 등 은둔청년의 일상 회복을 돕는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지난 8월 18일 두더집에 모인 은둔청년들이 함께 청귤청 담그기 활동을 하고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우리끼리 일상을 나누는 게 가장 큰 도움”
두더집은 지난 4월 24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방문해 은둔청년들의 현실과 고충을 살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서울시가 발표한 ‘고립·은둔청년 지원 종합대책’에는 두더집과 같은 공동생활숙소 및 활동공간을 설치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이사장은 이 같은 사업계획에 대해 “은둔청년은 예민하고 상처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단순히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가 아닌 은둔생활을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가 보살펴야 한다”라며 “청년들이 언제든지 머물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더집을 통해 한 발짝 세상으로 나온 은둔청년들도 경쟁을 생각하면 여전히 두렵다고 했다. 최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민지씨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지만, 혼자 일하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요. 컴퓨터 자격증을 공부하려고 하는데 몸이 잘 안 움직여져요.” 은둔생활을 벗어나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는 기자의 말에 “나이도 차고 아는 건 없으니 조바심이 나는 것 같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해외 명문 고등학교 출신인 재희씨도 주변과 스스로를 계속 비교하게 된다고 했다. “친구들은 좋은 대학에서 스펙을 쌓고 있는데 저 혼자만 뒤처지다 보니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돼요.”
한국의 은둔청년 연구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다.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한국형 은둔청년’을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두더집’에서 일하는 일본인 미노루 팀장은 “일본 히키코모리는 부모에게 소속돼 방안에 갇혀 지내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한국의 은둔청년은 경쟁에서 밀려난 1인 가구나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외부 활동도 하는 등 문화적 배경과 특징이 다르다”며 “한국만의 정의를 정립해 은둔청년을 발굴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가 강하다. 미국·일본 등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보다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가 더욱 심각한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권아현 기자
기사 원문 보기 링크 :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8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