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고립 생활을 했던 두 청년이 두더집 2층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죄송하지만 저에 대한 관심을 조금 거둬주시면 안될까요?”
오 모(28) 씨가 고립·은둔청년 쉼터 ‘두더집’에 처음 온 날 꺼낸 첫마디다. 2023년 처음 두더집을 찾은 오 씨는 쏟아지는 환대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비좁은 방 한 칸에서 누워 지내던 그가 사람들 앞에 선 경험은 5년 만이었다. 그는 중학생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줄곧 혼자 지내왔다. 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대학에 갔지만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했다. 월세 낼 돈이 없어 노숙인들이 생활하는 자활 시설에 입소했다. 라면으로 간신히 끼니를 챙기고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10년 동안 은둔생활을 한 김 모(29) 씨의 하루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시작하고 끝이 났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집 안에 가뒀다. 더 정확히는 부모의 기대가 그를 압박했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 씨와 김 씨는 이제 낯선 사람과도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눈다. 말하는 속도가 느리고 가끔 질문에 맞지 않는 답을 하지만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두더집에 온 지 6개월 만이다.
평범한 가정집처럼 아늑하게 꾸며진 거실. 청년들은 이곳에서 간식을 먹거나 영화를 감상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고립·은둔청년 80% 탈출 원해
두더집은 비영리법인 씨즈가 운영하는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쉼터다. 사회에 나오기 위한 관계회복, 일상생활 기술 훈련, 고립문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일경험 등을 지원하고 있다. 2022년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에서 교류를 나눈 청년들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모임 수요가 늘면서 탄생했다. 지금까지 약 2000명의 청년이 이곳을 다녀갔다.
두더집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 후원이나 공익기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개인 후원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두더지는 땅속에서 홀로 생활하다가도 이따금 바깥으로 나온다. 생존을 위해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땅밖에서 생활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더집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청년들을 연결하고 위로를 나누는 ‘격려의 공동체’다. 씨즈 이은애 이사장은 “고립·은둔청년들이 땅속에서라도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공간이 돼주고 싶다. 언젠가 함께 땅 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관계가 끊긴 채 지내는 청년 4명 중 3명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립·은둔의 이유로는 ‘취업실패(24.1%)’, ‘대인(23.5%)’, ‘가족(12.4%)’, ‘건강(12.4%)’ 순으로 나타났으며 응답자 중 80% 이상이 고립·은둔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었다. 두더집을 찾아오는 청년들의 가장 큰 이유 역시 ‘사회로 나오기 위한 도전’이다.
상처 치유·비폭력 대화 훈련·일경험
두더집은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낮 12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월요일에는 저녁 6시까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공황증세를 보이는 청년들을 위해 출퇴근 시간대를 최대한 피한 것이다. 그날그날 어떤 청년이 두더집을 찾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큰 결심을 하고 외출하려고 했다가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하기도 하고 망설이다가 어렵게 걸음을 하는 경우도 있다.
두더집은 작은 마당이 딸린 2층 주택이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실에는 두툼한 카펫 위에 널찍한 소파가 놓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한 청년이 선물했다는 사탕이 한가득이다. 청년들의 손길이 거친 다육식물 화분이 줄지어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그 옆으로는 통기타, 호빵 찜기, 낡은 서적 등이 있는 등 사무 공간 외 나머지 공간은 평범한 가정집처럼 아늑한 분위기다.
3월 22일 낮 12시, 두더집에는 이 이사장과 직원 두 명이 전부였다. 직원 중 한 명은 앞서 소개한 오 씨다. 오 씨는 고립·은둔청년을 대상으로 한 지자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두더집을 알게 됐다. 두더집 활동을 계기로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 그는 현재 두더집의 포스터 제작 및 누리집 콘텐츠 게시 업무를 맡고 있다. 시간이 생길 때마다 ‘두더지 땅굴’에 올라오는 고민 글에 답글을 달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생기면서 말주변이 좋아진 걸 느낀다. 내가 두더집에서 제일 성공한 케이스 같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두더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오후 2시 즈음 시작됐다. 이 모(46) 씨는 익숙한 듯 오 씨와 인사를 나누며 소파에 자리 잡았다. 이 씨는 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 부족한 수면 탓에 온몸이 아프다고 했다. 지난 5년간 외부와 차단된 일상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 씨가 두더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카드게임과 대화다. 자신을 ‘별난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소중하다고 했다. 두더집을 알게 된 배경도 ‘대화모임’을 검색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살면서 했던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뭔가요?”
“1년간 물류 일을 했을 때요.”
“저도 그거 해봤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대단하시네요.”
이 씨와 오 씨의 대화가 계속됐다. 좋아하는 연예인, 가고 싶은 여행지 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닐 수 있는 대화가 두 사람에게는 용기고 기회였다. 이 씨는 “지금도 발음이 많이 어눌하지만 대화하는 시간이 늘면서 조금씩 고쳐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립·은둔이 길어질 경우 대화를 안하다보니 발음에도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있다. 그는 “호주 풍경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이는 곳이었다. 내가 조금 더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면 멀리 여행을 떠나보는 게 꿈”이라며 넓은 세상과 더 나은 일상을 향한 의지를 내비쳤다.
두더집의 목표는 청년들의 엉클어진 일상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텃밭에서 채취한 식재료로 식사를 차리고 머문 자리를 같이 정돈하며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가치를 되새겨주는 것이다. 고립·은둔의 원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해결 중심 상담’도 이뤄진다. 오랜 기간 소통이 단절된 탓에 다소 폭력적인 언행을 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비폭력 대화 훈련을 진행한다.
상처를 치유하는 일련의 과정이 지나면 ‘일경험’을 하게 된다. 새로운 자립경로 찾기, 직장에서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상 회사’ 운영, 사회적 경제 인턴십, 직무기술 훈련 연계 등이 해당된다.
두더집에서 만난 청년들은 자신의 의지로 두더집을 찾아왔다. 저마다의 이유로 고립·은둔청년이 됐지만 긴 터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함은 다르지 않았다. 10년간 은둔터널에 갇혔던 김 씨는 이렇게 말했다.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그럼에도 더 나가보려고 한다. 실패하면 어떻게 딛고 일어서야 하는지는 실패해봐야 알게 되더라.”
이근하 기자
박스기사
씨즈 이은애 이사장
평일 낮 12시가 되면 두더집의 문이 활짝 열린다. 씨즈 이은애 이사장은 두더집을 찾는 고립·은둔 청년들을 환한 미소로 맞는다. 사진 C영상미디어
“고립·은둔청년에게 필요한 건 교류의 기회”
씨즈는 2010년 청년세대 주도의 사회혁신가 육성을 표방하며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씨즈 이은애 이사장(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은 경기 안산지역 노동자들의 자활을 돕기 시작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청년들을 돕는 일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그가 고립·은둔청년에게 시선을 돌린 데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고립된 청년들, 특히 경제적 활동이 중단된 1인가구 청년들은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했다. 무기력함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는 청년들이 생겨났다. 이 이사장은 청년들을 위한 사회적 지지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고립·은둔청년에게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과정이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수요가 생기는 건 왜일까?
고립·은둔생활에서 비롯된 피로도가 굉장히 깊었다는 의미다.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도 배신당하거나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 같다.
장기간 사회와 단절된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게 쉽진 않겠다.
소통의 미숙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 문제로 은둔했던 사람이 너무 과격하게 발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모임 안에서 약간의 다툼이 발생할 순 있지만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선생님, 저는 옆에서 조금만 부정적인 코멘트를 해도 갑자기 흥분할 수 있어요. 그럴 땐 자제시켜주세요. 두더집에 계속 오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고립·은둔의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천차만별이다. 한 예로 ‘너무 잘나가는’ 부모가 아이의 대학입학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구박한 경우다. 아이는 뭘 해도 칭찬을 받지 못해 자존감이 떨어졌고 그것이 불안감과 원망으로 변하면서 고립으로 이어졌다. 가족을 보살펴야 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청년도 있다. 스물다섯 살 청년이 조현병을 앓는 동생을 돌보느라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경우다. 부모는 집에 안온 지 오래됐고 가끔 몇 십만 원씩 보내준다는 이유로 생계비 수급 대상자가 되지 못했다. 며칠 동안 굶어 주민센터에 가서 쌀을 요청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이 꾸준히 언급되는데.
고립·은둔은 선택이 아니다. 공감받지 못하는 환경,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청년들이다. 고립·은둔청년들 중 학교폭력 피해자가 꽤 많다. ‘그때 나는 왜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나’라는 자기혐오가 우울증으로 나타난다. 심각한 우울과 불안으로 인해 숨어든 것이다. 그러니 고립·은둔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원인을 찾고 함께 해결하는 것이 맞다.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교류의 기회, 연결의 경험이 필요하다. 외로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가 중요하다. 전문가에 의한 치료보다 다른 청년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 두더집 같은 공간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스기사2
가족돌봄·고립은둔청년 전담 시범사업 전국 4곳 전담기관 설치
도움 필요한 청년에 맞춤 서비스 지원
7월부터 인천, 울산, 충북, 전북 등 4개 지역에서 ‘가족돌봄·고립은둔청년 전담 시범사업’이 시행된다. 가족돌봄청년과 고립은둔청년을 대상으로 지역사회 내 전담기관을 설치해 전담인력이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을 발굴,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상자는 여러 기관을 거치지 않고 ‘청년미래센터(가칭)’에서 상담, 정부 지원 서비스 연계, 맞춤형 프로그램 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다.보건복지부는 가족돌봄청년에게 연 최대 200만 원의 자기돌봄비를 지급하고 아픈 가족에게는 일상돌봄서비스, 장기요양, 장애인활동 지원 등 정부 지원 서비스를 연계한다. 고립·은둔청년의 경우 온라인상 자가진단 및 도움요청 창구를 통해 조기발굴하고 대상자의 고립 정도에 적합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복지부는 4개 지방자치단체 외에 자체적으로 고립·은둔청년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들과 협업해 지역 내 청년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번 시범사업을 토대로 지원 대상자 정의, 개인정보보호, 시스템 활용 등 전국 확대에 필요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복지부 김현준 인구정책실장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 중 도움이 시급한 가족돌봄청년과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사업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며 “전국 시행모델을 구축해 도움이 필요한 청년 모두에게 지원이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기사 원문 보기 링크 : https://gonggam.korea.kr/newsContentView.es?mid=a10205000000&news_id=cee650e1-f6ed-4ddd-8e8d-9cf9999702bc&pWise=Letter
오랜 시간 고립 생활을 했던 두 청년이 두더집 2층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죄송하지만 저에 대한 관심을 조금 거둬주시면 안될까요?”
오 모(28) 씨가 고립·은둔청년 쉼터 ‘두더집’에 처음 온 날 꺼낸 첫마디다. 2023년 처음 두더집을 찾은 오 씨는 쏟아지는 환대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비좁은 방 한 칸에서 누워 지내던 그가 사람들 앞에 선 경험은 5년 만이었다. 그는 중학생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줄곧 혼자 지내왔다. 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대학에 갔지만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했다. 월세 낼 돈이 없어 노숙인들이 생활하는 자활 시설에 입소했다. 라면으로 간신히 끼니를 챙기고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10년 동안 은둔생활을 한 김 모(29) 씨의 하루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시작하고 끝이 났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집 안에 가뒀다. 더 정확히는 부모의 기대가 그를 압박했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 씨와 김 씨는 이제 낯선 사람과도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눈다. 말하는 속도가 느리고 가끔 질문에 맞지 않는 답을 하지만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두더집에 온 지 6개월 만이다.
평범한 가정집처럼 아늑하게 꾸며진 거실. 청년들은 이곳에서 간식을 먹거나 영화를 감상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고립·은둔청년 80% 탈출 원해
두더집은 비영리법인 씨즈가 운영하는 고립·은둔청년을 위한 쉼터다. 사회에 나오기 위한 관계회복, 일상생활 기술 훈련, 고립문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일경험 등을 지원하고 있다. 2022년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 땅굴’에서 교류를 나눈 청년들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모임 수요가 늘면서 탄생했다. 지금까지 약 2000명의 청년이 이곳을 다녀갔다.
두더집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 후원이나 공익기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개인 후원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두더지는 땅속에서 홀로 생활하다가도 이따금 바깥으로 나온다. 생존을 위해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땅밖에서 생활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더집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청년들을 연결하고 위로를 나누는 ‘격려의 공동체’다. 씨즈 이은애 이사장은 “고립·은둔청년들이 땅속에서라도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공간이 돼주고 싶다. 언젠가 함께 땅 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고립·은둔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관계가 끊긴 채 지내는 청년 4명 중 3명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립·은둔의 이유로는 ‘취업실패(24.1%)’, ‘대인(23.5%)’, ‘가족(12.4%)’, ‘건강(12.4%)’ 순으로 나타났으며 응답자 중 80% 이상이 고립·은둔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었다. 두더집을 찾아오는 청년들의 가장 큰 이유 역시 ‘사회로 나오기 위한 도전’이다.
상처 치유·비폭력 대화 훈련·일경험
두더집은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낮 12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월요일에는 저녁 6시까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공황증세를 보이는 청년들을 위해 출퇴근 시간대를 최대한 피한 것이다. 그날그날 어떤 청년이 두더집을 찾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큰 결심을 하고 외출하려고 했다가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하기도 하고 망설이다가 어렵게 걸음을 하는 경우도 있다.
두더집은 작은 마당이 딸린 2층 주택이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실에는 두툼한 카펫 위에 널찍한 소파가 놓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한 청년이 선물했다는 사탕이 한가득이다. 청년들의 손길이 거친 다육식물 화분이 줄지어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그 옆으로는 통기타, 호빵 찜기, 낡은 서적 등이 있는 등 사무 공간 외 나머지 공간은 평범한 가정집처럼 아늑한 분위기다.
3월 22일 낮 12시, 두더집에는 이 이사장과 직원 두 명이 전부였다. 직원 중 한 명은 앞서 소개한 오 씨다. 오 씨는 고립·은둔청년을 대상으로 한 지자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두더집을 알게 됐다. 두더집 활동을 계기로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 그는 현재 두더집의 포스터 제작 및 누리집 콘텐츠 게시 업무를 맡고 있다. 시간이 생길 때마다 ‘두더지 땅굴’에 올라오는 고민 글에 답글을 달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생기면서 말주변이 좋아진 걸 느낀다. 내가 두더집에서 제일 성공한 케이스 같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두더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오후 2시 즈음 시작됐다. 이 모(46) 씨는 익숙한 듯 오 씨와 인사를 나누며 소파에 자리 잡았다. 이 씨는 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다. 부족한 수면 탓에 온몸이 아프다고 했다. 지난 5년간 외부와 차단된 일상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 씨가 두더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카드게임과 대화다. 자신을 ‘별난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소중하다고 했다. 두더집을 알게 된 배경도 ‘대화모임’을 검색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살면서 했던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뭔가요?”
“1년간 물류 일을 했을 때요.”
“저도 그거 해봤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대단하시네요.”
이 씨와 오 씨의 대화가 계속됐다. 좋아하는 연예인, 가고 싶은 여행지 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닐 수 있는 대화가 두 사람에게는 용기고 기회였다. 이 씨는 “지금도 발음이 많이 어눌하지만 대화하는 시간이 늘면서 조금씩 고쳐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립·은둔이 길어질 경우 대화를 안하다보니 발음에도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있다. 그는 “호주 풍경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이는 곳이었다. 내가 조금 더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면 멀리 여행을 떠나보는 게 꿈”이라며 넓은 세상과 더 나은 일상을 향한 의지를 내비쳤다.
두더집의 목표는 청년들의 엉클어진 일상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텃밭에서 채취한 식재료로 식사를 차리고 머문 자리를 같이 정돈하며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가치를 되새겨주는 것이다. 고립·은둔의 원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해결 중심 상담’도 이뤄진다. 오랜 기간 소통이 단절된 탓에 다소 폭력적인 언행을 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비폭력 대화 훈련을 진행한다.
상처를 치유하는 일련의 과정이 지나면 ‘일경험’을 하게 된다. 새로운 자립경로 찾기, 직장에서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상 회사’ 운영, 사회적 경제 인턴십, 직무기술 훈련 연계 등이 해당된다.
두더집에서 만난 청년들은 자신의 의지로 두더집을 찾아왔다. 저마다의 이유로 고립·은둔청년이 됐지만 긴 터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함은 다르지 않았다. 10년간 은둔터널에 갇혔던 김 씨는 이렇게 말했다.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그럼에도 더 나가보려고 한다. 실패하면 어떻게 딛고 일어서야 하는지는 실패해봐야 알게 되더라.”
이근하 기자
박스기사
씨즈 이은애 이사장
평일 낮 12시가 되면 두더집의 문이 활짝 열린다. 씨즈 이은애 이사장은 두더집을 찾는 고립·은둔 청년들을 환한 미소로 맞는다. 사진 C영상미디어
“고립·은둔청년에게 필요한 건 교류의 기회”
씨즈는 2010년 청년세대 주도의 사회혁신가 육성을 표방하며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씨즈 이은애 이사장(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은 경기 안산지역 노동자들의 자활을 돕기 시작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청년들을 돕는 일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그가 고립·은둔청년에게 시선을 돌린 데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고립된 청년들, 특히 경제적 활동이 중단된 1인가구 청년들은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했다. 무기력함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는 청년들이 생겨났다. 이 이사장은 청년들을 위한 사회적 지지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고립·은둔청년에게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과정이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수요가 생기는 건 왜일까?
고립·은둔생활에서 비롯된 피로도가 굉장히 깊었다는 의미다.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도 배신당하거나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 같다.
장기간 사회와 단절된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게 쉽진 않겠다.
소통의 미숙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 문제로 은둔했던 사람이 너무 과격하게 발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모임 안에서 약간의 다툼이 발생할 순 있지만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선생님, 저는 옆에서 조금만 부정적인 코멘트를 해도 갑자기 흥분할 수 있어요. 그럴 땐 자제시켜주세요. 두더집에 계속 오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고립·은둔의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천차만별이다. 한 예로 ‘너무 잘나가는’ 부모가 아이의 대학입학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구박한 경우다. 아이는 뭘 해도 칭찬을 받지 못해 자존감이 떨어졌고 그것이 불안감과 원망으로 변하면서 고립으로 이어졌다. 가족을 보살펴야 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청년도 있다. 스물다섯 살 청년이 조현병을 앓는 동생을 돌보느라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경우다. 부모는 집에 안온 지 오래됐고 가끔 몇 십만 원씩 보내준다는 이유로 생계비 수급 대상자가 되지 못했다. 며칠 동안 굶어 주민센터에 가서 쌀을 요청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이 꾸준히 언급되는데.
고립·은둔은 선택이 아니다. 공감받지 못하는 환경,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청년들이다. 고립·은둔청년들 중 학교폭력 피해자가 꽤 많다. ‘그때 나는 왜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나’라는 자기혐오가 우울증으로 나타난다. 심각한 우울과 불안으로 인해 숨어든 것이다. 그러니 고립·은둔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원인을 찾고 함께 해결하는 것이 맞다.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교류의 기회, 연결의 경험이 필요하다. 외로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가 중요하다. 전문가에 의한 치료보다 다른 청년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기회, 두더집 같은 공간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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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돌봄·고립은둔청년 전담 시범사업 전국 4곳 전담기관 설치
도움 필요한 청년에 맞춤 서비스 지원
7월부터 인천, 울산, 충북, 전북 등 4개 지역에서 ‘가족돌봄·고립은둔청년 전담 시범사업’이 시행된다. 가족돌봄청년과 고립은둔청년을 대상으로 지역사회 내 전담기관을 설치해 전담인력이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을 발굴,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상자는 여러 기관을 거치지 않고 ‘청년미래센터(가칭)’에서 상담, 정부 지원 서비스 연계, 맞춤형 프로그램 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다.보건복지부는 가족돌봄청년에게 연 최대 200만 원의 자기돌봄비를 지급하고 아픈 가족에게는 일상돌봄서비스, 장기요양, 장애인활동 지원 등 정부 지원 서비스를 연계한다. 고립·은둔청년의 경우 온라인상 자가진단 및 도움요청 창구를 통해 조기발굴하고 대상자의 고립 정도에 적합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복지부는 4개 지방자치단체 외에 자체적으로 고립·은둔청년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들과 협업해 지역 내 청년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번 시범사업을 토대로 지원 대상자 정의, 개인정보보호, 시스템 활용 등 전국 확대에 필요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복지부 김현준 인구정책실장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 중 도움이 시급한 가족돌봄청년과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사업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며 “전국 시행모델을 구축해 도움이 필요한 청년 모두에게 지원이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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